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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20화
PAYLUA ORIGINAL · 제120화

120화. 응답 후보 000001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335자

오프라인 책장
우편물이 반송 보관함에 들어가는 데는 서른일곱 초가 걸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윤재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작은 종이 한 장이 투명한 상자 안으로 들어가고, 상자 뚜껑이 닫히고, 새 보관번호가 찍혔다. 반송실은 소리가 크지 않았다. 신계 전체를 뒤흔드는 천둥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황금빛 기둥도 없었다. 그저 편지 한 통이 더 이상 누군가의 우편함을 향해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지구 측 수신 전환 시험: 중지] [대체 수신인 자동 지정: 무효] [원본 우편물: 독립 증거 보관] [현재 수신인 정보: 열람되지 않음] 에반은 오래된 종이 상자를 바라보다가 힘없이 웃었다. “우리가 한 일 중 가장 조용한 성공이네.” 재하가 대답했다. “안 뜯은 우편물 한 통이니까.” “옛날 나라면 여기다 광고 문구를 붙였겠지. ‘우주 최초, 신격 강제 가입 막아낸 기적!’” “그런 문구는 절대 붙이지 마.” “알아. 그냥 생각나서.” 릴리는 두 사람 사이에 서서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처음 윤재하를 만났을 때는 병든 동생 노아를 살리기 위해 어떤 약속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때 재하는 돈도 요구하지 않았고, 기도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것이 좋아 신도가 됐다. 지금 재하는 자신을 믿을지조차 모르는 낯선 사람을 위해서도 같은 기준을 지키고 있었다. 카르도는 손바닥에 남은 레일 자국을 만졌다. 전쟁신의 피부에는 쉽게 상처가 남지 않았다. 그런데 부두의 낡은 손잡이를 붙든 자리는 여전히 따끔거렸다. “이번에는 그럴듯한 승전비가 없군.” 모과가 웃었다. “우편함 옆에 작은 안내문은 붙일 수 있겠죠.” “무슨 문구?” “편지를 받기 싫으면 돌려보낼 수 있습니다.” 카르도는 그 말이 어쩐지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승리란 사람들에게 하나의 명령을 더 내릴 권리를 얻는 일인 줄 알았는데, 어떤 승리는 명령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남기는 것이었다. 검증실의 청문회는 일단락되었지만 모든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심리위원들은 위조 서명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몇 명이 피해를 봤는지, 도르의 거절 통보를 누가 미배달 처리했는지 따로 조사하기로 했다. 그 조사에서 얻는 자료는 관련자의 동의를 지키는 방식으로 분류될 예정이었다. 로헨은 현장 감독관 직위에서 당분간 물러나야 했다. 자신이 관리한 시험을 감사하면서 같은 업무를 계속하는 것은 이해충돌이 될 수 있었다. “후회합니까?” 재하가 물었다. 로헨은 잠시 생각했다. “후회하는 일은 많습니다. 오늘 제가 제 이름으로 책임을 남긴 건 그중 하나가 아닙니다.” “그럼 앞으로 뭘 하실 겁니까?” “조사가 끝날 때까지 증거가 사라지지 않도록 협조하겠습니다. 그 뒤에는… 모르겠습니다.” “모르면 그것부터 적으세요. 저도 매번 그렇게 하거든요.” 로헨은 처음으로 웃었다. 그는 재하에게 악수를 청하지 않았다. 아직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조사 담당자에게 넘길 물품 목록을 꼼꼼히 기록했다. 실라는 자신의 신분 보호 조건을 유지한 채 마지막 서신을 보냈다. 그녀는 반송 감시인 자격을 되찾고 싶었지만, 공개 심리에서 자신의 과거를 모두 말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재하는 그것을 존중했다. 세리아도 실라의 옛 서명과 오늘의 증언을 구분해 보존했다. 한때 직무를 잃은 사람이 다시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사적인 생활까지 공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도르는 자신이 보낸 거절 편지가 제대로 접수됐다는 증명서를 받았다. 그 편지는 이제 정상적인 반송 경로로 갈 수 있었다. 다만 지난 세월 동안 그 편지가 전달되지 않아 생긴 문제는 기록에 남겨 두기로 했다. “이제 내 일이 끝난 걸까?” 도르가 물었다. 재하는 주전자를 바라봤다. 도르가 오래전 신격을 내려놓으면서도 떠나지 않은 이유는, 그가 계속 돌봐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신격은 내려놓을 수 있었지만 사람들과 맺은 관계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겠죠. 내일도 주전자에 물은 끓여야 하잖아요.” 도르가 웃었다. “그건 그렇지.” 감사팀이 회의실을 나서기 전에 에반이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이 있었다. 검증실이 원본을 보관하면서도 자동으로 사본을 만들 수 있는지였다. 과거 그의 회사에서는 고객이 광고 수신을 거부해도 오래된 추천 목록에 이름이 남는 일이 있었다. 원본을 삭제한 줄 알았는데 다른 부서의 복사본에서 다시 광고가 발송되었다. 그는 그것이 어떻게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세리아는 보관 목록과 복제 기록을 분리해 검사했다. 안전을 위해 필요한 증거 사본은 남겨야 했지만, 배송 가능한 시험지로 복제하는 기능은 일시적으로 비활성화되었다. 그러자 에반이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기술 작업이 무엇인지 물었다. “지금은 손댈 수 없습니다. 당신이 과거에 설계에 관여한 규칙이 있으니 독립 검토가 필요합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에반은 잠깐 얼굴을 찌푸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하며 모든 수정을 직접 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문제를 가장 잘 안다는 사실과, 혼자 고쳐도 된다는 권한이 생기는 것은 달랐다. 그는 대신 검토 담당자에게 과거 계산식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자료를 제출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항목도 지우지 않았다. 뒤늦은 고백 하나로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다음 사람이 같은 코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었다. 카르도는 로헨을 떠나보내며 멋쩍게 손을 내밀었다. 로헨은 잠시 그 손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잘못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 않았다. 카르도는 전쟁으로 많은 사람을 위협했고, 로헨은 서류로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했다. 둘 중 누가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대신 둘은 오늘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을 각자 기록했다. “다음에도 손잡이를 붙들게 될까?” 카르도가 물었다. “그럴 일이 없도록 시설을 고쳐야지요.” 로헨이 대답했다. “실망스럽군.” “왜요?” “그 일은 제법 잘했거든.” 로헨은 뜻밖에 소리 내 웃었다. 카르도도 잠깐 웃었다. 우편 부두에서 만난 두 사람은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더 나은 안전 설비를 두고 이야기하기를 바랐다. 릴리는 보관소 출입 기록을 확인했다. 오늘 방문한 사람들의 역할과 확인한 문서 목록은 남겼지만, 아무도 지구의 현 거주자가 누구인지 적지 않았다. 자신이 아직 신이 되었던 첫날의 릴리였다면 그 사람에게 기도를 해 보겠다고 했을지 모른다.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선택을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이 더 큰 배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재하는 마지막으로 증거 보관함에 적힌 작은 문장을 살폈다. '열지 않은 편지도 도착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옛 규정에는 붉은 정정 표식이 붙어 있었다. 오늘의 판정에 따라 그 조항의 집행이 정지되었다는 뜻이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외부망의 문구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번 시험지는 그 규정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증명서를 천천히 접었다. 자신이 지구에서 잃은 삶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누가 왜 그를 관찰했는지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끌려오는 일 하나를 막았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가시골로 돌아온 날 저녁, 모과는 주민회 게시판에 짧은 공지를 붙였다. 외부 세계로 연결되는 옛 우편망에서 잘못된 시험 우편물이 발견되었고, 마을 보관소는 위험한 편지를 임의로 열람하거나 재발송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지구라는 이름은 적지 않았다. 그쪽에 사는 사람들과 무관한 주민들이 호기심 때문에 통로를 찾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리안은 통신탑의 임시 전원을 원상 복구했다. 무리한 작업 때문에 예비 부품 하나가 닳았지만 마을 회의에서 수리비를 공개하고 집행하기로 했다. 카르도는 자신의 힘으로 부두의 레일을 지탱했던 일을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그러나 리안이 '실제 작업자는 저희입니다'라고 말하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나는 손잡이를 붙들고 있었을 뿐.” “그 손잡이도 중요했어요.” 리안이 답했다. “그래도 다들 일을 잘했지.” 마을은 어느새 작은 축제처럼 시끌시끌해졌다. 그러나 재하는 사람들의 축하보다 조용한 신전 뒤편이 좋았다. 그는 깨진 돌계단에 앉아 바람을 맞았다. 자신이 신이 된 첫날 무릎을 찧었던 계단이었다. 그때는 신도 0명, 신앙 포인트 0, 기적 0회. 아무것도 없어서 두려웠다. 이제는 그 숫자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전부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릴리가 옆에 앉았다. “지구에 돌아가고 싶으세요?” 재하는 한참 말이 없었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 보고는 싶어요. 사람들이 잘 지내는지도 궁금하고요. 그런데 돌아갈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럼 지금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여기서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알아보려고요. 강제로 돌아가는 길이 있다면 그건 안 쓰고 싶고.” 릴리가 미소 지었다. “전 신님이 어디 가시든 제 삶은 제가 살 거예요.” “이젠 제가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요.” “걱정은 하셔도 돼요. 대신 결정하진 마시고요.” 에반이 두 사람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나도 같이 가도 될까? 지구에 가면 광고 산업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보고 싶어.” “네가 지구에 가면 가장 먼저 금지해야 할 사업이 한둘이 아닐 것 같은데.” “너무해. 나도 많이 배웠다고.” “그럼 사람 이름으로 몰래 회원가입시키지 말고.” “그래, 그래.” 카르도는 신전 밖에서 그 말을 듣더니 자신도 지구의 군사 시설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재하는 손을 휘저었다. “두 분 다 당분간 출입 금지입니다.” “왜?” “제 고향이니까 제가 먼저 알아봐야죠.” 그들은 한동안 웃었다. 그러나 밤이 완전히 내려앉기 전, 세리아가 새로운 조사 기록을 들고 돌아왔다. “재하 님. 위조 서명에 관한 추가 결과가 나왔습니다.” 재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라가 찾아낸 옛 기록과 로헨이 제출한 검증실 승인 로그를 대조한 결과였다. 사전 관찰은 사고 31일 전부터 시작되었고, 그 기간에 자동 대리 서명이 생성되었다. 하지만 누가 재하를 후보군에 올렸는지에 대한 원본 기록은 여전히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 아직 범인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다만 우리가 놓친 항목이 하나 있어요.” 세리아가 기록의 첫 페이지를 펼쳤다. 재하의 이름 위에는 이전 후보 하나가 적혀 있었다. 이름 대신 오래된 고유번호가 있었다. [응답 후보 000001] [세계: 지구] [배정 결과: 거절] [거절 효력: 관리자에 의해 보류] 재하는 눈을 크게 떴다. 자신보다 먼저 후보로 선정된 지구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거절한 기록이 남아 있음에도, 거절 효력이 보류되어 있었다. “그 사람이 아직 위험하다는 뜻입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현재 상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거절이 정식으로 처리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합니다.” 에반은 화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카르도의 눈빛도 달라졌다. 누군가 이미 거절했는데도 관리 시스템이 그 대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자신들과 같은 일을 겪었거나 앞으로 겪을 사람이 있을 수 있었다. 재하는 서둘러 신격 창을 열지 않았다. 이름을 찾아서 당장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컸다. 그러나 그 사람이 자신의 정보를 보여 주겠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이번 사건에서 배운 원칙을 마지막 순간에 버릴 수는 없었다. “그분의 정보를 열람하지 않고, 거절 처리가 미완료됐다는 사실만으로 안전 점검을 요청할 수 있습니까?” 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긴급 보호 요청을 접수할 수 있어요.” 재하는 다시 그 조항에 서명했다. 이번에는 자기 이름이 자동으로 복제되지 않도록 직접 서명했다. 사인 아래에는 작은 문장을 적었다. ‘이 신청은 대상자의 의사를 대신하지 않는다.’ 신성 창에서 알림이 나타났다. [응답 후보 000001: 거절 효력 검토 요청 접수] [원본 권한 연결: 관측자 확인 필요]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사전 관찰 요청기관: 가시골 폐허 신전] 재하는 숨을 멈췄다. 그 신전은 자신이 처음 신이 된 곳이었다. 자신보다 오래전에 신격을 내려놓은 도르도 그곳에 있었고, 모과는 신전의 오래된 장부를 맡아 왔다. 하지만 그들 누구도 지구의 인간들을 관찰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우리 신전에서요?” 릴리가 물었다. 재하는 고개를 저었다. 이것만으로 도르나 모과가 관찰을 지시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오래된 신전의 명의가 또다시 누군가에게 도용되었을 수도 있었다. “누가 그 이름을 썼는지부터 알아봐야겠어요.” 그는 다시 폐허 신전의 닳은 계단을 바라봤다. 신도 한 명 없는 신이 시작한 작은 신전은 아직도 자기 이름으로 무엇이 이루어졌는지 모두 말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이 신이 되기 전, 다른 지구 사람의 거절까지 그 신전 아래 묻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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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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