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건이 끝났다고 느끼는 순간 가장 위험하다.
전생에는 월말 실적 보고가 그랬다. 보고서를 제출하고 집에 가려 하면 팀장이 말했다.
‘최 대리, 이것만 하나 더.’
그 '하나' 때문에 새벽을 세 번이나 본 적이 있다.
“시온 님! 오늘 드디어 동쪽 숲 민원에 진행 표시를 붙일 수 있어요!”
루루가 기뻐하며 뛰어왔다.
“종결은 아니지?”
“네! 원본 보전, 자동 대표 정지, 독립 판독 승인까지 표시했어요!”
“좋아. 이번엔 아주 정확하네.”
그녀는 가슴을 쭉 폈다.
“저도 이제 훌륭한 상담원이에요.”
“대단해. 로딘 님의 청구서도 처리해 줄래?”
“시온 님께 맡기겠습니다!”
아주 훌륭한 직원이었다. 하기 싫은 일을 맡지 않는 법을 벌써 배웠다.
물안개 숲을 떠나기 전, 우리는 마지막으로 저류실을 확인했다. 보조 판독선은 시험 운용을 시작했고, 원본의 열람은 독립된 입회 기록을 남기도록 바뀌었다. 수로 제어는 기존 설비로 유지하며, 현지 정령과 주민 대표, 중립 기술자가 각자 확인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했다.
모든 게 완벽하지는 않았다. 오래된 우물 두 개는 아직 정밀 수질 검사를 기다리고 있었고, 울보 나무의 뿌리에도 추가로 물을 보내야 했다. 원본 기록의 전부가 당장 반환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 목소리들을 마음대로 지우거나, 대신 '만족합니다'라고 말하게 만들 수는 없게 됐다.
미레가 마을 입구까지 배웅 나왔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직 다 해결된 건 아닙니다.”
“압니다. 하지만 전에는 어디에 말해야 할지도 몰랐어요.”
그녀는 내게 작은 병 하나를 건넸다. 안에는 맑은 물과 연한 푸른 빛이 들어 있었다.
“물안개 숲에서 처음으로 직접 보낸 답장입니다.”
“직접이요?”
“비리와 나무들이 함께 확인했어요. 누구 것도 대신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병을 들여다봤다.
‘우리가 말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요.’
짧은 문장이 떠올랐다.
루루는 코를 훌쩍였다.
“시온 님, 저 울어도 돼요?”
“울어. 대신 서류가 젖지 않게 해.”
“분위기를 꼭 그렇게 깨야 해요?”
“제가 안 깨면 로딘 님이 깨실 텐데.”
정말로 통신기가 울렸다.
“인간! 내 서쪽 협곡 현장 보고는 언제 칭찬해 줄 것이냐!”
정확하다. 나는 이제 저 용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로딘 님, 보고 잘 받았습니다. 다만 온천 광고 열한 장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어요.”
“왜 안 되느냐! 현장 사진에 들어가 있다!”
“광고판이 나무의 의견을 대신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 세계는 유머가 없군.”
“그 말은 거울 보시고 하세요.”
통신이 끊겼다. 아르웬은 미소를 숨기려다 실패했다.
우리는 세계수 본관으로 돌아갔다. 은은한 초록빛이 새어 나오는 건물은 여전히 거대한 뿌리 위에 매달려 있었다. 접수창 옆에는 분홍색 줄이 감긴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루루가 내 전용 휴식석이라고 붙여 놓은 것이었다.
나는 의자에 앉을 생각부터 했다.
그런데 책상 위에는 쪽지가 있었다.
[보류 업무: 제14 장치 보조 원장 A-0 통신 경로 확인]
[위치: 본관 하부 제0 접수 회선]
“또 지하실이야?”
내가 중얼거리자 아르웬이 지도를 펼쳤다.
“중앙에서 확인한 것은 본관 하부로 향한 통신 경로뿐입니다. 원본 발신자가 거기 있다는 뜻은 아닐 수 있어요.”
“그럼 중간 전달지일 수도 있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니아는 지도를 한참 살폈다.
“이 경로는 일반 접수함과 다르게 생겼어요. 세계수의 공명을 보관하는 옛 회선에요.”
루루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0 접수 회선? 우리 접수함은 1번부터 시작하는데.”
“맞아. 0번은 처음 들어.”
우리는 허가 범위와 안전 조사를 먼저 확인했다. 무슨 일이 생기든 무작정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그나마 지난 몇 달 동안 배운 교훈이었다.
내가 퇴근 도장을 찍으려고 할 때였다.
접수함에서 낯선 종이 울렸다.
딸랑.
이상했다. 루루의 종은 늘 세 번 울린다. 그건 접수가 끝났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번만 울리고 멈췄다.
“누가 눌렀어?”
“저 아니에요.”
아르웬도 고개를 저었다.
접수함 바닥의 오래된 칸 하나가 천천히 열렸다. 먼지가 잔뜩 쌓인 서랍이었다. 그 안에는 편지 한 장이 있었다.
봉투 앞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수신자: 최초 질문권자]
[보관 상태: 미전달]
[작성 시각: 17년 전]
나는 봉투를 들었다.
“내가 이 세계에 온 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열일곱 해 전에 나한테 편지를 썼지?”
니아가 조용히 설명했다.
“'최초 질문권자'는 이름이 아니라 역할일 수도 있어요. 누가 그 권한을 얻더라도 전달되도록 남긴 편지라면요.”
“그렇다면 내 개인 앞으로 온 건 아니겠네.”
아르웬이 봉투의 봉인 문양을 바라봤다.
“열어도 되는 조건을 먼저 확인하죠.”
봉투에는 작은 글씨가 있었다.
[원천 공명 위조 확인 시 개봉 허용]
[원본 대조 입회인 2인 필요]
우리는 세계수와 니아에게 각각 독립된 입회 확인을 요청했다. 세계수의 직접 신호가 약해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루루는 차를 끓였고, 아르웬은 보전 기록을 정리했다.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잠깐 눈을 감았다.
졸리다.
세계가 멸망할 위기에 있을 때보다, 이제 겨우 돌아온 평범한 야근이 더 졸렸다.
마침내 입회 확인이 끝났다.
봉투가 열리자 오래된 잎사귀 한 장이 나타났다. 표면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필체가 있었다. 첫 번째는 사백 년 전 원초 계약의 보존 문구였다.
[원천의 목소리를 들은 자는 소유하지 말고 질문하라.]
두 번째는 열일곱 해 전에 덧붙여진 문장이었다.
[제14 장치의 위임 서명이 복제될 경우, 제0 접수 회선의 최초 수신 기록을 확인할 것.]
“최초 수신 기록?”
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을 내린 사람의 이름보다, 그 명령을 처음 받은 장치의 기록이 더 오래 남아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러면 최초 발신자가 누군지 추적할 단서가 생기는 거네.”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안쪽 기록이 훼손됐다면 다르겠죠.”
나는 편지를 뒤집었다. 마지막에는 짧은 요청이 있었다.
[이 편지를 읽는 담당자에게]
[누군가 모든 원천의 목소리를 하나로 합치려 한다면 그 이유를 먼저 물으십시오.]
[기록 작성자: 라에]
비리의 친구.
열일곱 해 전 사라진 정령이 이곳에 편지를 남겼다.
“라에가 우리 고객센터까지 왔었다고?”
루루가 물었다.
“적어도 이 편지를 남긴 경로와 연결돼 있었겠지.”
나는 편지에 날짜를 적고 원본을 봉인했다. 다음 수사는 제0 접수 회선의 입구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안전 점검과 기록 입회인도 미리 정했다.
그때 저 멀리 세계수의 심장 쪽에서 느린 맥박 하나가 전해졌다.
[신규 민원 접수]
[발신자: 제0 접수 회선]
[내용: 제 목소리도 돌려주세요.]
루루가 내 팔을 꼭 붙잡았다.
“시온 님. 저기엔 나무가 없는데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더 확인해 봐야겠네.”
“퇴근은요?”
나는 퇴근 도장에 손을 뻗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일단 내일 아침 출장 신청서부터 쓰자.”
“내일요?”
“그래. 나도 사람인데 잠은 자야지.”
그때 접수함이 조용히 한 번 더 울렸다.
딸랑.
아래쪽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내일이면…… 또 늦어요.’
나는 멈춰 섰다.
한참 뒤, 비상 출동 신청서의 첫 줄을 썼다.
[긴급 접수번호 017]
[제0 접수 회선 생존 신호 확인 및 안전 조사]
그리고 마지막 줄을 굵게 적었다.
[퇴근 수당: 반드시 청구할 것.]
이세계에서 내일을 지키는 일이란, 생각보다 늘 야근에서 시작했다.
제5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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