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음 날 정확히 아홉 시에 출근했다.
이세계에 온 뒤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늦잠을 잤다는 뜻이 아니다. 아무것도 폭발하지 않은 아침에 제 발로 사무실 문을 열었다는 뜻이다.
창가에는 밤새 내린 비가 은빛으로 맺혀 있었다. 세계수의 굵은 줄기에서 뻗은 다리에는 출근하는 엘프와 바람 정령들이 오갔고, 아래로는 구름 대신 마을의 굴뚝 연기가 흘렀다. 나무가 너무 커서 구름도 길을 비켜 간다는 건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웠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커피를 찾았다.
“시온 님! 좋은 아침이에요!”
루루가 내 머리 위에서 거꾸로 매달렸다. 이 녀석은 기분이 좋으면 중력을 무시한다.
“좋은 아침. 커피 있어?”
“있어요!”
“고맙다.”
“마셨어요!”
“너는 왜 내 커피를 마셔?”
“시온 님 대신 각성해 두려고요!”
좋다. 그 각성한 정신으로 야근을 대신해 주면 아주 훌륭한 복지 제도가 되겠지.
나는 민원 장부를 펼쳤다.
[신규 민원 020]
[접수 경로: 미전달 민원 보관 구역]
[요청: 오래전 접수한 질문을 누가 보류했는지 밝혀 주세요.]
[접수 시각: 어제 19시 12분]
[발신자: 비공개]
어제와 똑같았다. 딱 하나만 제외하면.
[민원 경과 시간: 17년 1일]
“루루.”
“네?”
“이거 날짜가 왜 이래?”
루루는 장부에 코를 갖다 댔다. 작은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더니 환하게 웃었다.
“민원이 오래됐나 봐요!”
“어제 들어온 게?”
“어제도 오래된 민원이었나 보죠!”
맞는 말인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나는 원본 접수 시각과 현재 회선 수신 시각이 다른 항목인지 확인했다. 두 값이 한 칸에 덮여 표시되고 있었다.
‘오래 묵은 민원’이라는 비유를 시스템이 너무 성실하게 구현한 모양이다.
아르웬 소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늘 그렇듯 머리칼 한 올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분은 세계수가 넘어져도 먼저 가운의 주름부터 바로잡을 것 같다.
“오늘은 조용하군요.”
“그 말씀은 하지 마세요. 저주 같습니다.”
“무슨 뜻이죠?”
“전 직장 상사가 오늘은 전화가 없다고 말하면 다섯 분 안에 서버가 터졌습니다.”
“근거 없는 미신은 업무 보고서에 쓰지 마세요.”
나는 민원 020을 내밀었다. 그녀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미전달 민원 보관 구역이라…… 현행 기관 목록에는 없습니다.”
“파리스가 어젯밤 위치를 찾았어요. 천계 중앙 기록국 바깥쪽 구름 지대에 있습니다.”
“지도에 없는 장소는 허가 없이 진입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출장 허가 부탁드립니다.”
아르웬은 내가 준비한 종이를 보고 잠깐 말을 잃었다.
[출장 목적: 질문이 길을 잃은 이유 조사]
[교통수단: 미정]
[숙박: 가능하면 없음]
[비상 비용: 실제 발생액 청구]
“이 마지막 문장은 뭡니까?”
“살아 돌아왔을 때 정산할 돈입니다.”
“살아 돌아오지 못하면요?”
“그 경우에는 인사팀과 협의하시죠.”
아르웬은 눈을 감았다. 이렇게 평범한 농담으로도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다니, 나한테도 재능이 있군.
잠시 뒤 파리스의 수정 통신이 연결됐다. 중앙 기록국 기록관인 그는 늘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들고 있는 사람처럼 말을 골랐다.
“해당 구역은 정식 시설이 아니라 반송된 질문들의 임시 보관 경로로 분류됩니다. 공간 자체가 이동하지는 않습니다만, 접근 주소가 오래전에 회수됐습니다.”
“회수된 주소로는 어떻게 갑니까?”
“우편 안내인이 아직 한 명 남아 있다고 합니다.”
“열일곱 해 동안?”
“정확히는 열일곱 해 동안 업무 종료 확인을 받지 못한 분입니다.”
세상에. 드디어 나보다 퇴근을 못 한 사람을 발견했다.
“그분 성함은요?”
“보르. 다만 한 가지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곳의 민원은 전부 공개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닙니다. 발신자 정보는 그분의 동의 없이 확인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민원이 비공개로 왔다면 그걸 지켜야죠.”
아르웬이 내 서류를 다시 보았다.
“현장 조사에 한해 조건부로 승인하겠습니다. 보관물 개봉 금지, 발신자 신원 추적 금지, 현장 설비 조작 금지. 입회자는 저와 니아, 기술 담당 테른입니다.”
“루루는요?”
“당연히 동행합니다. 현장 접수 담당이니까요.”
루루는 감격한 표정으로 날아올랐다.
“저도 이제 정식 출장인가요?”
“그래. 과자도 정식으로 가져가.”
“세 봉지요?”
“두 봉지.”
“출장이 아니라 유배예요!”
밖에서 드래곤 로딘의 통신이 요란하게 울렸다.
“인간! 하늘로 올라간다며? 내 등을 빌려주마!”
“지난번에는 착륙할 때 회관 지붕이 날아갔잖아요.”
“바람이 강했다!”
“그날 무풍이었어요.”
“내가 만들었지!”
의외로 솔직하다.
나는 로딘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하고 파리스에게 우편 안내인의 연락 주소를 받아 적었다. 주소는 놀랍게도 길지 않았다.
[수취인에게 전달되지 못한 문장 하나를 지참할 것.]
“문장 하나요?”
파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문장이 입구가 됩니다.”
마침 책상 위에는 어제 받은 민원 020이 있었다. 나는 사본을 한 장 떼어 주머니에 넣었다.
오래전 접수한 질문을 누가 보류했는지 밝혀 달라.
좋아. 이제 물으러 가 보자.
그런데 가방을 메려는 순간 장부에 글자가 하나 더 떠올랐다.
[수신 확인: 미완료]
[보류 사유: 질문자에게 답하지 않을 권한이 부여되지 않음]
나는 눈을 좁혔다.
질문자에게 대답할 권한이 아니라, 답하지 않을 권한이 없다고?
이 회사는 어딘가 크게 잘못됐다. 어쩌면 이번 출장의 목적지는 천계가 아니라 이 세계의 근로기준법일지도 모르겠다.
제61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