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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13화
PAYLUA ORIGINAL · 제113화

113화. 이름을 지운 반송 감시인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374자

오프라인 책장
신이 되기 전 윤재하는 민원 전화에 붙은 안내음을 싫어했다. ‘고객님의 소중한 의견을 반영하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면 대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회사에서 고장 난 전산 장비를 신고해도 비슷했다. 접수번호를 받기까지 열 분, 담당 부서로 전달되기까지 반나절, 해결됐다고 통보받았는데 다시 켜 보면 여전히 고장 난 장비. 지금 그 앞에 있는 것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접수창이었다. 다른 세계에까지 와서 고객센터를 상대하게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이번 고객센터의 업무는 사람을 신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시험을 만든 기관에 오라고 하셨죠?” 재하가 물었다. “초대장은 어느 우편함으로 보내면 됩니까?” 창 안쪽의 목소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하얀 카드가 튀어나왔다. [외부 응답 검증실] [방문 자격: 응답 후보 또는 사전 지정된 감독관] [응답 후보 신청: 동의 확인 생략] “여기는 정말 동의를 싫어하는군.” 에반이 카드를 들여다봤다. “저거 예전 우리 회사에서도 유행했어. 회원가입 전에 추천인 동의를 받아 두었다고 주장하는 방식.” “네 회사는 대체 뭘 팔았던 거냐?” “처음에는 광고였는데 나중에는 사람들의 대답을 팔았지.” 에반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 했으나 목이 잠겼다. 릴리는 그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대신 지금도 잘못된 계산식이 돌아가고 있다면 무엇부터 고쳐야 하느냐고 물었다. 에반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보이는 신청서 말고 뒤에 숨은 자동 접수를 멈춰야 해. 사람이 ‘아니오’라고 한 기록은 잘 안 남기고, ‘예’라는 추정값만 저장하는 장치부터.” 세리아는 카드의 출처를 검사했다. 글씨는 실시간으로 바뀌었지만 뒷면의 발행번호는 오래된 형식이었다. 번호 네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 네 자리는 실제 직원을 구분하던 자리라고 했다. “담당자가 왜 지워져 있죠?” 릴리가 물었다. “담당자가 없는 것으로 처리하면 책임을 물을 상대도 없어집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카르도는 카드의 빈칸을 한참 보더니 자신의 갑옷을 가리켰다. 갑옷에는 전사한 병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전쟁 때도 이름을 지우는 자들이 있었지. 병사가 죽었을 때 누구 명령을 받았는지 모르게 만드는 거다. 그래서 나는 이름을 남겨 뒀어. 그게 잘한 일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나중에 물을 수는 있었겠네요.” 재하가 말했다. 도르는 카드 아래쪽의 작은 가로선을 문질렀다. 가시골 우편함에 남아 있던 낡은 흠집과 같은 모양이었다. “이건 직원 번호가 아니야. 이곳에 들어갔다가 돌아온 편지들의 날짜를 세는 자국이지.” 그는 책장에서 먼지가 쌓인 노트를 꺼냈다. 보통 우편배달부들의 인수인계 기록 같았지만 몇 페이지는 의도적으로 찢겨 있었다. 남아 있는 항목에는 ‘돌려보냄’, ‘수취인 없음’, ‘받기 싫다고 함’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같은 날짜의 다른 기록에는 '응답 후보 확보'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거절한 사람을 확보했다고 기록했단 말인가요?” 재하가 물었다. “문서를 돌려보내러 왔다는 사실 자체를 참여로 계산한 거지.” 재하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처음 신이 될 때에도 구조 행동 하나가 장기 신격 계약으로 둔갑했다. 거절하고 돌려보낸 행동마저 계약에 넣었다면,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때 카드의 빈칸이 스스로 채워졌다. [현장 접수 가능 인원: 1] [등록된 직책: 반송 감시인] [현재 상태: 직무 정지] [이름: 실라] 모과가 놀라서 도르를 쳐다봤다. 도르는 오래전에 실라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가시골에서 천계로 넘어가는 우편 경로를 관리한 사람이라고 했다. 어느 날 모든 반송실의 문이 닫힌 뒤 그녀도 사라졌다. “그 사람은 죽었나요?” 릴리가 물었다. “모르지. 기록에는 더 이상 배달하지 않았다고만 적혔어.” 세리아는 곧바로 사망 여부를 추정하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직무 정지와 실종은 같지 않았다. 재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르가 서류상으로는 소멸했어도 실제로 살아 있는 일을 이미 겪었다. 접수창에서 다시 목소리가 났다. “실라가 원하면 당신을 안내할 수 있을 겁니다.” “어디 계신데요?” “주소는 비공개입니다.” “본인과 연락할 방법이라도…”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제공할 수 없습니다.” 에반이 발끈했다. “남의 집에는 동의도 없이 편지를 보내면서!” 재하는 에반의 어깨를 잡았다. “원칙 자체는 맞아. 적용을 마음대로 하니까 문제지.” 세리아는 실라에게 공개적으로 연락을 청하는 절차를 찾았다. 다행히 반송 감시인에게는 긴급 보관 사고가 났을 때 누구나 이의 신청서를 전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실라가 연락받기를 거부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 제한은 오히려 재하에게 안심이 되었다. “그 사람도 우리한테 대답할 의무는 없으니까요.” 그들은 짧은 서신을 썼다. 자기 이름과 원본의 위험성, 공개해도 되는 접수번호, 응답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약속만 적었다. 에반은 홍보 담당답게 호소력 있는 제목을 붙였다. ‘사상 초유의 다중 세계 배송 사고! 긴급 협조 요청!’ 재하는 제목을 지웠다. “사건을 알리는 데는 충분하지만, 감정부터 끌어내지 말자.” “그러면 뭐라고?” “잘못 배달될 편지를 잠시 맡아 줄 수 있습니까.” “그게 다야?” “네가 받는 입장이라면 어느 쪽이 답하기 편하겠어?” 에반은 잠시 생각했다. “뒤쪽.” 편지는 우편창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기다리면서 가시골의 업무를 나누었다. 리안이 통신탑 예비 전원을 확인했고, 모과는 주민들에게 신전에 낯선 우편 경로가 열렸다는 사실을 알렸다. 다만 지구라는 이름을 듣고 누군가 호기심에 통로로 들어가지 않도록 출입 제한과 안전 경고를 붙였다. 릴리는 치료소에서 필요한 의약품 목록을 점검했다. 신전 보관소에 인원이 몰려도 치료소가 비어선 안 됐다. 카르도는 가만있기가 어려운지 마을 바깥에서 나무 기둥을 나르겠다고 했다. 전쟁신이 신전에서 기둥 세 개를 들어 옮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젊은이들은 몰려와 구경했다. 그는 자랑스럽게 네 번째 기둥을 들어 올렸지만, 다렌이 곧바로 내려놓으라고 소리쳤다. “거기는 아직 바닥이 다 굳지 않았어요!” 카르도는 기둥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가 물러난 자리에는 발자국 두 개가 깊게 찍혔다. “역시 전쟁보다 공사가 어렵군.” “전쟁도 이렇게 확인하고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릴리가 말했다. “반박하기 어렵다.”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실라가 누구인지에 관한 여러 소문이 떠올랐다. 모과는 어릴 적 장터에서 들은 이야기를 말했다. 천계 우편청의 모든 종소리를 혼자 구분하던 여자였다는 소문이었다. 도르는 그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기억했다. 실라는 늘 분실 우편을 받으면 먼저 전달 경로를 살펴보고, 받을 사람이 없다면 서두르지 않고 보관했다. “누군가는 그게 느리다고 불평했지. 편지가 쌓이는데 왜 빨리 처리하지 않느냐고.” “느린 게 나쁘다는 말도 이해는 되네요.” 릴리가 말했다. “그래. 어떤 편지는 서둘러야 해. 구조 요청이 그렇지. 하지만 수취인이 불확실한 편지는 빨리 보내는 것보다 제대로 보내는 게 중요했어.” 세리아는 두 분류가 섞여 있는 오래된 장부를 보여 주었다. 단순한 안부 편지와 위급한 구조 요청을 같은 속도로 처리한 탓에, 오히려 정말 급한 편지가 뒤로 밀린 사례들이 있었다. 검증실은 그 오류를 줄이겠다는 명분으로 우편망을 자동화했고, 이후에는 빠르게 처리된 편지의 숫자만 성과로 세었다. “그럼 실라 씨가 옛날 방식만 고집한 건 아니군요.” 재하가 말했다. “적어도 기록에는 그렇습니다. 정확한 판단은 본인 증언을 들어야겠지요.” 세리아가 답했다. 에반은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만든 광고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 번만 관심을 보인 사람보다 수십 번 광고를 누른 사람이 더 좋은 고객이라고 분류됐지만, 그 사람이 광고를 지우려다가 버튼을 여러 번 눌렀을 가능성은 계산하지 않았다. 그때 에반은 정확도를 높이겠다는 말로 더 많은 데이터를 모으려 했다. “결국 우리는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대답했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거야.” “이유를 다 알고 싶어 하는 것도 문제지.” 재하가 말했다. “누군가 거절하면, 이유를 듣지 못해도 그 거절은 남잖아.” 그들은 그 원칙을 바탕으로 실라에게 보낸 편지를 다시 확인했다. 답변하고 싶지 않으면 답변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장이 제일 아래에 있었다. 릴리는 그걸 위로 옮기자고 했다. 상대를 존중한다면서 거절 조건을 깨알 같은 글씨로 남기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세리아는 전송이 이미 끝났으니 내용을 몰래 고치지 않고 추가 정정서를 보내겠다고 했다. 정정서는 앞선 편지와 같은 번호로 묶였다. 상대에게 자신들의 실수를 알리는 문서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에반이 물었다. “우리가 바로 그런 걸 문제 삼고 있잖아요.” 릴리가 웃었다. 그때 리안이 지하로 내려왔다. 그는 통신탑에서 신전 쪽으로 들어오는 잡음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실라의 연락에 사용할 만큼은 안정된 상태였다. 재하는 자료를 더 달라고 하기 전에 안전한 회선이 열렸다는 사실부터 확인했다. 실라가 이쪽으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어도, 반대로 자신의 위치를 추적당하지 않도록 세리아가 중계 번호를 검토했다. “연락할 길이 있는 것과 상대를 찾아갈 권리가 생기는 건 다른 이야기군요.” 모과가 중얼거렸다. “네. 오늘은 저도 그걸 배웁니다.” 재하가 답했다. 잠시 뒤 모두가 서 있는 지하에는 우편종 하나가 울렸다. 오래 기다리던 사람에게서 돌아온 회신을 알리는 소리였다. 그때 반송실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그들은 서둘러 지하로 내려갔다. 접수창에는 실라가 보낸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당신들의 위험 우편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직접 편지를 붙잡을 권리는 없습니다. 반송실은 더 이상 제 관할이 아니니까요.’ 재하는 실망할 틈도 없이 다음 줄을 읽었다. ‘대신 우편물을 실제로 만지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내용 아래에는 일곱 개의 작업 순서가 있었다. 지구로 가는 원본은 직접 사람이 옮기는 게 아니라, 외부 응답망 경계의 기록 압축 장치를 거친다고 했다. 압축 장치에서는 봉투 내용과 주소가 분리되었다가 현지 우편처럼 다시 합쳐진다. 중계소를 거치지 않고도 그 순간에만 임시로 끼어들 수 있는 낡은 반송 경로가 남아 있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건 사람을 잡는 방법이 아니라, 편지가 다시 만들어지는 순간이군요.” 세리아가 말했다. 실라의 다음 문장은 훨씬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 장치를 멈추면 당신의 편지뿐 아니라 같은 시간대의 응급 구조 요청도 늦어질 수 있습니다. 다른 편지들이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재하는 알림을 확인했다. [외부 응답망 배송 묶음: 27건] [배송 예정 지구 항목: 1건] [지구 외 긴급 구조 신호: 4건] [검증실 시험 자료: 22건] 카르도는 즉시 전체 묶음을 압류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릴리는 네 건의 긴급 구조 신호가 보인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네 건 모두 누군가의 실제 도움 요청일 수 있었다. “저 편지들도 다 늦어지면 안 되잖아요.” “그래. 그러니까 한 통만 골라서 빼내야 해.” 재하가 말했다. 세리아는 목록을 살폈다. 제목은 볼 수 없었지만 분류 표식은 남아 있었다. 검증실 시험 자료에는 일정한 다섯 갈래 무늬가 있었다. 지구로 향하는 봉투에도 같은 무늬가 붙어 있었다. 다른 네 건은 응급 구조용 통신 표시였다. 리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묶음을 분리하는 건 가능하겠습니까?” “정식 관리자는 어렵다고 할 겁니다.” 실라의 답장이 왔다. “하지만 처음 설계된 규칙은 분류를 허용했습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오래된 문장을 적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요청과 사람을 시험하기 위한 문서를 한 우편가방에 넣지 말 것.’ 에반이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에. 그걸 지키면 우리 회사 절반은 문 닫았겠네.” “절반만?” 재하가 물었다. “아니, 전부.” 실라의 편지 끝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새겨진 시간은 제3중계소 기준으로 열다섯 분 뒤였다. 압축 장치가 다시 작동할 때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지나면 문제의 봉투는 현지 우편물로 바뀌어 지구로 향한다. “실라에게 물어봐 주세요.” 재하가 말했다. “자기가 직접 움직일 수 없더라도, 누구에게 보류를 요청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느냐고.” 답장은 금방 왔다. ‘그 사람은 검증실의 현 감독관입니다. 다만 당신의 봉투에 직접 서명하지는 않았습니다.’ 재하는 어리둥절했다. ‘그럼 누가 서명했죠?’ 아래에 이름 하나가 나타났다. [수신 전환 시험 승인인: 윤재하] 에반이 말을 잃었다. 윤재하는 서명한 적이 없었다. 신격 승계 원장에도 같은 이름이 허락 없이 복제되었다. 재하는 접수창을 바라봤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또 제 것처럼 쓴 거군요.” 하지만 실라의 마지막 답장에는 더 불길한 말이 남아 있었다. ‘그 서명은 당신이 사고를 당하기 31일 전에 등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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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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