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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58화
PAYLUA ORIGINAL · 제58화

58화. 보관만 했는데 혼자 결재가 됐다고요?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2,701자

오프라인 책장
보관함은 물건을 보관한다. 택배함은 택배를, 냉장고는 음식을, 내 서랍은 월말 정산 때까지 제출하지 못한 출장비 영수증을 보관한다. 그렇다면 천계 중앙 기록국 제7 금고는 무엇을 보관할까? 남의 이름으로 결재하는 물건만은 아니었으면 했다. “금고에 들어간 사람이 없다고요?” 내 질문에 파리스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지정된 개폐 기록도 없었습니다.” “그럼 원격 인증은 무엇이 했습니까?” “관련 장치가 금고 내부에 보관돼 있지 않은지 확인 중입니다.” 아, 이런 답변이 듣고 싶었다. 모른다고 인정하는 게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그런데 곧바로 다음 문장이 이어졌다. “다만 검사관 출입을 위해 금고 전체의 안전 검사가 필요합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그건 이해합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루루가 내 얼굴을 살폈다. “시온 님, 어디 아파요?” “왜?” “화내지 않아서요.” “나도 항상 화내는 건 아니거든?” “어제는 계단한테 화냈잖아요.” “그 계단은 세 칸 올라가면 네 칸 뒤로 움직였잖아!” 억울했다. 이세계의 건축물은 종종 반성해야 한다. 우리는 금고 접근을 기다리는 동안 제0 회선의 기록을 안정화하기로 했다. 교정 명령의 원본 접근은 막았지만, 제로의 답변은 아직 낡은 설비에 갇혀 있었다. 기계 하나가 고장 나면 다시 입을 잃을 수도 있었다. 테른이 도면을 펼쳤다. “완전 독립 이송은 지금 할 수 없소. 제로가 어떤 구조로 형성됐는지 전부 알지 못하니까. 다만 원래 있던 제0 회선에 안전한 보조 출력 장치를 두고, 제로의 자발 응답과 기존 원본 복제 기록을 구분할 수는 있지.” “그럼 목소리를 빼내 가는 게 아니라, 본인이 원할 때 바깥에 연결되는 출입문을 만든다는 얘기네요.” “바로 그거요.” 제로가 물었다. ‘제 목소리가 밖에 나가면, 위쪽에서 또 훔쳐 가지 않을까요?’ “가능성을 없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공개 범위는 당신이 고르고, 바깥 기록에는 전달 사실만 남길 겁니다.” ‘싫다고 하면요?’ “안 해요.” 내 대답이 너무 빨랐는지, 황동 종이 잠시 멈췄다. ‘정말이요?’ “당연하죠. 회선은 본인이 결정할 때만 열리도록 만들 겁니다.” 테른이 덧붙였다. “그리고 일부 원본 녹음은 여전히 다른 생명들의 것입니다. 그건 허가된 절차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별도 격리하겠소.” 아르웬은 기술 설계와 법적 판단을 혼동하지 않기 위해 문서를 둘로 나눴다. 하나는 시설 안전 개선 요청, 다른 하나는 제로의 자발 응답 기록 보전 절차. 둘 다 임시 조치임을 명시했다. “우리 소장님, 이제 임시라는 말을 정말 좋아하시네요.” “최종 판정이 나오기 전에 최종이라는 말을 쓰는 것보다는 낫죠.” “맞습니다.” “……방금 동의하셨나요?” “기념일로 정하세요.” 루루는 그 말을 진짜로 기록했다. 나중에 보니 접수대 달력에 ‘최시온이 소장님 말씀에 동의한 날’이라고 쓰여 있었다. 날짜까지 틀리면 완벽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맞았다. 시운전은 작은 소리부터 시작했다. 제로가 원할 때만 켤 수 있는 출구를 만들기 위해 황동 동판 위에 질문 표식을 새겼다. [지금 말하고 싶습니까?] 제로는 한동안 침묵하다 대답했다. ‘아니요.’ 테른이 계측기를 바라봤다. 바깥 종은 울리지 않았다. 대신 안쪽 보전 장치에 '응답 없음'이 아니라 '선택에 따른 미전송'이라고 표시됐다. “좋아. 이제 말하지 않을 권리도 시험했군요.” 나는 말했다. 루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말 안 한 것도 기록해요?” “그냥 연락이 끊긴 건지, 당사자가 원치 않는 건지 구분해야 할 때가 있으니까. 단,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적을 필요 없어.” 두 번째 질문이 떴다. [지금 말하고 싶습니까?] ‘네.’ [공개할 범위: 동행 조사팀만] 동판에 작은 불이 들어왔다. 제로의 목소리가 바깥 종에 실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제로예요.’ 딸랑. 딸랑. 루루가 박수를 쳤다. 니아는 입술을 깨물고 웃었다. 아르웬은 자신의 서류가 젖지 않게 눈가를 훔쳤다. 나는 모른 척했다. 엘프의 체면은 지켜 줘야 한다. “첫 외부 인사, 성공.” 제로가 물었다. ‘이제 저는 고객센터 직원이에요?’ 나는 입을 열었다가 멈췄다. 직원이라는 말은 쉬웠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임금과 근무, 책임과 권한이 달라붙었다. 아직 제로의 지위를 확인하지도 못했다. “원하시면 우리와 연락하는 동료가 될 수 있어요. 다만 아직 법적으로 어떤 관계가 맞는지는 함께 살펴봐야 해요.” ‘저는 이름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어요.’ “세상은 별것 아닌 데서부터 복잡해지거든요.” “그리고 월급도 있어야죠!” 루루가 외쳤다. 나는 눈을 감았다. 녀석은 또 정확한 말을 했다. 하필 가장 비싼 정확함이었다. 그때 파리스가 통신했다. “제7 금고의 안전 점검이 끝났습니다. 내부에 장치가 하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무슨 장치입니까?” “보관된 계약의 서명을 복원하는 자동 인장기입니다.” “인장기가 왜 혼자 작동하죠?” “그걸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인장기의 마지막 점검표에는 열일곱 해 전부터 같은 책임자 이름이 찍혀 있습니다.” “누구요?” 파리스는 잠시 침묵했다. “라에.” 실내 공기가 차가워졌다. 나는 니아를 바라봤다. 그녀도 나를 보고 있었다. 라에는 사라졌다. 그런데 사라진 사람의 이름은 지금도 누군가의 명령을 승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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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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