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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100화
PAYLUA ORIGINAL · 제100화

100화. 첫 번째 답장의 마지막 한 줄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258자

오프라인 책장
‘아라의 대기실’이 세상에 알려진 뒤 천계는 두 가지 의견으로 갈렸다. 어떤 신들은 편지의 발신자가 분명히 사람을 구했으니 그를 신으로 추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신들은 오래된 구조 기록을 공개하면 신앙 계약의 정당성이 무너질 것이라며 우려했다. 재하는 어느 쪽도 서둘러 받아들이지 않았다. 편지는 신이 되겠다는 선언도 아니었고, 누군가를 신으로 만들지 말라는 금지령도 아니었다. 편지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남긴 말이었다. 아라가 누구였고 그 뒤에 어디서 살았는지를 알려 주는 기록은 아직 부족했다. 하지만 발신자가 그 아이에게 어떤 빚도 남기지 않으려고 했다는 사실은 편지에 분명히 적혀 있었다. 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은 발신자에게 새 신격을 주거나 신들의 체면을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끝나지 않는 대기 명령을 어떻게 중단할지 결정하는 일이었다. 전날 밤 재하는 폐허 신전으로 돌아가는 길을 잠깐 생각했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사건도 많은데, 자신이 처음 신이 된 장소부터 다시 조사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라의 대기 명령이 정리되기 전에는 길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약속은 일을 끝낼 때까지 남아 있어야 했다. “내가 처음 여기 온 날 기억나?” 재하가 에반에게 물었다. 에반은 난감한 얼굴을 했다. “너는 새 신이었고, 신도 수는 0명이었지. 나는 그걸 듣고 마케팅 전략부터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 전략이 성공했어?” “처음에는 꽤 성공했다고 생각했지. 한 명을 모으고, 그다음엔 몇 명을 더 모았으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우린 가장 중요한 걸 늦게 배웠어.” “뭔데?” “남들이 우리를 믿는다고 해서 그 믿음이 우리 소유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거.”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많은 일을 겪었다. 카르도의 심판으로 시작한 싸움은 어느새 천계의 신앙 계약 전체를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신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장면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보다 지금 지상의 치료소가 내일도 문을 열 수 있는지, 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다시 물을 마실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릴리는 밖으로 나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그녀는 노아가 아라에게 쓴 편지를 아직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는 답장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면서도 편지를 버리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정직하게 적었다는 사실로 충분하다고 했다. “저는 한동안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받아야 하는 줄 알았어요.” 릴리가 말했다. “하지만 제가 원치 않는 대답까지 누군가 억지로 보내 준다면 그건 도움이라고 할 수 없겠죠.” 재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도 기도할 겁니까?” “네. 제가 선택하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나중에는 안 할 수도 있겠죠. 그때도 제 마음이 제 것이라는 건 같아요.” 그녀는 잠시 미소 지었다. “신님은요? 앞으로도 신으로 남고 싶으세요?” 재하는 조금 뜻밖이라는 듯 눈을 깜빡였다. 자신이 신격을 잃을 가능성을 두려워한 적은 많았다. 하지만 신으로 남고 싶은지 스스로 물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모르겠어요. 아직 그 질문에 바로 답할 수는 없네요.” “그럼 나중에 답하세요.” 에반이 능청스럽게 끼어들었다. “그 전에 월말 정산은 끝내 줬으면 좋겠어. 신님이 갑자기 은퇴하면 나는 누굴 상대로 광고비를 청구하냐.” “그런 생각부터 하는 걸 보니 아직 멀었네.” 세 사람은 우편집 앞의 작은 벤치에서 웃었다. 주변에는 바람이 불었고, 멀리 사람들이 수리를 마친 물통을 나르고 있었다. 처음 신이 됐을 때는 이런 장면이 신성의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재하는 사람이 서로를 도우며 하루를 이어 가는 광경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았다. 천계는 반환대 대기 명령을 긴급 심리의 후속 안건으로 접수했다. 에르테는 수신자의 동의가 확인되지 않는 상태에서 대기 명령을 영구 폐기할 수는 없지만, 강제로 기다리게 하는 조항은 정지시킬 수 있다는 잠정 의견을 냈다. 세리아는 명령을 지우기 전에 원본 사본과 수정 기록을 분리해 보존하자고 했다. “이렇게 하면 아라가 정말 기다렸던 시간을 없던 일로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림을 없애는 것과 기다리지 않게 하는 건 다르죠.” 릴리는 무진 분지의 주민들과 보관인들에게 설명회를 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성녀인지 아닌지를 먼저 밝히지 않았다. 대신 12,408건의 미응답 기도가 모두 누군가의 소망이었으며, 그중 일부는 뒤늦게 신앙 수익으로 분류되었다는 점을 설명했다. 아라의 대기 명령 역시 그런 구조의 오래된 사례일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이미 죽었을 수도 있잖아요.” 한 주민이 말했다. “그러면 누가 기다리고 있는 건가요?” “기록을 지키는 장치일 수도 있어요.” 릴리가 답했다. “실제로 아이의 의식이 남아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장치가 지금도 ‘기다리지 않을 권리’를 막고 있다는 건 확인됐습니다.” “그걸 멈추면 우리 물도 멈춥니까?” “그럴 가능성이 있는지 나헬과 수리공들이 점검 중이에요.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무리해서 전부 끄지는 않겠습니다.” 재하는 릴리의 설명을 들으며 예전 자신의 버릇을 생각했다. 누군가 자신에게 기도하면 곧바로 기적을 보여 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중요한 건 기적의 숫자가 아니라, 실제로 누가 어떤 결과를 감당하는지였다. 나헬은 마을의 급수 시설을 검토한 뒤 반환대의 대기 명령과 식수 공급 회로가 일부 연결되어 있다고 보고했다. 과거에는 귀환자가 등록되면 자동으로 수로 배수판이 열렸고, 등록되지 않으면 폐쇄되었다. 이 구조 때문에 마을이 여러 번 물난리를 겪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럼 명령을 멈추는 순간 수문이 또 닫힐 수 있군요.” 카르도가 말했다. “맞습니다. 그래서 먼저 수동 밸브를 독립 회로로 바꿔야 합니다.” 나헬이 대답했다. 카르도는 자재 운반을 맡았다. 에반은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의 실비를 정리하고, 무진 분지 주민들에게 기부를 강요하는 광고가 나가지 않도록 확인했다. 그는 자신의 예전 부하들에게도 연락해 과거 수신권 조합이 사용한 강제 홍보 문구를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 “너답지 않게 조용히 일하네.” 재하가 말했다. “모든 걸 홍보하지 않기로 했거든.” “그런데 그건 홍보해도 되지 않아?” “그 말이 제일 무서워. 좋은 일도 내 홍보 실적이 되는 순간 나쁜 짓과 구분이 어려워지니까.” 둘은 잠깐 웃었다. 수로 앞에서는 작업자들이 쇠관을 옮기고 있었다. 나헬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연결 부분의 누수를 확인했다. 릴리는 임시 치료소를 맡았다. 세리아는 기록 수정 절차를 준비했다. 누구도 한 가지 일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수동 밸브 작업은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연결 부위를 조이던 마온이 갑자기 손을 들어 사람들을 멈춰 세웠다. 물살이 예상보다 빨랐다. 작업자가 손을 다칠 위험이 있었다. 카르도는 무기를 뽑는 대신 무거운 나무 지지대를 들어 관을 고정했다. 신의 힘이 이번에는 직접 수문을 부수는 데 쓰이지 않았다. 기술자가 정한 위치에서 도구를 지탱하는 데 쓰였다. “정말 그렇게 서 있어도 됩니까?” 데르온이 물었다. “기술자가 움직이지 말라면 움직이지 않는 거다.” 카르도가 대답했다. 에반이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전쟁신이 기둥이 되었어.” “너는 다음 기둥을 맡을래?” “저는 홍보 담당이라서요.” 작업자들이 한바탕 웃었다. 그러나 모두 긴장을 풀지는 않았다. 마지막 밸브가 열리는 순간 수압이 흔들렸고, 나헬은 곧바로 닫았다. 원인을 확인한 뒤 연결 부분을 다시 조였다. 작업이 끝났을 때 비로소 물은 안정된 방향으로 흘렀다. [무진 분지 북쪽 급수 회로: 독립 운전] [반환대 대기 명령과 물리적 공급 분리] 재하는 화면을 보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기적의 횟수가 표시되지 않았다. 대신 마을 사람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는 밸브와 수리 도면이 남았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더 큰 기적으로 느껴졌다. 천계의 긴급 심리는 그날 오후 다시 열렸다. 에르테는 원본 대기 기록을 보존한 채 자동 대기 명령을 정지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대기자 개인의 선택을 대리로 확정하지 않도록, 남은 기록에는 답장과 함께 ‘종료 선택권 미부여 상태’였다는 사실을 명확히 적었다. 세리아는 그 기록이 어떤 신의 자산에도 귀속되지 않도록 공개 감사 표식을 붙였다. 재하는 자신이 가장 걱정했던 부분을 물었다. “그래도 그 안에 누군가 아직 기다리는 중이라면, 이 결정으로 길을 잃는 건 아닐까요?” 에르테는 대답했다. “명령을 정지하는 것이 길을 폐쇄하는 뜻은 아닙니다. 반환대의 안전 출구는 별도로 유지합니다. 누군가 나오려 한다면 그 사람의 의사를 확인한 뒤 도울 수 있습니다.” 릴리는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해 주세요.” 드디어 무진 분지 우편집의 서랍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물이 새지 않았고, 검은 계약 표식도 나타나지 않았다. 안쪽의 통로는 여전히 조용했다. 하심은 원본 편지를 보관인들과 합의한 방식으로 송신 장치 앞에 놓았다. 세다가 말했다. “편지가 닿는지 확인하겠습니다. 원본은 바깥에 남기고, 수신자에게 읽을 수 있는 사본 신호만 보냅니다.” 재하는 릴리를 바라봤다. 릴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통신석을 잡았다.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또박또박 읽었다. “내가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너에게 빚을 남기지 않는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 뒤로 서랍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톡. 한 번이었다. 구조 신호도, 긴급 경고도 아니었다. 누구도 그 소리를 미리 정해 놓은 답변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냥 누군가 들었다는 표시일 수도 있었다. [대기 명령: 정지됨] [대기자 응답 강제: 해제] [반환대 출구: 이용 가능] 하심은 긴 숨을 내쉬었다. 그는 우편집 서랍을 닫지 않고 한참 바라봤다. “이제야 답장을 한 통 배달했군.” 재하가 말했다. “완전히 끝난 겁니까?” 하심은 웃었다. “우체부가 편지 한 통 보냈다고 모든 편지가 없어지는 건 아니오.” 그 말이 끝나자 천계의 오래된 우편 회선에서 새 기록이 감지됐다. 이번에는 봉투가 아니라 나무판처럼 단단한 기록이었다. 세리아는 보존 절차를 거친 뒤 기록의 첫 줄만 열람했다. [반환대 건설 사업 발주자: 등록 신격 이전 관리자] [최초 발주 승인일: 원시 기록 000000 이전] [최초 책임자 신원: 미확정] 재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신격 이전 관리자라면, 신들이 생기기 전에도 누군가 이걸 관리했다는 건가요?” “그런 기록이 있다는 뜻입니다.” 세리아가 대답했다. “그게 인간인지, 다른 존재인지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에반은 보고서 아래쪽에 붙은 작은 상표를 보고 얼굴이 굳었다. 그는 그 모양을 어디서 본 적이 있었다. 최초 광고 회사를 설립하기 전, 악마들의 오래된 인수 계약 목록에서 같은 표식을 본 기억이 났다. “재하.” “왜?” “아까 그 발주자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했지?” “응.” 에반이 떨리는 손으로 표시를 가리켰다. 표식은 둥근 원 안에 빈 의자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내가 그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전임 사장이 마지막으로 인수한 자산에 저 표식이 있었어.” 재하는 말을 잃었다. 길의 시작에 있던 사람들은 신격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구조 약속을 거래 가능한 자산으로 만든 조직은, 신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어딘가에 존재했던 것 같았다. 신성 창에 새로운 알림이 떴다. [원시 응답권 정정 심리: 1차 조치 완료] [추가 발견: 등록 신격 이전의 권리 관리 기록] [확인 요청: 윤재하의 신격 승계 원장] 재하는 마지막 줄을 읽고 굳었다. “내 신격 승계 원장?” 그가 처음 신이 됐을 때 담당자는 인수인계가 생략됐다고 말했다. 전임 신격은 신앙 포인트가 부족해 소멸했다고 했다. 그 말을 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왜 수백 년 전의 권리 관리 기록이 지금 그의 신격 원장을 확인하라고 요구하는 것일까. 에반은 오래전 자신의 서명과 비슷한 표식을 떠올렸고, 재하는 폐허 신전의 낡은 돌바닥을 기억했다. 첫날 그는 그곳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어났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생각했던 신전 아래에, 아직 확인하지 못한 서류가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돌아가야겠네.” 재하가 말했다. 릴리가 물었다. “어디로요?” “내가 처음 신이 됐던 그 폐허로.” 먼 지상에서는 그동안 잠겨 있던 우편집의 작은 창문이 열렸다. 사람들의 편지가 들어오고, 하심은 그 편지들을 하나씩 분류했다. 이제는 아무도 편지를 답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신앙 계약으로 바꾸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절차도 생겼다. 하지만 한 장의 새로운 문서는 재하가 자신의 시작이라고 믿었던 자리를 향하고 있었다. 그의 신격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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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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