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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4화
PAYLUA ORIGINAL · 제4화

4화. 사백 년 묵은 고객 불만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4,156자

오프라인 책장
기록실 안에는 우는 사람이 없었다. 대신 벽 한가운데서 나무가 울고 있었다. 둥근 나이테마다 작은 물방울이 맺혔다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방 전체가 거대한 눈물샘 같았다. “이건 뭡니까?” 포그가 열쇠를 꽂은 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세계수가 흘린 기억이다. 잎이 떨어질 때마다 나이테에 남는 것들이지.” “어제 점심 메뉴도 저장돼요?” “뿌리가 흔들릴 만큼 중요한 기억만.” “그럼 제 점심은 저장될 리가 없군요.” 루루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시온 님, 지금 농담할 때예요?” “공포를 완화하는 직장인의 생존 기술이야.” 바깥에서 거대한 충돌음이 들렸다. 콰아앙! 로딘이 황동 인형을 후려치는 소리였다. “인간! 십 초 안에 끝내라!” “지금 열람 중이거든요!” “그럼 오 초다!” 상당히 불합리한 서비스 수준 협약이었다. 나는 나이테에 손을 댔다. 표면이 차갑더니 어느 순간 손가락이 나무 안으로 가라앉았다. 풍경이 바뀌었다.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몰려 있었고, 뿌리가 지나가는 골짜기마다 불길이 치솟았다. 그 가운데 은빛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가슴에는 번개 문장. 천계 전력청의 표식이었다. “대륙 동부의 결계가 무너졌다.” 갑옷을 입은 여자가 외쳤다. “세계수의 힘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사흘 안에 열두 도시가 사라진다!” 그 앞에 한 엘프가 서 있었다. 은발을 길게 늘어뜨린 중년 여성. 아르웬을 닮은 눈매였다. “임시 대여라면 동의하겠습니다. 하지만 나무의 생명을 담보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이지. 일시적인 위기 대응 계약이다.” 계약서가 펼쳐졌다. 마지막 칸에는 엘프의 서명이 또렷했다. [긴급 마력 대여 협약] [관리 대리인: 에르윈] [기간: 위기 해소 시까지] 갑자기 글자가 뒤집혔다. 같은 서명 위로 더 검은 문양이 겹쳤다. [자동 갱신 조항 적용] [추출 설비 영구 존속] [원천 제공자의 직접 이의 제기 권한 제한] “잠깐! 계약서가 바뀌잖아!” 나도 모르게 외쳤다. 영상 속 에르윈은 듣지 못했다. 천계 관리가 손가락을 튕기자 계약서가 하늘로 빨려 올라갔다. 기억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폭풍이 가시자 열두 도시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서로 껴안고 우는 사람들, 무너진 집 앞에서 살아 있는 가족을 찾는 사람들. 어린아이 하나가 에르윈에게 달려와 꽃다발을 건넸다. “고마워요, 엘프 누나!” 에르윈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녀도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봄이 오고 여름이 왔다. 수많은 나뭇잎이 자라고 졌다. 인간의 왕이 죽고 새로운 왕이 즉위했다. 도시는 더 커졌고 도로에는 마법등이 설치됐다. 검은 관은 여전히 뿌리에 박혀 있었다. 에르윈이 전력청 사무실로 찾아간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처음보다 훨씬 초췌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이제 설비를 철거하십시오.” 창구 뒤의 관리가 웃었다. “해지 신청은 원천 소유주가 직접 해야 합니다.” “세계수가 말할 수 없도록 입을 막은 건 당신들입니다.” “그 사항은 별도 문의로 분류됩니다.” “그 별도 문의는 어디로 해야 합니까?” “원천 소유주 본인 확인 이후 안내됩니다.” 영상 속 에르윈이 책상을 두드렸다. 관리자는 그녀에게 무례 행위 경고장을 발부했다. 다음 장면에서는 에르윈이 늙어 있었다. 엘프가 늙어 보일 만큼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녀는 작은 나무상자에 서류를 넣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서명한 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하루였는데, 왜 너에게는 끝없는 밤이 된 걸까.” 그녀의 눈물이 상자 위로 떨어졌다. 나는 그제야 이 계약이 어떤 모양의 악의인지 알았다. 처음부터 사람들을 구하지 않겠다는 악의가 아니라, 사람들을 구한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희생을 무기한 연장하는 악의였다. 눈앞의 기억 속에서는 환호와 울음이 동시에 들렸다. 둘 중 하나만 진실인 게 아니었다. 그 직후 검은 구름이 걷혔다. 열두 도시의 불이 꺼졌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런데 땅 아래 세계수의 뿌리가 한 겹 벗겨졌다. 주변에 있던 나이테가 미친 듯이 진동했다. 통증이었다. 사백 년 묵은 통증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시온 님!” 루루가 내 손을 잡아당겼다.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식은땀이 이마에서 흘러내렸다. “에르윈…….” 아르웬이 아주 작게 속삭였다. “아는 분입니까?” “제 할머니입니다.”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아르웬은 손끝으로 나이테를 쓸었다. 이곳에 내려온 뒤 처음으로 그녀가 규정 말고 다른 걸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릴 때 제게 계약은 누구를 지키기 위해 쓰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지키려고 시작한 일이었네요.” “그런데 결과가…….”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밖에서 또 충돌음이 울렸다. 황동 인형 하나가 문을 뚫고 들어왔다. 낫날이 아르웬을 향했다. “소장님, 엎드려요!” 나는 그녀를 밀쳤다. 낫은 책상 모서리를 베었다. 내 코앞에 부러진 나무 조각이 튀었다. 죽을 뻔했네. 그 순간에도 서류 파손 책임자가 누군지 생각한 내가 싫었다. “인간!” 로딘이 벽 밖에서 으르렁거렸다. “뭐 하고 있느냐!” “귀한 기록 보존 중입니다!” “목숨도 좀 보존해라!” 지극히 정당한 항의였다. 나는 황동 인형의 가슴판에 새겨진 문구를 보았다. [임시 오염 처리 대상: 민원서 번호 000 관련자] 우리를 왜 쫓는지 확실해졌다. 세계수의 민원이 접수된 사실 자체를 지우려는 거다. “루루, 저거 사진 찍을 수 있어?” “사진요?” “수정구슬에 그대로 남기는 거.” “가능해요. 근데 그걸 왜 지금……” “누가 우리를 죽이려 하는지 증거가 있어야지.” 루루는 수정구슬을 들어 올렸다. 인형이 낫을 치켜들었다. 나는 몸을 굴렸다. 뒤에서 아르웬의 얼음 화살이 날아가 인형의 무릎을 꿰뚫었다. 콰직! 인형이 쓰러진 사이 포그가 낡은 기록 상자를 가져왔다. “가져가라. 원본은 이곳에서 떠날 수 없지만, 열람 흔적은 옮길 수 있다.” 상자 안에는 나무껍질로 된 얇은 조각들이 있었다. 하나하나가 나이테 기억의 요약본이었다. 마지막 조각에는 이상한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원천 제공자 동의서 원본 위치: 제0 근부] [접근 권한: 소유주 또는 재난 대리인] “재난 대리인이라.” “그게 뭐죠?” 루루가 물었다. 나는 접수번호 000이 찍힌 잎을 꺼냈다. “이거, 나무가 직접 보냈지?” “네.” “그러면 나무에게 위임장을 받으면 되겠네.” 아르웬이 딱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세계수에게 서류를 쓰게 하겠다는 뜻인가요?” “세계수에게는 나뭇잎이 있잖아요. 종이는 남아돌겠네.” 그녀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동안, 나는 잎 뒷면에 글씨를 적었다. [본 민원에 대한 현장 조사와 원본 보존 권한을 최시온에게 위임하시겠습니까?] 잠시 후, 잎맥에 흐릿한 빛이 돌았다. [동의합니다.] 순간 상자 안의 조각들이 동시에 울렸다. 옹이들 사이로 하나의 문양이 떠올랐다. [재난 대리인 임시 등록] [유효기간: 27일] [권한: 제0 근부 기록 열람 신청 가능] “됐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소장님, 이거 보세요. 고객이 직접 권한을 줬어요.” “말도 안 돼…….” “인감은 나무가 찍었습니다.” 그 말에 아르웬이 입을 다물었다. 정말 내 직장 생활의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고객이 상담원을 지켜 주었다. 뒤늦게 지하 천장이 흔들렸다. 로딘이 인형들의 마지막 무리를 뭉개고 있는 모양이었다. “인간! 다 끝났으면 올라와라!” “갑니다!” 우리는 기록 상자를 껴안고 지상으로 향했다. 로딘은 자신의 온천 이야기를 다시 꺼내려 했으나, 내가 먼저 경비원 포그에게 말했다. “포그 씨. 사백 년 급여 미지급도 민원으로 넣어드릴게요.” 포그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이냐?” “물론입니다. 접수 안 해주면 제가 항의할 겁니다.” 포그가 오랜만에 웃었다. 웃을 때 몸에서 버섯 포자가 뿜어져 나와 우리 모두 재채기를 했다. 지상에 도착했을 때, 접수함에는 새로운 통지가 와 있었다. [천계 전력청 공문] [시설 무단 조사에 따른 정식 감사 예정] [감사관 도착까지: 48시간] 내가 통지를 읽자 루루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시온 님, 이제 어떻게 해요?” “우리도 자료를 준비해야지.” “감사받을 준비요?” “아니.” 나는 상자를 두드렸다. “감사하러 오는 사람에게 할 질문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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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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