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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71화
PAYLUA ORIGINAL · 제71화

71화. 사백 년 전 계약서에 서명하신 분을 찾습니다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3,103자

오프라인 책장
내가 아침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커피를 끓이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한 일은 사백 년 전 계약서를 고발하는 것이었다. 순서가 바뀌면 안 된다. 카페인이 없는 상태로 사백 년 묵은 법률 문제를 건드리는 건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행위니까. 세계수 고객센터 본관의 창문 밖으로 초록빛 구름이 지나갔다. 정확히는 구름이 아니라 세계수의 꽃가루였다. 사람들은 저걸 축복이라고 부르지만,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축복보다 재채기에 가깝다. “시온 님! 민원 021 분류가 끝났어요!” 루루가 장부를 양손으로 치켜들었다. “좋아. 뭐로 분류됐어?” “계약 관련 문의요!” “그건 제목에도 쓰여 있잖아.” “그리고 아주 오래된 계약 관련 문의요!” “너 오늘 일찍 퇴근해.” “정말요?” “더 설명하면 내 쪽에서 먼저 퇴근할 것 같아서.” 루루는 진지하게 장부를 뒤적였다. 이 정령의 장점은 언제나 성실하다는 것이다. 단점도 똑같다. 아르웬 소장이 회의실 문을 열었다. 장갑은 눈처럼 하얗고,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은 줄 하나 어긋나지 않았다. 어제 물이 쏟아져도 이분은 먼저 물의 이동 경로를 보고하라고 할 사람이다. “최시온 씨, 민원 021은 접수만 됐습니다. 최초 계약을 무효라고 선포할 권한이 우리에게는 없어요.” “알죠. 아직 무효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젯밤 보고서에 ‘환불각’이라고 쓰셨더군요.” “법률 용어는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아르웬은 한숨 대신 진한 잉크병을 탁 내려놓았다. 나는 문서 000의 복사본을 펼쳤다. 커다란 잎맥이 종이를 관통하고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네 개의 문장이 고대어와 현재어로 겹쳐져 있었다. [문서 000 — 세계수 생장력 공동 운용 협약] [계약 성립 근거: 대리 서명] [최초 당사자 본인 확인: 미완료] [현재 운용 기관: 천계 전력청 및 위임 기관] 나는 계약서 아래쪽의 가느다란 선을 손끝으로 따라갔다. 선에는 작은 마을 열아홉 곳의 표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지금도 지도에 남아 있는 곳은 일곱 곳뿐이었다. 나머지 열두 곳은 이름이 바뀌었거나, 홍수와 전쟁에 휩쓸려 사라졌다고 했다. 종이 위의 짧은 선 하나가 누군가의 겨울을 네 번이나 백 번이나 넘겼다. 그래서 아무리 터무니없는 계약이라고 해도 화가 난다고 찢어 버릴 수는 없었다. 누군가의 치료소가 그 계약에 기대어 돌아가고 있고, 반대로 누군가의 숲은 그 계약 때문에 늙어 간다. 나는 펜으로 동그라미 하나를 쳤다. 서명란이었다. “우리의 질문은 하나예요. 처음에 누가 누구를 대신해 서명했냐는 거.” 아르웬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본은 중앙 기록국이 보관합니다. 서명 부분의 확대 사본을 받으려면 열람 절차를 밟아야 하고요.” “내용을 모르는 사람의 개인정보부터 캐지는 않겠습니다. 우선 봉인 상태, 서명 방식, 원본의 존재 여부만 확인해 주세요.” “그 정도는 요청할 수 있겠군요.” 서류가 순조롭게 넘어가는 날은 불길하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바닥이 흔들렸다. 쿵. “지진인가요?” 루루가 천장에 달라붙었다. “아니.” 아르웬이 창밖을 보았다. 세계수 본관 앞 광장에 커다란 붉은 발톱이 내려앉았다. 이어서 드래곤 로딘의 머리가 창문을 가득 메웠다. “인간! 들었다! 사백 년 전 계약을 뒤집는다며!” “계약을 확인한다고 했습니다. 뒤집는 건 그다음 문제예요.” “좋다! 내가 뒤집어 주마!” 그가 앞발을 들었다. 광장 전체가 그림자로 덮였다. “서류를요! 건물을 뒤집지 마세요!” “종이는 너무 작다!” 신이시여, 이 세계에는 왜 크기 조절이라는 개념이 없습니까. 로딘은 코를 창문에 대고 킁킁거렸다. “나는 서명하는 걸 봤다.” 내 손에 들린 펜이 멈췄다. “누가요?” “사백 년 전, 첫 잎이 검게 변하던 날이다. 하늘에서 금빛 사절이 내려왔고, 사람들은 저 나무가 이제 보호받는다고 환호했지.” “그다음은요?” “사절이 흰 판을 꺼내 들었다. 거기에 누군가 이름을 새겼다.” “누군가가 누군데요?” 로딘은 턱을 괴더니 난처한 얼굴을 했다. 드래곤의 난처한 얼굴이란 용암이 끓기 직전의 분화구와 비슷하다. “내가 그때 온천에서 자고 있었거든.” “봤다면서요!” “소리는 들었다!” “증언이 아니라 수면 일기잖아요!” 로딘이 삐쳤다. 그의 콧김이 창틀을 태웠다. 아르웬은 손가락을 들어 마법 방수막을 치고 차분하게 물었다. “당시 남은 장소나 물건은 없습니까?” 로딘이 잠시 생각했다. “있다. 내 산 아래 첫 계약을 기념한다며 만든 돌로 된 귀가 있다.” “귀요?” “말을 기억하는 바위다. 다른 놈들은 기념비라고 부르더군.” 흥미가 생겼다. 계약을 체결했다는 주장과 계약을 실제로 읽어 준 기록은 별개다. 누군가 계약 조건을 고지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원본 서명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소장님, 현장 조사를 신청합니다.” “먼저 목적과 보존 계획을 적으세요.” 나는 곧장 양식을 채웠다. [출장 목적: 기념비의 외부 표식 및 공개된 역사 기록 확인] [원본 손상 금지] [현장 소유자: 로딘 확인 후 접근] [교통수단: 드래곤, 단 안전 착륙 조건] “마지막 조건이 마음에 안 든다!” 로딘이 외쳤다. “마음에 들면 사고도 줄어듭니다.” 그때 회의실의 수정 통신판이 울렸다. 중앙 기록관 파리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문서 000의 서명 방식 조회가 허용됐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뭡니까?” “서명자는 대리인이 아닙니다.” 아르웬의 눈썹이 올라갔다. “대리 서명이라고 적혀 있잖습니까?” “정확히는 서명 방식이 대리 처리됐다고 나옵니다. 원본의 서명란에는 이름 대신 기관 고유번호가 있어요.” “기관 번호가 사람의 동의를 대신했단 말입니까?” “그것도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기록에는 수권 근거가 별도의 원장에 있다고만 적혀 있어요.” “원장 위치는요?” 파리스는 종이를 한 장 더 넘겼다. [권한 원장: 계약 체결 당일 분리 보관] [이관 장소: 최초 청약 지점] [현재 지점 명칭: 존재하지 않음] 나는 로딘을 보았다. 로딘도 나를 보았다. “혹시.” 내가 물었다. “그 기념비가 있는 산의 옛 이름, 뭡니까?” 드래곤은 입을 크게 벌렸다. “첫 약속의 언덕.” 아. 첫날부터 출장비를 청구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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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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