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계 재판이 어렵다는 말은 맞다.
입구가 구름 위에 있어서가 아니다. 판결문을 읽으려면 엘프어, 정령어, 인간 공용어에 고대 계약 문자를 조금 알아야 한다. 난 그중 인간 공용어도 가끔 제대로 못 한다.
“시온 씨, 오늘은 진지하게 임해 주세요.”
아르웬이 재판부 임시 통신석 앞에서 말했다.
“전 언제나 진지했습니다.”
“지난번엔 재판 기록을 온천 광고 뒷면에 쓰셨잖아요.”
“종이가 없어서 그랬죠.”
“오늘은 종이를 준비했습니다.”
그녀가 두툼한 서류철 세 권을 내려놓았다.
“와. 저를 정말 못 믿으시는군요.”
“좋은 뜻으로요.”
어떤 좋은 뜻인지는 묻지 않았다.
재판은 물안개 숲 현장에서 원격으로 열렸다. 하류 식수와 저류실의 운영을 현장에서 확인하려는 취지였다. 마레인 재판관은 중앙 인수 명령의 효력, 원본의 보전, 자동 대표 지정 문제를 각각 분리해 심리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의 목적은 특정 기관을 처벌하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현재 주민과 원천 제공자의 안전을 확보하고, 유효한 의사 확인 방법을 정하는 데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합리적인 말이었다.
그리고 합리적인 말은 이 세계에서 늘 귀하다.
오르셀이 중앙 관리국의 입장을 설명했다.
“저류실은 수백 년에 걸쳐 확장한 공공 기반 시설입니다. 무단 이전이나 무리한 중단은 큰 위험이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내 대답에 그가 눈을 크게 떴다.
“그렇다고요?”
“네. 그래서 저희는 수로를 멈추지 않았고 앞으로도 안전 검증 없이 멈추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시설을 유지하는 것과 기록을 임의로 삭제하고 의사를 왜곡하는 건 다르죠.”
마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측의 쟁점을 기록합니다.”
법정에는 원본 계약의 '질문할 권리'에 관한 자료도 제출됐다. 서피가 남겨 준 보관 서고의 기록이었고, 에르윈이 그 권리를 소유권이 아닌 확인 절차로 정했다는 장면이 포함돼 있었다.
관리국 측 기록관이 질문했다.
“질문할 권리가 있다면 누구나 시설 운영을 막을 수 있다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질문했다고 모든 정산이 즉시 중단되면 피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다만 해당 의사 확인이 필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답을 받기 전까지 동의했다고 처리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매번 모두에게 물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맞아요. 그래서 대표권, 비상 공급, 의견을 아직 확인할 수 없는 경우를 각각 정해야죠. 지금처럼 침묵을 승인으로 자동 변경하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마레인은 조용히 기록을 정리하게 했다.
[질문의 존재만으로 모든 운용 정지 아님]
[원천 의사 확인과 필수 기반 시설 운영의 균형 필요]
나는 그 문구를 보고 마음이 놓였다. 누군가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다 다른 사람의 생활을 망가뜨리면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정확한 해결이란 불편하더라도 하나씩 확인하는 일이다.
첫 번째 증인은 다엔이었다. 그는 물레방아의 회전 기록과 우물 수위, 저류실 열람 시간대를 제출했다. 외부 명령이 들어왔을 때도 하류 공급을 유지하도록 안전 조치를 했다는 사실이 분명히 남았다.
두 번째는 미레였다.
“마을은 자동 대표를 뽑은 적이 없습니다. 안내망의 문구에도 동의한 적이 없어요.”
“마을 전체를 대표할 권한이 있습니까?”
관리국 측 기록관이 물었다.
“마을 회의를 통해 이 문제의 조사에 참여하도록 위임받았습니다. 다만 마을 모든 사람이 제 말에 동의한다고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감탄했다. 이곳에 와서 배운 사람이 나만은 아닌 모양이다.
그다음은 비리의 차례였다. 정령의 공명을 통역한 니아와 별도의 중립 판독사가 같은 원본을 독립적으로 확인했다.
‘우리 목소리는 우리한테 먼저 물어봐 주세요.’
기록판에 짧은 문장이 나타났다.
관리국 기록관이 물었다.
“그 정령이 물안개 숲 전체를 대표한다고 어떻게 확인합니까?”
나는 먼저 대답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비리의 말을 대신 끝내고 싶지 않았다.
니아가 비리의 추가 응답을 읽었다.
‘대표라고 한 적 없어요. 저는 저예요.’
마레인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좋습니다. 이 진술은 개인의 의사로서 기록합니다.”
루루는 나를 툭툭 쳤다.
“방금 정말 멋있었죠?”
“응. 우리보다 훨씬.”
공개가 허용된 원본 대조 자료가 제시되었다. 원본에는 식수 부족과 반대 의견이 담겨 있었는데, 자동응답에는 '현행 운영에 만족'이라고 쓰여 있었다. 검증자는 다른 기구 소속이었고, 기록 시각과 보관 경로가 서로 일치했다.
오르셀은 그 자료를 보고 오래 침묵했다.
“중앙은 원본 대조 업무가 정상 처리되는 것으로 보고받았습니다.”
“어디서 보고받으셨습니까?”
마레인이 묻자 그가 대답했다.
“제14 장치 보조 원장입니다.”
“그 원장은 승인 권한 자체에 문제가 제기된 상태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르셀은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이번 사건에 한해서는 그 보고의 정확성을 독립적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재판부는 즉시 인수 명령의 첨부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원본 보전과 하류 공급 보호 계획이 마련될 때까지 현장 운영 상태를 일방적으로 변경하지 못하도록 임시 결정을 내렸다. 대신 중앙의 기술 인력도 공동 안전 점검에 참여하도록 했다.
한쪽을 전부 쫓아내지도, 다른 쪽을 무조건 믿지도 않는 결정이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로딘이 통신석에서 외쳤다.
“내가 용암으로 저류실을 녹이면 하루 만에 끝날 일을!”
“로딘 님, 재판 기록에 폭파 예고가 남습니다.”
“폭파가 아니라 가열이다!”
“그게 더 무섭거든요.”
마레인은 잠깐 눈을 감았다. 판사는 참 고된 직업이다.
마지막 쟁점은 관리자의 '자동 사전 동의'였다. 마레인은 원본 서명값과 복제 서명값이 서로 구분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사자의 동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결정: A-0 계정의 신규 권리 이전·대표 지정·원본 삭제 권한 임시 정지]
[결정: 기록 원본 분리 보전 및 독립 판독 절차 승인]
[결정: 식수·기후 유지 장치 정상 운용, 외부 공동 점검]
루루가 내 옆에서 환호했다.
“이겼다!”
나는 웃다가 곧장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댔다.
“작게. 아직 할 일이 있어.”
“몇 개나요?”
나는 서류철을 세어 보았다.
“세 권만큼.”
“으아악.”
재판이 끝난 뒤 마레인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최시온 씨. 오늘 확인된 내용과 별개로 열일곱 해 전 명령의 실제 승인자를 특정해야 합니다. 그 전에는 원본 수정의 법적 책임을 정하기 어렵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A-0 계정에서 마지막으로 수신한 통신의 발신지를 확인했어요.”
그녀가 작은 지도 한 장을 띄웠다.
지도에는 세계수 뿌리망이 점처럼 빛나고 있었다. 한가운데에 익숙한 표시가 있었다.
[발신 경로: 세계수 고객센터 본관 하부]
나는 그걸 두 번 읽었다.
“저희 회사 지하라고요?”
“현재 확인된 것은 통신 경로입니다. 누가 보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렇겠죠.”
나는 이마를 문질렀다.
설마 사건의 시작과 끝이 내 사무실 아래에 있을 줄이야.
그런데 뭐, 이상할 건 없었다.
이세계의 고객센터는 처음부터 수상했으니까.
제4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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