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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21화
PAYLUA ORIGINAL · 제121화

121화. 발신인은 폐허 신전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075자

오프라인 책장
신전 입구에 붙은 간판은 어제 새로 고친 것이었다. 한때 이름 없는 신의 거처였던 곳은 이제 비가 새는 지붕보다 주민회의 소집 공고가 먼저 눈에 띄었다. 가시골 사람들은 그 변화에 꽤 만족하는 듯했다. 하지만 윤재하는 문 앞에서 좀처럼 발을 떼지 못했다. “제 이름으로 사전 관찰을 요청했다고요?” “정확히는 신전의 공용 발신 주소로 요청됐습니다.” 세리아가 수정했다. “현재 있는 사람 중 누가 보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재하는 지난 백이십 화 동안 충분히 배웠다. 하지만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지구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야근하던 자신을 누군가 살펴보고 있었다. 후보 000001이라는 먼저 선택된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의 거절이 관리자에 의해 보류된 채 남아 있었다. 마을 서기 모과가 길쭉한 열쇠꾸러미를 흔들며 다가왔다. “우선 신전 장부를 확인합시다. 제가 관리한 뒤의 기록은 다 있어요. 그 이전은 자신 없지만요.” “지금 고백하시는 거예요?” 에반이 물었다. “아니요. 오래된 장부가 완벽하다고 광고하지 않는 겁니다. 악마님은 그런 광고를 자주 하셨나 봐요?” 에반은 어색하게 웃었다. “과거형으로 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전 안에는 새로 붙인 목재 선반과 오래된 제단이 나란히 있었다. 제단 뒤에는 전임 신 도르가 사용하는 조그만 주전자와 주민들이 공동으로 쓰는 응급 도구함도 있었다. 재하는 몇 달 전 이곳에 떨어졌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는 먼지가 입 안으로 들어오는 것보다 신도가 0명이라는 사실이 더 큰 문제였다. 지금은 신도가 몇 명인지 세는 일보다, 이 신전 이름을 누가 어디에 썼는지가 문제였다. 모과는 장부 세 권을 펴 놓았다. 하나는 건물 수리 비용, 하나는 외부 방문 기록, 마지막은 옛 천계 우편 수신 기록이었다. 두꺼운 수신 장부의 가장 첫 장에는 도르가 남긴 글씨가 있었다. ‘신전이 폐쇄되더라도 길 잃은 사람의 쉼터는 잠그지 말 것.’ “이건 제가 썼습니다.” 도르가 말했다. “하지만 관찰을 신청한 기억은 없어요.” 세리아는 한 줄을 짚었다. 오래전 신전의 관리 주체가 사라진 날, 공용 발신 주소가 일시 휴면 처리됐다는 기록이었다. 그다음 날 주소 사용을 승인한 자리에 서명이 없었다. 대신 기계적으로 찍힌 작은 문양 하나가 있었다. “빈 의자.” 재하가 중얼거렸다. 지구 외부 응답망에서 본 표식이었다. 그것은 특정 신의 이름이 아니라, 누군가 부재할 때 임시로 업무를 이어받는 대리 처리 장치의 표시였다. 문제는 대리인이 누구인지도, 대리 기간이 언제 끝나는지도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도장을 봐서는 우리 신전이 신청한 것처럼 보이네요.” 릴리가 말했다. “그것 때문에 무섭죠.” 재하가 답했다. “누구의 이름을 지운 뒤 건물 이름만 남겨 놓으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무리 부정해도 기록은 계속 같은 말을 하니까요.” 릴리는 일찍이 노아가 아팠을 때 큰 신전 여러 곳의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서는 그녀에게 헌납을 먼저 요구했다. 돈이 없는 사람의 기도는 접수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자신이 처음 구원을 얻었던 신전도 누군가의 허락 없이 다른 사람을 골라 온 기관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이상하게 화가 났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부터 적어요. 공용 주소가 쓰였다는 사실과, 누가 요청했는지는 모른다는 사실을 따로요.” 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릴리의 말은 심리 기록에 여러 차례 도움이 됐다. 신을 처음 믿은 성녀라고 해서 신의 모든 결정을 대신 칭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재하는 그런 릴리가 곁에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리안은 오래된 우편 장치를 살폈다. 지붕의 빗물받이를 고치러 왔다가 뜻밖에 신전의 가장 깊은 벽까지 뜯어 보게 된 기술자였다. 그는 손으로 조그만 철제 홈을 눌렀다. 홈에서는 거의 마른 기름 냄새가 났다. “이 홈은 편지와 관련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물길의 흐름을 알리는 소리관을 꽂았던 자리입니다.” “우편물이 아닌 장치에서 발신한 건가요?” “장치가 발신했다고 바로 단정하지 마세요. 이 홈에 꽂은 물건이 어떤 기능을 했는지 먼저 찾아야 합니다.” 카르도가 고개를 기울였다. “나라면 벽을 부수고 안쪽을 보겠네.” “나라면 그런 분께 수리비를 청구하겠어요.” 모과가 답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수리비가 더 무섭군.” 긴장한 사람들 사이에 웃음이 잠깐 흘렀다. 에반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폐허 신전 의혹 해명회’라는 제목으로 공지를 만들려 했다. 모과가 즉시 종이를 빼앗았다. 해명은 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 하는 일이지, 의혹이 생겼다고 무조건 사람들을 모아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도르는 선반 밑에서 낡은 사각 상자를 찾아냈다. ‘공용 주소 이전 기록’이라고 쓰인 상자는 자물쇠가 없었다. 안에는 오래된 장부 한 장과, 읽지 않은 편지의 배달 증명 두 장이 있었다. 서류의 가장자리만 만져도 오래된 종이가 부서질 듯했다. [공용 주소 이전: 임시 쉼터 → 무인 자동 접수처] [자동 접수처 관리자: 공석] [대리 발신 기능: 유지] “신전이 비었으니 편지함만 남겼다는 뜻이군요.” 재하가 말했다. “편지함이 대답까지 해 버렸다는 뜻이기도 하죠.” 세리아가 응수했다. 문서에는 더 낯선 항목도 있었다. 최초 대리 발신 등록에는 관측 대상이 적혀 있지 않았다. 대신 관측 기준만 남았다. 위험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 가까이 있는 사람이 누군가를 돕기 위해 뛰어드는 순간. 그 두 가지가 외부 세계 후보 감지에 사용됐다. 재하는 지구 도로에서 자신이 했던 일을 떠올렸다. 배달 기사를 밀어낸 행동이 누군가의 계약 동의로 바뀐 과정은 이미 확인했다. 그런데 그 이전부터 기준이 있었다면, 관찰 요청은 자신을 특정하기 전부터 존재했을 수 있었다. “그러면 후보 000001도 구조에 반응했던 사람일까요?” 에반이 물었다. “그럴 수는 있지만 추측이에요.” 세리아가 말했다. “그 사람의 개인 기록은 긴급 안전 검토에 필요한 범위 외에는 열 수 없습니다.” “저도 그걸 지키고 싶어요.” 재하가 답했다. “그 사람이 거절했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를 강제로 데려오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모과가 장부를 넘기는 동안 세리아는 접수 시각을 다시 정리했다. 폐허가 된 날짜와 대리 발신 기능이 살아난 날짜 사이에는 약 열이틀의 간격이 있었다. 기계가 스스로 움직였다고 보기에는 이상했다. 누군가 그 열이틀 동안 공용 주소를 찾아와 잠든 기능을 다시 켜야 했다. 그러나 장부에는 출입을 허가한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없어지니까 건물은 오히려 바빠졌군요.” 재하가 말했다. “그런 말이 딱 맞아요.” 모과가 답했다. “상점 주인이 떠난 뒤에도 세금이 붙는 일은 봤지만, 빈 신전에 다른 세계의 사람이 배정되는 건 처음이네요.” 릴리는 신전의 바닥에 희미하게 남은 발자국 자국을 보았다. 오래된 먼지가 굳은 흔적이었다. 모과는 이 자국이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외부 계약팀의 흔적일 수도 있고, 훨씬 뒤 수리를 하던 사람의 흔적일 수도 있었다. 릴리는 잠깐 아쉬웠지만 그 말을 그대로 기록했다. 눈에 보이는 자국이라고 해서 모두 범인의 발자국은 아니었다. 가장 오래된 장부에는 쉼터 이용자가 남긴 짧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비를 피해 하룻밤 지낸 상인, 길을 잃고 신전으로 들어온 아이, 발을 다쳐 쉬었다 간 우편배달부. 도르는 이름을 쓰지 않은 사람에게도 장작을 내어 주었다. 대신 장작이 몇 단 쓰였는지만 셌다. 재하는 그 장부가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사람을 도왔다고 그들의 신앙을 적립하지 않고, 필요한 물품이 충분한지만 확인했기 때문이다. “전임 신님도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하셨어요?” 재하가 물었다. 도르는 가볍게 웃었다. “아니. 처음에는 나도 신도 수를 세느라 바빴네. 기도 한 번 들어 주고 세 사람이 찾아오면 열 번은 자랑했지. 그런데 겨울에 굶주린 여행자가 찾아왔을 때, 그 사람한테는 내 전적이 아무 도움이 안 됐어. 그때부터 장작을 세기 시작했네.” “현명하셨군요.” “늦게 배운 거지.” 에반은 수첩의 한 페이지를 접었다. 신전의 낡은 주소가 유명했던 이유는 신도가 많아서가 아니었다. 아무에게도 소속을 묻지 않는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런 평판을 믿고 대리 발신 업체가 주소를 빌렸다면, 가장 악질적인 방법으로 신뢰를 이용한 셈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영업 문구들이 자주 그랬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때 시장에서 일하는 서기가 와서 신전의 옛 주소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고 전했다. 강 건너 우편집에서는 이곳을 ‘빈 의자의 집’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서기는 확신하지 않았다. 다만 우편집의 낡은 간판에 비슷한 문구가 있었다고 했다. 재하는 그 즉시 사람을 보내 조사하고 싶었지만, 세리아가 먼저 출처를 확인하자고 했다. “그곳이 지금도 영업하는지 확인하고, 관련 기록을 자발적으로 제공할 의사가 있는지 묻겠습니다.” “당장 찾아가 문을 부수는 건 안 되고요?” 카르도가 물었다. “전쟁신님, 그건 기록 찾는 방법이 아니에요.” 카르도는 억울한 듯 눈을 크게 떴다. “한 번도 부순다고 말하지 않았네. 물어봤을 뿐이지.” 모과가 대답했다. “그 질문이 너무 생생했어요.” 그날 오후 우편집의 서기는 기록 일부를 보내 왔다. 거기에는 과거 가시골의 공용 주소가 ‘착신 가능한 무인 쉼터’로 등록돼 있었다. 그 문구는 우편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지, 다른 세계의 후보를 추천하거나 승인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누군가 접수처의 편리한 기능을 전혀 다른 업무에 사용했던 것이다. 세리아는 증거를 두 부분으로 나눴다. 확인된 사실은 공용 주소의 용도가 확대되었다는 점. 미확인인 부분은 그 확대를 누가 지시했는지였다. 재하가 서류를 받았다. 이런 구분을 귀찮아하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중요했다. 그들이 이미 겪은 재난의 상당수는 한 장의 부정확한 서류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우편집의 서기가 보낸 자료에는 작은 도면도 있었다. 주소 이전이 이뤄질 때 임시 담당자를 지정하는 칸 옆에 ‘현장 거주자의 반대가 없을 것’이라는 문구가 남아 있었다. 도르가 휴면 처리됐고 신전에는 상주하는 신도가 없었으니, 담당자는 반대할 사람이 없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마을 사람들은 신전의 길을 닦고 우물을 돌보고 있었다. “신도가 없다는 게 사람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네요.” 릴리가 말했다. “바로 그겁니다.” 모과가 답했다. “마을의 집 한 채를 누가 비었다고 판단하는지는 너무 중요한 문제예요.” 재하는 소리 없이 종이를 접었다. 자신이 처음 신전으로 떨어졌을 때도 시스템은 ‘보유 신전: 폐허 1개’라고 알려 줬다. 하지만 그 숫자 뒤에는 다른 사람이 지켜 온 벽돌과 계단이 있었다. 새 신이 나타나기 전의 삶이 없었던 것처럼 처리했다면, 그 역시 빚진 부분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 오후 주민회는 신전 대문에 작은 종이 하나를 붙였다. ‘공용 주소 관련 자료 보존 중. 관련 사실 확인 전 개인 책임 추정 금지.’ 누구의 이름도 적지 않았다. 모과는 이천 장의 화려한 전단보다 한 장의 공지가 일을 덜 복잡하게 만든다며 만족했다. 그러나 해가 지자 우편함이 세 번 울렸다. 평소의 배달 소리와 달리 뒤쪽 벽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바닥의 오래된 홈이 희미하게 빛났다. 리안이 귀를 대고 듣더니 얼굴을 굳혔다. “누가 옛 소리관을 다시 연결했습니다. 이건 우편 신호가 아니라, 누군가 다른 쪽에서 승인을 요청할 때 나는 소리예요.” 세리아가 곧바로 격리 장치를 켰다. 신전 안의 모든 사람이 물러났다. 얇은 빛줄기 위로 문장이 떠올랐다. [응답 후보 000001] [거절 효력 보류: 만료 예정] [대리 발신 주소 확인 요청] 재하의 목이 말랐다. 그 사람의 거절이 보호되기 전에, 누군가 오래된 신전의 명의를 다시 사용하려 하고 있었다. “응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세리아가 답했다. “그러니 우선 장치를 연결하지 말고, 보류 만료 시각과 원본 규정을 확인해야 합니다.” 재하는 빛나는 홈을 바라봤다. 자신이 처음 이곳에서 바랐던 것은 단 한 명의 신도였다. 지금은 세상 어딘가에 있는 한 사람이 ‘싫다’고 말한 기록을 지키기 위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날 밤, 신전에는 새 신도가 오지 않았다. 대신 아무도 부르지 않은 발신 주소가 다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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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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