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송 보관실 문 앞에서 로딘이 말했다.
“부숴 버리자.”
나는 그의 거대한 코를 올려다봤다.
“문이 아니라 계약을 조사하러 온 겁니다.”
“문을 부수면 조사가 빨라지지 않느냐!”
“증거가 같이 부서지면요?”
“그건…….”
드래곤이 잠시 고민했다.
“더 조사를 해야겠군!”
“그래서 지금 조사 중이라고요.”
우리가 이런 대화를 스무 번쯤 나누면 로딘도 법을 이해할까. 아니면 내가 용의 언어를 배우는 쪽이 빠를까.
세이는 보관실 문을 한참 바라보았다. 세 겹의 잠금쇠가 공중에 매달려 있었고, 각각 다른 시기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테른이 판독 결과를 설명했다.
“첫째 잠금은 원본 보존을 위한 거요. 둘째는 중앙 관리국의 운영 관인. 셋째는 나중에 덧씌워진 폐쇄 인장으로 보이오. 각자 목적이 다르오.”
“같은 문에 자물쇠 세 개라.”
“적어도 주체가 셋이라는 뜻이지.”
아르웬이 말했다.
“그럼 우리가 해제 권한을 갖고 있지 않은 자물쇠를 함부로 풀면 안 돼요. 우선 외부 기록부터 확인하죠.”
전생의 나라면 답답해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안다. 나중에 누군가 우리의 결과를 뒤집으려 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게 ‘무단 개봉’이라는 단어라는 것을.
세이는 방문 이력을 읽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온도와 압력, 통신 신호 같은 외부 상태는 시설 안전 점검으로 조회할 수 있었다.
우리는 시설 뒤쪽의 환기구도 살폈다. 그곳에는 사람 팔뚝만 한 구멍들이 잔뜩 뚫려 있었고, 낡은 바람개비가 가느다란 소리를 냈다. 각 구멍 위에는 오랫동안 닳아 보이지 않던 이름표가 있었다.
루루가 손전등을 들고 글씨를 읽었다.
“반송, 보류, 회신, 반송, 반송…… 반송이 세 개나 있어요?”
테른이 설명했다.
“사유가 달랐겠지. 수취인이 없어서 돌아가는 편지, 수취인이 거절한 편지, 기간이 지나 돌아가는 편지. 모두 같은 의미는 아니니까.”
“그런데 지금은 왜 하나로 돼 있어요?”
“나중에 바람관을 합쳤군.”
아르웬이 금속 안쪽의 접합 자국을 손으로 짚었다. 얇은 회색 납땜 선은 나머지 관보다 새것이었다.
“운영 통합 때 반송 경로를 합쳤을 수 있겠어요.”
“그럼 거절한 편지도 수취인 없는 편지랑 같이 보냈겠네요.”
내 말에 세이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저는 거절과 오류를 구별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럴 수 있지. 그래도 오늘 구별해 놓으면 다음엔 달라질 거야.”
그는 작은 장부를 꺼냈다. 오늘 처음으로 외워진 문구가 아니라 자기 말로 적기 시작했다.
니아가 벽에 손을 대자 오래된 잎사귀 무늬가 희미하게 살아났다.
“첫 잠금은 아직 살아 있어요. 세계수 뿌리망과 연결돼 있지만 무언가를 강제로 요구하지는 않아요.”
“그럼 좋은 잠금이네요.”
“원본을 함부로 꺼내지 못하게 지키는 거죠.”
테른은 둘째 관인의 이관 기록을 살폈다.
[운영 관인 설치: 400년 전]
[설치 목적: 계약 통지 경로 일원화]
[기존 반송 기능: 제한 운용]
“세 번째는?”
[폐쇄 인장 설치: 17년 전]
[설치 사유: 반송 기록 유출 방지]
[기록 작성자: 비공개]
나는 잠깐 숨을 멈췄다.
열일곱 해 전.
라에가 사라지고 제0 회선이 침묵하도록 압박받던 바로 그 시기다. 우연이라고 단정할 수도, 동일 사건이라고 확정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두 기록을 비교할 이유는 생겼다.
“아르웬 소장님. 이 문을 열자는 게 아니라, 외부 기록에 독립 검증을 요청하죠.”
“동의합니다.”
“그리고 세이에게 반송 기능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해 주세요. 누군가 나중에 없었다고 할 테니까.”
세이가 불안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제가 그 말을 하면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까?”
“가능성을 확인해야겠지. 그래서 네 말은 네가 승인한 범위에서만 제출하자.”
“거절하면요?”
“거절하면 여기까지.”
그는 처음으로 문구를 외우지 않고 생각했다. 종이 얼굴에 작은 주름이 잡혔다.
“저는 사람들이 저에게 왜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게 싫었습니다.”
“그럴 수 있어.”
“저는 늘 배달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지 않으면 제 업무가 실패였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어쩌면…… 배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다음 편지를 제대로 배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웃자 세이는 귀 끝이 접혔다. 종이인형도 부끄러워할 수 있구나.
그때 로딘이 갑자기 입을 크게 벌렸다.
“크하아아!”
루루가 기겁했다.
“불이요!”
하지만 나온 건 불꽃이 아니라 재채기였다. 황금색 꽃가루가 보관실 문에 흩날렸다.
“에취! 누가 이런 먼지투성이 장소를 만들었느냐!”
“로딘 님, 잠깐!”
나는 황급히 외쳤다.
꽃가루가 첫 잠금쇠에 닿자 문 위의 나무 문양이 반짝였다. 뿌리망이 이곳의 상태를 감지한 것 같았다. 니아가 얼른 확인했다.
“원본 보존 결계가 방문자의 의도를 검사하려는 것 같아요. 하지만 세계수의 직접 동의를 요구하는 반응은 아니에요. 외부 안전 신호만 살핍니다.”
테른이 재채기 전후의 온도 차이를 기록했다.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보관실 외부 압력: 점진적 상승]
[내부 미반송 신호: 다수]
[자동 분류 장치와 폐쇄실 간 순환: 계속]
“계속 돌고 있어?”
“반송할 편지를 다시 완료 처리한 뒤 또 반송실로 보내는 구조요. 폐쇄된 방 안에서 순환이 끊이지 않고 있소.”
세이는 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래서 밤마다 종이 울렸군요.”
“종?”
“이곳의 공식 점검표에는 없지만, 자정이면 아래층에서 울림이 올라옵니다. 저는 고장이라고 생각했어요.”
“몇 번 울려?”
“처음에는 세 번이었는데…… 요즘은 훨씬 많습니다.”
나는 테른을 바라봤다.
“이거 오래 두면 위험합니까?”
“압력 추세를 더 봐야 단정할 수 있소. 다만 이대로 계속 쌓이면 분류관을 막을 수는 있겠소.”
루루가 조그만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럼 편지들이 터져요?”
“편지가 터지면 뭐가 나오는데?”
내 질문에 답한 건 세이였다.
“전달되지 않은 통지들이…… 외부 경로로 잘못 배달될 수 있습니다.”
모든 계약을 이미 보냈다고 우기는 시설에서, 보내지 못한 편지가 쏟아질 수 있다고?
나는 이마를 짚었다.
“좋아. 오늘은 문을 열지 않고 저 순환부터 안전하게 끊을 방법을 찾자.”
그때 분류장 전체가 새하얗게 깜빡였다.
[중계소 자동 점검]
[누적 반송 지연: 한계 접근]
[강제 일괄 배송 예정: 18시간 후]
루루가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시온 님, 저거 배송이면 좋은 일 아니에요?”
“받을 사람도 모르는데 수만 통을 보내면, 그건 배송이 아니라 폭격이야.”
나는 서둘러 비상 보고서를 열었다.
또 시간이 생겼다. 좋지 않은 의미로.
제85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