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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99화
PAYLUA ORIGINAL · 제99화

99화. 계약서보다 먼저 사람 말을 들읍시다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3,348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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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검은 우편선은 바람다리에서 조금 떨어진 안전 구역에 머물렀다. 조타를 되찾은 건 다행이었지만, 중앙 기록국이 물러났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록을 들고 온 사람들이 하나씩 늘어났다. 감사관, 운항 심리관, 화물 목록 담당자. 그러고 보니 이 세상에도 공무원은 참 많다. “오늘 회의는 몇 시에 끝납니까?” 나는 개회 선언 전에 물었다. 마레인이 나를 봤다. “필요한 사실관계가 확인될 때까지입니다.” “그러면 제 퇴근 시간이 제일 불확실하겠군요.” “출석 수당은 지급됩니다.” “그럼 끝까지 듣겠습니다.” 아르웬이 옆에서 내 신발을 밟았다. 안다. 공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너무 노골적으로 돈 얘기하면 안 된다. 하지만 출석 수당도 공익이다. 내 가계에는. 심리는 배의 갑판에서 열렸다. 사람처럼 보이던 선원뿐 아니라 까마귀, 항로 정령, 등불 조타사에게도 각각 발언 시간이 주어졌다. 모아는 제일 먼저 일어나 떨리는 목소리로 진술했다. “저는 물건을 맡아 주는 사람이지, 맡겨진 물건이 아닙니다. 이 배를 계속 지키고 싶지만 제 이름을 지우고 싶지는 않아요.” 마레인은 그 말을 천천히 기록했다. “선원의 분류 변경과 화물 이관은 분리해 심리하겠습니다.” 체르딘이 반론했다. “해당 선박은 법적으로 폐선이며, 선원으로 등록된 존재들의 지위는 그 계약에 종속됩니다.” “그러면 현재 배가 안전하게 운항하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합니까?” 내가 물었다. “임시 상태입니다.” “열일곱 해 동안이요?” “기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원들한테는 중요한데요. 열일곱 해 동안 여기서 먹고 자고 일했으니까.” 그는 내 말을 듣지 못한 척했다. 나는 한마디 더 던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신 아르웬에게 눈짓했다. 그녀는 그보다 날카로운 문서를 꺼냈다. [폐선 명령의 발효일] [선박 안전 검사의 실제 기록] [선원 명부의 독립 존속 기록] “운항 금지를 정한 근거는 계약 유효성에 관한 별도 판단이 필요합니다. 최소한 생명체를 장치와 함께 압수하는 건 안전 조치가 될 수 없습니다.” 체르딘이 말을 고르려는 사이, 테른이 검증한 시험 결과를 제출했다. 까마귀의 견과류 문의가 ‘관리 권한 양도 승인’으로 바뀌었던 그 기록이다. “이는 시험에서 확인한 자동응답 오류입니다. 과거 모든 계약이 무효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같은 규칙으로 진행되는 현재의 강제 이관은 안전성과 동의 여부를 별도 확인해야 합니다.” 마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은 긴급 정지 결정에 반영됐습니다.” 그녀는 잠시 쉬었다가 증인 모두를 바라봤다. “오늘 이 자리의 판단은 서류가 아무 가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류가 누군가의 의사를 정확히 담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기록을 지우지 않고 잘못된 부분을 확인하며, 실제 당사자가 재검토할 기회를 갖게 해야 합니다.”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내가 하루 종일 돌려 말한 걸 세 문장으로 끝내 버렸다. 이래서 전문가는 수당이 많은 모양이다. 루루는 옆에서 귓속말했다. “시온 님. 저분이 우리 회사에 오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내가 실직해.” “아, 그건 안 돼요. 시온 님이 없으면 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잖아요.” 얼핏 감동할 뻔했지만 뒤의 말이 더 무서웠다. 루루의 이야기는 대개 업무를 하나 더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체르딘은 서류를 한 장 더 꺼냈다. “화물 0-17은 단순한 물품이 아닙니다. 사백 년 전 최초 계약의 후속 답변입니다. 기록국이 법정 보관권을 갖습니다.” “답변의 수신자는 누구입니까?” 내가 물었다. “계약 당사자입니다.” “그 당사자 확인이 아직 안 됐잖아요.” “그건…….” “그리고 답변을 작성했을 때 질문은 있었습니까?” 체르딘이 입을 다물었다. 이제야 질문이 조금 아팠던 모양이다. 나는 곧바로 덧붙였다. “지금 누군가 잘못했다고 단정하는 게 아닙니다. 확인 전에는 원래 사람의 질문권과 거절권을 지켜 달라는 겁니다.” 마레인은 니아에게 화물 0-17의 외부 보호 기록이 실제로 라에의 것인지 물었다. “음성 공명과 기록 서명을 확인했습니다. 제7 금고에서 별도로 보존한 라에의 승인 가능한 표식과 일치합니다. 다만 라에의 현재 생존이나 행방을 알려 주는 신호는 아닙니다.” “그럼 내용 없이 확인할 수 있는 외부 문구는?” 니아가 기록판을 열었다. [등록자: 라에] [보호 목적: 최종 질문권의 대리 행사 방지] [내용 전달 전, 실제 질문자 확인 필요] [질문자 미확인 시 봉인 유지] 제0 회선에서 제로가 참석 의사를 보냈다. 이번에는 본인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범위만 선택했다. ‘저는 라에가 저에게 이름을 선택할 권리를 남겼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저 봉투 안의 목소리가 누구인지는 몰라요. 저를 증인으로 쓸 때는 그 사실도 적어 주세요.’ “명확하게 기록하겠습니다.” 마레인이 대답했다. 나는 작게 웃었다. 제로는 갈수록 똑똑해진다. 나보다 진술을 잘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조금 상한다. 그다음에는 세계수의 뿌리망으로 비공개 질문을 보낼지 논의했다. 세계수는 최근 공급 휴식 구간을 확보했지만, 여전히 사백 년 계약의 당사자로 의심받고 있었다. 민원 021의 본안 조사도 진행 중이다. “지금 당장 세계수에게 봉투 내용을 읽으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나는 말했다. “수신자가 그분이라는 보장도 없고, 휴식을 방해하는 질문일 수도 있어요. 먼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만 전달하고, 답이 오지 않아도 기다려야 합니다.” 아르웬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심리의 잠정 결론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화물 0-17: 봉인 유지] [강제 이관 및 수신자 임의 지정: 잠정 금지] [선원 12명의 물품 분류: 잠정 정지, 개별 지위 확인] [검은 우편선의 안전 운항: 독립 감시하에 허용] [원본 질문자와 라에의 행방: 조사 계속] 루루는 결정문을 읽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 “범인이 안 나왔어요.” “그렇지.” “그런데 이겼어요?” “누구도 동의 없이 화물을 받아야 할 필요가 없어졌어. 선원들도 당장은 자기 이름을 지켰고.” “그럼 작은 승리네요.” “응. 작은 승리.” 나는 그 말을 좋아한다. 작은 승리라는 건 오늘 한 일이 진짜였다는 뜻이니까. 그날 심리가 끝나자 모아가 나바의 옆에 서서 물었다. “선장님, 내일부터도 제가 당직을 서도 돼요?” “물론. 다만 먼저 쉬어.” 모아가 밝게 웃었다. 그 모습 때문에 하루 종일 목이 쉬도록 말한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갑판 끝에서 체르딘이 작은 봉투 하나를 꺼내는 걸 보고 내 미소는 조금 줄어들었다. 봉투에는 마레인의 심리에서 다루지 않은 기관명이 찍혀 있었다. [침묵의 법정 — 증거 출석 통보] 그는 그 봉투를 내게 건네지 않았다. 대신 검은 우편선에 남겨 두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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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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