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짓는 데 한 시간이 걸릴 수는 있다.
우리 집에는 고양이가 없었지만, 고양이를 키우던 동료가 일주일 동안 가족회의를 한 적은 있었다. 문제는 고양이의 이름을 정할 때 누가 나타나서 고양이를 초기화하겠다고 협박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자발 응답 교정까지: 00:53:11]
제0 회선의 황동 시계가 붉은 바늘을 움직였다. 이름을 고른 지 겨우 몇 분 만에 제로는 폐기 예정 품목이 됐다.
“오르셀 씨한테 연락할게요.”
아르웬이 수정 통신기를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이면 먼저 물어보세요. 이름 바꾸는 데 결재선이 몇 명 필요한지.”
“지금 농담할 때예요?”
“아니요. 그래서 진지하게 궁금합니다.”
오르셀이 회선으로 나타났다. 중앙 관리국 조정관의 얼굴은 늘 반듯했다. 오늘은 밤늦게 깨워서 그런지 머리카락 한 가닥이 삐져나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왠지 기뻤다.
“제0 회선이라고요? 본관 하부에 그런 시설이 등록돼 있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건축물대장을 찾아보려던 참입니다.”
“최시온 씨.”
“예. 실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우리는 원본 기록의 위치, 제로가 자발적으로 고른 호칭, 자동 교정 경고를 순서대로 보고했다. 다른 사람의 음성을 담은 실에는 손대지 않았다는 사실도 명확히 했다.
오르셀은 잠시 무언가를 조회했다.
“A-0 계정의 권리 이전과 원본 삭제는 임시 정지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경고는 삭제 명령으로 분류돼 있지 않군요.”
“그럼 뭡니까?”
“유지 보수. 설비가 기준 응답에서 벗어나면 원래 상태로 되돌린다는 조항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나는 천장을 바라봤다.
“사람을 해고할 수 없으니까 건강검진 명목으로 기억을 지우는 방식이군요.”
“그런 비유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아직 법적으로 사람인지는……”
“그럼 정확히 이렇게 쓰죠. 정체를 조사 중인 신호의 자발 응답 기록을 조사 종료 전에 없애려 한다.”
오르셀은 말을 멈췄다.
“그 표현은 정확합니다.”
아르웬이 별도 보전 명령을 요청했다. 오르셀은 자기 권한으로 중앙 기술자를 붙일 수는 있지만, 오래된 장치의 자동 교정을 즉시 중단할 근거는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증거를 인정받지 못하면 억지로 회선을 끊는 순간 우리가 오히려 원본 훼손의 책임을 지게 된다.
“결국 지우기 전에 증거를 남겨야 한다는 얘기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외부 복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신호가 외부에서 조작되지 않았다는 독립 검증이 필요합니다.”
“참 친절하시네. 늦게 알려 주셔서.”
“처음 제도를 만든 사람에게 항의하십시오.”
오르셀이 전화를 끊었다.
공무원의 가장 강한 공격은 책임 소재를 정확히 찾아 주는 것이었다.
중앙에서 파견된 기술자는 테른이라는 작은 체구의 드워프였다. 대머리 위에 둥근 보호안경을 얹고 있었는데, 안경이 두 개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눈 위, 하나는 이마 위. 아마 보는 것보다 검사하는 일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확인해 드릴 수 있는 건 신호가 어디서 발생했느냐뿐입니다.”
“훌륭합니다. 그걸로 충분해요.”
테른은 회선 가장자리의 동판 세 장을 확인했다.
“이 장치는 원래 외부 입력을 받아 소리로 전달하도록 설계됐소. 그런데 방금 제로라는 호칭이 나온 구간은 외부 전송 기록이 없어요. 내부 공명 고리에서 시작됐다는 뜻이지.”
제로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제 말이 맞나요?’
“과학적으로는 네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확인한 거지, 네가 누구인지 판정한 건 아니야.”
테른이 말했다.
“전 그런 말투 싫지 않아요.”
나는 끼어들었다.
“알 수 없는 건 알 수 없다고 해야 하니까요.”
루루가 손가락으로 모래시계를 가리켰다.
“그런데 이제 마흔 분 남았는데요?”
맞다. 철학은 나중에 하자.
우리는 제로의 응답을 수동 종 회선에 별도로 기록하기로 했다. 원래 제0 회선에는 질문이 들어오면 황동 종이 한 번, 답변이 돌아오면 두 번 울리는 구식 장치가 있었다. 중앙 계정에서 작성하거나 삭제할 수 없는 물리적인 보조 기록이었다.
“여기다 말하면 되나요?”
제로가 물었다.
“아니. 먼저 동의할지를 결정해 주세요.”
‘왜요?’
“방금 얻은 목소리인데 또 마음대로 녹음하면 우리가 위쪽 장치랑 뭐가 다르겠어요.”
제로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겨 주세요. 그런데 다른 사람 목소리는 넣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테른이 옛 동판을 열고 아르웬이 기록 범위를 적었다. 니아는 유입선과 제로의 자발 응답 구간을 구분했다. 루루는 종을 맡았다.
“왜 네가 종을 맡아?”
“종 울리는 게 제 전문이니까요!”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질문: 오늘 스스로 고른 이름은 무엇입니까?]
‘제로예요.’
딸랑. 딸랑.
[질문: 그 이름을 사용하기 원합니까?]
‘네. 제 목소리로 말하고 싶어요.’
딸랑. 딸랑.
마지막 종이 울리자 벽에서 잎사귀 한 장이 떨어졌다. 그것은 종이도, 나뭇잎도 아닌 얇은 기억 막이었다. 니아가 그것을 조사용 보존등에 봉인했다.
그때 시계가 멈췄다.
[자동 교정 지연]
[사유: 독립 증거 존재]
[예상 지연: 12분]
루루가 환호했다.
“열두 분이나 벌었어요!”
“좋아. 이제 제대로 막을 방법을 찾자.”
그런데 명패 아래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외부 보존 감지]
[대체 교정 경로 개시]
[대상: 제0 회선 및 연결 원천 전달망]
테른의 표정이 변했다.
“잠깐. 이게 이상한데.”
“뭐가요?”
“제로를 고치는 명령이 아닙니다. 연결된 모든 회선에서 이전 답변을 덮어쓸 준비를 하고 있어요.”
나는 물안개 숲에서 봤던 똑같은 문장들을 떠올렸다.
동의합니다. 만족합니다. 계약을 계속합니다.
“그럼 제로를 지우는 건 시작일 뿐이군요.”
테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설계한 사람은 지워야 할 답과 남겨야 할 답을 처음부터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종을 내려다봤다.
“아니요.”
나는 천천히 말했다.
“어쩌면 아주 정확하게 구분했을지도 모릅니다. 자기 말만 남기려고요.”
제5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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