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열어 보면 안 될 창고가 있다.
전생에 다니던 회사의 반품 창고가 그랬다. 한여름에 냉장고가 고장 나서 들어온 요구르트 상자가 쌓여 있었다. 그걸 호기심에 열었던 대리는 사흘 동안 자기 인생을 반성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그보다 훨씬 더 열기 싫은 창고가 있었다.
[수로 제0 저류실]
[보관 품목: 공명 원본]
[시설 분류: 자동 응답 보조 설비]
“원본이 상품입니까?”
내 질문에 다엔이 난간을 두드렸다.
“저도 오늘 처음 봅니다. 근무할 때는 이 아래가 물고기 산란장이라고 들었어요.”
“물고기라면 거짓말은 안 하겠죠. 적어도 계약서에 서명하진 않으니까.”
“물고기도 동의 절차를 밟나요?”
루루가 물었다.
“그 질문은 나중에 하자. 오늘 일이 하나 더 늘어나면 내가 물고기가 될 것 같거든.”
저류실 입구는 물레방아 세 곳의 하류에 있었다. 돌계단은 오래된 수로 아래로 이어졌고, 바닥은 미끄러운 이끼로 뒤덮여 있었다. 한쪽에는 유리관이, 반대쪽에는 물의 압력을 조절하는 커다란 황동 바퀴가 있었다.
바스가 원격 통신판에 얼굴을 내밀었다.
“먼저 말하겠소. 왼쪽 바퀴는 절대로 돌리지 마시오.”
“안 돌립니다.”
“오른쪽 바퀴도 돌리지 마시오.”
“그럼 가운데는요?”
“그건 장식이오.”
“이 시설, 사람을 아주 교묘하게 유혹하네요.”
아르웬은 내 농담을 못 들은 척하며 표를 정리했다. 그녀의 표에는 저류실을 열 때 생길 위험이 일곱 가지 적혀 있었다. 하류 탁수, 정령 공명 손실, 자동 봉인, 기록 삭제, 압력 역류, 실종자 재발생.
마지막에는 '최시온의 독단 행동'이라고 쓰여 있었다.
“소장님, 마지막 항목이 왜 위험 평가표에 있습니까?”
“지난 사례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실증 자료가 아주 많겠네요.”
“그렇습니다.”
내가 말을 더하면 위험 항목이 하나 늘어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창고 앞에는 오래된 경고판이 달려 있었다. 위쪽에는 동그란 해와 흐르는 강이 새겨져 있었고, 아래에는 사람이 물살에 휩쓸리는 그림이 있었다. 그림 옆에는 '정지 시 하류 14개 마을 영향'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열네 마을이나요?”
내가 묻자 다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관으로 직접 연결된 건 여섯 마을이고, 나머지는 농사용 물을 여기서 나눠 써요. 이 일대에서는 물이 곧 길이고 식량이에요.”
“그럼 창고를 잘못 열면 사람들이 굶을 수도 있겠군.”
“곧바로 그렇진 않겠지만, 오래 멈추면 큰일입니다.”
나는 지도에 마을들을 하나씩 표시했다. 이름을 모르면 '주민들'이라는 말로 뭉뚱그리기 쉽다. 하지만 지도 위의 열네 점은 다 다른 곳이었다. 빵 굽는 냄새가 나는 마을도, 오래된 치료소가 있는 마을도 있었다.
루루가 표시를 보며 말했다.
“작은 점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함부로 버튼을 못 누르는 거야.”
“그럼 기계에 버튼을 없애면 되잖아요!”
“위급할 때는 버튼도 필요하지. 대신 누르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야 해.”
문득 내가 전생에 전화를 받으며 배웠던 말이 떠올랐다. 고객센터가 할 수 없는 약속은 해서는 안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이 시설을 반드시 오늘 열겠다고 약속할 수 없었다. 다만 가능한 한 안전하게 확인하겠다고 약속할 수는 있었다.
안전 계획부터 세웠다. 다엔이 마을 우물과 물레방아의 유량을 실시간으로 살피고, 미레가 하류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점검 시간을 공지하기로 했다. 작은 변화라도 생기면 작업을 중단한다. 니아는 공명 회선만 살피고, 아르웬은 기록의 봉인 상태를 확인한다. 나는 아무것도 만지지 않는다.
“마지막이 제일 어렵겠네요.”
루루의 말에 전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불신은 직장 내 괴롭힘 아닐까.
우리가 현장 보전 요청을 내자 천계 관리국은 '기술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자그마치 여섯 번째 같은 답변이었다.
나는 회신에 한 줄을 덧붙였다.
[검토 중인 기관은 원본을 삭제하지 말 것. 삭제 여부는 별도 기록으로 남길 것.]
그때 비리가 물방울 하나를 굴려 내 손등에 올렸다.
‘안쪽에 친구들이 있어요.’
“친구들이 갇혔다고?”
‘목소리만요. 몸은 숲에 있어요. 그런데 자기 목소리가 왜 다른 데서 들리는지 몰라요.’
원본을 빼앗기면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가.
나무는 숲에서 바람을 맞고 있는데, 나무가 했던 말은 지하 창고에 갇혀 있다. 밖에 나가는 건 누군가 만든 '만족합니다'뿐이다.
원본이 고장 난 게 아니었다. 원본을 아무도 못 듣게 막아 놓은 것이다.
이때 저류실의 봉인판이 켜졌다.
[열람 목적을 입력하십시오.]
나는 '민원 원본 확인'이라고 썼다.
[해당 목적은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실종 사건 수사 협조'라고 썼다.
[해당 목적은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설 안전 점검'이라고 쓰자 녹색 불빛이 들어왔다.
“참 쉽네요. 진실을 듣는 건 안 되는데 시설이 멀쩡한지 보는 건 된답니다.”
아르웬이 손을 뻗어 내 입력을 취소했다.
“그 경로로 들어가면 안전 점검 범위를 넘는 열람을 해서는 안 됩니다. 기록의 증거 능력이 흔들려요.”
“들어가서 우연히 보더라도요?”
“우연이라는 말을 미리 준비하지 마세요.”
나는 다시 정식 신청서를 꺼냈다. 현장 보전 범위, 열람 대상, 입회인, 원본 복제 금지와 보관 방식까지 적었다. 마레인 재판관의 임시 보전 명령이 유효하므로, 그 문구를 첨부하자 봉인판은 잠시 멈췄다.
[입회인 확인 중]
니아가 유리관에 손을 대었다. 미세한 파형이 번졌다.
“시온 님, 저 안쪽에서 같은 소리가 계속 들려요.”
“무슨 소리?”
니아가 내 귀 가까이 다가왔다.
“저희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아주 작았다. 그러나 수도관의 울림 속에서 수십 개의 음성이 겹쳐져 있었다.
입회인 확인이 끝났다. 봉인문이 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큼 열렸다.
그 사이로 흘러나온 것은 빛도 물도 아니었다.
‘도와주세요.’
‘그 말은 내가 한 적 없어요.’
‘아이들에게 물을 돌려주세요.’
목소리였다. 나무와 정령, 그리고 사람의 목소리까지 수없이 섞인, 오래된 기다림.
루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분들 전부 민원인이에요?”
“아직은 몰라. 누가 언제 어떤 말을 했는지 확인해야지.”
“그런데 저렇게 많이요?”
나는 창고 안쪽의 붉은 숫자를 보았다.
[보관 기록: 84,211건]
뒤이어 작은 문구 하나가 떠올랐다.
[일괄 정리 예정: 내일 새벽]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내일 새벽이라.
민원을 없애면 민원이 줄어든다는 발상이, 드디어 새벽 배송까지 시작한 모양이다.
제4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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