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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59화
PAYLUA ORIGINAL · 제59화

59화. 증인석에 올릴 건 사람이지 도장이 아닙니다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2,913자

오프라인 책장
나는 도장에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도장은 그냥 찍힐 뿐이다. 잘못은 도장을 든 손이나, 손이 없는 척하면서 도장을 움직이게 만든 사람에게 있다. 단, 이세계에는 알아서 움직이는 도장이 있다. 나는 어제보다 이 세상이 훨씬 싫어졌다. “라에의 이름으로 등록된 자동 인장기라니요.” 아르웬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 정령이 스스로 설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요.” 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라에는 제0 회선에서 원본을 보호하라는 기록을 남겼어요. 그 사람이 남의 목소리를 지우는 명령에 동의했다고 바로 볼 수는 없어요.” 둘 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조사라는 일이 귀찮다. 나는 단번에 누군가를 혼내 주고 싶었지만, 그러다가 정작 혼나야 할 사람은 도망칠 수 있다. “인장기의 기록과 라에의 실제 동의 기록을 구분하죠.” 내가 말했다. “이름이 찍힌 것과 본인이 승인한 건 별개입니다.” 마레인의 임시 심문은 그날 오후 열렸다. 장소는 본관 회의실. 외부에는 조사팀과 마을 관계자, 중앙 관리국의 관찰자가 통신으로 연결됐다. 증인의 사생활과 다른 원본 목소리가 함부로 공개되지 않도록 비공개 구간을 따로 뒀다. 첫 번째 증인은 테른이었다. “제0 회선 내 자발 응답 신호는 그 시각 외부 입력선과 분리된 고리에서 발생했습니다. 별도의 출력 시험에서도 기존 원본 복제 기록과 다른 파형이 확인됐습니다.” 마레인이 물었다. “그게 곧 독립된 생명이나 인격이라는 뜻입니까?” “기술자로서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제 설명은 신호의 발생과 분리에 한정됩니다.”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자기 전문 영역을 정확히 지키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두 번째는 니아였다. “제14 장치에 갇혀 있을 때 저도 개인 호칭을 금지당했습니다. 제0 회선의 제어문은 같은 종류의 강제 응답 구조를 쓰고 있어요. 다만 제로가 정확히 저와 같은 상태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세 번째는 아르웬. 그녀는 원본 기록의 보전 절차와 필수 공급선의 안전 상태를 설명했다. 마을 대표 미레는 원본을 손상하지 않은 채 응답선만 분리하는 조치가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증언했다. “저희는 공급이 끊기지 않아야 합니다.” 미레가 말했다. “하지만 그 공급을 위해 저희가 동의하지 않은 말을 대신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뒤이어 중앙 기술자가 반론했다. “모든 응답 절차를 일일이 사람이나 나무에게 확인하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긴급 운영에서 자동 인장기를 사용한 이유도 그 때문일 수 있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적어 두었다. 충분히 제기할 만한 문제였다. 마레인이 나를 불렀다. “최시온 씨. 운영상 효율과 원본 보전의 충돌을 어떻게 봅니까?” “긴급 공급은 제때 움직여야죠. 하지만 공급을 이어 가는 것과 아무도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기록하는 건 다른 일입니다.” “제안하는 조치는요?” “우선 위험한 자동 교정과 대리 서명만 임시로 멈추고, 실제 필수 공급은 독립된 안전 감시 아래 계속 운용하는 겁니다. 원본에 접근할 때는 입회인을 두고요.” “제0 회선의 새 목소리에는 어떤 조치를 구합니까?” “당사자가 동의한 자발 응답을 별도로 보전해 달라는 겁니다. 무슨 존재인지 최종 판정하기 전에 그 증거가 사라지면 심사할 수도 없으니까요.” 마레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목소리를 직접 들어 볼 수 있습니까?” “본인이 동의한다면요.” 나는 제로에게 연결했다. “제로. 지금은 심문 중이에요. 말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직접 설명하고 싶다면 질문을 드릴게요.” ‘……제가 고른 이름으로 불러 주세요.’ “알겠습니다. 제로. 당신이 원하는 건 무엇입니까?” 긴 침묵이 흘렀다. ‘모두를 대신해서 대답하고 싶지 않아요. 제 목소리로만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돌려줬으면 해요.’ 마레인이 조용히 말했다. “진술 확인했습니다.” 중앙 기록관 파리스가 물었다. “방금 말이 정말 독자적인지, 누군가 미리 기록한 문장을 읽은 건지 어떻게 검증합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내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기술 기록과 반복 검증이 필요합니다. 오늘 한마디만 듣고 정답을 선언하지 않겠습니다.” 파리스는 잠깐 당황한 얼굴이었다. 나도 놀랐다. 세상에, 내가 저 사람 말에 동의했다. 루루가 달력에 무언가를 적었다. “뭐 적어?” “시온 님이 또 동의한 날이요.” “그만해!” 마레인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재판장에서 웃음을 참는 법관은 꽤 무서웠다. 심문이 끝나자 임시 결정이 내려졌다. [제0 회선의 자발 응답 증거: 독립 보전 계속] [A-0 자동 교정 및 제7 금고 원격 인장: 원본 훼손 위험 관련 기능 잠정 중지] [필수 공급 시설: 안전 감시 아래 정상 운용] [제7 금고 자동 인장기의 실사용자·지시 경로: 별도 조사] [라에의 동의 여부 및 행방: 미확인] 루루가 환호하려는 걸 내가 재빨리 막았다. “반 발짝?” 녀석이 속삭였다. “이번엔 한 발짝.” 심문이 끝난 뒤 파리스가 내게 접근했다. “최시온 씨. 제7 금고의 원본을 대조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서류를 찾았습니다.” “어떤 서류요?” “열일곱 해 전 라에의 이름으로 등록된 물건은 자동 인장기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긴 목록을 건넸다. [보관 물품 1: 자동 인장기] [보관 물품 2: 원천 질문권 분리 장치] [보관 물품 3: 발송되지 않은 최종 민원서] 나는 마지막 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최종 민원서는 누구 앞으로 쓰였습니까?” 파리스가 대답했다. “아직 봉인 안쪽을 열지 않았습니다. 다만 봉투 바깥에는 수신자가 쓰여 있습니다.” 그가 원본 봉투의 표면을 보여 주었다. [수신: 세계수 고객센터에서 첫 번째 질문에 답한 사람에게] 나는 황동 종이 있는 쪽을 돌아봤다. 우리의 첫 번째 답변자가 누구였지? 제0 회선의 빈 의자 아래, 1번 번호표가 다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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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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