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시간은 1분 12초였다.
가시골 신전의 오래된 접수창 앞에 모인 사람들은 그 숫자를 바라봤다. 누군가 칼을 꺼내거나 신성 주문을 외운다면 상황이 더 빨리 해결될 것 같았다. 실제로 카르도는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벽에 걸린 오래된 투구가 가볍게 떨렸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마법 공격이 아니었다. 무고한 수신인이 편지를 받기 전에 그것을 보류하는 일이었다.
세리아가 실라의 문서를 읽었다.
“원본 반송 규정 제1조. 수신인은 신격 유무와 관계없이 배달을 거부할 수 있다. 제2조, 배달 거부를 이유로 제삼자에게 의무를 자동 이전할 수 없다.”
“우리한테 필요한 조항들이네요.” 재하가 말했다.
“다만 현행 규정에서 폐기 처리되었습니다.”
“그렇겠죠. 아니면 지금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겠어요?”
실라는 문서 아래에 남은 결재 흔적을 지적했다. 폐기 절차를 승인한 기록이 없었다. 새로 만든 전환 시험지 규정이 원본을 덮어 썼을 뿐이었다. 보관소에 남아 있던 서명란에는 감독관의 이름 대신 ‘검증 절차 진행 중’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누가 규칙을 정식으로 없앤 게 아니라, 화면에서 안 보이게 했군요.” 릴리가 말했다.
“그래요. 제가 그걸 보고 신고한 뒤 직무를 잃었습니다.” 실라가 답했다.
그 말은 재하를 멈칫하게 했다. 실라가 왜 사라졌는지에 대한 소문은 많았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말한 이유를 들었다. 직무를 잃었다는 기록과 실제로 살아 있다는 사실 사이에는 세월이 쌓여 있었다.
“그동안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재하가 물었다.
“그건 지금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실라는 잠시 조용해졌다가 덧붙였다. “그렇게 쉽게 물러날 줄은 몰랐네요.”
“그건 실라 씨가 대답할 일이지 제가 가져갈 기록이 아니니까요.”
접수창의 숫자는 58초가 되었다. 세리아는 긴급 이의 신청을 원본 규정에 연결했다. 그러나 장치는 곧바로 반발했다.
[제1조 적용 불가: 수신자 직접 거부 의사 없음]
재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맞는 말이었다. 지구의 현 거주자가 거부한다는 말을 아직 하지 않았다. 자신이 대리로 거부 의사를 만들어 내면 검증실과 다를 바 없었다.
“제가 수신자를 대신해 거절한다고 하면 안 되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하지만 위험한 배송을 잠시 보류하는 조치와 개인의 최종 의사 표시는 구별됩니다.”
“그럼 그걸 해 주세요. 누구 대신 결정하는 게 아니라, 결정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실라가 낮게 말했다. “원본 규정 제4조가 있습니다. 본인 확인이 불가능하고 위험성이 확인된 우편은, 이해관계가 없는 보관인 두 명이 임시 반송 보관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그건 모과 씨와 다렌 씨가 할 수 있겠네요.”
“다렌 씨는 현재 보관소에 계시지 않습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세리아의 말에 모두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다렌은 축대 보수 현장에서 리안을 돕고 있었다. 그를 다시 데려올 시간은 없었다. 재하는 정신없이 문서 번호를 찾았다. 그때 모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실라 씨가 보관인 자격을 잃은 건 검증실의 일방적인 처분 아닙니까? 원래 반송 규정으로는 아직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도르가 고개를 들었다. “맞아. 정식 심리 없이 자격을 없앴다면 옛 보관인은 아직 보관인일 수도 있지.”
세리아는 실라에게 동의 여부를 물었다. 실라는 한참 말이 없었다.
“제가 여기 서명하면 검증실이 제 현재 위치를 찾아낼 수도 있어요.”
재하는 망설였다. 부탁하고 싶은 마음과 위험을 알고 있는 상대를 설득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하지만 실라가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갖는 것이 먼저였다.
“그럼 하지 마세요. 다른 방법을 찾겠습니다.”
실라는 짧게 웃었다. “그 말 때문에 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요.”
그녀는 자신의 옛 사무 번호와 서명 표식만 제공했다. 정확한 위치는 숨겼다. 세리아가 기록을 대조하자 자격 박탈 명령에 필요한 심리 번호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반송 감시인 실라: 직무 정지 효력 재검토]
[기본 보관인 권한: 잠정 유효]
남은 시간 29초. 모과와 실라가 차례로 보류 신청에 서명했다. 접수창은 일곱 번 깜빡이더니 말없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제3중계소 압축 작업: 정지]
[시험지 1건: 원본 반송실로 이관]
[긴급 구조 신호 4건: 정상 배송]
리안은 주저앉았다. 에반이 환호하며 그를 끌어안으려 하자 리안이 기겁했다. 몸에 잔뜩 묻은 통신용 절연 기름이 악마의 새 외투에 묻을 뻔했기 때문이다.
“축하하면 안 돼요?” 에반이 물었다.
“옷에만 묻히지 마세요.”
카르도가 크게 웃었다. 재하도 웃었다. 지구 쪽 수신인이 위험한 계약서를 뜯어볼 가능성은 일단 줄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깨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
부두의 접수창이 정지한 뒤에도 그들은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모과는 보류한 편지가 어디에 보관되는지, 증명서는 몇 장 발급되는지 확인했다. 실라와 자신의 서명을 남겼으므로 두 사람 모두 나중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태였다. 서류가 잘못 접수되었다고 해서 다시 지구로 향할 가능성을 없애려면 실물과 기록을 따로 관리해야 했다.
세리아는 반송실에서 받은 봉인 표식을 검사했다. 새 표식은 시험 자료 한 건만 가리켰고, 같은 배송 묶음에 있던 네 건의 구조 요청은 건드리지 않았다. 지구 쪽 주소는 끝까지 열리지 않았다. 재하는 그 사실을 확인한 뒤에야 손에 쥔 연필을 내려놓았다.
릴리가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일인데도 우리가 멈출 수 있었네요.”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여전히 몰라요. 그건 나중에도 모를 수 있고요.”
“그래도 편지를 강제로 보내는 일은 잘못됐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요.”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의 사적인 사정이 궁금하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조사하는 것도 잘못일 수 있었다. 위험한 시스템을 멈추는 데 필요한 건 수신자의 신상보다 시스템의 작동 방식이었다.
에반은 부두 출입대장에 오늘의 사고를 기록했다. 처음에는 '윤재하 신의 신속한 대응으로 위기 해소'라고 적었다. 그런데 몇 줄 쓰다가 스스로 지웠다. 대신 실라가 제공한 원본 규정, 모과의 보관인 서명, 리안의 정비와 세리아의 검토를 순서대로 남겼다. 마지막에는 윤재하가 수신인의 개인정보를 열람하지 않도록 요청했다는 항목을 적었다.
“왜 지웠어?” 재하가 물었다.
“너만 잘해서 된 일처럼 보이더라고.”
“그럼 네가 고친 장부를 주민회에도 보여 줘.”
“내 이름도 적어도 돼?”
“네가 한 일이라면.”
에반은 한참 웃었다. 과거에는 명예가 될 만한 일에 자기 이름을 먼저 붙였다. 지금은 잘못한 일이 장부에 남아도 실제로 한 일을 지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름을 적었다.
한편 부두 저편의 구조 신호 네 건은 서로 다른 지역을 향해 이동했다. 그중 하나는 높은 산의 낙석 신고였고, 다른 하나는 침수된 농가의 피난 요청이었다. 재하 일행은 정확한 수신인의 이름이나 주소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구조 본부로 정상 전달되었다는 접수 확인은 확인할 수 있었다.
카르도는 구조 기록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낯설었다. 예전에는 군대를 보낸 뒤 승전 소식이 오기 전까지 전령을 닦달했다. 지금은 현지 구조팀이 어떤 판단을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불쑥 병력을 보내면 오히려 혼란이 커질 수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질문을 바꿨다.
“현장에 추가 인력이 필요하면 알리게 할 방법은 있나?”
리안이 답했다. “요청이 오면 접수합니다. 아직은 현지 대응 중입니다.”
“알겠네.”
에반이 낮게 웃었다. “전쟁신이 기다리겠다는 말을 했어. 이것도 기록해야 하는 거 아니야?”
“너부터 기록할 생각을 버려라.” 카르도가 말했다.
모과는 시험지가 들어간 보관 상자에 종이 표식을 달았다. '수취인의 뜻을 확인하기 전까지 배송하지 말 것.' 아주 간단한 문장이었다. 재하는 그 문장을 바라봤다. 처음 신이 됐을 때부터 그는 복잡한 신계 법령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보호 규칙은 마을 우체부가 쓸 법한 한 줄에 있었다.
모과가 출입 장부를 닫으려 할 때 한 소년이 신전 계단으로 내려왔다. 우편 보관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아이였다. 그는 오늘 처음으로 배달되지 않는 편지도 사람을 돕는 일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내면 좋은 거 아닌가요? 받는 사람이 편지를 읽으면 기뻐할 수도 있잖아요.”
모과는 아이의 손에서 우편 자루를 받아 내려놓았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누군가 문을 열었다고 해서 안에 들어가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편지도 비슷하단다.”
“그럼 편지는 언제 보내요?”
“누가 보내는지, 누구에게 가는지, 보내도 되는 것인지 확인하고 보내지. 특히 편지를 열면 빚이 생긴다고 적혀 있다면 더 조심해야 해.”
소년은 잠시 생각하다 자신의 우편 자루를 열었다. 거기에는 마을 사람들이 맡긴 평범한 편지가 서너 통 들어 있었다. 그는 보관인 도장이 찍혔는지 확인하고 보내야 할 순서대로 다시 놓았다. 재하는 그런 모습이 좋았다. 이 아이는 신도 수나 신성 포인트가 없어도 이미 누군가의 말을 안전하게 옮기는 일을 배우고 있었다.
그들은 보류 기간이 여섯 시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직 듣지 못했다. 그래도 재하는 오늘 처음으로 서둘러 답을 정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들을 차례로 불러 확인한 일이 좋은 결과를 냈다는 것을 기억하려 했다.
그러나 승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반송실 기록 아래에 경고가 떠올랐다.
[보류 효력: 6시간]
[검증실 정식 이의 제기 예정]
[보관인 서명자 신원에 대한 조회 요청]
실라가 먼저 말했다. “알고 있었습니다. 검증실이 이걸 그냥 두지는 않을 거예요.”
“위치 정보는 보호되는 겁니까?” 재하가 물었다.
“옛 서명만 보냈기 때문에 현재 위치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제 자격이 살아 있다는 사실은 알려졌죠.”
모과는 반송실 접수창 앞에 앉았다. 그는 마을에서 평생 물품과 편지를 보관해 왔다. 큰 사건이라고 해서 특별한 결심을 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다만 보관 책임을 맡은 이상 다음 사람이 올 때까지 자리를 지킬 생각이었다.
“보관은 원래 그런 일입니다. 시간이 걸리고, 누군가 맡아야 하죠.”
그때 실라의 목소리가 약간 달라졌다.
“제게 한 가지 더 확인할 일이 있습니다. 그 편지의 겉면에 어떤 그림이 있습니까?”
“빈 의자와 작게 그려진 네모난 문양이 있어요.” 세리아가 답했다.
“그 문양은 두 갈래입니까, 세 갈래입니까?”
“세 갈래입니다.”
실라는 아주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건 제가 마지막으로 보류했던 시험지와 같은 종류입니다.”
“무슨 시험이었습니까?” 재하가 물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해 줬을 때, 그 구한 사람에게 무엇을 청구할 수 있는지 시험했어요. 받은 도움을 신앙 빚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이었죠.”
재하는 목이 메었다. 자신이 지구에서 사람을 밀어내 구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는 그 행동으로 빚을 받을 생각도, 다른 세계의 신이 될 생각도 없었다.
“그 시험은 어떻게 끝났나요?”
“결과는 조작됐습니다. 실제 응답은 '빚을 요구하지 말라'였어요. 그런데 보고서에는 '수탁자 확보 성공'이라고 적혔죠.”
“누가 조작했습니까?”
“그걸 증명할 원본이 아직 남아 있지요. 다만 제 위치를 추적하지 않는 조건으로도 찾을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실라는 보관소의 옛 지도에 좌표 한 개를 남겼다. 신계 바깥, 반송실과 검증실 사이에 끼어 있는 좁은 정박장이었다. 지도에는 '도착하지 않은 편지들의 부두'라는 낯선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도르가 그 좌표를 보더니 눈을 감았다.
“거긴 내가 신격을 내려놓기 전에 마지막으로 편지를 보낸 곳이야.”
재하가 그를 바라봤다.
“무슨 편지였는데요?”
“다음 사람은 내 자리를 대신 맡아야 한다는 기록을 믿지 말아 달라고. 내 거절을 다음 사람의 승낙으로 쓰지 말아 달라고.”
도르의 목소리는 작았다. 자신이 내려놓은 자리가 언젠가 다른 사람을 해칠까 봐 수년 동안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그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다면, 네가 받은 신격도 그때부터 잘못 전해진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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