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여 시간 여섯 시간.
나는 서류상으로는 침착했다. 실제로도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다만 손에 쥔 차가 벌써 네 번째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겠다.
아르웬이 세이를 돌려보냈다. 아니, 정확히는 쉬게 했다.
“세이. 몇 시간 동안 단독으로 분류장에 있었죠?”
“시설 개장 이후 계속요.”
“그건 휴식 기록이 아닙니다.”
“저는 휴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가 있는지는 점검해야겠죠. 지금은 감독자가 있으니 잠깐 기능을 내려도 됩니다.”
세이는 대합실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앉자마자 등이 탁 접혀 종이봉투처럼 납작해졌다.
루루가 기겁했다.
“죽은 거예요!”
세이의 입만 쏙 튀어나왔다.
“절전 모드입니다.”
“미리 말해!”
나는 물컵을 내려놓았다. 이 세계에선 누가 쉬는 것도 심장에 나쁘다.
니아와 테른은 반송 보관실 앞에 독립 감시망을 설치했다. 압력이 높아지긴 했지만 분류관의 균열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니아는 벽에 귀를 대고 오래된 공명을 들었다.
“여기서 계속 질문하고 있어요.”
“누가?”
“모르겠어요. 하지만 소리는 바깥에서 오는 게 아니에요. 건물 안에서 시작해요.”
“보관실의 누군가?”
“아니요. 벽 전체에서요.”
세이가 벌떡 일어났다.
“그 목소리는 들으면 안 됩니다!”
“왜?”
“저희는 중계하는 시설이니까, 질문하는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가 그렇게 정했는데?”
“상부 운영 규정이…….”
세이가 말을 멈췄다.
그동안 로딘은 창밖에서 우체국의 높은 첨탑들을 세고 있었다. 열둘을 세다가 열세 번째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세어도 첨탑이 늘어나는 것 같다!”
“건물이 똑같이 생겨서 그렇겠죠.”
“그럴 리 없다! 내 기억력은 완벽하다!”
“지난번에 온천 보상 청구서 어디 뒀는지 잊어버리셨잖아요.”
“그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인간. 그 종이 소년이 일자리를 잃으면 내 온천에서 일하게 해 주겠다.”
뜻밖의 제안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고객님, 종이인형에게 온천 청소를 시키시겠다고요?”
“아니! 온천 이용권을 팔게 하겠다. 손님에게 예의 바르게 대답하지 않느냐.”
“아, 그건 확실히 잘하죠.”
“대신 손님이 돈을 안 내고 도망가면 네가 처리해라.”
“왜 제가요!”
나는 손사래를 쳤지만 마음 한구석이 조금 풀렸다. 로딘 방식으로는 꽤 큰 배려였다. 불로 태우겠다는 제안보다 백 배쯤 나았다.
나는 일부러 기다렸다. 예전의 나라면 빠르게 다음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콜센터에서는 침묵을 두려워하도록 교육받았다. 통화 시간이 늘어나니까.
그런데 여기 와서 배웠다. 누가 자기 말을 찾으려 할 때는 재촉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을.
세이가 조용히 속삭였다.
“중계소가 사라지는 게 무서웠어요.”
“무슨 말이야?”
“저는 이곳의 안내원입니다. 이 건물이 고장으로 폐쇄되면 저도 일을 잃습니다.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루루가 나를 보았다.
“그럼 세이도 민원인이네요?”
“그럴 수 있지. 본인이 원한다면.”
“민원 내용은요?”
세이는 한참 망설이다가 말했다.
“저도…… 성공률 때문에 잘못된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아주 좋은 민원이네.”
그때 바닥이 낮게 울렸다. 대합실의 철제 기둥이 천천히 휘어졌다가 돌아왔다. 누군가 건물 전체로 숨을 들이쉬는 것 같았다.
천장에 문장이 떠올랐다.
[발신자 확인 요청에 응답합니다]
[원 발신권: 백색 중계소]
[질문 발송 주체: 시설 본체]
[대리 발신: 없음]
우리 모두 입을 다물었다.
“건물이 질문했다고요?”
로딘의 목소리가 창문 밖에서 울렸다.
“그럴 수 있지 않느냐! 우리 산도 가끔 투덜거린다!”
그건 아마 고객님이 너무 시끄러워서일 거예요.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중계소님. 문의 제목이 ‘내가 받지 않은 계약서는 어디로 보냈습니까?’였죠?”
벽이 천천히 반짝였다.
[예]
“어떤 계약인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원본 내용이 아니라 송달 여부부터요.”
[운영 위임 통지]
[전환일: 400년 전]
[수신 대상: 백색 중계소]
[처리 상태: 수취 완료]
[실제 수신 기억: 없음]
“사백 년 전에 누군가 당신한테 운영 계약을 보냈다고 기록했는데, 정작 당신은 받은 적이 없다는 거네요.”
[예]
“그런데 어떻게 수취 완료됐지?”
[근접 감지 — 시설 자체를 관측자로 지정]
나는 혀를 찼다.
아주 오래된 술수였다. 시스템이 문서를 가리키고, 그 문서를 가리킨 시스템이 수령인이 된다. 자기 자신에게 계약서를 보내고 자기가 보았다고 찍은 것이다.
하지만 이 기록만으로 위임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고 결론 낼 수는 없었다.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거나 동의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우리는 먼저 실물 송달 경로를 찾아야 했다.
“중계소님, 원본을 공개하기 싫으시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있습니까?”
[반송 보관실 외벽에 마지막 수신 흔적 보존]
[수신 흔적 조회: 허용]
[계약 본문 열람: 아직 결정하지 않음]
“좋습니다.”
나는 아르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벽의 외부 기록만 복제하고 보관실은 열지 않았다. 세이의 말도 별도 동의를 받은 뒤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이상한 게 발견됐다.
[운영 위임 통지 발송: 400년 전]
[시설 관측 감지: 같은 날]
[수신 가능한 본문: 공백]
[사후 추가 본문: 3일 뒤 등록]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세이. 편지를 받았다는 도장은 당일이고, 편지 내용은 사흘 뒤 들어왔네.”
세이의 입술이 떨렸다.
“그럼 저는…… 무엇을 배달한 겁니까?”
“글쎄.”
내가 말했다.
“적어도 그날에는 내용이 없었다는 뜻이지.”
갑자기 서류들이 제멋대로 떠올랐다. 분류장에 봉투들이 소용돌이치며, 창문 밖으로 수십 통이 날아갔다. 테른이 격리막을 올렸지만 압력이 쏟아지고 있었다.
[잔여 시간: 3시간 12분]
[일괄 배송 준비 단계 진입]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 건물은 자기 계약조차 받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의 수령을 대신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람에게 그렇게 했다면 한마디로 착취다.
건물이라고 다를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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