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의 천계 감사관은 생각보다 예의가 발랐다.
“최시온 상담원. 조사에 협조해 주시겠습니까?”
“협조 내용이 뭡니까?”
“무단 기록 열람, 비인가 시설 개조, 허위 재난 신고에 대한 해명입니다.”
“협조하면요?”
“정식 절차에 따라 처분하겠습니다.”
“협조 안 하면?”
“정식 절차에 따라 처분하겠습니다.”
역시나. 선택지가 장식인 경우가 있다.
아르웬은 집 문을 열었다. 밖에는 흰 제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짙은 갈색 머리, 금빛 눈동자, 눈부시게 반듯한 옷깃. 그런데 등 뒤에는 날개 대신 자그마한 철제 서류 가방이 떠 있었다.
“천계 현장 감사관 에델입니다.”
그가 신분패를 내밀었다.
“감사 대상은 최시온 상담원과 아르웬 관리소장. 증거물을 압수하겠습니다.”
“잠깐.”
나는 손을 들었다.
“압수 목록부터 작성하세요.”
“목록은 사후 제공됩니다.”
“원본을 가져가면 사본 진위 여부를 누가 확인하죠?”
“천계가 확인합니다.”
“지금 천계가 피신고 기관인데요?”
에델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처음으로 아주 조금 움직였다.
“천계 전력청과 천계 감사국은 별개 기관입니다.”
“소장님, 이거 저희 회사 대표가 만든 감사실이 대표를 감사하는 구조랑 똑같죠?”
아르웬이 대답하지 않았다. 눈으로는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에델은 서류 가방에서 붉은 봉투를 꺼냈다.
“협조 거부로 기록하겠습니다.”
“거부 아닙니다. 증거 보존 요청입니다.”
“규정 근거는?”
나는 에르윈의 편지에서 찾은 조항을 떠올렸다.
“원천 제공자 본인 이의 제기와 관련된 사안은 원본을 신청인 소재지에 보존해야 한다. 맞죠?”
에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조항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상담원은 민원 양식 뒤에 있는 작은 글씨도 읽어야 먹고삽니다.”
“조항 번호를 말하십시오.”
“소장님?”
아르웬이 즉시 답했다.
“구계약 관리법 제사십이조 제삼항. 제0 근부 기록의 무단 반출을 제한합니다.”
내가 슬쩍 엄지를 치켜들었다. 규정을 외우는 동료가 이렇게 든든했던 적은 처음이다.
에델이 나무 조각을 바라보았다. 서류 가방의 자물쇠가 스스로 잠겼다.
“……일단 압수는 보류합니다.”
루루가 작은 승리의 춤을 췄다. 나는 발끝으로 말렸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대신 서류의 진위 확인을 위해 여러분 모두 조사실로 동행해야 합니다.”
“좋죠. 어디로요?”
“관리소 내 임시 감사실.”
“우리 고객센터에는 감사실이 없는데요.”
“지금 설치했습니다.”
창밖을 보니 세계수 가지 위에 하얀 건물이 생겨나 있었다. 누가 봐도 방금 생긴 새 건물이었다. 천계가 적어도 출장비는 아끼지 않는 모양이다.
떠나기 직전, 아르웬은 손목의 관리 인장을 확인했다. 흰빛이 약해지고 있었다.
“직무 중지 명령이 내려오면 이 인장은 바로 꺼질 거예요.”
“아직 내려오지 않았잖아요.”
“그 전에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죠.”
루루는 아르웬의 표정을 살피더니 가방에서 차가 담긴 작은 병을 꺼냈다.
“소장님, 어제부터 드신 게 없어요. 조금이라도 마셔요.”
“고마워요.”
아르웬이 병을 받아 들자 루루는 놀라서 날개를 파닥였다.
“소장님이 저한테 고맙다고 하셨어요!”
“제가 평소에 그러지 않았나요?”
“서류 양식이 틀리면 혼내셨고, 맞으면 다시 확인하라고 하셨는데요?”
“그랬나요…….”
아르웬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보기에는 딱히 맛있지도 않은 차였다. 그런데 루루는 세상에서 제일 귀한 칭찬을 받은 얼굴이었다.
나는 슬쩍 둘을 뒤로 보냈다. 어깨 위에서 버티던 작은 정령에게도 이번 일은 무서웠을 것이다. 내가 드래곤 앞에서 농담을 던질 수 있던 건 루루가 겁먹은 채로도 기록을 지켜 준 덕분이었다.
“루루.”
“네?”
“나중에 살아 돌아오면 서식 개선부터 하자.”
“정말이요? 어떤 서식이요?”
“접수인의 목숨이 위험한 경우, 추가 도장 없이 바로 구조 요청하는 서식.”
루루가 어쩐지 울 것 같은 얼굴로 웃었다.
“그거 꼭 만들어요.”
감사실로 가는 계단은 길고 깨끗했다. 나는 난간에 붙은 안내문을 읽었다.
‘조사 대상자의 존엄을 존중합니다.’
좋은 문구였다. 실제로도 지켜 주기만 한다면.
우리는 감사실로 갔다. 복도마다 칼같이 줄을 맞춘 의자, 정교하게 새겨진 경고문, 물 한 잔 없는 대기실이 있었다.
[규정을 준수하는 시민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문구를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워할 이유를 만들어 놓고 저런 걸 써 붙이면 무섭다는 걸 모르나.”
아르웬이 내 팔꿈치를 쿡 찔렀다.
“조용히 하세요.”
“네.”
조사실 안에서는 더 황당한 일이 기다렸다.
에델이 거대한 회색 장부를 펼쳤다. 표지에는 ‘천계 전력청 관리 정상성’이라 적혀 있었다.
“우선 이 장부에 따르면, 세계수는 건강합니다.”
“누가 작성했습니까?”
“천계 전력청입니다.”
“어떤 검사로요?”
“정기 서면 점검입니다.”
“실제 뿌리에는 가보셨습니까?”
“우리 부서의 권한 밖입니다.”
나는 장부의 마지막 점검일을 확인했다. 사백 년 전 날짜였다. 그 아래부터는 매년 같은 문구가 복사돼 있었다.
[이상 없음.]
[이상 없음.]
[이상 없음.]
“이건 검사 결과가 아니라 기도문 아닌가요?”
에델이 펜을 멈췄다.
“진술에 유의하십시오.”
“정확히 말씀드리는 겁니다. 현장은 아무도 안 보고, 서류로만 건강하다고 하면요.”
아르웬이 세계수의 민원서 사본을 펼쳤다. 루루는 제삼 취수 장치의 추출량과 황동 인형의 공격 장면을 수정구슬로 틀었다. 나는 베르나 분지에서 본 아이의 상태와 0.03퍼센트 회수 경고를 설명했다.
나는 준비해 온 마지막 증거를 꺼냈다. 포그가 사백 년 동안 쓴 업무 수첩이었다.
“이건 개인 기록이라 공식 인장이 없습니다.”
에델이 말했다.
“그럼 읽을 필요도 없다는 뜻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법적 증거 능력은 제한됩니다.”
“그 사람은 담당 직원이 해고됐다는 통지도 못 받고 사백 년을 지켰습니다. 근무 기록을 내라고 해서 냈는데, 이제는 직인이 없어서 안 된다면 그 사백 년은 뭐가 됩니까?”
에델은 수첩의 첫 장을 펼쳤다. 벌레 먹은 글씨와 기름때가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당시 임금 지급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급 안 됐어요.”
“확인한 뒤에 말씀하십시오.”
에델은 작은 구슬을 눌렀다. 잠시 뒤 숫자가 나타났다.
[미지급 급여: 400년]
[미지급 사유: 근로자 존재 확인 불가]
“이렇게 존재 확인이 안 되는 사람을 사백 년 동안 문 앞에 세워 뒀어요.”
에델은 아주 천천히 수첩을 덮었다.
“그 사실이 맞다면 별도 조사 사항입니다.”
“별도 조사로만 끝나지 않게 해주세요.”
“저는 사실에 따라 판단합니다.”
“그럼 현장도 사실로 봐주세요. 보고서에는 없는 뿌리가 실제로 있잖아요.”
에델은 대답 대신 잠깐 머리를 숙였다. 나는 그가 처음으로 자기 손에 든 문서보다 문서 밖의 사람을 떠올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물론 그가 우리 편이 될 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상담원은 목소리가 부드럽다고 해서 계약 조건을 건너뛰어도 된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문을 두드릴 만큼의 틈은 생겼다.
에델의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기록하는 속도는 조금씩 느려졌다.
“현재 자료만으로는 불법을 확정할 수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정식 현장 검증을 요청합니다.”
“신청 자격은 원천 소유주에게만 있습니다.”
“원천 소유주가 누구죠?”
“세계수 아르보라입니다.”
“제가 그분 대리인입니다.”
나는 접수번호 000과 재난 대리인 인장을 내밀었다.
에델이 처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것은…… 원천 직접 위임 인장?”
“예. 나무가 직접 찍었어요.”
“원천은 대리인을 지정할 수 없습니다. 목소리가 없으니까요.”
“목소리를 누가 지웠는데요?”
침묵이 흘렀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전력청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서류 첫 장에는 ‘원천 발언권 제한’이라는 작은 문구가 있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감사관님, 만약 감사 대상이 자신의 불법을 가리는 증거를 관리하고 있다면 감사 절차는 어떻게 됩니까?”
“별도 증거 제출 절차를 개시해야 합니다.”
“좋습니다. 그 절차를 개시해 주세요.”
“제출 장소는 천계 원본 보관소입니다.”
“직접 가면 되겠네요.”
루루가 내 소매를 잡았다.
“시온 님, 천계에 올라가시려고요?”
“왜, 직원 출입 통로 있어?”
에델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있습니다. 다만 통상적인 방문자는 이용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통상적이지 않죠. 피감사자잖아요.”
내 말이 끝나자 에델의 얼굴에 아주 짧은 경련이 지나갔다. 억지로 웃음을 참은 것 같기도 했다.
잠시 뒤 그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반대 증거 제출에 따른 동행 허가]
[방문지: 천계 기록 반송국]
[제출 기한: 24시간]
“좋아요.”
나는 서명란에 이름을 적었다.
“그럼 내일부터 출장이군요.”
“한 가지 더.”
에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력청 실무 책임자가 이 사안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제출 시간보다 한 발 먼저 도착할 겁니다.”
“누군데요?”
“본부장 벨리안.”
그가 창밖을 보았다.
“그리고 그분은 민원을 반송하는 일을 아주 잘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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