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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93화
PAYLUA ORIGINAL · 제93화

93화. 남의 답장을 왜 제 이름으로 받습니까?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3,080자

오프라인 책장
인생에는 원치 않는 선물이 있다. 친척이 보내 준 커다란 화분, 회사 행사 기념 수건, 쓸데없이 복잡한 모바일 쿠폰. 그런데 사백 년 묵은 계약 관련 화물을 강제로 인수하는 건 그중에서도 가장 불쾌한 축에 든다. “시온 씨.” 아르웬이 차갑게 물었다. “방금 선내 인수 서류에 서명했습니까?” “제 글씨가 이렇게 잘생겼겠습니까?” 벽에 찍힌 수신자명은 내 이름이었다. 하지만 서명란은 텅 비어 있었다. 그 옆에 ‘입장 관측을 근거로 잠정 지정’이라는 작은 글씨가 있었다. “이상하네요.” 니아가 수정판을 보며 말했다. “백색 중계소에서 중지된 근접 수령 규칙이 외부 화물 인수 요청에 재사용되고 있어요. 그런데 이 배의 정상 장치는 그 요청을 승인하지 않았어요.” 나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인수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선내 기록에는 요청을 보냈다고 적히는군요.” “그러면 접수랑 승인을 분리합시다.” 나는 즉시 반박서를 작성했다. [최시온 — 화물 인수 의사 없음] [실제 접촉 및 본문 열람 없음] [외부 자동 지정 기록의 독립 보존 요청] 종이 한 장이 검은 인장 옆에 나란히 붙었다. 인장이 더 짙어졌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옆에 작은 빨간 숫자가 떴다. [거절 누적: 97회] “아흔일곱 번이나?” “저희 선원들이 다 거절해 봤습니다.” 나바는 어깨를 으쓱했다. “몇 번은 까마귀에게도 지정됐어요.” “안 받았어!” 까마귀 선원이 복도 끝에서 소리쳤다. “나 대신 받은 것처럼 적고 내 견과류를 담보로 잡았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배에서 가장 화난 건 까마귀다. 충분히 이해된다. 나바가 도장 아래의 붉은 숫자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거절을 몇 번이나 했는지 남긴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누가 계속 요청했다는 걸 증명하려고요?” “처음에는 제가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상적인 요청이라면 언젠가 정말로 받아야 하는 건 아닐까 싶었죠.” 그녀는 내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거절을 남기기 시작하자 적어도 저희가 아무 생각 없이 버틴 건 아니라는 게 보이더군요.” 나는 그 말을 기록지 맨 앞에 적었다. 한 번의 거절은 우연히 놓칠 수 있다. 아흔일곱 번의 거절은 무시당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아흔여덟 번째에 마침내 동의했다는 뜻도 아니다. 조사 장소는 화물창이 아니라 조타실 옆의 기록실로 정했다. 나바는 선내 원본과 외부 인수 요청 기록을 서로 다른 유리막 안에 넣었다. 수신자의 답변 내용은 보이지 않도록 가린 채, 도장이 언제 어디에서 찍혔는지만 비교했다. [외부 인수 요청: 17년 전 최초 등록] [내부 승인 기록: 없음] [외부 재요청: 매년 반복] [최근 재요청: 97회] “왜 하필 열일곱 해 전부터예요?” 내가 묻자 테른이 나지막이 답했다. “라에가 사라진 시점과 겹칩니다. 그러나 연관이 있는지는 별도로 검증해야 하오.” “역시.” 나는 증명되지 않은 두 사실을 굳이 이어 붙이지 않았다. 상담사가 제일 경계해야 하는 습관은 고객의 말을 듣고 결론부터 만들어 놓는 것이다. 물론 나는 종종 결론을 먼저 낸다. 사람이라 그렇다. 그래서 서류만큼은 정확하게 쓰려고 한다. 그때 문 밖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선장님. 냉각함 둘째 칸의 공명이 강해졌습니다.” 열네 살쯤 돼 보이는 소녀가 서 있었다. 짧게 자른 은회색 머리 끝에는 검은 잉크가 묻어 있었다. 소녀는 봉투 모양 작업 모자를 썼고, 가슴에는 ‘모아 — 화물 보호 견습’이라는 명패가 달려 있었다. “이분이 최시온 씨야.” 나바가 소개했다. 모아가 고개를 숙였다. “들었습니다. 거절을 접수해 주시는 분이라고요.” “……칭찬이긴 한 거지?” “네. 다른 분들은 다 받아야만 일을 잘한 거라고 해서요.” 모아의 손은 손톱 주변까지 먹물에 물들어 있었다. 봉인함을 다루다가 묻은 것 같았다. 그녀는 내게 작은 기록지를 내밀었다. [화물 0-17의 외부 신호] [내용 열람 요청: 거절] [발신자가 지정한 외부 확인 사항: 수신자 임의 변경 금지] “이 화물이 스스로 거절한 겁니까?” 니아가 물었다. “아니요. 화물에 붙은 보호 조건입니다. 화물의 주인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 조건이 지워지는 게 두려웠습니다.” 모아는 고개를 숙였다. “제가 제대로 지킨 건지 모르겠어요.” “열지도 않았고, 사라지게 두지도 않았네.” 나는 말했다. “그럼 적어도 오늘까지는 잘 지킨 거야.” 소녀의 어깨가 조금 펴졌다. 루루가 옆에서 내 소매를 당겼다. “시온 님. 저 친구도 견습이에요. 저랑 비슷하네요!” “넌 고객센터 근무 경력이 훨씬 길잖아.” “그럼 제가 선배군요!” 루루는 순식간에 모아에게 창고 정리 요령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서류는 절대 맨 위에 올려두지 말 것. 시온 님이 커피를 쏟을 수 있으니까.’ “루루야. 그런 일은 한 번뿐이었잖아.” “두 번이에요.” 정확한 증언은 때때로 인격에 해롭다. 조사 중 돌발 상황이 생겼다. 기록실 수정판에 새 인수자가 떠올랐다. [임시 수신자 변경 요청] [기존: 최시온] [신규: 견습 보호자 모아] 나바의 표정이 굳었다. “이건 처음입니다.” 모아는 자기 명패를 움켜쥐었다. “저는 보호자이지, 수신자가 아닌데…….” 소녀가 한 걸음 물러났고, 나바가 곧바로 그녀 앞을 막아 섰다. 선장의 코트가 검은 인장과 모아 사이에 작은 벽처럼 펼쳐졌다. “선내 규정상 견습에게 화물 인수 책임을 전가할 수 없습니다.” 나바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여긴 내 배예요. 누가 규정을 멋대로 고쳤건, 제가 모르는 새 아이 하나를 책임자로 만들어 놓게 둘 순 없어요.” 나는 나바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발언도 기록해 주세요. 누가 실제로 현장에서 거부했는지, 나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아르웬이 곧바로 확인 기록을 남겼다. 원래라면 이런 장면을 보고 속으로 박수를 쳤겠지만, 참았다. 상대는 기록의 허점을 노리는 장치다. 박수는 증거가 아니니까. 나는 급히 수정을 닫았다. “그쪽이 노리는 건 물건을 맡아 온 사람인가 봅니다.” 그리고 화물 0-17의 봉인 위로 검은 잉크 한 방울이 맺혔다. 마치 누군가 안쪽에서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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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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