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골에 돌아왔을 때 신전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연기와 먼지에 가려져 있었다. 신전 아래로 이어지는 비탈에서는 돌가루가 흩날렸고, 마을 사람들이 축대 가까이 모여 있었다. 일부는 물통을 들고 있었고, 일부는 낡은 마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있었다.
“모두 뒤로 물러나 주세요!” 다렌의 목소리가 울렸다. “저 돌담은 지금 밀면 넘어집니다!”
재하는 급히 신성 창을 열었다. 예전이라면 즉시 신전을 선택하고 수리 기적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화면에는 무심한 숫자만 떠올랐다.
[신전 자산 가치 변동 중]
[일시 회수 절차: 외부 실행]
[자산 손상 위험: 높음]
“사람들은?” 재하가 소리쳤다.
[등록 신도 안전 현황: 확인되지 않음]
그는 창을 닫았다. 사람의 안전을 자산 가격보다 뒤에 표시하는 화면은 지금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모과가 손을 흔들었다. 신전 아래 집 세 채가 비어 있었고, 언덕 끝의 창고에 노인 한 명이 남아 있다는 소식이었다. 비탈길이 무너져 창고까지 가는 길이 막히고 있었다. 재하는 카르도에게 사람들을 돕도록 부탁했고, 전쟁신은 무거운 돌을 들어 옮기기 전에 다렌의 지시를 기다렸다.
“저 돌은 당장 치우면 됩니까?”
“안 됩니다! 저게 위쪽 돌을 떠받치고 있어요.”
“그럼 내가 들게.”
“신님. 들고 계신 동안엔 괜찮아도 내려놓으면 그대로 무너집니다. 먼저 받침을 세웁시다.”
카르도는 이를 악물었다. 강한 힘이 있어도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위험을 키울 뿐이었다. 그는 마을 수리공들과 함께 굵은 나무를 가져다 받침을 세웠다. 그들의 계획대로 힘을 쓰자 돌은 안전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릴리는 피난민을 모아 다친 사람부터 살폈다. 그녀가 신성 치료를 할 수도 있었지만, 가벼운 상처까지 기적으로 고치기 시작하면 마력 공급이 바닥날 때 더 급한 사람을 돕지 못할 수 있었다. 릴리는 붕대로 압박하고 깨끗한 물로 상처를 씻는 일부터 했다. 노아가 배운 방법을 떠올리며 장작불에 물을 데우도록 부탁했다.
에반은 예상과 다르게 홍보 문구를 만들지 않았다. 대신 마을 회관에 커다란 칠판을 세우고 집집마다 누가 대피했는지 적었다. 이름을 쓰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가족별 기호를 사용했다. 도르가 도착해 누락된 오래된 비상 통로를 설명했고, 모과는 그 통로가 지금도 열려 있는지 확인했다.
“공식 지도에는 왜 없죠?” 재하가 물었다.
도르는 짧게 웃었다. “내가 천계를 떠날 때 사람들에게 남기고 간 길이니까. 천계는 자기 소유가 아니라며 표시하지 않았지.”
신전 아래쪽에서는 낮게 울리는 기계음이 계속됐다. 세리아가 통신으로 자료를 확인했다. 문서 회수 상자와 같은 명령이 신전의 하부 장치에도 보내져 있었다. 사용자가 승인하지 않은 자산 회수가 시작됐고, 오래된 보관소가 스스로 닫히면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신전 지하가 문서 처리 시설이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입니다.” 세리아가 설명했다. “장치가 폐기 작업을 물리적인 철거까지 포함한 것으로 받아들였어요.”
“장부 지운다고 건물까지 지우는 건 또 무슨 계산이야?” 에반이 화를 냈다.
“건물 자체가 담보로 묶여 있는 경우에 대비한 기능이겠지.”
재하는 문득 100화에서 본 반환대의 원형을 떠올렸다. 누군가 기다리지 않을 권리를 주지 않아 통로가 막혔고, 그 통로가 수로를 위협했다. 이번에는 누군가 신격 승계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우기 위해 보관소를 철거하고 있었다. 잘못된 제도가 물리적인 위험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급한 일은 지하 장치 하나가 아니었다. 가시골의 가장 낮은 집 두 채에는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비가 오지도 않았는데 땅 아래에서 따뜻한 물이 솟았다. 다렌은 보관소의 폐기 장치가 낡은 지하 수로까지 압박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그는 길게 줄을 늘어뜨려 물이 나오는 위치를 표시했다.
“저기가 막히면 아랫마을 우물이 넘칠 겁니다.”
리안이 말했다. “그럼 다 비워야 하는 거 아니에요?”
“모두를 한꺼번에 옮기면 다른 쪽 길이 막힙니다. 아랫집부터 안전한 길로 움직이죠.”
카르도는 병사들을 부르려다가 먼저 마을 대표의 의견을 구했다. 무장한 사람 수십 명이 골목으로 들어오면 어린아이들이 놀라고, 물건을 남겨 두고 갈 수밖에 없는 가정도 불안해할 수 있었다. 리안은 병사들 중 삽질과 짐 운반을 할 사람만 소수 보내 달라고 했다. 카르도는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전쟁신님이 주민 지시를 받는 날도 있네요.” 에반이 말했다.
“나는 원래 현장의 보고를 중시했다.”
“그 보고를 듣고 성벽을 부쉈다는 얘기는 들었죠.”
“그때는 맞는 판단이었... 아니, 적절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에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기 판단을 스스로 수정했어. 오늘은 별일이 다 있네.”
다렌이 두 사람을 향해 외쳤다. “농담은 나중에 하세요! 저 통나무부터 붙들어요!”
두 신과 악마는 동시에 움직였다. 누가 시키기 전에 나서기는 했지만, 통나무를 어디에 놓을지는 다렌이 결정했다. 휘어진 받침을 억지로 세우면 옆 벽이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피난소에서는 식량 분배를 놓고 짧은 언쟁이 벌어졌다. 먼 지역에서 온 순례자들은 신전을 믿으러 온 사람에게 먼저 식사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주민들은 우리 마을의 곡식이니 주민부터 받아야 한다고 했다. 모과는 양쪽의 말을 끊지 않고 들었다. 그러다 분배 담당자인 릴리에게 실제 식량이 얼마나 있는지 먼저 물었다.
릴리는 수량을 읽었다. 곡식은 이틀분, 마른 빵은 오늘 하루분이었다. 아이와 아픈 노인을 우선하되 나머지는 도착 순서와 필요에 따라 나누는 계획이었다. 누구를 신도로 등록하는지 묻는 칸은 없었다.
“우리 마을의 곡식인데요?” 리안이 물었다.
“맞아요. 그래서 마을에서 동의해 주시면 쓰겠습니다.” 릴리가 답했다. “동의하지 않으시면 구호소 외부 지원을 요청해야 해요. 다만 그동안 사람들에게 먹을 게 없을 수 있습니다.”
리안은 모과와 주민 대표를 돌아봤다. 오래 토론할 상황은 아니었다. 주민들은 긴급 분배에 동의했고, 대신 사용 내역을 공개해 달라고 했다. 릴리는 그 요구를 기꺼이 받았다.
그때 순례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는 지금 다쳤는데 왜 붕대부터 감습니까?”
재하가 다가가 말했다. “제가 쓸 수 있는 힘에는 한계가 있어요. 심하게 다친 사람이 생기면 우선 사용하겠습니다. 지금은 깨끗한 물과 붕대가 더 빠르고 안전합니다.”
순례자는 잠시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옆에 있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손의 상처가 더러워진 붕대 때문에 오래 낫지 않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릴리의 설명을 듣고 새 붕대를 받았다.
한편 다렌은 수로 우회관을 설치할 비용을 계산했다. 평소보다 더 많은 나무와 쇠고리가 필요했고, 다른 마을에서 말을 빌려야 했다. 재하는 신전 명의로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했지만 모과는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물었다. 재하는 남아 있는 신성 포인트를 물자로 바꿀 수 있다는 제안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럴 경우 공급처가 또 사람의 기도를 담보로 잡는지 확인해야 했다.
에반은 여러 상인에게 연락한 끝에 일반 화폐로 결제할 수 있는 대장간을 찾았다. 가격은 조금 비쌌다. 하지만 돈을 낸 사람의 이름을 신도 명부에 적어야 한다는 요구가 없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뒤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싼 게 꼭 나쁜 거래는 아니네.”
“나한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지?” 에반이 대답했다.
“거래 조건이 투명하면 가격을 비교할 수 있으니까.”
에반은 잠깐 씁쓸하게 웃었다. 과거엔 고객이 계약을 읽지 않도록 복잡한 문구를 붙였던 악마였다. 지금은 오히려 사람들이 어떤 대가를 내는지 똑똑히 알기를 바랐다.
다렌은 임시 피난 길에 놓인 작은 물웅덩이에 표시 막대를 세워 놓았다. 수위가 조금이라도 더 오르면 곧장 사람을 옮길 계획이었다. 그는 마을 청년 둘에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눈금을 설명했고, 재하에게는 위험이 사라졌다고 성급히 발표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재하는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무상의 약속으로 회수 명령만 무효화할 수 있습니까?” 재하가 물었다.
세리아가 대답했다. “본인의 동의 없는 압류 부분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이미 열린 고압 밸브는 별도 설비로 보입니다. 권능으로 명령을 지워도 바람은 멈추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럼 밸브는 기술자가 막고, 저는 부당한 명령만 끊겠습니다.”
도르가 재하를 붙잡았다.
“지하 보관소로 내려가려면 서쪽 통풍구부터 막아야 해. 예전에 내가 저 밑에서 두 번이나 쓰러질 뻔했거든.”
그는 자신의 실수를 숨기지 않았다. 예전에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고, 아무도 그것을 수리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다렌은 재하에게 밧줄과 손등불을 건네지 않았다. 위험한 밀폐 공간에는 혼자 들어가지 말라는 규칙 때문이었다. 대신 통풍구 바깥에 구조용 줄을 설치하고, 설비를 아는 기술자 둘이 공기를 확인한 뒤 진입했다. 재하는 입구에서 권능의 영향 범위만 살폈다.
그러는 동안 창고에 남아 있던 노인에게서 신호가 왔다. 굴뚝 위로 하얀 천 조각이 보였다. 카르도는 다렌이 만든 안전한 길을 따라 창고 벽까지 갔다. 문을 열려고 하자 안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벽은 건드리지 마시오! 안쪽 선반이 받치고 있소!”
전쟁신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알겠소. 그럼 어디부터 옮기면 되겠소?”
한때 명령을 내리는 것이 당연했던 신이 문 너머의 인간에게 지시를 구하고 있었다. 재하는 그 광경에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보관소 장치는 본격적인 회수 명령을 반복했다.
[보관물 귀속 실패]
[기본 조치: 설비 폐기]
[보관물 귀속 실패]
[기본 조치: 설비 폐기]
에반이 손으로 귀를 막았다. “실패했다고 전부 없애 버리는 프로그램이라니. 이건 실패한 프로그램이잖아!”
“그러니까 수정하자.” 재하가 말했다.
“수정할 권한은 누구에게 있어?”
“확인부터 해야지.”
장치의 기록에는 세 번째 선택지가 숨겨져 있었다. 실제 보관인이 존재할 때는 폐기 대신 ‘주민 공동 관리’로 돌릴 수 있다는 규정이었다. 하지만 그 선택지는 오랫동안 비활성화되어 있었다. 이유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신전의 신도로 등록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재하는 모과에게 물었다. “여기 계속 보관할 뜻이 있으세요? 제가 신전 주인이라는 명목으로 다 가져가면 안 되겠죠?”
모과는 피난한 사람들에게 짧게 의견을 물었다. 우선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현장 보관을 유지하자는 데는 모두 동의했다. 장기 운영 방식은 나중에 정하기로 했다. 그 임시 합의를 세리아가 접수했다.
[실제 보관자 확인됨]
[무단 귀속 조항: 이의 접수]
[긴급 폐기: 중지 가능]
재하는 손을 뻗었다. ‘무상의 약속’의 금빛이 스치며 강제 귀속 부분만 떨어졌다. 그는 타인의 신앙을 모두 없애지도, 신전 자체를 자기 재산으로 선언하지도 않았다.
그제야 다렌이 밸브를 돌릴 수 있었다. 기술자들이 준비한 배출관으로 뜨거운 바람이 빠져나갔고, 오래된 돌담이 조금씩 진정을 되찾았다. 붕괴가 멈췄다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게 하지는 않았다. 다렌은 밤새 지반을 확인한 뒤 안전하다고 판단한 구역부터 출입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피난소에는 사람이 빽빽이 모였다. 에반은 급식 순서를 붙였고, 카르도는 창고에서 꺼낸 곡식 자루를 직접 옮겼다. 릴리는 다친 노인의 붕대를 갈았다. 모과는 재하에게 따뜻한 차를 내밀었다.
“네 집이 우리 동네에 큰 폐를 끼쳤다.”
“맞습니다.”
“그러니 고칠 땐 우리 말도 들어라.”
“네.”
“그런데 오늘 네가 한 일은 나쁘지 않았어. 건물이 네 소유라는 말부터 꺼내지 않았으니까.”
재하는 차를 마시다 목이 메었다. 신격 승계의 비밀을 찾으러 왔다가 다시 관리의 뜻을 배운 셈이었다.
늦은 밤, 도르가 수첩을 펼쳤다. 그는 폐허 신전의 원장과 연결된 배전선을 따라가다 오래된 메모를 발견했다. '신격을 맡을 사람의 거절권은 누구에게도 양도되지 않는다.' 그 문장 아래에 다른 사람의 필체로 조그맣게 적혀 있었다.
‘거절한 사람도 다음 편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재하는 고개를 숙였다. 다음 편지. 누군가 신격을 받지 않겠다고 해도 구조 요청을 들을 수 있도록 만든 원래 규칙이 있었다. 자신은 그 규칙을 알지 못한 채 100화 동안 신도 수를 늘리려 애썼다.
그때 자신의 신성 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승계 원장 0번 감사 개시]
[질의: 신격을 반환하면 연결된 기도도 반환되는가?]
[응답 기한: 7일]
재하는 천천히 화면을 껐다. 이제는 그의 신격 하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이름으로 기록된 모든 기도와 약속을 누가 책임질 것인지, 그리고 그 책임을 누가 원했는지를 물어야 했다.
제10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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