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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22화
PAYLUA ORIGINAL · 제122화

122화. 거절을 받는 창구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273자

오프라인 책장
“답장이 오기 전에 창구부터 만들어야 한다니.” 윤재하는 가시골 주민회 회의실에서 서류 뭉치를 내려다봤다. 방 한쪽에는 오전에 들여온 책상이 놓여 있었다. 그 책상 위에는 기도 접수함도, 신앙 포인트 계량기도 없었다. 빈 종이와 거절 신청서가 전부였다. 에반이 의자에 앉아 손바닥을 비볐다. “드디어 신전에도 고객센터가 생기는군. 광고문구는 내가—” “광고는 필요 없어요.” 모과가 잘랐다. “여기는 누군가의 결정을 접수하는 자리입니다. 신도 모집 창구가 아니고요.” “아주 작은 홍보도?” “그걸 물어보는 순간부터 불안해지네요.” 재하는 창문 밖을 보았다. 가을이 시작된 가시골에는 수확을 마친 밭이 누렇게 펼쳐져 있었다. 처음 왔을 때 폐허 신전에서 마을까지 이어지는 길은 잡초 때문에 구별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사람들이 함께 돌을 고르고 비가 오면 길에 고이는 물을 빼서, 유모차 같은 작은 수레도 올라올 수 있었다. 이렇게 변한 마을을 보며 재하는 신전이 예전처럼 자신의 사유물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세리아가 새 표를 펼쳤다. 후보 000001의 기록에는 신원 열람 제한이 걸려 있었다. 그 사람의 거절 효력이 언제까지 보류되는지는 확인됐지만, 만료된 뒤 어떤 절차가 이어지는지는 기록이 조각나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세 가지뿐입니다. 이미 남아 있는 거절의 진위를 확인할 것. 대리 주소의 발신 권한을 독립적으로 심사할 것.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떤 대답을 하든 다른 계약으로 간주하지 않게 할 것.” 카르도가 한쪽 손을 들어 보였다. “거절을 확인했다면 그냥 거절로 처리하면 되지 않나?”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문제는 기존 시스템에서 ‘확인되기 전까지 보류’가 사실상 무기한 보류로 사용됐다는 거예요. 규칙을 고치지 않으면 다음 담당자가 또 같은 서류를 붙일 수 있습니다.” 릴리는 책상 위 신청서를 살폈다. 글씨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손바닥 도장으로 대신 신청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 하지만 신전에서 받은 선물이나 치료를 포기해야만 거절할 수 있다는 문장이 뒤에 붙어 있었다. “이거 아직도 남아 있어요?” 도르는 얼굴을 찡그렸다. “오래전 신전들이 헌납을 받으면서 쓰던 문구와 비슷하네. 구제를 받았으면 남은 인생을 충성으로 갚으라는 식이었지.” 재하는 펜으로 그 문장에 선을 그었다. 대신 ‘기존에 받은 도움의 반환 의무 없음’이라고 적었다. 세리아는 단순히 종이 한 장을 바꾸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본래 우편망의 규정에도 같은 내용이 반영되어야 했다. “그럼 여기서 접수한 거절을 누가 승인합니까?” 릴리가 물었다. “바로 그걸 정해야 합니다. 승인권자가 신청을 보류할 수 있다면 같은 문제가 반복됩니다.” 리안은 기록을 읽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공사를 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습니다. 위험하다고 작업 중지를 요청했는데 현장 책임자가 승인하지 않으면, 실제로는 멈출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중지 요청 자체에 효력이 있어야 합니다.” 재하는 고개를 들었다. 신전과 기도와 천계 법률이 뒤섞여 복잡해 보이던 문제가 갑자기 익숙해졌다. 사람을 보호하는 긴급 정지는 허락받은 다음 실행하면 늦을 수 있다. “일단 효력을 발생시키고, 정당성을 나중에 검토할 수는 없나요?” 세리아가 적어 놓았다. ‘잠정 효력 우선, 별도 검증 후 확정.’ “가능한 제도입니다. 하지만 위조 거절을 악용해 타인의 권리를 막을 위험도 있으니, 확인 절차는 철저해야 합니다.” 에반이 예상외로 진지하게 말했다. “저런 서류는 거래상대가 어떤 버튼을 누르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확인을 안 누르면 자동 동의, 취소는 여섯 번 눌러야 하는 식이요. 내가 과거에 그런 화면을 만들었어요. 누구나 알기 쉽게 만들었다고 발표했는데 사실 쉽게 누르도록 유도한 버튼만 있었죠.” “그래서 이번에도 화면을 만들고 싶다는 건가?” 카르도가 물었다. “아니요. 이번엔 내가 결정하지 않는 게 맞아요. 제안서를 쓰고, 피해를 본 사람이 읽을 수 있게 하려는 겁니다.” 모과는 조금 놀란 얼굴이 됐다. 에반에게 책임을 맡기는 일과 검토 자료를 받는 일은 다르다는 뜻을 그도 배우고 있었다. 사무적인 도움은 필요하지만 설계자 혼자 검증까지 해서는 안 된다. 새 창구를 설계하기 전에 세리아는 모의 접수를 하자고 제안했다. 가상의 기록을 만들어 안전한 시험망에 넣어 보는 방식이었다. 실제 후보 000001의 기록을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모과는 ‘가상의 참새 한 마리’를 신청인으로 적었고, 에반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왜 참새예요?” “사람 이름을 시험 자료로 쓰고 싶지 않아서요. 그리고 참새가 거절하면 귀엽잖아요.” “행정 시스템이 귀엽다고 잘 돌아가지는 않아요.” “악마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신뢰가 생기네요.” 모의 접수에서 첫 문제는 예상보다 단순했다. 거절 확인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기다리자 시험망은 몇 분 후 ‘응답 지연’을 ‘보류 동의’로 바꿨다. 에반은 낯익은 화면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사용자가 선택하지 않을 때 서비스에 유리한 쪽으로 기록을 남기는 방식을 자기 손으로 구현한 적이 있었다. “누르지 않은 건 누르지 않은 거지. 동의가 아니에요.” 릴리가 말했다. “맞아요. 하지만 오래된 시스템은 침묵을 자기 편으로 계산합니다.” 세리아가 답했다. 다음 시험에서는 화면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가정했다. 낡은 우편기는 글씨가 작은 청색 버튼 세 개를 보여 줬다. 모과는 나이가 든 직공을 떠올렸다. 손이 떨리고 눈이 어두운 사람에게는 세 버튼의 차이를 읽기조차 어려웠다. 그 직공이 예전에 계약에 도장을 찍은 이유가 단순히 무지해서가 아닐 수 있었다. 릴리는 종이를 크게 인쇄했다. 도르가 옆에서 읽어 주는 방식으로도 시험했다. 신청인이 내용을 이해했다고 말할 때까지 진행하지 않았으며,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이미 받은 혜택을 잃지 않도록 했다. 시험 기록에는 종료되지 않은 과정은 ‘미완료’로만 남겼다. 재하는 회사에서 만들던 내부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업무를 빠르게 처리한다는 이유로 사용자에게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묻지 않도록 설정하곤 했다. 하지만 중요한 권한을 바꾸는 순간에는 불편하더라도 다시 물어야 했다. 빠른 화면보다 확실한 선택이 필요한 곳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인정했다. “이건 코딩 문제라기보다 누가 어떤 결과를 얻느냐의 문제네요.” “항상 그렇죠.” 에반이 말했다. “편리함을 누구에게 주는지부터 정하고 코드를 쓰니까요.” 그는 과거 계약 목록에 ‘자동 연장’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기억했다. 한번 신청한 사람은 서비스를 그만두려고 할 때마다 자기 의사를 증명해야 했다. 반대로 서비스를 계속 받는다는 판단은 누구의 확인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때 자신은 그것이 뛰어난 사업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모의 접수 결과는 뜻밖에도 실패가 많았다. 승인 처리는 잘됐지만 거절 과정에서는 오류가 났다. 특히 오래된 장치가 사람에게 유리하지 않은 방식으로 시간을 계산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세리아는 결과를 실험 실패로만 적지 않았다. 어느 단계에서 오류가 나는지, 안전망이 작동하는지까지 구분했다. 리안은 시험망을 건드리다가 단말기의 뒤쪽 연결선을 확인했다. 새 창구의 전력선과 옛 외부망 장치의 선이 같은 벽을 타고 있었다. 겉으로는 다른 기계지만 잘못된 연결 하나면 민감한 기록이 다시 옛 주소로 흘러갈 수 있었다. “전기부터 분리하겠습니다. 독립 창구라고 이름만 붙일 게 아니라 실제로 독립된 선을 써야죠.” 카르도가 감탄했다. “정말 적절한 말이군.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 적이 사라진 적은 없었지.” “여기 적은 없을 수도 있어요.” 리안이 대꾸했다. “그저 오래된 선이 잘못 이어져 있을 뿐입니다.” 그 말에 카르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된 설비까지 적으로 만들어 부술 필요는 없었다. 사람의 선택을 보호하는 방식은 상대를 정복하는 일과 달랐다. 모의 접수의 마지막 단계에는 예상하지 못한 문구가 튀어나왔다. ‘정말 거절하시겠습니까? 다시는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릴리는 그 문장을 읽고 눈살을 찌푸렸다. 보호를 받을 권리와 신앙 계약을 유지할 의무가 연결돼 있었다. 세리아는 그 문구가 현재 규정과 충돌한다며 즉시 시험 항목으로 옮겼다. “무섭게 만들고 나서 선택하라는 건 공정하지 않잖아요.” 릴리가 말했다. 모과는 그 문장을 작은 글씨로 바꾸면 되는지 물었다. 에반은 고개를 저었다. 글씨의 크기가 아니라 문구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진실이 아닌 위협으로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해선 안 된다는 사실은 이제 악마도 알았다. 재하는 모든 버튼의 작동 결과를 한 장에 적어 붙이게 했다. ‘동의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거절하면 무엇이 그대로 유지되는지’, ‘결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지’를 나란히 썼다. 누구든 시험 결과를 읽고 반박할 수 있도록 했다. 세리아는 시험 과정을 보고서로 옮길 때 실패한 기록도 지우지 않았다. 어떤 접수는 두 번 누르면 원하지 않는 동의가 남았고, 어떤 접수는 거절을 누른 뒤에도 확인 메시지가 도착하지 않았다. 문제를 찾았다는 이유로 사람을 탓할 수는 없었다. 불안정한 장치를 그대로 사용하도록 만든 설계가 먼저 고쳐져야 했다. 모과는 안내판 끝에 작은 글씨로 ‘시험 접수에는 실제 계약 효력이 없습니다’라고 적었다. 에반이 그것을 보고는 더 크게 쓰자고 했다. 사람의 오해를 막는 문구라면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놓는 게 맞았다. 재하는 웃었다. 악마에게서 오늘만큼은 제대로 된 화면 설계 수업을 받고 있었다. 오후에는 신전 근처의 주민 열한 명이 시험 접수 창구를 찾아왔다. 모두 외부 세계 후보자는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 마을에서 헌납을 거절할 때 실제로 어떤 불편을 겪는지 이야기했다. 대장장이의 아내는 계약을 철회한 뒤 공동 우물 이용을 방해받았다고 했다. 늙은 직공은 자신이 읽지 못하는 문서에 도장 찍은 일을 기억했다. “그럼 저도 지금 와서 그 계약을 되돌릴 수 있습니까?” 직공이 물었다. “기록을 확인한 뒤 판정해야 합니다. 다만 확인하는 동안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임시 보호 신청은 할 수 있습니다.” 세리아가 답했다. 재하는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할 수 없는 일까지 해 준다고 거짓 약속을 하지 않았다. 에반은 그 모습을 보고 작은 수첩에 ‘과장된 약속 금지’라고 적었다. 그러나 그때 벽 뒤의 낡은 소리관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전날보다 낮고 묵직한 소리였다. 안쪽에서 누군가 규정 확인을 요청하고 있었다. [거절 효력 보류 재심사] [심사 요청자: 공용 주소 관리 대리] [대리권 증명: 과거 승인 기록 참조] “승인 기록이 없잖아요.” 릴리가 말했다. “그래서 과거 기록을 참조한다고 하는 거야.” 에반이 씁쓸하게 대꾸했다. “보여 줄 수 없는 증거가 가장 편리하거든.” 세리아는 응답 채널을 개설하되 원본 후보 정보는 전송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새로운 접수번호와 사유만 보냈다. ‘대리권 입증 전까지 기존 거절 잠정 유효.’ 잠시 뒤 소리관에서는 짧은 반응이 돌아왔다. [잠정 효력 인정 권한 부족] [상위 승인자 호출 중] 카르도가 팔짱을 꼈다. “이런 때 내 군대라면 열쇠를 쥔 사람부터 부르겠군.” “이번엔 부르는 데까지만 해 주세요.” 재하가 말했다. “붙잡아 오지는 말고요.” 전쟁신은 못내 아쉬운 듯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이 어두워질 즈음, 임시 접수 창구에는 작은 종이 세 장이 쌓였다. 여러 마을 주민의 도움 요청이었다. 그중 하나는 이름을 적지 않은 아주 짧은 문장이었다. ‘저는 거절하겠다고 말했는데, 상대가 듣지 않았어요.’ 릴리는 그 종이를 조심스레 집었다. 다른 세계의 후보가 보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말에 담긴 답답함은 익숙했다. 신에게도, 행정관에게도, 가족에게도 사람은 자신의 대답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이름이 없어도 말은 남겨 둘 수 있죠?” “그럼요.” 재하가 대답했다.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다고 없던 말이 되는 건 아니니까.” 그날 밤 도르는 신전 앞에서 장작을 옮기다가 발길을 멈췄다. 낡은 벽의 소리관이 완전히 멈춘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벽 뒤에서 사람의 목소리 같은 잔향이 흘러나왔다. ‘이곳에 남기겠습니다. 더는 그 사람을 찾지 마세요.’ 도르는 장작을 떨어뜨렸다. 그 말을 처음 들은 날이 떠올랐다. 신전을 떠나기 전, 그는 누군가에게 똑같은 문장을 부탁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편지가 제대로 도착했는지는 한 번도 확인하지 못했다. “그랬구나.” 도르가 혼잣말했다. “그 거절은 아직도 이 벽 안에 있었어.” 그가 부른 재하 일행이 도착했을 때, 소리관 아래에서는 얇은 봉인 한 장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최초 보류 사유: 수신자 확인 불가] [보관 장소: 가시골 신전 지하 제2접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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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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