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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12화
PAYLUA ORIGINAL · 제112화

112화. 무료 보관료는 1포인트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192자

오프라인 책장
중계소가 보낸 답변에는 친절한 안내 문구가 딸려 있었다. [사망 처리된 수신인에게는 배달 거부권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대체 수신인에게도 거부권을 보장합니다. 단, 개봉 후에는 철회 절차가 필요합니다.] 윤재하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참 공평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계약부터 맺게 한 다음, 취소할 기회까지 주겠다는 거네.” 에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래 고객 경험이라는 게…” 재하가 바라보자 에반은 말을 바꿨다. “아니, 원래 그런 걸 고객 경험이라고 부르면 안 되지.” 그들은 가시골 신전의 지하 보관소를 다시 열었다. 전에 승계 원장을 찾았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우편함 하나가 목적이었다. 도르가 오래된 지도에서 짚어 준 점선은 책장 뒤로 이어졌고, 거기에는 작은 우편 접수창이 있었다. 접수창은 어른의 손바닥보다 조금 컸다. 종이 한 장을 넣을 수 있을 뿐, 사람이 지나갈 통로는 아니었다. “이게 제3중계소 입구라고요?” 카르도가 물었다. “입구는 아니고 문의 창구.” 모과가 답했다. “이 정도면 창구를 공격하는 것도 어렵겠군.” “왜 공격을 먼저 생각하세요?” 릴리가 한숨을 쉬었다. “그동안 신들의 분쟁은 보통 공격으로 끝났거든.” “이번에는 끝내지 말아 주세요.” 세리아가 오래된 접수 양식을 꺼냈다. 표지에는 ‘국외 외부 응답망 수신 사고 신고서’라고 적혀 있었다. 국외가 어디를 뜻하는지 아무도 정확히 몰랐다. 바로 옆에는 최근에 추가된 글씨로 ‘복수 세계’라고 적혀 있었다. 재하는 지구도 이 문서 안에서는 한 줄짜리 지역 코드로 취급된다는 사실이 기묘했다. 양식에는 열일곱 칸이 있었다. 이름, 보류 사유, 피해 가능성, 현재 우편 경로, 원본 소유권, 접촉 가능한 대리인, 이미 발생한 신성 반응. 두 칸에는 '답장 여부', '수신 의사'가 적혀 있었는데 아직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는데도 ‘동의 예정’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미리 동의가 예정되어 있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재하가 물었다. 세리아가 설명을 시작하려다 말을 멈췄다. 평소에도 서류의 모순을 잘 찾는 감찰관이었지만 이 문장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수신자의 반응을 통계적으로 예측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측한 반응을 실제 의사로 적는 것은 허용할 수 없습니다.” 에반은 옛날 광고 회사에서 쓰던 표를 꺼냈다. 광고가 노출된 횟수, 사람들이 그것을 읽은 확률, 행동할 가능성. 예전 에반은 그 숫자를 고객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대체 수신인의 동의가 94퍼센트라는 건, 우편함에 온 봉투를 뜯어 볼 확률이 그 정도라는 뜻일 거야. 그걸 신격 수락률이라고 바꾼 거지.” “그럼 모르는 우편물을 안 뜯고 버리는 사람이 신격 후보에서 빠지는 겁니까?” “정확히는 안 뜯는 사람만 살아남는 구조일 수도 있지.” 재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죽은 뒤 신이 된 사람의 첫 번째 교훈이 '모르는 봉투는 열지 마시오'라니. 그러나 웃음이 멎고 나니 실제로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남았다. 세리아는 피해 가능성이 확실한 곳에서 긴급 중지 조치를 요청할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그 조치를 발동하면 외부망 전체의 다른 배달도 멈출 수 있다는 점이었다. 누군가 외부 세계에서 구조 요청을 보내고 있다면 그 연락도 끊길 수 있었다. “하나를 막으려고 모두를 막을 수는 없겠군요.” 릴리가 말했다. “그렇다고 위험한 계약서를 그냥 보낼 수도 없죠.” 재하가 대답했다. 세리아는 석판을 돌렸다. “중계소에는 배달을 물리적으로 멈추는 담당자가 있어야 합니다. 원본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경로에서든 보관 책임이 발생한다는 뜻이니까요.” 도르는 접수창 가장자리를 살폈다. 오래된 목재에는 신성 인장보다 작고 소박한 흠집이 있었다. 가시골 우편 보관소의 문짝에도 있는 자국이었다. 우편배달부들이 봉투를 놓아두었다는 표시였다. “누군가 이 길을 다녔어. 신들이 만든 시스템보다 앞서, 사람이 편지를 옮기던 시절의 흔적이야.” “그러면 그 사람들의 규칙을 찾아보죠.” 도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망 가장자리에 반송실이 하나 있어. 원래는 수취인을 찾지 못한 편지를 보관하던 곳이었지. 지금의 중계소는 그 위에 증축했어.” 재하는 자신이 지구에서 택배 반품을 하던 때를 떠올렸다. 배송 기사에게 무작정 물건을 던져 주었다가 접수가 되지 않아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반품에는 송장번호와 실제 배송물의 확인이 필요했다. 여기서도 비슷할지 몰랐다. “송장번호는 있어요?” 세리아가 대답했다. “있습니다. 다만 주소와 함께 묶여 암호화됐어요.” “주소는 보고 싶지 않아요. 번호만 필요합니다.” 모과가 보관인 도장을 가져왔다. 세리아는 그의 허락을 받아 원본 주소 부분을 가린 뒤, 봉투의 이동 표식만 분리했다. 표식에는 어색한 직사각형 무늬가 반복되어 있었다. 재하는 그걸 보자 손에 익은 바코드처럼 느꼈다. “이건 읽는 방식이 다르지만 생김새는 익숙하네요.” “지구에도 이런 게 있습니까?” 에반이 물었다. “물건이 어디 있는지 찾으려고 붙이죠. 문제는 어떤 물건이냐고요.” 표식에서 추출한 숫자는 길었다. 제3중계소, 외부망 경계, 지구 현지 배송망이 순서대로 적혀 있었다. 마지막에는 특이한 단어가 붙었다. [소유 품목: 응답 가능성] “편지를 보내는 게 아니라 누군가 대답할 가능성을 보내는 거였어.” 에반이 중얼거렸다. 재하가 물었다. “가능성을 누구한테 팔려고요?” “그걸 보려면 수취인 정보를 열어야 할지도 몰라.” “그러면 다른 길을 찾아.” 에반은 수첩을 덮었다. 예전 같으면 재하가 지나치게 고집스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고집이 안전장치였다. 반송실에 접근하려면 세 명의 현장 관리자가 서명해야 했다. 도르와 모과는 과거 신전 운영자와 현재 지역 보관인 자격을 인정받았다. 세 번째는 장치 정비 담당자였다. 신들의 비밀을 밝히는 길에서 가장 구하기 어려운 사람이 신이 아니라 수리공이라는 사실에 재하는 웃었다. 다렌이 이미 가시골 축대 수리로 바빴으므로, 모과는 통신탑을 고치던 장인 리안을 불렀다. 그는 얼마 전 주민 축제에서 북을 두드리던 청년이었다. 손에 기름을 묻힌 채 내려온 리안은 신들을 보더니 반사적으로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아직 일을 끝내지 못했는데…” “아무도 부른 게 미안하지 않은 척하지 않겠네.” 재하가 말했다. “정말 필요한 일인지 먼저 설명할게.” 리안은 상황을 듣고 곧바로 서명하지 않았다. 배달 경로를 여는 데 전력을 쓰면 마을 통신탑의 예비 전원이 부족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는 우편 경로를 열어도 통신탑의 응급 알림이 유지되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카르도는 처음에 성급하게 사람을 구하는 데 시간을 쓰지 말라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과거였다면 모르는 기술자의 판단을 무시했을 것이다. 두 시간 동안 리안은 선을 재고 도르가 기억하는 옛 회로를 확인했다. 접수창을 움직일 정도의 전력은 남아 있었지만 오래 열어 둘 수는 없었다. “열한 분입니다.” 리안이 말했다. “열한 분이면 충분하겠어?” 카르도가 물었다. “아뇨. 그래서 먼저 보낼 문서부터 다 준비해야 합니다.” 재하는 묘한 존경심을 느꼈다. 세계의 신들이 몇 세기를 다투는 동안 젊은 수리공은 열한 분의 사용 시간부터 계산했다. 리안은 작업대에 모래시계를 하나 더 올려놓았다. 서류를 넣기 전에 실제 작동 시간을 재자는 뜻이었다. 한 번 열어 보고 닫는 데 걸리는 시간도 계산하지 않고 일을 시작하면 열한 분은 금방 사라진다. 재하는 자신이 지구에서 늘 하던 말, '일단 해 보고 수정하자'가 이곳에서는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는 서류를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한 글자도 건너뛰지 않았다. 그들은 서류를 세 벌 작성했다. 위험한 우편물의 내용 열람은 요청하지 않는다는 것, 주소와 현 거주자의 신상은 숨긴다는 것, 임시 중지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처리 기록만 요구한다는 것. 릴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을 쉬운 말로 바꿨다. 세리아는 법적 효력을 잃지 않도록 문장을 다듬었다. 작업 전 점검에서는 또 다른 낡은 부품이 발견됐다. 접수창 옆의 작은 검은 돌이 일정한 간격으로 뜨거워졌다가 식었다. 리안은 돌을 직접 만지지 않고 온도를 재는 얇은 금속판을 댔다. 금속판 끝의 표시가 빠르게 변했다. “통신탑보다 이쪽이 먼저 고장 날 것 같습니다. 접수창이 열려 있는 동안 돌이 과열되면 자동으로 밀봉됩니다.” “밀봉이라면 안전한 거 아닌가?” 카르도가 물었다. “편지 내용까지 같이 잠기면 우리가 보류를 요청했는지 결과를 볼 수 없어요. 그러면 다음 담당자는 그냥 정상 배송으로 처리할 수도 있죠.” 모과가 옛 설비 서랍에서 두꺼운 방열판을 찾아냈다. 판에는 수십 년 전 수리 기록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교체한 사람의 이름은 지워졌지만, 날짜와 교체 이유는 남아 있었다. 리안은 방열판을 쓰기 전에 균열이 없는지 확인했고, 위험한 부분에는 흰 끈을 둘러 작업자를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들은 짧은 준비 시간 동안 안전한 동선을 정했다. 재하는 접수 문서를 넣는 역할, 세리아는 결과를 읽는 역할, 모과는 원본 보관 대조, 리안은 전원 감시였다. 에반은 누구도 통로 쪽으로 몰려와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주변을 정리했다. “홍보 담당의 일은 구경꾼을 더 모으는 건데, 오늘은 반대네.” “그래도 필요한 일을 하잖아요.” 릴리가 말했다. 에반이 씩 웃었다. “이렇게 칭찬받으면 뭔가 팔고 싶어져서 문제야.” “칭찬은 공짜예요.” 리안은 마지막으로 접수창의 손잡이를 가볍게 돌렸다. 오래된 경첩이 삐걱거렸다. 접수구에 끼인 먼지를 없애자 안쪽의 소리가 조금 선명해졌다. 도르는 그걸 보고 예전 우편배달부들이 편지를 건네던 모습을 떠올렸다. 누군가에게 전달되어야 할 말이 있었다면, 그 말을 온전히 전하는 일부터 지켜야 했다. 편지의 내용을 훔치거나 누가 답할지를 미리 정해 놓는 일은 배달부의 임무가 아니었다. “이렇게 오래된 장치라도 처음 만든 사람은 편지 하나가 제자리에 가기를 바랐겠지.” 도르가 말했다. “그럼 우리가 지금 할 일도 처음부터 거창했던 게 아니네요.” 재하가 답했다. “사람이 원치 않는 편지를 억지로 들이밀지 않는 거.” 모든 준비가 끝나자 리안이 한 손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접혔다. 열한 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이 비로소 시작됐다. 마침내 접수창이 열렸다. 안쪽에는 사람 한 명이 손을 넣을 수 있을 만한 공간과 구겨진 반송 라벨이 있었다. 라벨의 뒤편에서 누군가 기계적으로 말했다. “발신자에게 돌려보낼 수 없는 우편물은 폐기합니다.” 재하는 답했다. “그 전에 피해를 막기 위해 잠시 맡아 주세요.” “보관료를 납부하세요.” 에반이 손을 들었다. “돈이면 내가…” “그 비용을 누가 정했는지 먼저 보죠.” 재하가 말했다. 라벨에 수수료가 나타났다. 금액은 놀랍게도 0이었다. 그런데 납부 수단에는 신앙 포인트만 적혀 있었다. [보관료: 0] [최소 납부 신앙 포인트: 1] “무료 주차인데 카드 한 번 긁으라는 거구나.” 재하가 중얼거렸다. “그 카드에 자기 삶을 담보로 맡기고.” 세리아가 덧붙였다. 재하는 보관료가 0이면 포인트가 필요하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반송실은 한참 조용하더니 새로운 메뉴를 띄웠다. [구 규정 충돌 감지] [유료 검증 방식 중단] [원본 보관 대체 조건: 수취인 거부권 잠정 인정] 재하는 카르도를 바라봤다. “칼 안 뽑고도 뭔가 되네요.” 카르도는 씩 웃었다. “칼을 뽑아도 이런 숫자는 못 베지.” 그때 중계소에서 새로운 응답이 왔다. [배송 물품 분류 오류 확인] [대상 봉투: 일반 우편이 아님] [원본 분류: 수신자 전환 시험지] 세리아의 얼굴이 굳었다. 시험지라는 말에 익숙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음 화면에는 시험 항목이 떠올랐다. [질문 1: 사라진 사람의 이름으로 도착한 편지를 누가 뜯는가?] [질문 2: 편지를 뜯은 사람이 타인의 의무를 이어받는가?] [시험 실행기관: 외부 응답 검증실] 재하는 찌푸렸다. 누구에게도 허락받지 않은 채 살아 있는 사람을 시험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험 결과가 곧 법적 동의가 되는 세계라니. 접수창 안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기계음이 아니었다. “윤재하 씨, 시험지를 제대로 찾아오셨군요.” 재하가 숨을 멈췄다. “누구십니까?” “당신의 첫 번째 대답을 고른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그 대답이 수익이 되는 모습을 오래 봐 왔죠.” 목소리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지구로 가는 편지를 멈추고 싶다면, 시험을 만든 기관부터 찾아오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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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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