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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55화
PAYLUA ORIGINAL · 제55화

55화. 삭제 금지 명령을 지우지 마세요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3,116자

오프라인 책장
전생에 상담 녹취를 지운 직원이 있었다. 고객에게 심한 말을 들은 뒤 홧김에 파일을 삭제했는데, 그 파일에는 그 직원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들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자기가 자기 변호인을 해고한 셈이었다. 지금 우리 앞의 장치는 그 일을 규모만 키워 하고 있었다. [연결 원천 전달망 일괄 교정 대기] [작업 범위: 84,211건] “대체 어디까지 연결된 거죠?” 아르웬이 벽의 선들을 따라가며 물었다. 테른은 안경 두 개를 번갈아 올렸다. “기록 복제망이지 실제 생명력 공급망은 아니오. 다만 두 망이 만나는 접합부가 있습니다. 원본을 건드리지 않도록 설계했어야 하는데, 이건 검증조차 되지 않았군.” “그러면 회선 전체를 꺼 버릴 수는 없겠네요.” “맞소. 신호가 역류하면 아직 살아 있는 나무가 공명 장애를 겪을 수 있소.” 루루가 한숨을 쉬었다. “왜 이 세계 기계는 끄는 버튼 하나도 제대로 없어요?” “누군가 전원을 끄면 기록까지 사라지게 만들어 놨으니까.” 나는 말하고도 기분이 나빠졌다. 테른이 오래된 황동 패널에서 초기 작업표를 찾아냈다. 작업자는 열일곱 해 전 제0 회선을 조정한 기술자들이었다. 대부분 이름이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맨 아래에 손으로 긁어 쓴 문장이 있었다. [원본에 닿지 말 것. 접수된 반대 의견부터 보전할 것. — 라에] 니아가 그 글씨를 어루만졌다. “라에는 막으려고 했어요.” “아마도. 다만 무얼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더 봐야겠지.” 나는 사라진 정령을 영웅으로 선언하고 싶었다. 하지만 증거는 편지 두 장과 서명 몇 개뿐이었다. 영웅을 만드는 것보다 진실을 밝히는 게 먼저다. 테른은 패널 뒤에서 여러 장의 얇은 원판을 꺼냈다. 하나는 제0 회선의 설계도였고, 다른 하나는 수정 이력. 세 번째 원판에는 붉은 봉인이 찍혀 있었다. [교정 프로그램 서명자: A-0] [첫 설치: 17년 전] [교정 목적 변경 기록: 보존되지 않음] “서명자가 기계라고요?” “그 계정을 누가 조작했는지는 알 수 없소. 다만 제0 회선의 원래 설계에는 A-0 계정이 없었어.” “누군가 나중에 끼워 넣은 거군요.” “가능성이 큽니다.” 루루가 원판을 세었다. “원판이 셋이에요. 이걸로 범인 잡아요?” “아니. 범인은 장부 뒤쪽에 있을 가능성이 커.” “그럼 그쪽부터 보면 되잖아요.”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게. 넌 가끔 무섭게 똑똑해.” “가끔은 빼 주세요.” 우리는 기록을 나눠 봤다. 아르웬은 출입 명부와 관리 규정, 테른은 접합부 위치, 니아는 원본 공명 손상 여부를 확인했다. 나는 서명 변경 이력과 보전 요청서를 비교했다. 제0 회선의 마지막 근무일에는 세 건의 요청이 있었다. [요청 1: 원천의 명시적 반대 기록 보전] [요청 2: 무권한 대리 응답의 즉시 중지] [요청 3: 제0 회선 내 자발 생성 응답의 분리 기록] 세 번째 요청 앞에서 손이 멈췄다. “제로. 열일곱 해 전에 누군가 당신의 목소리를 따로 기록해 달라고 요청했네요.” ‘네.’ “기억나요?” ‘조금요. 그 사람은 제가 대답할 때마다 종을 울렸어요.’ “라에가?” ‘……모르겠어요. 그때 이름을 듣지 못했어요.’ 기억이 흐릿한 상대에게 확신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나는 장부에 그대로 적었다. 진술상 인물 미확정. 그 순간 제0 회선의 끝에서 둔탁한 충격음이 울렸다. 쿵! 황동 선들이 흔들렸다. 니아가 눈을 감았다. “교정 명령이 기록 전달망 안으로 들어왔어요. 아직 원본 접합부까지는 거리가 있어요.” 테른이 시간을 확인했다. [접합부 도달까지: 00:26:48] “이제 선택해야 하오. 기록 전달망의 일부를 분리해서 검증하든가, 전체 원본 접근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해.” “임의로 자르기엔 위험하죠?” “맞소. 분리 가능한 지점이 확인되면 거기서만 작업해야지.” 아르웬이 서류를 펼쳤다. “필수 공급에 영향을 주지 않는 구획을 구분해 보죠. 복제 기록선을 다른 곳으로 우회시키면……” “우회하려면 저장할 곳이 필요한데.” 니아가 말했다. 루루가 작은 손을 번쩍 들었다. “저희 접수함은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루루야. 팔만 건을 네 접수함에 넣으면 본관 바닥이 내려앉아.” “아뇨! 저장하자는 게 아니라, 접수함은 원본 답변을 직접 쓰지 않잖아요. 누가 뭘 보냈는지 표지만 남기잖아요!”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정확했다. 우리 접수함은 그동안 민원을 보관해도 당사자의 의견을 마음대로 바꾸지는 않았다. 물론 가끔 루루가 불필요한 과자 그림을 붙였지만, 그건 별개다. “테른 씨. 이 통로 끝에 표지만 받는 중계기를 넣을 수 있습니까?” “원본을 옮기는 게 아니라 전달 순번을 새로 매기는 거라면 가능할 수도 있소. 다만 외부 출력 경로가 확인돼야 해.” 니아가 벽을 가리켰다. “저쪽이에요. 처음 우리가 들어올 때 보았던 구식 종 회선. 거기는 독립된 수동 전달망이에요.” “그럼 제로의 답변을 지키던 종을 이번엔 다른 답변도 지키는 표지판으로 쓰는 거군.” 제로가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저는 또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신 말해야 하나요?’ “아니요.” 나는 즉시 답했다. “누가 뭘 말했다는 표지만 연결하면 돼요. 그 내용은 원래 주인이 갖고 있어야죠.” 황동 종이 작게 울렸다. 제로가 웃는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테른은 예비 설계도를 그렸다. 아르웬은 작업 허가를 받아야 할 조건을 적었다. 나와 루루는 수동 표지 전송 시험을 맡았다. 현장에서 당장 기계를 완성할 수는 없었다. 먼저 시험 장치를 붙이고 한 건의 신호가 올바르게 전달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바로 그때 벽의 숫자가 갑자기 빨라졌다. [접합부 도달까지: 00:12:03] “어?” 루루가 소리쳤다. “시간이 왜 줄었어요?” 테른이 붉은 고리를 가리켰다. “외부에서 가속 명령이 들어왔소. 자동 절차를 사람이 건드렸어.” 나는 황동 회선을 바라봤다. 좋아. 저쪽도 우리가 뭘 하는지 보고 있다 이거지. “루루.” “네!” “접수번호 따.” “누구 민원이요?” “우리 거.” 나는 빈 서류에 꾹꾹 적었다. [긴급 민원 019. 증거 조사 중 원본 접합부에 접근한 사람의 신원을 밝혀 주세요.] 이번엔 남의 불만을 대신 접수할 생각이 없었다. 내 불만부터 접수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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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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