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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63화
PAYLUA ORIGINAL · 제63화

63화. 누가 편지를 열었는지부터 확인하시죠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3,323자

오프라인 책장
번호표 1번을 받은 기분은 묘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낭만적인 감상이 아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선착순으로 책임자가 된 기분이었다. “시온 님, 1번이네요! 축하해요!” “고마워. 상품으로 야근을 줄 것 같구나.” 루루는 축하가 왜 욕처럼 들리는지 고민하는 얼굴이 됐다. 보르는 방문 번호를 확인하더니 검은 천을 걷지 않고 옆의 장부부터 펼쳤다. 낡은 종이에서 구름 가루가 퍼졌다. 그는 내게 깃펜 하나를 건넸다. “서명하게. 단, 방문을 인정한다는 뜻이지 보관물 열람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닐세.” “설명을 그렇게 정확히 해 주시는 분은 처음입니다.” “옛날에 그 차이를 설명하지 않았다가 큰일이 났거든.” 나는 서명했다. 아르웬은 입회인으로, 니아와 테른은 각각 공명·설비 점검자로 기록했다. 루루는 제일 아래에 ‘과자 담당’이라고 적었다가 아르웬에게 지워졌다. “담당 업무는 민원 접수예요.” “과자를 접수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안 됩니다.” 나는 루루의 머리를 토닥였다. 불쌍한 녀석. 세상엔 사실대로 적으면 안 되는 직무가 있는 법이다. 보르는 보류 사유 목록을 보여 주었다. 수신인 부재 창구에는 몇백 년 전에 사라진 왕국의 주소가 쌓여 있었다. 발신인 보류 요청 창구에는 스스로 보내기를 포기한 고백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미안하다’라는 단어 하나만 적힌 봉투도 있었다. “그건 돌려보내면 안 됩니까?” 루루가 물었다. “발신자가 다시 원하지 않으면 그대로 있어야지.” 보르가 대답했다. “우편이란 전달하는 일이지만, 때로는 전달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원칙이다. 문제는 저 검은 창구가 그 원칙과 정확히 반대되는 곳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때 수신인 부재 창구에서 초록색 봉투 하나가 폴짝 뛰어올랐다. [수신인: 사과나무 밑집 할머니] [배달 실패 사유: 주소지 소멸] 봉투는 내 발끝까지 굴러왔다. 루루가 주우려 하자 보르가 손을 들어 막았다. “배달 실패한 봉투도 보관인의 관할이네. 당사자의 뜻을 확인하지 않고 손님에게 건네면 안 돼.” “하지만 저 편지는 너무 외로워 보이는데요?” “그래 보여도 주인은 따로 있지.” 나는 무릎을 굽혀 봉투를 바라봤다. 겉면에는 작은 사과가 그려져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볼 수 없었다. 이곳에는 이런 식으로 수백 년을 기다리는 문장이 수없이 쌓여 있었다. “주소지가 사라졌으면 어떻게 합니까?” 보르는 창구 아래 숨겨진 작은 저울을 보여 주었다. “발신자가 반송을 원하면 돌려주고, 전달 대상을 다시 지정하면 새 주소로 보내네. 양쪽 모두 확인되지 않으면 그냥 보호하지. 급하다고 해서 우리가 받는 사람을 지어내지는 않네.” 나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늘 미뤄 놓은 것을 나쁜 일처럼 취급하지만, 때로는 기다리는 것도 제대로 된 업무였다. 루루가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사과나무 할머니가 꼭 편지를 받으면 좋겠어요.” “응. 다만 할머니가 정말 받고 싶은지 먼저 확인할 방법이 생긴다면 좋겠지.” 우리는 봉투를 열지 않은 채 겉면 기록의 통계만 요청했다. 바깥에 새겨진 우편 마법이 분류 숫자를 읽었다. [수신인 부재: 3,902건] [발신인 자발 보류: 1,104건] [관리자 강제 보류: 26,009건] [기타 확인 필요: 8건] “강제 보류가 이만 육천 건이라고요?” “현재 이 구역에서 분류된 수치일세. 제0 회선에서 본 팔만 사천 건과는 다른 범위지.” 보르의 설명은 꼭 필요했다. 숫자가 비슷해도 같은 물건이라는 보장은 없다. 나는 각각의 출처와 집계 시점을 장부에 써 넣었다. “강제 보류라는 건 발신자의 동의 없이 막았다는 뜻입니까?” “여기 기록상으로는 그렇네. 하지만 일부는 긴급 보호 명령으로 묶였을 수도 있어. 자세한 확인 없이 모두 불법이라고 단정하면 곤란하지.” 나는 속으로 웃었다. 보르 같은 분만 고객센터에 열 명 있으면 내 야근이 절반은 줄어들 텐데. “그럼 누가 강제로 보류했는지 경로만 확인할 수 있습니까? 내용은 보지 않겠습니다.” 보르는 잠시 망설이더니 검은 천 아래의 봉인대를 가리켰다. “보류의 원인 코드까지는 열람할 수 있을세. 다만 수동 증명기가 고장 나서 바깥 확인만 가능하네.” 테른이 증명기 이음새를 조사했다. 아무리 놀랄 일이 많아도 기술자의 눈은 평온했다. “고장이라기보다는 입력선이 차단됐군요. 누가 운송 장부와 결재 장부를 서로 못 만나게 해 놨소.” “복원할 수 있나요?” “가능하겠지만 지금 손대면 봉인 훼손이 됩니다.” 아르웬이 즉시 말했다. “허가 없이 연결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제일 바깥 창구의 자동 표시를 살폈다. 항목마다 같은 문구가 있었다. [보류 사유: 질문 해결 완료] 이상한 점은 아무 질문도 수취인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질문을 전달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결했다고 기록할 수 있죠?” 루루가 손을 들었다. “제가 알아요! 질문을 없앴으니까요!” “그렇지. 그런데 실제로 없어진 게 아니니까 이렇게 창고에 남아 있는 거지.” 아르웬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결이 아니라 기록상 종결로 보입니다.” 그 순간 창구에서 덜컹 소리가 났다. 검은 천이 살짝 부풀었다. 그 아래에서 가늘고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는 해결됐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루루가 흠칫했다. “봉투가 말을 해요!” “내가 들었어.” 나는 뒤로 물러나 목소리를 향해 말했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신지, 어떤 내용인지 더 묻지 않겠습니다. 원하실 때 별도 접수를 해 주세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럼 정말…… 안 물어보시나요?’ “네. 원하지 않으시면요.” 검은 천 아래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보르가 놀란 얼굴로 나를 봤다. “보통 사람들은 저 말을 들으면 봉투부터 뜯지.” “전직 상담원입니다.” 내가 말했다. “전화 받는 사람이 상대의 집 주소부터 알아내면 경찰을 부르는 게 맞거든요.” 그런데 돌아서려는 순간 증명기 바깥쪽에 작고 선명한 숫자가 솟아올랐다. [민원 020 관련 운송 이력] [최초 보류 요청: 17년 전] [최근 재확인 요청: 어제] [재확인 요청 경로: 발신인 본인]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공개 발신자는 적어도 어제 직접 요청했다. 누군가 오래된 편지를 멋대로 흔든 게 아니다. “보르 님.” “왜 그러나?” “이 요청의 답신 방법을 알려 주세요. 이름은 몰라도 괜찮습니다.”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가능하겠군. 보내는 사람에게 먼저 선택권을 돌려줄 수 있으니.” 드디어 마음에 드는 일이 하나 생겼다. 민원인이 누구인지 알아내기 전에, 민원인에게 대답할 길부터 만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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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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