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대표 선거 공고는 마을 광장에 붙어 있었다.
[물안개 숲 원천 대표 선출 결과]
[대표: 제0 저류실 공명 자동대리]
[선출률: 100%]
나는 한동안 공고를 바라봤다.
“정말 대단하네요. 투표를 하지 않았는데 투표율이 백 퍼센트라니.”
루루가 신나게 말했다.
“그러면 인기가 엄청 많은 분이네요!”
“아니. 아직 아무도 후보를 못 봤잖아.”
“그래서 불만도 없나 봐요!”
“그 불만을 넣는 창구가 고장 났다는 게 문제지.”
마을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빵집 주인, 수로 경비대, 치료소 직원, 물레방아 주인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나무들도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비리가 나뭇가지에 귀를 대면 바람과는 다른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미레는 공고를 떼려다가 손을 멈췄다.
“증거로 남겨야겠죠?”
“네. 사진처럼 기록하고, 원본은 보존하죠.”
다엔이 판을 하나 세워 공고가 붙었던 시각과 장소를 적었다. 아르웬은 원천 대표 선출 절차에 대한 이의 신청을 준비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기계가 대표라면, 기계 대신 누가 대답할 수 있죠?”
루루가 묻자 모두 침묵했다.
비리가 작은 물방울을 튀겼다.
‘기계가 대신 대답하는 걸 멈추려면, 다른 누가 대신 대답해야 하나요?’
“꼭 그렇지는 않아. 대표를 당장 못 뽑으면 아직 대표가 없다고 표시하면 되지.”
“대표가 없으면 계약은요?”
“기존 필수 공급은 안전하게 유지하되, 새 권리 이전이나 동의 처리는 보류해야겠지. 물론 구체적 법적 범위는 재판부에서 정해야 하고.”
오르셀은 마을 회의에 출석했다. 내게 악수를 청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직함으로 사람들을 누르지는 않았다.
“자동 선출은 중앙의 일반 절차가 아닙니다. 정식 확인이 필요합니다.”
“다행이군요.”
내가 답했다.
“전 조정관님이 후보로 나오실까 봐 걱정했거든요.”
“그럴 생각 없습니다.”
“득표율은 높으셨을 텐데요. 본인도 모르게 당선되실 수 있으니까.”
아르웬이 또 내 옆구리를 찔렀다. 이상하게 내 몸은 요즘 행정 교육보다 많은 폭력을 견디고 있었다.
광장 한쪽에서 빵집 주인이 작은 화덕을 열었다. 따뜻한 빵 냄새가 퍼지자 사람들의 표정이 잠깐 부드러워졌다. 치료소 직원은 약초차를 나눠 주었고, 다엔은 나무뿌리를 밟지 않도록 동그란 안내선을 그렸다.
“선거장치고는 너무 소박하네요.”
루루가 말했다.
“왕이 나오는 자리가 아니니까.”
“왜요? 나무의 왕을 뽑는 거 아니에요?”
“우선 왕이 필요한지도 모른다고 했잖아. 의견을 듣는 자리야.”
미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나무들이 봄마다 잔치를 열었다고 해요. 누구 하나가 대표를 정하는 게 아니라, 각 숲이 필요한 물을 이야기하는 날이었죠.”
“그날은 누가 사회를 봤는데요?”
“해마다 돌아가며 했답니다.”
“훌륭하네요. 저도 회의 사회는 돌아가며 봤으면 좋겠습니다.”
아르웬이 곧장 받아쳤다.
“다음 차례는 시온 씨입니다.”
“왜 이런 건 다 제 차례가 빨리 돌아옵니까?”
“지금까지 제가 계속 봤으니까요.”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늘도 민주주의는 무섭다.
우리는 뿌리 공명을 직접 확인할 임시 자리를 마련했다. 누가 의견을 낼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거부할 수 있는지, 말할 수 없는 어린 나무의 상태는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부터 의논했다.
비리는 첫 번째로 울보 나무의 떨림을 전했다. 얼마 전 치료소 앞에서 아이가 울보라고 불렀던 그 나무였다.
‘물길은 계속 흘렀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잎을 빼앗아 가지 않았으면 해요.’
“둘 다 기록해 주세요.”
내 말에 루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길 공급 유지와 생장력 추출 반대는 서로 모순되지 않았다. 같은 조건으로 다른 운영 방법을 찾으라는 요구였다.
두 번째는 오래된 버드나무였다.
‘겨울 동안은 기존 분배량을 유지하고 싶다. 서쪽에서 오는 따뜻한 물이 끊기면 뿌리가 얼어.’
“그 의견도 적어.”
“하지만 그러면 첫 번째 나무랑 다르잖아요?”
“같을 필요가 없지.”
세 번째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리가 기다렸지만 파형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반대인가요?”
루루가 묻자 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응답이 불충분해요.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고, 전달 경로가 약할 수도 있어요. 판단은 보류해야 합니다.”
“아.”
루루가 접수판에 큼직하게 적었다.
[미확인: 미확인]
나는 웃었다.
“멋진 문구네.”
“당연하죠. 오늘 배웠으니까요.”
그렇게 작은 모임이 저녁까지 이어졌다. 화려한 연설도, 왕관도 없었다. 그 대신 나무마다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걱정하는지 구분하는 표가 만들어졌다.
한편 마을 사람들 중에는 원본 공개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수로 조작에 연루됐다는 누명을 쓰거나, 과거에 했던 개인적인 말이 공개될까 걱정했다. 그들의 의견 역시 기록했다.
“숨기려는 사람이 범인일 수도 있잖아요?”
루루가 속삭였다.
“그럴 가능성은 있지. 하지만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이라고 하면 안 돼.”
“그럼 어떻게 해요?”
“필요한 범위에서 조사하고, 책임은 증거로 판단하는 거야.”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한때 화가 난 마음에 모든 자료를 광장에 풀어 버리고 싶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나 역시 실수할 수 있다. 그래서 절차가 필요한 거다.
저녁 무렵, 재판부의 임시 통지가 도착했다.
[물안개 숲 자동 대표 지정: 권한 효력 정지]
[독립 원천 의견 확인 절차 개시 승인]
[기존 필수 급수: 현장 안전 계획에 따라 유지]
마을 사람들 사이에 안도의 한숨이 흘렀다.
“우리가 이긴 거예요?”
루루가 물었다.
“오늘은 자동 대표가 우리 대신 결정하지 못하게 한 거야.”
“그게 승리 아니에요?”
“작은 승리. 아직 원본은 창고에 있고, 운영 방식도 정해야 해.”
비리가 마을 광장 끝의 나무에 손을 얹었다.
‘이제 우리 목소리가 바깥에 들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앞으로는 듣는 사람이 귀를 막지 못하게 하자.”
그 순간 나무의 뿌리 아래서 낯선 조각이 튀어나왔다. 오래된 금속 명패였다.
[지역 자율 판독실 — 열일곱 해 전 폐쇄]
명패 뒷면에는 누군가 손톱으로 긁은 문장이 있었다.
[라에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비리의 손이 떨렸다.
나도 말을 잃었다.
대표권 문제는 오늘 겨우 한 걸음 해결했다. 하지만 사라진 정령의 행방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제4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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