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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01화
PAYLUA ORIGINAL · 제101화

101화. 폐허 신전으로 돌아온 신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504자

오프라인 책장
기적을 수없이 보았지만 윤재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직도 계단이었다. “왜요? 신이잖아요.” “신도 계단에서 굴러떨어집니다. 제 첫 출근이 그랬거든요.” 그는 가시골 고원으로 향하는 돌계단 앞에서 신발 끈을 다시 묶었다. 여긴 북방 무명도시처럼 전설적인 곳도, 천계의 황금 회랑처럼 으리으리한 곳도 아니었다. 길가의 돌담엔 잡초가 솟았고, 오래된 이정표는 반쯤 뒤집혀 있었다. 그 끝에 자신이 처음 눈을 떴던 폐허 신전이 있었다. 맨 처음 이곳에 떨어졌을 때 재하는 신도 0명이라는 안내창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은 소리를 지르기 전에 확인할 것이 많았다. 지반 상태, 신전 관리 책임자, 보존해야 할 기록의 범위, 그리고 구조물이 무너지면 누구에게 연락할지. 에반이 손가락을 세었다. “지금 우리가 옛날보다 성장한 증거가 뭔지 알아? 신전에 돌아왔는데 청소 도구보다 안전모를 먼저 샀다는 거.” “그거 네가 법인 카드로 산 거잖아.” “신전 법인 카드야. 대표가 결재해야지.” “우리 법인이 있었어?” “없지. 그러니까 영수증은 네가 책임져.” 릴리는 둘의 말다툼을 들으며 작은 가방을 등에 고쳐 멨다. 안에는 개인 기도서도, 성녀의 장식도 없었다. 노아가 그려 준 신전 지도와 방수 천, 물 두 통, 발목을 고정하는 붕대가 들어 있었다. 신님은 이제 남을 도울 때도 자꾸 자기 안전을 잊는다며 노아가 챙긴 물건들이었다. 카르도는 신전 아래 갈림길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전쟁신에게 잘 어울리는 갑옷 대신 평범한 회색 외투를 입었다. 병사들은 고원 아래 야영지에 남겼다. 무장한 군대가 나타나면 이곳 마을 사람들이 기록 조사보다 또 다른 점령을 먼저 떠올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신전 앞에 사람들이 있더군.” 카르도가 말했다. “제 신도들인가요?” “돌담 수리공들이다. 몇 년 동안 여기서 돌을 가져다 축대를 세웠다고 하더군.” 재하는 한 박자 늦게 물었다. “그럼 제 신전이 사라지는 건가요?” “너무 오래 비워 둔 주인이 할 말은 아니지.” 카르도의 말은 아팠지만 옳았다. 재하는 처음 신이 된 뒤 이곳에서 몇 번이나 도망치듯 출발했다. 위급한 사람들이 생길 때마다 먼 곳으로 향했고, 신전의 부서진 천장과 깨진 문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신이 가진 자산 목록에는 언제나 ‘폐허 1개’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돌들이 마을 사람에게는 축대였고, 비 오는 날엔 피난처였을 수도 있었다. 신전 마당에서는 푸른 머리수건을 쓴 할머니가 빗자루로 낙엽을 쓸고 있었다. 허리를 쫙 편 모습이 칼을 든 카르도보다 무서웠다. “이 돌집 주인이라는 게 너냐?” “네. 윤재하라고 합니다.” “늦었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지도 모르면서 인사부터 하지 마라.” 할머니는 빗자루를 재하의 발 앞에 내려놓았다. “비바람 막아 준 지붕은 작년에 내가 고쳤다. 돌담은 아이들이 무너뜨린 게 아니라 네 신전의 기둥이 내려앉아서 무너진 거다. 도대체 소유주가 누구냐고 마을에서 몇 번이나 물었는데 신전 관리창은 대답도 없더라.” 재하는 목덜미를 긁었다. 신이 되어 천계의 권리 구조를 논박하던 그였지만, 정작 자기 집 누수가 남에게 피해를 준 사실은 몰랐다. “고치겠습니다. 먼저 피해를 확인하게 해 주세요.” “그 말은 받아 두지. 하지만 돈이 나오는 기적은 쓰지 마. 우리 마을은 기적 때문에 조용할 날이 없었으니까.” 릴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모과라고 해. 어머니도, 할머니도 여기서 신전 문 열고 닫던 사람이었지. 신전이 살아 있던 시절엔 종을 닦았고, 신전이 죽은 뒤에는 비바람 든 곳에 천을 덮었어.” “그럼 신전을 믿으셨나요?” 모과는 코웃음을 쳤다. “벽이 무너지면 종교가 있든 없든 맞아 죽어. 난 그런 걸 믿는다.” 재하는 할머니를 좋아하게 될 것 같았다. 본인이 좋아한다고 할머니가 좋아해 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마당 한쪽에는 돌조각으로 만든 낮은 화분이 줄지어 있었다. 깨진 신상의 손목, 문턱에서 떨어진 부조, 이름 없는 기둥의 끝부분이 화분으로 쓰이고 있었다. 재하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신상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이 누군가의 생활에 들어가 있었다. “이거 가져가려면 먼저 애들한테 물어라.” 모과가 말했다. “봄마다 여기다 씨앗 심는 녀석들 거니까.” “안 가져갑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신치고는 말이 빠르네.” “저도 사람이었던 적이 있거든요.” 그때 신전 문이 요란하게 삐걱였다. 재하는 자신이 처음 떨어졌던 중앙 홀을 들여다봤다. 그때는 먼지로 가득한 바닥과 무너진 제단밖에 보지 못했다. 오늘은 천장에서 흘러든 빗물이 일정한 곡선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물은 한쪽 구석으로 모였다가, 바닥의 세 번째 돌 틈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카르도가 몸을 낮췄다. “저건 배수구인가?” “모과 할머니가 수리했을까요?” 릴리가 물었다. 모과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바닥은 손댄 적 없어. 이상하게 그 틈에는 먼지가 안 쌓여. 물을 부으면 새어 나가고, 곡식을 떨어뜨리면 다음 날 그대로 올라와 있지.” 에반의 귀가 쫑긋 섰다. “물이 내려갔다 올라올 수는 있어도 곡식이 돌아온다고? 물류 시스템으로 치면 반품 무료잖아.” “넌 신전을 봐도 사업 생각부터 나냐?” 재하가 말했다. “최초의 신격 원장이라면 더 그렇지. 반품 규정에 비밀이 많으니까.” 그들은 바로 돌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모과에게 이전에 비슷한 작업이 있었는지 묻고, 고원의 수리공 다렌을 불렀다. 다렌은 수직으로 내려앉은 기둥을 보자 표정이 굳었다. 바닥을 뜯으면 벽 전체가 휘어질 수 있었다. 그가 짚으로 만든 표시띠를 둘러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이거 하나 열겠다고 신전을 통째로 무너뜨릴 생각이면, 나 먼저 집에 갑니다.” “그건 저도 싫습니다.” 재하가 말했다. “그럼 먼저 바깥 축대부터 확인하세요. 건물 안쪽보다 거기가 더 급합니다.” 해가 지기 전까지 일행은 마당에 쌓인 돌과 갈라진 담장을 살폈다. 재하는 무심코 신성 창을 열었다. [보유 신전: 1개] [관리 상태: 미확인] [자동 자산 가치: 평가 보류] ‘보유’라는 글자가 오늘은 영 어색했다. 내가 가진 신전이라기보다, 나를 처음 받아 준 집이었다. 그리고 그 집을 지키던 사람은 모과였다. 현장을 돌며 재하는 신전이 버려진 뒤의 세월을 조금씩 알게 됐다. 북쪽 벽에는 아이 키를 표시한 흰색 선들이 있었다. 가장 아래 선은 모과가 일곱 살 때, 맨 위 선은 리안이 열세 살 때 그린 것이라고 했다. 신전이 신 없는 장소가 된 뒤에도 사람들은 매년 여기로 와서 얼마나 자랐는지 표시했다. “그럼 이것도 신성 유물인가요?” 재하가 물었다. 모과는 그에게 쓸어 담은 낙엽을 건네며 말했다. “유물이라고 해서 뭐가 달라지니? 키 큰 게 기쁜 애들한테는 그저 줄이 하나 늘어난 건데.” 재하는 선 옆에 손을 대 보았다. 한국에서 키를 재던 병원 벽이 떠올랐다. 어릴 때 그는 키가 크게 나오면 괜히 하루 종일 당당하게 걸었다. 이 세계의 아이들에게도 그런 오후가 있었을 것이다. 신전이 폐허였던 동안에도. 리안은 다렌에게 돌담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설명했다. 비 오는 날 아래쪽 진흙이 밀렸고, 이듬해에는 지붕의 물받이가 떨어졌다. 마을은 인력만으로 버티기 어려워 천계에 수리를 요청했지만, 담당 신격이 소멸 처리됐다는 자동 회신만 받았다. 대리 관리자 확인서가 없어서 재난 수리 물자를 지원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때 저희 집 앞에 물이 찼어요.” 리안이 말했다. “할머니가 신전을 지키던 사람이니 도움받을 줄 알았죠. 그런데 서류에 등록된 신도가 아니라고 거절했어요.” 재하는 고개를 숙였다. “모과 할머니가 신청하셨군요.” “우리 모두가 했어요. 신전 관리창에 기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에는 직접 고쳤죠.” 그 말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었다. 재하가 찾으려는 원장의 문제가 과거에도 이미 주민들의 삶을 바꾸었다는 증언이었다. 그는 리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심리에 제출할지 물었다. 리안은 서류를 작성하겠다고 하면서도, 그 일로 자기 가족이 또 신도 명부에 등록되지는 않는지 먼저 확인했다. “이야기를 한다고 신도가 되지 않습니다.” 재하가 말했다. “그걸 천계도 알아요?” “알게 만들어야죠.” 그들이 창고 쪽으로 돌아왔을 때 다렌이 신전 지붕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는 벽돌 하나를 두드려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 기둥은 멀쩡한 척할 뿐 속이 텅 비었어요. 아무리 겉에서 번쩍이는 빛을 발라도 소용없습니다.” 에반은 재하를 힐끔 봤다. “왜 나를 쳐다보는데?” 재하가 물었다. “신전 얘기인 건 아는데, 우리 업계에도 꼭 필요한 말 같아서.” 일행은 웃었지만 다렌은 웃지 않았다. 그는 기둥의 균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작업 견적을 적었다. 튼튼한 나무 보강재가 몇 개 필요한지, 비 오는 날까지 얼마나 시간을 벌 수 있는지, 축제를 다시 열려면 어느 구역부터 수리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했다. 신성 창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정보였다. 재하는 견적서를 두 번 읽고 마을 기금에서 비용을 빌릴 방법을 물었다. 모과는 ‘신님이 결제하면 된다’는 식으로 끝내지 않았다. 기금을 쓰려면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책임질지 주민들과 상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하는 신전이 자기 이름으로 등록돼 있어도 돈의 출처와 목적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날 오후 리안은 신전의 낡은 종을 가리켰다. 종은 오래전부터 울리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비 오는 날 그 아래에 모여 서로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모과가 종의 금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신의 목소리가 없어지면 사람들이 아무 말도 안 할 줄 알았나 보지. 여기서 제일 많은 말이 나온 날은 신들이 사라지고 난 뒤였어.” 재하는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은 듣기 좋지만 무거웠다. 그러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아도 이 마당에서 삶이 계속됐다는 사실은, 그가 떠나 있던 시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지금부터 할 일을 보여 주었다. 저녁 무렵 마을 회관에서 임시 설명회가 열렸다. 모과가 앞자리를 차지했고, 다렌은 건물의 위험한 부분을 그린 간단한 도면을 펼쳤다. 재하는 자신이 찾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숨기지 않았다. 신격 승계 원장을 확인하라는 요청이 천계에서 왔고, 신전 바닥에 연결된 보관 시설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 사실이 신전 소유권을 결정하거나 마을 사람들의 사용권을 빼앗는 근거는 아니라고 밝혔다. 뒤에 앉은 청년이 물었다. “신님이 원장 찾으면 저 화분들도 돌려달라고 하실 거예요?” “아니요. 화분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싶으면 물어보겠습니다.” “그럼 신전 앞 공터에서 우리 축제를 계속 열어도 되나요?” “지반 안전부터 확인한 뒤에요. 앞으로도 제가 혼자 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청년은 조금 실망한 얼굴이었다. 아마 신이 허가한다는 말 한마디로 끝나기를 바랐을 것이다. 재하도 예전이라면 흔쾌히 그랬다. 그러나 축제 날 돌담이 무너진다면 ‘신이 허락했다’는 말은 사람을 지켜 주지 못했다. 설명회가 끝나자 모과가 조용히 재하를 불렀다. “너 여기 처음 떨어졌을 때 뭐라고 했는지 아냐?” “그때 누가 들었나요?” “듣고 있었지. 뒤에서 먼지 털고 있었으니까.” 재하가 멈칫했다. 그는 그날 홀로 신전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했다. “저 뭐라고 했는데요?” “왜 이런 걸 나한테 넘겼냐고 하더라. 그 뒤엔 회사에서 떠넘기는 일하고 똑같다고.” 에반이 배를 잡고 웃었다. “천계 역사에 기록해야겠다. 최초의 무상 신탁, 업무 인수 거부.” “조용히 해.” 모과는 별로 웃지 않았다. “네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기억하니?” 재하가 고개를 저었다. “누가 관리하는지부터 찾아야겠다고 했어. 이 집이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인지 물었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지. 너무 화가 나 있었거든. 전임 주인은 한마디도 없이 사라졌고, 새 주인은 하늘에서 떨어져 제 이름도 모른다고 하니까.” 모과는 품에서 오래된 쇠패 하나를 꺼냈다. 둥근 원 안에 빈 의자가 새겨져 있었다. 한쪽에는 녹이 슨 작은 홈이 있었다. “너 오던 날 이게 제단 아래서 튀어나왔어. 내가 버렸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문에 맞는 열쇠 같아서 보관했지.” 에반의 웃음이 뚝 그쳤다. “그걸 언제부터 갖고 계셨습니까?” “네 주인이 오던 날부터라니까.” “주인이 아니라 윤재하입니다.” “그래, 그 윤재하.” 재하는 쇠패를 받지 않고 손바닥 위에 놓인 채 살폈다. 소유자가 불분명한 유물이었다. 모과가 보관했고, 마을의 기억과 연결돼 있었다. 그는 먼저 세리아에게 출처 확인을 요청하고, 모과에게 계속 맡겨 두겠다고 했다. 밤중에 신전의 세 번째 바닥돌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누군가 돌 밑에서 펜촉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다렌이 설치한 표시띠에는 손댄 흔적이 없었다. 창을 열자 처음 보는 알림이 떴다. [승계 원장 접근 요청 감지] [접근자: 신격 계정 윤재하] [동반인: 지역 보관인 모과] [확인 대상: 신도 수 0명의 첫 번째 서명] 재하는 마지막 줄을 한참 바라봤다. 그는 신이 된 첫날 어떤 서류에도 서명한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 신전은 그가 이미 서명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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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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