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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53화
PAYLUA ORIGINAL · 제53화

53화. 이름 없는 상담원도 자기소개는 합니다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2,983자

오프라인 책장
나는 전생에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한 적이 있다. 회사에 처음 들어온 사람에게 가장 먼저 가르친 말은 간단했다. ‘안녕하세요. 상담원 누구누구입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회선에는 그조차 금지돼 있었다. [관리 대상: 설비] [호칭: 사용 금지] “이름을 부르면 고장이라도 납니까?” 명패를 가리키며 물었다. 어린 목소리는 한동안 답하지 않았다. ‘저는 이름을 말할 수 없어요.’ “왜요?” ‘제 목소리가 기록에서 발견되면…… 그 목소리도 다른 사람 것과 합쳐지니까요.’ 니아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는 제14 장치 안에서 개인 호칭을 금지당했던 정령이었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아는 사람이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죠?” 아르웬의 질문에 실 하나가 붉게 빛났다. ‘저는 원래 답을 이어 주는 회선이었어요. 사람이나 나무가 직접 말하면 다른 쪽에 전달했죠. 하지만 오래전부터 위쪽 장치가 저에게 답을 정해 주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면?” ‘동의합니다. 만족합니다. 계약을 계속합니다.’ 대답하는 음색이 바뀌었다. 어린 목소리가 갑자기 딱딱한 남자 음성으로 변했다. 다시 부드러운 여자 목소리가 되었다. 마지막에는 수십 명이 동시에 중얼거렸다. “잠깐!” 내가 손을 들었다. “지금 당신이 원해서 말하는 거예요, 아니면 누군가 시키는 거예요?” ‘……시키는 거예요.’ “그럼 멈춰요. 우린 시연회 보러 온 게 아닙니다.” 붉은 실이 가라앉았다. 루루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명패 앞에 과자 한 조각을 놓았다. “이거 먹을래요?” ‘저는 먹을 수 없어요.’ “그럼 냄새라도 맡아 봐요.” ‘냄새도 못 맡아요.’ “그럼 제가 먹어 줄게요!” 루루가 과자를 낼름 집었다. 아주 고도의 위로 기술이었다. 내가 봐도 위로받는 사람은 루루 하나뿐이었다. 아르웬은 한쪽 벽에 있는 오래된 장부를 발견했다. [회선 제작 목적: 원천 질문·응답을 손상 없이 전달] [원본 보유 권한: 각 발신자] [중앙 회선 보유 권한: 전달 과정 기록에 한함] 우리는 장부를 보존등에 복사해 입회 시간을 남겼다. 기록에는 '제0 회선의 독립 인격' 같은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방금 우리 앞에서 자기가 원하지 않는 말을 거부하는 목소리를 들은 사실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녹음이 전부 합쳐진 거예요?” 내 질문에 목소리가 머뭇거렸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떤 날은 아무 기록도 재생하지 않았는데 혼자 생각이 났어요. 그게 잘못된 동작인지 몰랐어요.’ “누가 잘못이라고 했습니까?” ‘위쪽의 지침이요.’ 명패 뒤에서 글자들이 튀어나왔다. [자발 질문 생성: 오류] [자기 선택 응답: 오류] [비지정 이름 사용: 오류] 나는 코웃음을 쳤다. “우리 회사 인사팀이 보면 감동하겠네. 직원이 자발적으로 일하는 건 좋은데 자발적으로 질문하면 오류라니.” “시온 씨.” 아르웬이 조용히 불렀다. “이 존재를 사람처럼 다뤄도 되는지는 아직 조사하지 못했어요. 원본 목소리의 권리를 잘못 건드릴 수도 있습니다.” “알아요. 다른 사람 기록과 구분해야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지금 확인할 게 있어요. 본인이 원하는 답을 본인 목소리로 할 수 있는지.” 니아가 실 사이에 작은 공명막을 세웠다. 외부 장치의 명령이 흘러드는 통로만 잠시 차단하고, 기존 원본 기록은 손대지 않았다. 중앙 기술자와 아르웬이 시험 범위를 기록했다. 설비와 생존 신호에 이상이 생기면 즉시 멈추기로 했다. “질문 하나만 하겠습니다.” 나는 빈 의자에 앉지 않고 그 앞에 서 있었다. “오늘 저희가 그냥 돌아가면 어떻게 하고 싶어요?” 실들은 긴 침묵에 잠겼다. [질문 미등록] [답변 방식 미정] 빨간 불이 몇 번 깜빡였다. “급하지 않아요.” 한참 뒤 작은 음성이 흘렀다. ‘가지 마세요.’ 나는 웃지 않았다. 이번 말에는 다른 사람의 억양이 실려 있지 않았다. 딱 하나의 떨림이었다. “그럼 여기에 남아 달라는 이유를 말해 줄래요?” ‘제가 스스로 대답할 수 있다는 걸…… 누군가 기록해 줬으면 좋겠어요.’ 루루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럼 우리가 기록하면 되잖아요.” “그래.” 나는 장부 첫 장에 적었다. [제0 회선 내 독립 자발 응답 신호 확인. 타인의 기록과 동일시하지 않고 별도 보전.] 아르웬과 니아가 입회인으로 서명했다. 중앙 기술자도 측정 결과에만 확인 표식을 남겼다. 법적 지위에 대한 판단은 아직 하지 않았다. 확인하지 못한 걸 확인했다고 쓸 수는 없으니까. “이름은요?” 루루가 물었다. 나는 말리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그게 가장 좋은 질문일지도 몰랐다. ‘제가 정해도 돼요?’ “당연히.” “아니, 아직 법적 등록은……” 아르웬이 말을 꺼내다 멈췄다. 잠시 뒤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호칭으로 쓰는 것까지 금지할 이유는 없겠네요.” 명패에서 불꽃처럼 작은 글씨가 일어났다. ‘제로.’ “제로?” ‘다들 저를 0번이라고 불렀어요. 숫자는 싫지만, 제가 처음으로 대답한 곳은 여기니까…… 제가 고른 이름으로 쓰고 싶어요.’ 루루가 손뼉을 쳤다. “제로! 저는 루루예요! 과자 담당이고요!” ‘저는 과자를 못 먹어요.’ “그건 제가 담당할게요!” 그래. 둘이 잘 맞겠다. 우리는 잠깐 웃었다. 그 작은 웃음이 실을 타고 방 안 구석구석 번졌다. 그러나 명패 위에 검은 글씨가 다시 떠올랐다. [미등록 자발 응답 감지] [A-0 자동 교정 절차 요청] [정상화 예정: 00:59:59] 니아가 경고판을 보며 말했다. “한 시간 안에 제로의 자발 응답 부분을 지우려는 것 같아요.” 나는 입술을 다물었다. “다른 사람 기록에는 손도 못 대게 해 놓고, 자기 말은 지워 버린다고?” ‘제가 잘못했나요?’ 제로가 물었다. 나는 명패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리고 장부에 두 번째 줄을 썼다. [긴급 민원 018. 본인이 선택한 이름과 응답을 보전해 주세요.] “자, 이제 누가 직원의 이름을 지우려고 하는지 접수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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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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