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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37화
PAYLUA ORIGINAL · 제37화

37화. 자동응답을 고객 의견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3,396자

오프라인 책장
세상에는 듣기만 해도 화가 나는 목소리가 있다. '상담원 연결을 원하시면 1번을 눌러 주십시오.' 그런데 1번을 누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상담원 연결을 원하시면 1번을 눌러 주십시오.' 그걸 열두 번 듣고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성인이거나 전화기를 던질 돈이 없는 사람이다. “물안개 숲은 현재 상태에 만족합니다. 추가 조사를 원하지 않습니다.” 동쪽 통신판이 똑같은 문장을 네 번째 반복했다. 나는 수정판에 귀를 가까이 댔다. “이거 완벽하게 녹음이에요.” “어떻게 알아요?” 루루가 물었다. “두 번째 문장 끝에 숨소리처럼 들리는 딸깍 소리가 있어. 네 번 다 똑같은 위치야.” 니아가 원본 공명을 분리했다. 은빛 선이 위아래로 흔들렸지만 네 파형은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정말로 복제 신호네요.” “원천이 직접 남긴 기록입니까?” “아니요. 전달 회선에서 뿌리 신호를 글자로 바꾼 뒤 다시 내보냈어요. 원본 파형이 없어요.” “그러면 이건 숲의 동의가 아니라 통신망 안내문이군.” 나는 접수판에 빨간 글씨로 적었다. [동부 물안개 숲 의사 확인: 미완료] [자동응답 녹음: 당사자 확인 자료에서 제외] 아르웬이 그 밑에 문구를 덧붙였다. [별도 공명 채널을 통해 재확인 예정] 내가 그녀를 보자 아르웬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알아요. 규정이 부족하다고 해서 확인하지 않은 걸 확인했다고 쓸 수는 없죠.” “소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전 오늘 퇴근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뇨. 현장 조사 팀장으로 지정하겠습니다.” “……규정을 잘못 가르쳤군.” 모아가 보호등에서 손을 들었다. “동쪽 숲에 제 친구가 있어요. 물방울 정령인데 이름이 비리예요.” “연락할 수 있어?” “직접은 안 돼요. 하지만 정령들끼리 쓰는 물길 신호가 있어요. 아주 느리지만요.” “얼마나 느린데?” “바람 좋은 날엔 몇 시간, 바람 없는 날엔 하루요.” “정말 이세계 통신망답군.” 모아가 웃더니 작은 병에 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푸른 물결이 병 안에서 돌았다. “이거 수로에 흘려 보내면 비리가 알아볼 거예요.” “좋아. 다만 네가 무리하면 안 돼. 회복 중이잖아.” “이건 마법을 크게 쓴 게 아니라 친구한테 편지 쓰는 거예요.” 니아가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 “그것도 힘이 들면 그만해야 해.” 나는 둘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제14 장치에서 둘을 구한 뒤로, 그들에게 기계를 대신 움직이라는 말을 쉽게 하지 않게 됐다. 살아 있는 존재를 설비 부품처럼 취급했던 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으니까. 니아는 자동응답을 조금 더 분석했다. 같은 문장 안에 작은 숨표가 찍혀 있었다. 원본은 나무의 생장 리듬을 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어긋남이 생기는데, 이 안내망은 어긋남이 모두 지워져 있었다. “실시간으로 말을 번역하는 장치라기보다 이미 작성한 답안을 내보내는 장치에 가까워요.” “답안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볼 수 있어?” “출력 시각은 남아 있어요. 다만 원본 기록은 관리국으로 넘어가서 지금 여기서는 확인되지 않네요.” “그럼 자동응답이 거짓이라고 단정하기보다, 숲의 현재 의사를 확인한 증거가 아니라는 것부터 적자.” 아르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루루가 내 수첩을 보더니 눈을 반짝였다. “시온 님. 원래 고객센터에서는 통화가 끝나면 만족도 조사를 하죠?” “보통 그렇지.” “그럼 나무한테도 만족도 조사하면 되잖아요. 별 다섯 개!”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지. 말을 못 하는 나무에게 억지로 별점을 찍게 하면 또 다른 강요일 수 있잖아.” “그럼 왜 사람은 별점 눌러요?” “좋은 질문인데 지금 나한테 답하기엔 좀 아프다.” 전생의 회사에서 상담원이 웃으며 통화를 마쳤어도 고객 만족도 점수가 낮으면 월급에 영향이 있었다. 고객은 불만을 말하고 싶었는데 회사는 그 점수를 상담원 평가에 가져다 붙였다. 여기서는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숲이 말하지 못할 때는 말하지 못했다고 적으면 된다. 별점을 대신 눌러 줄 필요는 없다. 한편 북방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왔다. 세라였다. “시온 씨. 검사관들이 정산소 원장을 봉인했어요. 하지만 정산소는 저장고 검사를 허락하지 않겠대요.” “법관에게 거부 사실을 그대로 제출하세요. 겨울 필수 공급 기록은 우선 별도로 확보하고요.” “유안이 지금 열은 내렸어요. 아직 멀쩡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요.” “좋은 소식이에요. 치료사 말대로 천천히 지켜봐 주세요.”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시온 씨, 우리 숲 일이 아직 안 끝났는데 다른 데 가도 괜찮아요?” 갑자기 가슴이 찔렸다. 내가 떠나고 싶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서 서류 한 장을 더 붙드는 것보다 동쪽의 거짓 응답을 막는 편이 결국 북쪽에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세라 씨에게 일을 떠넘기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연락망은 계속 열어 둘게요. 저 없이 결정해야 하는 건 먼저 직접 판단해 주세요. 제가 대신 승인할 수 없는 권한이잖아요.” 세라는 잠시 침묵했다가 웃었다. “맞아요. 제가 숲의 대리인이죠. 그럼 제가 할 일을 할게요.” 통신이 끝나자 하르덴이 조용히 다가왔다. “동쪽에 가실 모양이군요.” “네. 원천 의사가 확인되지 않았으니까요.” “위험합니다. 물안개 숲은 기후 보전 시설과 연결돼 있어요. 설비를 잘못 건드리면 인근 마을의 식수가 끊길 수 있습니다.” “그런 위험은 저희도 압니다. 그래서 설비를 건드리기 전에 실제 공급량부터 확인할 겁니다.” 그가 한참 나를 살폈다. “당신은 왜 이렇게 남의 문제에 끼어듭니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나무가 자기 문제를 말할 수 없게 해 놓고 남의 문제라고 부르면 안 되죠.” 하르덴은 더 묻지 않았다. 떠나기 전 작은 패를 내밀었다. “현장 관리국 검사소의 출입번호입니다. 제 이름을 말씀하시면 통행은 편해질 겁니다.” “왜 돕습니까?” “원본 기록의 신뢰도는 나도 알고 싶으니까요.” 패에는 유효기간과 책임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적어도 앞뒤가 없는 부탁은 아니었다. 그날 밤 우리 팀은 동쪽으로 향하는 교역 수레를 탔다. 루루는 수레에서 내내 멀미했고, 아르웬은 마을별 기록을 정리했으며, 나는 운전석 옆에서 차가운 바람을 맞았다. 멀리 숲의 경계가 보일 즈음, 모아가 보냈던 물길 편지가 돌아왔다. 작은 병 속에서 세 방울의 물이 떨어졌다. 첫 방울은 맑았다. 둘째는 흐렸다. 셋째는 검었다. 니아의 얼굴이 굳었다. “비리의 신호예요.” “무슨 뜻인데?” 니아가 아주 천천히 읽었다. “여기는…… 목소리가 없고…… 누군가 우리 대신 대답하고 있어요.” 루루가 수레 창밖을 보았다. 새벽 안개가 멀리서부터 기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안개 안에서 낯익은 안내음이 울렸다. ‘물안개 숲은 현재 상태에 만족합니다.’ 이번에는 우리 눈앞의 공기 자체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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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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