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섯 시, 윤재하는 자기가 가진 신전 앞에서 출입 허가를 기다렸다.
“정말 웃긴 세상이지.” 에반이 말했다. “신전 주인이라면서 바닥 밑 창고 하나 열람하려고 번호표 뽑고 있잖아.”
“그런데 이쪽이 더 마음 편해.”
“뭐가?”
“적어도 저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고 열었다가 남의 편지나 다 가져오는 일은 없겠지.”
에반은 입을 비죽 내밀었다. “너 요새 너무 모범생 같아. 초기 윤재하는 ‘포인트 하나만 주세요’ 하고 절박하게 영업했는데.”
“그때 너는 나를 고위급 신으로 포장하자고 했지.”
“브랜딩이었어.”
“사기랑 경계선이 얇았고.”
“그래서 내가 요즘 회계장부까지 공개하잖아.”
모과는 문 옆에 의자를 펴 놓고 앉았다. 허락받지 않은 사람은 누구든 돌계단 아래에서 기다리라는 뜻이었다. 다렌은 쇠기둥 두 개를 세워 균열난 천장을 받쳤고, 세리아는 기록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접근을 승인했다. 재하 일행 외에 모과와 다렌이 출입에 동행했다. 카르도는 회랑 밖을 지켰다. 힘이 센 신 하나가 들어간다고 건물이 덜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다렌의 단호한 의견 때문이었다.
“나를 문밖에 세우다니.” 카르도가 중얼거렸다.
“전쟁신님은 보통 문을 열 때 문짝도 같이 가져가시잖아요.” 에반이 말했다.
카르도는 반박하지 못했다.
세 번째 바닥돌의 가장자리를 두드리자 텅 빈 소리가 났다. 다렌은 주변 돌 네 장을 먼저 고정한 뒤, 모과의 쇠패를 홈에 맞췄다. 패가 들어가자 돌 위로 문자 몇 개가 떠올랐다.
[반환 절차를 확인하세요.]
[보관물의 주인을 모를 경우에는 이곳에 남겨 두세요.]
돌이 옆으로 미끄러졌다. 마치 수백 년 동안 누군가 마지막 문장을 읽기만을 기다린 것처럼 조용했다.
아래에는 계단이 아니라 낮은 경사로가 이어졌다. 벽에 촛불을 걸어 두던 홈이 있었고, 바닥에는 짚으로 짠 오래된 미끄럼 방지 깔개가 남아 있었다. 재하는 신성 창의 탐지 기능을 켰다가 바로 끄라는 경고를 받았다.
[신성 측량 금지 구역]
[이 구역의 보관물은 신격 계정의 자산으로 자동 등록되지 않습니다.]
“와, 시스템도 드물게 양심이 있네.”
에반이 중얼거리자 모과가 말했다.
“그걸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잖아. 조심해야지.”
경사로 끝에는 긴 선반과 셀 수 없이 많은 나무 상자가 있었다. 천계 우편집의 황금 봉인과 달리 뚜껑에는 평범한 글씨만 붙어 있었다. ‘찾아가지 않은 장갑’, ‘누군가 두고 간 신발’, ‘돌려줄 사람을 기다리는 일기’, ‘주인 이름이 지워진 물통’. 사소한 물건들이었다. 먼지 속에 갇힌 영웅의 검 같은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세계의 비밀을 찾아 내려왔는데 분실물 보관소야?” 재하가 속삭였다.
“실망했나?” 릴리가 물었다.
“아뇨. 오히려 납득이 갑니다. 천계라면 남의 잃어버린 물건까지 신성 자산으로 세었을 테니까요.”
모과가 제일 아래 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유리 없는 창문이 있었고, 창문 너머로 작은 책상이 보였다. 테이블에는 장부가 세 권 놓여 있었다. 한 권은 주민에게 돌려준 물건의 기록, 한 권은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물건의 기록, 마지막 한 권에는 아무 제목도 없었다.
세리아는 통신으로 봉인 상태를 확인했다. 기록 열람자들 중 누구에게 어떤 페이지가 필요한지 지정하고, 사적인 물건은 원래 자리에 두게 했다. 다렌은 기둥의 떨림을 살피며 작업 시간이 길어지면 철수하겠다고 알렸다.
처음 장부를 펼친 이는 모과였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 신전의 관리를 이어 온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모과는 자신이 어릴 때 보았던 이름을 몇 개 찾아냈다. 옆집에서 없어졌던 바느질 상자, 불이 났던 해에 구호소로 옮겨진 담요, 댐 공사를 돕다 돌아오지 못한 기술자의 장갑. 그녀는 장갑 옆 기록을 만지다 손을 떼었다.
“그 사람 딸이 아직 살아 있어. 잃어버린 아버지 물건이라면 보고 싶어 하겠지.”
재하는 물었다. “이걸 여기서 가져가도 될까요?”
“네 손으로 정하지 마. 그 딸한테 먼저 물어.”
그들은 이름을 그대로 읽어 외부에 전송하지 않았다. 모과가 기억하는 가족에게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모과가 첫 번째 장부를 넘기던 동안, 릴리는 작은 구리 머리핀을 발견했다. 상자에는 ‘마지막 소유자 불명’이라고 적혀 있었다. 머리핀 끝에 파란색 천이 얽혀 있었고, 천에는 세 번 꿰맨 솔기가 보였다. 릴리는 그것을 손으로 집으려다 멈췄다.
“이 물건도 돌려줄 사람을 찾으면 좋겠어요.”
모과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핀은 어머니가 젊을 때 몇 번 찾던 거다. 마을 아이들이 열을 앓으면 머리를 묶어 주던 선생님이 쓰셨대. 그런데 그분은 전쟁 중에 이곳을 떠났어.”
“이름은요?”
“소야. 하지만 같은 이름인 사람이 많았고, 그분이 정말 여기 두고 갔는지도 모르지.”
에반은 곧장 신성 검색을 열려고 했지만 재하가 막았다. 이름만으로 개인의 소지품을 찾아 주겠다고 하면, 그 이름을 가진 수십 명의 기록을 들여다보게 될 수 있었다. 정작 머리핀 주인이 공개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럼 어떻게 찾지?” 에반이 물었다.
“현재 보관 중이라는 사실과 물건의 특징만 공지할 수 있는지부터 묻자. 이름을 추측해서 쓰지는 말고.”
모과는 옛날 사진이 없다고 했다. 대신 소야라는 선생님이 쓴 나무 글자판이 마을 학교에 남아 있다고 했다. 릴리는 그 글자판을 보고 싶었지만 도서관 안에서 물건을 함부로 들고 다니지 않기로 한 규칙을 지켰다. 보관을 맡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료 하나라도 없어지면 다음 주인을 찾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었다.
선반에는 우편 도장이 찍힌 머그잔도 있었다. 도르가 사용한 것과 비슷해 보였지만 모과는 다른 사람의 잔이라고 했다. 재하가 이름을 읽자 '하루'라는 사람이 썼던 물건이었다. 그 이름은 북방 무명도시의 기록에서 몇 번 등장한 적이 있었다. 연결된 인물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재하는 잠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혹시 최초의 신이 이름 없는 물건들을 여기다 모아 뒀던 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릴리가 말했다. “세상에는 물건 잃어버리는 사람이 많잖아요. 전부 비밀과 연결되지는 않겠죠.”
“그렇지. 그런데 나는 이제 종이 한 장만 봐도 세계의 비밀이 나올 것 같아.”
에반이 끼어들었다. “직업병이야. 천계의 비밀이 진짜로 여기저기 굴러다니니까.”
모과는 둘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상한 걸 찾으러 왔으면 이상한 걸 찾고, 평범한 걸 봤으면 평범하다고 인정해. 잃어버린 머리핀도 주인한테는 중요한 거니까.”
그 말에 재하는 첫 장부를 다시 보았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간 사람들 옆에는 ‘반환 완료’라는 표시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물건을 받으면서 울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오래돼 필요 없다고 웃었다. 한 줄에는 '다른 사람에게 주어도 된다'는 동의가 있었다. 기록은 받는 사람의 반응까지 단정하지 않았다.
세리아의 통신석에서 간단한 안내가 왔다. ‘반환 완료’ 도장은 물건을 회수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실제 수령자가 확인되고, 그 사람이 인수하겠다고 했을 때에만 찍혔다. 한때는 신성 자산이 되는 모든 것을 '회수 완료'라고 쓰던 천계와 대조적이었다.
모과가 마지막 줄을 가리켰다. 여기에는 글자를 배우지 못한 사람이 자기 이름 대신 손바닥 자국을 찍은 기록이 있었다. 수령 물건은 어린이 신발 한 짝이었다.
릴리가 물었다. “이분도 동의한 건가요?”
모과는 다시 기록을 읽었다. 손바닥 옆에는 당시 관리인이 쓴 문장이 있었다. '물건의 모양을 보인 뒤 수령 의사를 말로 확인함. 손자국은 확인을 남기기 위한 표시.' 손자국은 신전의 영원한 신앙 서명이 아니었다. 그날 자기 물건을 받았다는 사실만 증명하는 표시였다.
재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서명 하나라도 무슨 뜻인지 분명해야 하네.”
“맞아요.” 릴리가 말했다. “지금 원장 0번에 신님 이름이 있는 걸 보면 더욱 그렇고요.”
오래된 보관소에서 배운 것은 과거의 비밀이 아니라, 오래된 기록에도 제대로 된 절차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어디서 누가 그 원칙을 바꾸었는지 알아야 했다. 재하는 아직 남아 있는 한 사람의 신발과 한 사람의 손자국을 오래 바라봤다. 그렇게 사소한 구분이 한 신의 소멸과 한 사람의 귀환을 갈라놓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장부를 열자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글씨가 빛나는 대신, 페이지 가장자리에서 오래된 번호표들이 떨어졌다. 어떤 표는 ‘접수 완료’, 어떤 표는 ‘수취인 불명’, 또 어떤 표는 ‘반환 보류’라고 적혀 있었다. 그중 하나에 윤재하의 이름이 있었다.
[대기 번호: 0]
[열람자: 윤재하]
[대상: 신격 승계 원장]
[최초 요청: 신격 발생 전]
재하는 번호표를 세 번 읽었다.
“발생 전이라니. 신이 되기 전부터 내가 이걸 요청했다고?”
에반은 표의 뒷면을 훑었다. “이건 신청서가 아니야. 누가 네 이름으로 예약을 걸어 뒀다는 뜻이야.”
“내가 그걸 허락했는지는?”
“여기에는 안 나와.”
모과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허락했다고 여기면 안 되지.”
그때 선반 끝에서 나무 상자 하나가 움직였다. 뚜껑이 조금 들리더니 빛나는 종이학이 바닥으로 날아왔다. 종이학은 통로 쪽으로 도망치다 릴리의 발치에 떨어졌다. 릴리가 주워 보려는 순간 작은 글자가 나타났다.
[접수 취소 신청]
[사유: 주인의 신격 등록 오류]
“이게 무슨 뜻이지?” 릴리가 물었다.
모과는 종이학을 받지 않았다. 물건마다 반환 규칙이 달라 누가 손대도 되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대신 그는 장부의 해당 위치를 찾아보았다. 거기에는 ‘자동 반송 대상’이라는 분류가 붙어 있었다. 수신자가 사라진 물건들을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는 장치였다.
에반이 벽의 글자를 읽었다.
“오늘 정오에 일괄 정리 예정이라고? 그럼 이 상자들 전부 다른 곳으로 보내겠다는 거야?”
세리아가 즉시 확인했다. 일괄 정리는 오래된 무인 보관소가 자동으로 수행하는 작업이었다. 보관자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으면 모든 물건을 상위 관리청에 이관하게 돼 있었다. 그런데 모과와 그녀 가족은 오랫동안 이곳을 관리했고, 주민들의 보관 의사도 남아 있었다. 그것이 등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인’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정오까지 두 시간이 채 안 남았습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다렌이 천장을 올려다봤다. “여기서 무슨 큰 마법이라도 작동하면 지붕이 무너집니다.”
에반은 재하를 쳐다봤다. “신님의 기적이 있다면 얌전하게 쓰는 게 좋겠어.”
재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무상의 약속은 강제 헌납이나 동의 없는 귀속을 무효화할 때 작동했다. 하지만 보관소의 자동 이관이 무엇을 근거로 움직이는지 모르는데 권능부터 쓰면, 정말 주인이 없는 물건마저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알 수 없게 될 수도 있었다.
“모과 할머니. 여기 맡겨 둔 것들을 계속 지키고 싶으세요?”
“마을 사람들 물건이니 마을 사람들과 상의해야지. 하지만 이관될 때까지 아무도 모르면 곤란해. 적어도 오늘은 시간을 벌어야 한다.”
재하는 세리아에게 ‘강제 처리 일시 정지’를 신청해 달라고 했다. 이관이 끝나면 되돌리기 어려운 물건이 많다는 근거를 붙였다. 모과는 자신의 관리 사실을 진술했고, 다렌은 건물 안전 때문에 외부 마력 작동을 제한해 달라고 요구했다. 주민회에서도 연락을 받고 임시 보관 유지에 동의했다.
정오가 되자 위층에서 종이 한 번 울렸다. 선반 전체가 짧게 진동하더니 장부 위에 안내창이 나타났다.
[무인 보관소 일괄 반송: 일시 정지]
[정지 사유: 실제 보관인 확인]
[추가 확인 필요: 원장 0번의 소유 관계]
재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마지막 줄에 마음이 걸렸다. ‘0번의 소유 관계’. 자신은 숫자가 아니었다. 신격이 자신의 소유물인지, 자신이 신격의 소유물인지조차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
모과가 나무 장부를 넘겼다. 그의 이름과 연결된 칸에는 오래된 도장이 세 번 찍혀 있었다. 첫 번째는 ‘요청 접수’, 두 번째는 ‘대리인 배정’, 세 번째는 글씨가 긁혀 읽을 수 없었다.
에반이 조심스럽게 종이에 빛을 비추자 긁힌 자국 아래 문장이 드러났다.
[대리인 신격 부여: 본인 동의 미확인]
재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사람을 신으로 만들어 놓고 동의했는지 확인도 안 했다고?”
에반은 평소처럼 농담하지 않았다.
“이건 사고가 아니야. 누군가 굳이 비워 둔 칸이야.”
그때 보관소의 가장 안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출입 허가를 받은 사람은 모두 이쪽에 있었다. 그런데도 문 너머에서 낡은 바퀴가 천천히 굴러 나왔다. 빈 의자 한 개였다.
의자 등받이에 작은 금속패가 달려 있었다.
[담당자석 — 비어 있음]
에반이 한 걸음 물러났다. 자신이 기억하는 옛 회사의 상징과 똑같은 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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