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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09화
PAYLUA ORIGINAL · 제109화

109화. 신도 0명의 첫 번째 서명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164자

오프라인 책장
가시골 신전에서는 처음으로 신을 위한 의자가 없는 회의가 열렸다. 모과가 의자를 치우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굳이 권한을 내려놓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왜 높은 자리에 앉아야 하냐?” 재하는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평범한 긴 나무 탁자를 가운데 놓고 사람들이 마주 앉도록 했다. 카르도도, 도르도, 릴리도, 세리아도 같은 높이의 의자에 앉았다. 다만 모과는 다리가 아프다며 조금 높은 등받이 의자를 골랐다. 그건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허리 건강을 위한 선택이었다. “공정하네요.” 에반이 말했다. “너도 늙으면 이해해.” 모과가 대답했다. 오늘은 신격 반환 본심리가 아니라 실제 이해관계자들이 요구를 정리하는 날이었다. 신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신전에서 물을 가져다 쓰는 사람, 치료소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 신전의 바닥을 고친 사람 모두 말할 수 있었다.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남기기 원치 않는 사람은 발언 내용을 익명으로 적어 제출할 수 있었다. 마을 청년 리안은 처음부터 화가 나 있었다. “신님이 오기 전에도 신전 앞 축제는 열렸습니다. 이제 신님이 돌아왔다고 우리한테 하나하나 허락받으라 하면 안 돼요.”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축제를 못 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무너질 위험이 있는 곳은 정비해야 해요. 장소는 마을과 같이 결정합시다.” “그럼 앞으로도 신이 우리보다 위에 있다는 뜻 아닙니까?” “아니요. 제가 건물 관리 책임 중 일부를 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리안은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모과가 작은 돌 하나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축제 때 아이들이 넘어져 다친 곳에서 떨어진 돌이었다. “소유권이 누군지 따지는 사이에 이 돌이 사람을 치면, 법보다 먼저 사람이 다친다. 그걸 먼저 고치자.” 그 말에 회의의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자기 신앙을 증명하려고 온 사람은 없었다. 마을이 안전하게 지내고, 도움받을 자유와 거절할 자유를 지키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었다. 릴리는 독립 의견서를 읽었다. 그녀는 재하를 여전히 신으로 믿지만, 자신의 믿음이 그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노아가 병에서 회복한 경험은 소중하지만, 그것을 근거로 다른 사람의 선택을 평가할 권리는 없다고 밝혔다. “저는 기도하는 게 좋아요.” 릴리가 말했다. “그렇지만 제 동생이 기도하지 않는 날에도 약을 먹을 수 있어야 해요. 그게 제가 바라는 신전입니다.” 도르도 발언했다. 그는 신격을 떠난 뒤에도 이따금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은 그 기도를 신격 수입으로 받지 않았지만, 편지에 답할 수 있을 때는 답했다. 그리고 어떤 편지에는 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음이 곧 착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그 다음으로 카르도가 앞으로 나왔다. 전쟁신은 원래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데 익숙했지만 이날은 짧은 글을 손에 들고 있었다. “내 군대는 오랫동안 봉헌물과 승전 기도를 계산해 규모를 늘려 왔다. 나는 그게 병사들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어떤 봉헌은 진심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나왔다.” 그는 자신이 이미 진행한 강제 봉헌 장부의 동결 조치와 피해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아직 반환하지 못한 물자 목록도 포함됐다. 일부 병사는 보급이 부족해질까 걱정한다고 했다. 카르도는 그 위험을 인정하되, 강제로 거둔 것을 그대로 보유할 이유는 아니라고 말했다. “전쟁에 나가는 병사에게 필요한 건 누군가의 강제적인 충성보다 충분한 보급이다. 보급 비용을 숨기지 않겠다.” 마티르가 질문했다. “그 비용을 모두 자발적인 헌납으로 감당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까?” 카르도는 대답했다. “확신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직한 재정 계획을 내놓겠다는 거다.” 재하는 그 솔직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다 할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 신은 과거의 카르도보다 강해 보였다. 오전 발언이 끝난 뒤 리안은 재하를 신전 앞의 작은 다리로 불렀다. 다렌이 보강한 돌다리였다. 아직 손잡이에 새 나무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리안은 지난번 신전이 무너질 때 자신이 사람들 앞에서 겁을 먹고 소리쳤다는 사실을 꺼냈다. “저는 신님을 별로 믿지 않습니다.” 재하는 웃었다. “그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날 카르도 님이랑 마을 사람들한테 도와 달라고 했죠. 그거 때문에 저도 신도가 된 건 아닌지 걱정했어요.” “신도 명부에는 올리지 않았습니다.” “장부상으로만요?” “네. 다만 오래된 자동 기록에도 혹시 그런 식으로 붙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재하는 신성 창을 열어 리안의 요청에 대한 기록을 조회했다. 그가 구조를 요청한 사실은 있었지만, 신앙 계약 동의는 확인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요청이 ‘신격 지원 실적’ 목록에는 이미 올라가 있다는 점이었다. 기록이 남는 것 자체와 그것을 신앙 수익으로 바꾸는 일은 달랐다. “이걸 없앨 수 있습니까?” 리안이 물었다. “구조 요청 기록을 완전히 지우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사라질 수 있어요. 대신 신앙 수익으로 계산되지 않게 분리할 수 있는지 요청하겠습니다.” 리안은 잠시 생각했다. “제가 물어본 건 지워 달라는 뜻이 아니에요. 저는 그날 정말 구조 요청을 했으니까요. 그냥 누가 저를 신도라고 마음대로 부르지 못했으면 좋겠어요.” 그 말을 듣자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전 운영 문제가 조금은 명확해졌다. 기록 보존과 신앙 등록을 분리하면, 사람의 도움 요청은 왜곡하지 않으면서 그 요청을 이용해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돌다리 아래 물길에서는 아이 둘이 조약돌을 던지고 있었다. 한 아이는 리안의 동생이었다. 그는 형을 발견하고 물었다. “형, 신님이 우리 축제 허락해 줬어?” 리안이 대답했다. “아직 안전 검사 끝나야 돼.” 아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신님이 그냥 허락하면 되는 거 아냐?” 재하가 웃으며 말했다. “허락은 할 수 있어도 돌담은 허락만으로 안 고쳐져.” “그럼 신님은 왜 신님이야?” 재하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어른들은 이 질문을 서류 열 장으로 설명하려 들었다. 하지만 아이가 진짜로 궁금한 건 왜 자신이 기다려야 하느냐는 것일 수도 있었다. “저는 특별한 힘이 조금 있어. 그런데 네가 다치지 않으려면 다렌 아저씨가 고친 다리도 필요해.” 아이는 다렌의 손을 떠올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다시 물었다. “그럼 아저씨도 신이야?” “아니.” 리안이 먼저 답했다. “아저씨는 다리 고치는 사람이지.” “그럼 둘 다 필요하네.” 재하는 크게 웃었다. 어린아이의 말이 천계의 긴 논쟁보다 쉬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제도가 바뀌지는 않았다. 그는 리안에게 마을 대표로 의견서를 제출해 달라고 부탁했다. 리안은 자신이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면 서명하겠다고 했다. 재하는 장담하지 않았다. 대신 세리아와 함께 보호 절차를 확인했다. 회의에서 의견을 냈다는 사실이 신도 등록이나 보급 우선순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분리 기록을 만들었다. 리안은 그 설명을 듣고서야 서명했다. 오후에 열린 예비 심리에는 다른 마을에서 온 여인도 있었다. 그녀는 치료소의 도움으로 아이가 살았다고 말했다. 신을 믿지 않아도 약을 받을 수 있게 된 점을 고맙게 생각하지만, 현재 제도에서 후원이 줄면 치료소가 계속 운영될지 걱정된다고 했다. 릴리는 그 우려를 기록했다. 자신이 믿는 신을 비판하는 목소리라도 실제로 도움이 끊길 수 있는 사람의 불안은 가볍지 않았다. 그녀는 치료소의 후원 방식과 보전 계약을 공개적으로 설명하기로 했다. 여인은 재하에게 물었다. “신님이 신격을 돌려주면 저희는 어떡하나요?” 재하는 대답했다. “바로 돌려주겠다는 결정을 내린 건 아닙니다. 먼저 그 신격이 어떻게 제게 왔는지 확인하겠습니다. 그동안 치료소 공급을 끊지 않도록 현재 보전 명령을 유지할 겁니다.” “그럼 언젠가 떠날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어요.” 여인은 잠시 입술을 깨물다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도 자신에게 불안하지 말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적어도 무엇이 정해졌고 무엇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심리 기록에는 그날 다양한 의견이 남았다. 신격 승계에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까지. 누구의 의견도 단 한 사람의 서명으로 대체되지 않았다. 재하는 이를 보며 자신의 첫날을 떠올렸다. 이름 하나가 장부에 적히자 신이 되었다고 말하던 낯선 담당자. 그때 이런 사람들이 함께 있었더라면 그는 서명을 더 오래 살폈을 것이다. 모과는 회의가 끝나자 리안에게 낡은 삽 하나를 건넸다. “내일 축대 수리할 때 늦지 마라. 말만 하고 가지 말고.” 리안은 삽을 받아 들며 웃었다. “신님도 오시죠?” 재하가 대답했다. “갈게요. 다만 제 삽질은 아직 신성 기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괜찮습니다. 삽질은 저희가 가르쳐 드리죠.” 리안은 집으로 돌아가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신전이 누구의 것인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수리 작업까지 미룰 필요는 없었다. 그는 돌담에 세워 둔 안전 표지를 확인하고, 다음날 필요한 삽의 숫자를 세었다. 재하는 그 모습에 한마디를 덧붙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스스로 선택한 일을 매번 신의 허가나 축복으로 바꾸지 않는 것 또한 그가 배워야 할 일이었다. 오후에는 공백관리공사 쪽 대리인이 참석했다. 그는 승계 계약이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으므로 취소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재하는 처음부터 그를 사기꾼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계약서의 어느 조항이 실제 동의를 증명하는지 물었다. 대리인은 원장 0번의 서명을 가리켰다. [승계 요청자: 윤재하] [승계 동의자: 윤재하] 재하는 서류를 넘겼다. “두 번째 이름은 필적이 복제된 흔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최초 배정 당시 저는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자동 동의 규정이 적용됩니다.” “거절권은 어디에 적혀 있나요?” “당시에는 거절권이 분리돼 있지 않았습니다.” 도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내 업무를 넘기지 않겠다고 했어. 누구에게도 내 소유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런데 나를 죽었다고 처리해 놓고 이 사람에게 인계했다면, 대체 누가 동의한 거냐?” 대리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법적 판단은 천계 본심리에서 내려야 했지만, 주민들의 요구는 뚜렷해졌다. 적어도 주민들의 편지와 수로, 치료소를 하나의 신격과 묶어 팔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회의장 구석의 오래된 종이 울렸다. 참석자 중 누구도 치지 않았다. 재하는 신성 창이 열리는 것을 느꼈다. [신도 수: 현재 등록 인원 유지] [신도 0명 당시의 승계 기록: 검증 진행] [원장 0번의 첫 서명 복원 가능] 세리아는 즉시 원본 화면과 표시된 기록을 분리해 보존했다. 첫 서명은 사람의 이름으로 되어 있지 않았다. [원시 보관 계약의 첫 서명: 수신자가 없을 때 자리를 비워 둔다.] “이건 서명이 아니라 약속인데?” 에반이 말했다. 모과가 단호하게 답했다. “그러니까 누가 그 약속을 자기 이름으로 바꿨는지 찾으면 되지.” 재하는 종이 위에 자기 이름을 적지 않았다. 오히려 빈 칸 아래 새로운 요청서를 작성했다. ‘내가 사용한 힘과 도움받은 사람들의 기록을 각각 보존해 주십시오. 원장에 적힌 내 이름이 유효한지 확인될 때까지, 어떤 사람의 기도도 내 재산으로 처리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가 서명하자 황금빛이 흘렀다. 그러나 대단한 폭발도, 천계를 가르는 천둥도 없었다. 대신 보관소에서 일하던 모과의 통신석이 짧게 울렸다. [긴급 회수 명령: 보류] [주민 공동 보관 요청: 유효] [본인에 대한 무단 신격 양도: 이의 접수] 리안이 재하를 바라봤다. “그럼 앞으로 신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재하는 웃었다.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누가 안전을 책임질지는 오늘 정할 수 있죠.” 리안은 결국 다렌의 수리팀에 자원했다. 축제에서 제일 먼저 북을 두드리던 청년이 이번에는 돌담 보강 작업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회의가 끝날 무렵 재하는 노아에게 작은 편지를 받았다. 아이는 신님이 신도를 모으던 첫날과 지금은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재하는 한참 생각한 뒤 답장을 적었다. ‘그때는 한 사람이라도 나를 믿어야 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 지금은 누군가 나를 안 믿어도 그 사람이 안전해야 한다고 생각해.’ 편지를 접자 신성 창에서 아주 짧은 기록이 떠올랐다. [원장 0번 보호 조치 완료] [이전 기록 확인 준비: 윤재하가 신이 되기 전 마지막 하루] 재하는 숨을 삼켰다. 아직 가시골 신전의 비밀은 끝나지 않았다. 기록의 다음 페이지에는 그가 지구에서 보내던 시간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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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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