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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2화
PAYLUA ORIGINAL · 제12화

12화. 신전 제단 아래에는 보관소가 있었다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134자

오프라인 책장
제단 밑에서 누군가 노크했다. 윤재하는 그 소리를 들은 순간 세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쥐, 배관, 그리고 일주일 만에 얻은 신전이 귀신까지 들렸다는 아주 불행한 경우. “누구세요?” 똑, 똑, 똑. “말도 못 하면 일단 첫 번째 가능성으로 합시다.” 릴리는 돌판 위에 손을 올렸다. 작은 손바닥 자국과 그의 손은 크기가 거의 같았다. 재하가 옆에서 묻자 릴리가 고개를 저었다. “신님이 내려오라고 하셔도 저는 아래로 먼저 내려가지는 않을 거예요. 노아가 아직 자고 있잖아요.” [독립된 의사 확인] [접근 증인 조건 충족] 돌판이 조용히 뒤집혔다. “거절이 비밀번호였네요.” 에반이 혀를 찼다. “마케팅하기 제일 어려운 보안 방식이지. 고객에게 먼저 싫다고 말하라고 권하는 회사가 어디 있어?” “여기요.” 돌판 아래에는 사다리가 있었다. 예상했던 금화 더미나 신비한 검은 없었다. 축축한 공기와 오래된 장부 냄새만 올라왔다. 재하는 등불을 들고 내려갔다. 에반이 뒤따랐고, 릴리는 위에서 밧줄을 묶었다. “무너지면 잡아당길게요.” “제가 신인데 도와받는 순서가 거꾸로군요.” “신님이 먼저 떨어지실 것 같아서요.” 재하는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지난주에 수로 둑에서 세 번 미끄러졌던 경력이 있었다. 지하에는 생각보다 넓은 방이 펼쳐졌다. 둥근 벽을 따라 돌서가가 늘어서 있었고, 곳곳에 동그란 구멍이 나 있었다. 구멍마다 가느다란 금빛 선이 이어졌다. 지상의 수로와 닮았지만, 물 대신 빛이 천천히 움직였다. 중앙에는 빈 의자 두 개가 마주 보고 있었다. 그중 한 의자 위에 낡은 종이 인형 하나가 누워 있었다. 재하가 가까이 다가서자 인형의 눈이 열렸다. “방문 목적을 말씀해 주세요.” “으악!” “놀라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오래된 시설이라 초기 안내 음량 조절에 실패했습니다.” 인형은 자기 머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인사했다. “최초 계약 보존소의 서기 누리입니다. 마지막 방문 이후 삼백십이 년 칠 개월이 지났습니다.” “인간처럼 보이진 않는데, 정령입니까?” “종이입니다.” “아니, 그건 보여요.” “그러면 추가 설명이 필요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에반이 뒤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몇 시간 만에 보는 그의 웃음이었다. 누리는 재하의 신격 인장을 확인하더니 어조를 바꿨다. “무명의 계승자. 보관된 원계약을 열람하시겠습니까?” “네.” “원계약에 포함된 열람자의 기억 일부가 반납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전임 신격이 보존 장치에 남겨 둔 기억입니다. 강제로 열람하면 사용자의 기억과 혼합될 우려가 있습니다. 자발적 열람에 동의하시면 위험을 감수하셔야 합니다.” 재하는 등불을 내려놓았다. 설명을 건너뛰고 서명부터 받으려는 곳이 아니라는 게 신기했다. “어떤 위험이 있는지 제가 이해한 만큼 말해 보죠. 삼백 년 전 누군가 본 장면이 제 기억처럼 느껴질 수 있다. 틀립니까?” “맞습니다.” “그럼 기록 문서부터 보고, 기억은 나중에 선택하겠습니다.” “동의 방식 확인. 열람 범위를 문서로 제한합니다.” 돌서가 한 칸이 움직이며 얇은 판이 나왔다. [최초 신앙 관계 원칙] [한 사람의 신뢰는 그 사람의 의사 없이 이전되지 않는다.] [신격은 도움에 대한 보답을 요구할 수 있으나, 거부할 자유를 제거할 수 없다.] [공동으로 만들어진 신뢰는 공통의 기록에 남긴다.] 재하는 마지막 줄에 오래 눈을 두었다. 신앙 포인트가 모두 특정 신의 소유가 되는 지금의 시스템과는 달랐다. “이게 원래 규칙이었다는 건가요?” 누리가 답했다. “규칙이라기보다 서로 지키기로 한 약속이었습니다. 그 뒤에 계약을 강제 집행하는 기관들이 생겼습니다.” “천계 담보청 같은 곳이요?” “담보청의 설립일은 이 기록보다 백구십 년 늦습니다.” 에반은 입술을 깨물었다. 재하는 그의 눈치를 살폈지만 묻지 않았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출처가 명확한 종이였다. 누리가 선반 위에서 반듯하게 몸을 돌렸다. “이 문서는 최초 기록의 요약입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신격 등급이 없었으므로 계약 집행 장치도 간단했습니다.” “얼마나 간단했는데요?” “약속한 사람이 직접 와서 말하면 고쳤습니다.” 재하는 한참 말을 하지 못했다. 적어도 오늘날의 천계에서 그런 방식이 통할 리는 없었다. 계약 하나를 고치려면 열람 번호를 받고, 이의를 제기하고, 심판의 날짜를 기다려야 했다. “누구든 찾아와서 바꿔 달라면 다 바꿔 줬다는 거예요?” “아닙니다. 타인의 권리는 바꿀 수 없습니다. 다만 자기 이름으로 한 약속은 스스로 고칠 수 있었습니다.” 누리가 서가에서 오래된 나무판 하나를 꺼냈다. 판 위에는 세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한 사람은 밀가루를 나눠 주기로 했고, 다른 사람은 수로를 고치기로 했다. 마지막 사람은 아이들이 위험한 날에는 마을 종을 울리겠다고 썼다. “이건 신앙이 아니라 마을 규칙 아닌가요?” “신앙과 믿음의 구분이 지금보다 흐렸습니다. 서로의 말을 신뢰할 때 생겨나는 힘을 사람들은 공동의 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힘이 기적이 되는 거군요.” “때로는 기적을 움직였고, 때로는 단순히 사람을 움직였습니다. 그 둘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재하는 판 위의 글씨를 손끝으로 따라 읽었다. 마지막 이름 옆에는 작은 그림이 있었다. 어린아이가 종줄을 잡아당기는 모습이었다. “이 종은 누가 울렸어요?” “열두 살 소년이었습니다. 첫 번째 홍수 때 어른들이 논에서 돌아오지 않자 혼자 종을 울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소년에게 보호의 신격을 주겠다고 했지만, 소년은 거절했습니다.” “왜요?” “다른 아이도 종을 울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재하는 폐허 신전에 달아 놓은 쇠종이 떠올랐다. 누리가 설명하지 않았다면 이것을 대단한 전설의 흔적으로 해석했을지도 몰랐다. 사실은 누구나 위험을 알릴 수 있게 하려던 작은 약속이었다. 누리는 다음 선반에서 진흙판을 꺼냈다. 가장자리에는 손바닥 자국이 이어져 있었다. 한 판에는 어른 손, 한 판에는 노인의 손, 또 다른 판에는 작은 아이의 손이 찍혔다. “이 서명은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남긴 겁니다. 이름을 기록한 사람보다 뜻을 이해한 사람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 뜻을 이해했는지는 누가 확인했죠?” 재하가 물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쉬운 말로 설명했고, 본인이 자기 말로 다시 말했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면 계약하지 않았습니다.” 재하는 다시 한번 놀랐다. 그는 신계의 계약서가 워낙 길어 처음부터 제대로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처음 신격을 넘겨받을 때도 설명서가 없었다. 삼백 년 전 사람들은 오히려 지금보다 신중하게 서명했다. “전임 신격은 그 방식을 고집했겠군요.” 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신전이 더 많은 신앙을 모으기 위해 경쟁하기 시작했을 때도, 이곳의 담당자는 사람을 대신하여 서명하는 일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이 보관소의 연결 권한을 빼앗겼습니다.” “돈을 못 벌어서 망한 게 아니라 장부를 바꾸지 않아서 망했다고요?” “두 가지가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른 기관이 이미 모든 길을 유료로 바꿨으니까요.” 세리아는 그 문장을 따로 적었다. 조직의 선악보다 구조의 문제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재하도 그녀가 기록하는 손을 지켜봤다. 누군가의 잘못만 찾으면 그 사람을 처벌하고 끝낼 수 있지만, 잘못을 반복시키는 규정은 그대로 남는다. 에반은 늘어선 판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평소 같으면 시장성이 전혀 없는 구조라고 농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 그는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여기 있는 이름을 전부 공개하면 어떨까요?” 재하가 물었다. 누리가 즉시 답했다. “서명자가 동의한 기록만 가능합니다. 공동의 기록이라고 해서 사적인 내용을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이름을 감춘 채 기록의 존재만 증명해야겠네요.” “정확합니다.” 재하는 이름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을 멋있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자기 이름을 지키는 일 자체가 가장 중요할 수도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판을 다시 선반에 넣었다. “원계약 원본을 가져갈 수 있습니까?” “안 됩니다.” “복사본은요?” “복사 권한은 원서명자와 원서명자의 위임을 받은 자에게만 있습니다.” “원서명자는 죽었겠죠?” 누리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 계약은 신이 아니라 인간의 이름으로 체결됐습니다. 서명자가 죽어도 그들이 남긴 공동 기록의 열람권은 해당 지역 사람들에게 승계됩니다.” 재하는 잠깐 멍해졌다. 천계가 삼백 년 된 계약으로 오늘의 사람들을 묶을 수 있다면, 그 사람들도 삼백 년 된 약속으로 오늘의 천계에 질문할 권리가 있다는 뜻일까. 재하는 문서의 모서리를 빛에 비춰 보았다. 매끈한 종이가 아니라 여러 겹의 섬유가 얇게 엮여 있었다. 어느 한쪽이 찢어져도 나머지 부분이 남도록 만든 구조였다. “이것도 마법입니까?” “아닙니다. 여섯 지역에서 서로 다른 재료를 가져왔습니다. 수로의 갈대, 방직촌의 실, 변경의 나무껍질, 평원의 풀섬유, 해안의 소금처리 천, 그리고 마지막 지역의 종이입니다.” “모두에게 한 장씩 있었던 건가요?” “각 지역의 장부에는 원계약 일부와 다른 지역의 기록을 확인하는 표식이 남아 있었습니다. 한 신전이 혼자 문서를 고칠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재하는 서류 하나에 여러 사람의 일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지금 자신이 찾으러 가는 사람들도 단순히 증인 역할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오래된 약속을 지금까지 이어 온 당사자였다. “여섯 지역 모두를 찾아서 그 이야기를 들어야겠군요.” “원계약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과 전체 기록을 되찾는 일은 구분하셔야 합니다.” 누리가 정정했다. “맞아요. 우선은 제단부터 지키고, 다음은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말할 기회를 만들어야죠.” 에반은 재하의 두 계획 사이에 길고도 긴 시간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시간을 숫자로 줄여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어디 사람들인데요?” 누리가 돌서가를 가리키자 여섯 줄기의 빛이 벽에 나타났다. 유리포, 남부 방직촌, 북쪽 변경, 흑토 평원, 서해 절벽, 이름이 닳아 없는 작은 마을 하나. “기록을 공유한 여섯 지역입니다. 현재 열람권자가 한 명이라도 살아 있으면 해당 지역의 동의를 받으셔야 합니다.” 에반은 머리를 감쌌다. “하루 남았다며! 여섯 지역을 어떻게 돌아?” “모두의 동의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누리는 한 장의 얇은 증명서를 펼쳤다. “원계약의 존재만 증명하려면 첫 번째 열람권자의 진술이 있으면 됩니다. 단, 그 사람이 왜 동의하는지 직접 말해야 합니다.” 재하가 지도를 살폈다. 가장 가까운 지역은 강 건너 유리포였다. 수로가 시작되는 강을 따라 배로 반나절 거리였다. “문제는 배가 있느냐인데.” “배는 있습니다.” 문 위에서 릴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안나와 함께 내려왔다. 안나는 작업장에 쓰던 작은 바지선을 관리하던 뱃사공을 알고 있었다. “다만 저쪽 마을 사람들은 신전을 믿지 않아요.” 안나가 말했다. “몇 해 전 홍수 때 신전들이 서로 기적 사용료를 따지는 동안 강변이 무너졌거든요.” “그래도 만나서 물어보죠.” 재하는 증명서를 집어 들었다. 종이는 묘하게 따뜻했다. “누리 씨, 당신은 왜 계속 여기 있었어요?” 종이 인형은 빈 의자를 바라봤다. “마지막 담당자가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누군데요?”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은 신입니다.” “왜 이름을 안 남겼죠?” “사람들이 그 이름으로 대신 약속하는 일이 없도록요.” 누리는 선반 아래에 넣어 두었던 작은 망치를 꺼냈다. “보관소를 떠나시면 이 문을 닫으십시오. 추심원이 방문하더라도 저의 보존 의무는 유지됩니다.” “오래 기다렸네요.” “오래된 종이는 오래 기다리는 데 익숙합니다.” 재하가 사다리를 향해 돌아서자 누리가 덧붙였다. “한 가지 더. 담당자의 마지막 지침이 있습니다.” “뭔데요?” “계약을 되찾더라도 사람을 대신해 서명하지 마십시오.”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서는 동이 트고 있었다. 그런데 누리가 꺼 둔 줄 알았던 돌서가 한쪽에서 검은 빛이 움직였다. 아무도 펼치지 않은 장부에 새로운 글씨가 적혔다. [담보청 긴급 회수 명령: 유리포 현장 압류 예정] [압류 사유: 미등록 공동 신뢰 1,804단위] 에반이 그 줄을 보는 순간 웃음을 거뒀다. “재하. 네가 가는 곳에 이미 손을 뻗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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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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