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92화
PAYLUA ORIGINAL · 제92화

92화. 해적선이 아니라 반송선입니다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3,077자

오프라인 책장
검은 우편선에는 사다리가 없었다. 대신 배의 옆구리에서 기다란 나무 발판이 펼쳐졌다. 아래쪽은 허공이고 위쪽은 구름이었다. 누군가 사다리를 놓기 싫어서 만든 구조라고 확신했다. “용의 등에 타면 한 번에 건너갈 수 있다!” 로딘이 자신 있게 말했다. “지난번에 그렇게 탔다가 제 허리뼈가 출근을 거부했습니다.” “너는 몸이 약하구나!” “고객님은 승객의 만족도를 좀 신경 쓰세요.” 배 앞에 서 있던 여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짙은 남색 머리를 목 뒤에 묶었고, 검은 선장 코트 소매는 손목까지 단정하게 접혀 있었다. 왼쪽 눈에는 수정 단안경을 끼고 있었다. 젊어 보였지만 눈가의 피로는 긴 항해를 말해 주고 있었다. “선장 나바입니다. 허가받은 외부 조사단 맞습니까?” “세계수 고객센터 최시온입니다. 안전 점검과 현장 면담만 허락받았습니다.” “들으셨죠? 안전 점검.” 그녀가 옆의 선원들을 돌아봤다. “오늘은 해적 단속이 아니랍니다.” 작은 선원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사람처럼 두 발로 선 검은 까마귀였다. “그럼 압수수색도 안 합니까?” “안 합니다.” “비상식량은 지켜도 됩니까?” “왜 압수수색이랑 비상식량이 한 묶음인데?” “전에는 그랬거든요.” 까마귀 선원은 나를 수상하게 보더니 견과류 주머니를 품에 숨겼다. 이 항해는 벌써 쉽지 않아 보였다. 우리가 발판을 건너자 갑판에 발자국이 생겼다. 빗물도 흙도 없는데, 한 걸음마다 작은 검은 발자국이 잉크처럼 남았다가 금방 사라졌다. “배가 탑승자를 기록하나 보네요.” 내가 말했다. 나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발을 들인 사실과 승선 동의는 따로 저장합니다. 승객이 원하면 기록을 삭제할 수도 있고요.” “좋은 시스템이네요.” “그렇게 말해 준 외부인은 처음입니다.” 그녀는 이상하게 웃었다. 왜 그런지는 복도를 몇 걸음 걷고 나서 알았다. 바닥에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객실 식수는 무료] [객실 이용은 선택] [몸이 불편하면 언제든 내릴 수 있습니다] 로딘이 안내문 앞에서 한참 버티더니 물었다. “정말 언제든 내릴 수 있느냐?” “예. 다만 높이가 높으니 비행 능력부터 확인합니다.” “나는 문제없다!” “고객님, 저희는 문제있어요. 아직 안 내립니다.” 선체는 겉보다 넓었다. 갑판 아래로 내려가는 복도가 여러 겹으로 접혀 있었다. 모든 문에는 이름 대신 숫자가 붙어 있었고, 바닥에는 희미한 별자리가 길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럼 이 배는 정확히 뭘 운송합니까?” 내가 물었다. 나바가 선실 밖에 걸린 오래된 운송 규약을 가리켰다. “답장이 왔지만 수신자가 받지 않은 경우, 주소가 지워진 경우, 보내는 쪽에서 뒤늦게 전달을 철회한 경우. 그 답변을 임의로 폐기하거나 열지 못하도록 맡아 왔습니다.” “백색 중계소랑 역할이 다르군요.” “거긴 통지를 보냈다고 적는 곳이고, 여긴 못 받은 답변을 지키는 곳이죠.” “거기서 ‘못 받았다’는 말을 못 해서 우리가 왔는데요.” “우리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그녀가 웃지 않았다. “정식 기록에는 이 배가 열일곱 해 전에 폐선됐습니다.” “지금은요?” “보시다시피 안 죽었습니다.” 아, 폐선 처리된 배가 살아 움직이는 문제. 건물의 신원 확인은 해 봤어도 배의 사망 신고 정정은 처음이다. 나는 복도 양쪽의 봉인함을 확인했다. 어떤 상자는 나무껍질로 싸였고, 어떤 상자는 종이끈을 몇 겹이나 둘렀다. 다른 것은 두꺼운 검정 유리로 둘러싸여 안쪽이 보이지 않았다. 니아가 발걸음을 멈췄다. “이것들은 본문을 숨기려고만 봉인한 게 아니에요. 발신권 공명이 밖으로 새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어요.” 나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답변 내용이 공개되면 질문자가 특정되는 화물도 있습니다. 미수령이라는 이유로 남의 비밀을 구경할 순 없지요.” “그건 맞습니다.” 루루는 조금 시무룩했다. “그럼 재미있는 편지 하나도 안 읽어요?” “재미있는 편지는 네가 직접 받아.” “저한테 온 편지는 매일 창고 정리 알림뿐인데요.” “잘 읽고 정리하면 되겠네.” 로딘이 갑판 위를 쿵쿵 걸으며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검은 배가 되었느냐? 타락한 마법 때문이냐?” 나바가 물었다. “오래된 보호 도료 때문입니다. 빛에 노출되면 잉크가 변색되는 화물이 많아서요.” “전설이잖아!” “전설보다 관리비가 더 무서워요.” 나는 선장과 눈이 마주쳤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환상을 깨는 데도 정확한 견적이 필요하다고 믿는 부류다. 하지만 선실 끝으로 갈수록 분위기가 달라졌다. 바닥의 별자리 선이 유난히 굵어졌고, 검은 봉인함에 같은 표식이 반복됐다. [원래 수신자 확인 불가] [대리 수령 불허] [보관 상태: 최종 심리 대기] 나바가 그중 가장 오래된 상자 앞에 섰다. “여기 있는 열일곱 해 전 화물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누가 자꾸 수령 도장을 찍으려 합니다.” “누구요?” “모릅니다. 외부에서 자동 요청이 들어옵니다. 거절하면 같은 요청이 다른 명의로 반복되죠.” 테른이 외부 흔적을 검사했다. “요청 신호가 중앙 기록국 제7 금고의 자동 인장 장치와 비슷하오. 동일한 장치인지 대조가 필요하겠소.” “그 장치라면 잠정 정지된 걸로 아는데요.” “본체가 정지됐어도 예약된 명령이나 복제 회선이 남을 수 있소.” 좋지 않은 소식이다. 사무실 컴퓨터를 끄고 퇴근했는데 프린터가 밤새 혼자 계약서를 출력하는 느낌이랄까. 나바는 선장 코트 안쪽에서 손바닥만 한 철판을 꺼냈다. [비상 운항 관리 — 다음 화물 인수 시도: 36시간 후] “그 시간에 도장이 찍히면 어떻게 됩니까?” “화물이 주인에게 돌아간 걸로 처리됩니다.” “주인을 모르는데요?” 나바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래서 누가 받아 가는지 확인하려 합니다.” 나는 선장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다만 봉인을 열어 정체를 찾는 건 마지막 수단으로 미룹시다. 외부 요청 기록부터 보죠.” 까마귀 선원이 서둘러 선장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안쪽 벽에 같은 도장이 이미 찍혀 있었다. [화물 인수 준비 완료] [임시 수신자: 최시온] 나는 한숨을 삼켰다. “야, 잠깐.” 드래곤도 종이인형도 아니고, 이번엔 배가 나를 수신자로 고른 모양이다. “내가 언제 받겠다고 했는데?”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92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92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