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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05화
PAYLUA ORIGINAL · 제105화

105화. 소멸한 신은 도서관에 있었다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311자

오프라인 책장
도서관의 책장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도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책을 붙잡는 것이었다. “이봐, 종이들 찢어지잖아!” 재하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푸른 봉인 줄을 보았다. 줄은 손목을 감으려 했고, 그 위에 짧은 문장이 나타났다. [기록과 신격을 함께 회수합니다.] “저는 문서가 아닙니다.” 재하가 소리쳤지만 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손을 뒤로 빼자 줄이 따라 움직였다. 손목에 닿는 순간 신성 창이 둔탁하게 울렸다. 그 안에 있던 신앙 포인트 숫자들이 하나씩 흐려졌다. 릴리가 반사적으로 그의 팔을 잡았다. “손대면 저까지 묶이나요?” 에반이 달려와 줄의 끝을 살폈다. “잠깐! 이건 마력 구속이 아니야. 자산 회수명령이 사람을 자산으로 인식한 거지!” “그게 더 나쁜 거 아니야?” 재하가 외쳤다. 카르도는 검을 뽑지 않았다. 대신 회수 상자와 출구 사이로 몸을 옮겼다. 무기를 쓰면 시스템이 무력 충돌로 분류할 수 있었다. 그는 담당자에게 명령을 중지시키라고 요구했다. “저 자는 천계에 등록된 신격이다. 그렇다고 네 기관의 물건은 아니다.” 회수 담당자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 역시 명령이 사람에게 직접 적용되는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는 허둥지둥 상자의 상단에서 조작판을 찾았다. 그러나 ‘일시 정지’라는 글자는 없었다. ‘완료’와 ‘미완료’ 두 칸뿐이었다. 에반의 얼굴이 굳었다. “아주 오래된 방식이야. 작업자가 잘못된 걸 알아도 중간에 되돌릴 수 없도록 만든.” “누가 만든 겁니까?” 세리아가 통신으로 물었다. “내가 알던 공백관리공사와 연결돼 있어. 당시엔 실패한 계약을 되돌리면 손실이 발생한다며 정지 기능을 뺐지.” 그는 잠깐 말을 잃었다. 자신이 과거에 비슷한 계약의 광고를 도왔던 일이 떠오른 것이다.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업무 명령이 눈앞에서 사람을 묶고 있었다. 재하는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이 줄이 제 동의와 상관없이 신격을 압류하려는 건 확실합니까?” 세리아는 원장과 상자 명령을 비교했다. “상자 명령에는 수탁자의 생존 여부와 승계 동의 여부 확인이 없습니다. 동의하지 않은 신격 귀속을 집행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제야 재하는 손을 폈다. 무상의 약속이 미약하게 밝아졌다. 신격 전체를 지우는 대신 강제 압류 조항만 분리한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무상의 약속: 강제 귀속 조항 무효화 가능] [영향 범위: 본인에 대한 무단 신격 자산화] [보관물 전체의 소유 관계: 변동 없음] “그럼 이 부분만.” 그가 말하자 푸른 줄이 둘로 갈라졌다. 몸을 옥죄던 부분은 사라졌지만 상자의 작동은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 도서관 관리인은 회수 담당자들을 밖으로 안내하고, 건물에 남은 봉인 장치의 전원을 차단했다. 서적과 주민 자료까지 위험에 빠지게 해선 안 됐다. 푸른빛이 꺼지자 재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 정말 서류하고 체질이 안 맞는구나.” 도르가 차가운 물을 건넸다. “그게 정상이지. 사람은 서류를 사용해야지, 서류가 사람을 사용하면 안 되는 거니까.” 회수 담당자는 도서관 앞에서 정식으로 기록을 남겼다. 자신의 명령서에 그런 기능이 있는 줄 몰랐다고 증언했다. 세리아는 그 말까지 포함해 압류 시도를 독립 감찰에 회부했다. 누구도 담당자 한 명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 사건을 덮지 못하도록 했다. 소란이 잦아든 뒤 도르는 재하를 도서관의 뒤뜰로 데려갔다. 뒤뜰에는 비에 젖은 나무 장작이 높이 쌓여 있었다. 도르는 장작 아래에서 말라 있는 것부터 골라 화로에 넣었다. 재하가 대신 하겠다고 했지만 노인은 손짓으로 말렸다. “내가 아직 할 수 있는 일이야.” 화로에 작은 불꽃이 피어오르자 그는 자기 이야기를 마저 꺼냈다. 도르는 한때 신도 수가 수천 명으로 늘어나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믿는다고 생각했다. 그 덕에 그는 아픈 사람을 돕고 수로를 고칠 힘도 얻었다. 그러나 어느 날 기도하지 않는 아이의 이름까지 자기 신도 명부에 적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아이는 단지 신전에서 배급하는 물을 마셨을 뿐이었다. “명부를 고쳐 달라고 했더니 그 아이는 내 도움을 받아서 자동으로 내 신도라는 거야. 고맙다고 말한 일까지 기도로 세었지.” “그래서 신격을 포기하셨습니까?” “포기하겠다고 했어. 하지만 포기하는 것과 없어지는 건 다르잖니.” 도르는 자신이 맡아 온 편지와 물자 기록을 사람들에게 돌려주려고 했다. 신전이 없어도 보급이 이어질 수 있도록 수로 담당자들에게 도면을 복사해 주고, 마을마다 작은 우편함을 달았다. 그러자 천계는 그의 행위를 ‘신격 가치 파괴’로 분류했다. 신도 수를 모두 0으로 돌리고 권능 공급을 중단했다. 도르는 늙어 갔지만 죽지는 않았다. “그때 처음 알았지. 신이 아니라도 물통을 나를 수 있다는 걸.” 재하는 오래 묵은 질문을 꺼냈다. “그럼 제가 받은 신격은 원래 선생님 것이었습니까?” 도르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맡았던 자리가 네게 넘어간 건 맞아. 하지만 그 자리가 애초에 내 소유였다는 뜻은 아니야.” “그럼 제 신격 자체도...?” “그건 내가 대답할 수 없어. 내가 알던 권능은 수탁 업무를 돕는 작은 도구였고, 네게 나타난 무상의 약속은 내가 쓰던 것과 달라.” 도르는 자신의 수첩을 펼쳐 보였다. 도르가 사용하던 권능은 ‘길을 잃은 편지가 주인을 찾도록 돕는 표식’이었다. 소유권을 무효화하거나 계약을 정정하지는 못했다. 재하가 그토록 의지한 무상의 약속은 다른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아직 설명되지 않았다. “내가 너에게 물려준 것이 있다면, 그건 저 문서 안에 남은 실패한 질문 정도겠지. 사람을 돕는 일이 왜 신의 매출이 되어야 하는가.” 릴리가 뒤뜰로 나왔다. 그녀는 도르에게 물었다. “신님이 신격을 버리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떡하나요? 저는 동생을 구했던 기적을 잊을 수 없어요.” 도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노아의 이야기와 릴리의 불안을 충분히 듣고 나서 말했다. “나는 신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믿고 싶은 사람은 믿어도 돼. 다만 내가 싫다고 했을 때 누군가 대신 동의했다고 쓰지 말아 달라는 거지.” 릴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믿음을 부정당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그 믿음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이 함께 밀려왔다. 도르는 주전자 바닥에 새겨진 말을 다시 읽었다. “말은 떠나도 물은 남게 하라. 내가 신전을 떠날 때 남긴 말이야. 하지만 천계는 내가 떠났다는 사실만 보고 물까지 끊으려 했지. 그래서 누군가는 아직도 나를 증오할 거야. 그날 약이 끊긴 치료소가 있었거든.” “그 피해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재하가 물었다. 도르는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혼자서 모든 것을 잘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도르는 당시의 배급 실패 기록과 사람들에게 보낸 사과 편지를 보여 주었다. 일부 마을에는 직접 찾아갔고, 일부에서는 끝내 만나 주지 않았다. 지금도 매해 같은 날 편지를 보내지만, 누구도 답할 의무는 없었다. “네가 바꾸려는 제도가 아무리 잘못됐다 해도, 그걸 바꾸는 날 도움이 끊긴 사람들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아. 그걸 잊지 마.” 재하는 그 말을 오래 새겼다. 소멸하지 않은 전임 신을 만났다는 사실은 희망이었다. 동시에 그가 남긴 실패는 재하의 미래에 대한 경고였다. 도서관 뒤뜰에서 이야기를 마친 뒤 재하는 도르에게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소멸 처리된 후에도 사람들은 당신을 신이라고 불렀습니까?” 도르는 장작을 손질하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 몇 년은 그랬지. 그런데 나이 들고 허리가 굽으니까 다들 이름으로 부르더구나. 어떤 사람은 끝까지 나를 신으로 기억했어. 그걸 내가 막을 수는 없더라.” 그는 손등의 작은 화상 자국을 보여 주었다. 오래전 약초를 끓이다 솥을 뒤집어쓴 흔적이었다. 신일 때는 작은 상처쯤 치유할 수 있었지만 그때는 이미 권능이 끊긴 뒤였다. 도르가 땀을 흘리며 일하자 옆집 사람이 약을 발라 주었다. 도르는 그 일로 처음 타인의 도움을 받는 자리에 편안히 있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전엔 도움받을 줄 몰랐어. 남을 도와줘야 내 자리가 있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거든. 도움만 주는 사람이 되려 하니, 내가 못 하는 순간이 오면 나까지 없어진 것 같더군.” 재하는 자신이 신격을 잃는 상상을 하던 때를 떠올렸다. 신도가 한 명도 없어 소멸한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그는 자신이 사라지는 것보다 아무도 자기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봐 무서웠다. 그 두려움이 자신을 움직였지만, 때로는 남의 신앙을 숫자로만 볼 위험도 있었다. 잠시 뒤 도르의 사과 편지를 보관하던 사서가 뒤뜰로 들어왔다. 이 편지는 제3자의 이야기여서 함부로 열 수 없다고 했다. 다만 피해 마을의 대표가 오래전에 도르에게 답장을 보냈고, 그 중 한 문장은 공개를 허락했다고 했다. 도르는 그 한 줄만 읽었다. ‘다시는 우리 대신 괜찮다고 결정하지 말아 주세요.’ 재하는 속으로 여러 번 되뇌었다. 도르는 아이를 돕고 싶어서 신격을 내려놓은 게 아니었다. 잘못된 제도를 멈추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겪는 위험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 대책을 세우지 않은 채 옳은 선택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이 말이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도르가 말했다. 에반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도르의 경험에 자신을 겹쳐 보고 있었다. 자기 광고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뒤에야 옳은 말을 하기 시작했지만, 그 말이 피해자의 삶을 되돌려 주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이 남긴 돈과 계약서를 어떻게 공개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도르는 그를 바라봤다. “내가 네 책임을 대신 정해 줄 수는 없어. 그렇다고 네가 끝까지 도망가도록 모른 척하지도 않을 거다.” 에반은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습니다.” 멀리서 아이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도서관 앞마당에서는 오후마다 작은 독서 모임이 열렸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낡은 동화책을 읽어 주고 있었다. 읽다가 어려운 글자를 만나면 서로 아는 만큼 설명했다. 누가 말을 더듬으면 재촉하지 않았다. 도르는 그 모습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재하는 물었다.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아이들인가요?” “아니. 아이들끼리 만든 모임이야. 난 문 열어 주고 가끔 책을 찾아 주지. 그것만으로도 바빠.” 도르가 웃었다. 그는 과거 신도의 숫자로 자신을 확인해야 했지만, 지금은 어느 아이가 무슨 책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다. 둘은 서로 다른 종류의 정보였다. 어느 쪽도 남의 삶을 소유할 권리는 주지 않았다. 그때 사서가 바깥에서 구겨진 공고문 하나를 가지고 왔다. 공백관리공사가 사유지 주변에 게시한 새 안내였다. 신격 수탁자가 사임할 경우 그와 연결된 모든 지원 계약은 임시 중단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도르는 글씨를 읽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내가 아직도 마을을 떠나지 못하나 봐. 내 경험이 누군가에게 경고가 될 수 있으니까.” 재하는 공고문에 표시된 조항을 확인했다. 신도와 비신도를 구분하지 않고 치료와 물자를 묶어 둔 규정이었다. 그는 세리아에게 자료를 보내 적법성 심사를 요청했다. 현재의 긴급 공급 보전 명령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어 임의 중단을 허용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적어도 바로 끊기지는 않겠네요.” 재하가 말했다. 도르는 한동안 허공을 바라봤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신격을 내려놨던 날보다 나은 거야.” 도르는 긴 시간 전신에게 보내지 못했던 답장을 이제라도 쓸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 답장을 누가 읽을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예전에 남의 대답을 기다리지 못해 서둘러 결론을 내린 사람으로서, 이번에는 상대의 시간을 빼앗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니 화로의 불꽃이 조금 작아 보였다. 해 질 무렵 가시골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모과의 목소리가 거칠었다. “신전 아랫방에서 또 장치가 움직인다. 아침에 도르라는 이름을 찾았다고 알려 줬더니, 누가 상위 회수 절차를 다시 걸었나 보다. 바닥에서 뜨거운 바람이 올라와. 주민들 집 벽까지 흔들려!” 재하는 일어섰다. 도르도 주전자를 덮었다. “이번에는 나도 가겠어.” “몸이 불편하시잖아요.” 릴리가 말했다. “그래. 그래서 내가 못 하는 일을 부탁할 거야. 난 이 신전의 옛 통로를 알아. 어디가 위험한지도.” 마른숲에서 가시골까지는 반나절 길이었다. 하지만 가시골의 축대는 지금 당장 움직이고 있었다. 재하는 몸을 일으키며 자신이 신에게만 물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은 자기 신격의 시작점이자, 지금 사람이 사는 마을이었다. 도서관 벽에 걸린 시계가 여섯 번 울렸다. 재하는 천계에서 처음 들었던 ‘전임 신격 소멸’이라는 안내를 떠올렸다. 그건 거짓 결론이었다. 살아 있는 도르는 여전히 물을 나르고 있었다. 하지만 거짓 결론을 남긴 시스템은 지금도 작동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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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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