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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34화
PAYLUA ORIGINAL · 제34화

34화. 서류는 압수해도 진실은 압수 못 합니다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3,425자

오프라인 책장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말 중 하나가 '저를 믿으셔도 됩니다'다. 믿을 만한 사람은 보통 그런 말을 할 시간이 없다. 자기가 뭘 했는지 보여 주기 바쁘니까. “관리국 특별 감독관 하르덴입니다.” 은빛 외투의 남자가 서고 계단 끝에 서서 다시 인사했다. 나는 그의 발밑부터 살폈다. 서고에 들어오려면 에르윈의 동전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는 문을 손도 대지 않고 통과했다. “출입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관리국의 긴급 시설 접근권으로요.” “출입 기록은 남기셨고요?” “당연하지요.” 서피가 천천히 안경을 고쳤다. “현재 등록된 입회자는 여섯 분뿐입니다. 감독관님의 이름은 없군요.” 하르덴은 서피를 보더니 웃었다. “기록 정령은 옛날 법을 좋아하는군요.” “옛날 법이든 새 법이든 신분증을 내지 않는 분은 싫어합니다.” 서피가 또박또박 답했다.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사백 년 혼자 근무한 정령이 사회생활을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상대를 가릴 줄 아는 것이다. 하르덴은 은색 패찰을 내밀었다. 정말 관리국 소속이었다. 다만 패찰 하단의 작은 글씨가 눈에 걸렸다. [긴급 수색 권한: 위험 시설에 한정] [민원 원본의 임의 반출 권한: 없음] “시설 위험 조사에는 협조하겠습니다. 문서 반출은 별도 명령이 필요하겠네요.” “여러분은 위험성을 모릅니다. 원본에 담긴 공명은 수백 년간 누적됐습니다. 무분별하게 개봉하면 뿌리망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그 위험 검토 자료는 있습니까?” “관리 기밀입니다.” 루루가 입술을 내밀었다. “왜 관리국 사람들은 맨날 그 소리만 해요?” “외우기 쉬운 말이라 그래.” 나는 하르덴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보안이 필요한 부분은 비공개 제출하시면 됩니다. 지금은 내용도 듣지 않았으니 즉시 위험하다고 판단할 근거가 없어요.” 그의 눈꼬리가 조금 내려갔다. “최시온 씨. 당신이 하는 일은 영웅 놀이가 아닙니다.” “알아요. 민원 처리입니다.” “세계의 원천 체계를 뒤집을 수도 있다고요.” “그것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밤새 기록을 모으고 있습니다.” 갑자기 로딘이 그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복도가 한꺼번에 어두워졌다. “은색 인간. 비켜라. 이 몸이 드디어 드래곤이 법을 배워 온 모습을 보여 주마.” “드래곤에게 법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런가? 그럼 불로…….” “잠깐!” 내가 용의 뿔을 붙잡았다. “로딘 님, 법을 배워 왔다는 말의 뒷부분이 왜 방화죠?” “증거를 없애려는 자를 막으려면…….” “증거를 불태우면 누가 이깁니까?” “음.” 로딘은 아주 깊게 고민했다. 생각하는 드래곤은 생각보다 무시무시했다. 눈알이 금화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아르웬이 앞으로 나섰다. “하르덴 감독관. 정식 시설 점검을 하시려면 도면과 봉인 외관을 제공하겠습니다. 하지만 원본을 넘길 수는 없습니다. 이미 감사관이 보전 신청을 접수했습니다.” “신청은 명령이 아니지요.” “맞습니다.” 그녀가 똑바로 그를 바라봤다. “그래서 저희도 명령이 나기 전까지는 내용을 개봉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조건을 읽는 동안 하르덴의 시선은 유리 상자만 쫓았다. 몇 번이나 주머니 속 패찰을 만지작거렸다. 그에게도 시간이 없는 모양이었다. “감독관님.” 내가 조용히 물었다. “정말로 기록을 폐기하면 안전해집니까?” “당장 원천망이 흔들릴 위험은 줄어들 수 있겠죠.” “하지만 사백 년 전에 있었던 일이 없어지지는 않겠죠.” “그렇습니다.” 처음으로 그가 명확하게 대답했다. “그럼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을 기록으로 남겨 주세요. 나중에 원본을 확인하고 판단하겠습니다.” 하르덴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더니 낡은 수첩을 하나 꺼냈다. “나는 열일곱 해 전 관리국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교육 자료에는 원천 의사 확인 절차를 너무 자주 진행하면 연결망이 불안정해진다고 적혀 있었지요. 그래서 다들 다시 묻지 않았습니다.” “직접 현장에서 봤습니까?” “아니요.” “위험하다고 적힌 기록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저도 모릅니다.” 그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남의 말만 믿고 살아 있는 나무의 말을 막았다. 그럴듯한 문장 하나가 사람을 나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잘 모르겠으면 같이 확인하죠.” “당신은 나를 믿습니까?” “아뇨. 기록을 믿습니다. 그게 감독관님에게도 공평할 겁니다.” 그는 수첩을 덮었다. 이상하게도 조금 안심한 얼굴이었다. 하르덴은 의외라는 얼굴이 됐다. 우리가 당장 원본을 열려고 달려들 거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때 유리 상자 위의 작은 저울이 기울었다. [외부 접근 시도 감지] [봉인 이중 잠금 자동 발동] 서피가 깜짝 놀랐다. “누군가 원격으로 상자를 회수하려 합니다!” “하르덴 씨?” 내 질문에 그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닙니다.” 거짓말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패찰에서 빛이 나지 않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공격 경로가 외부 회선이라는 뜻이었다. 바스가 문 쪽으로 달려갔다. “원격 회수선은 서고 바깥의 옛 설비에 물려 있소. 차단하려면 계단 아래 배전함을 열어야 하오.” “그럼 차단해요!” “차단하면 서고 환기까지 멈출 수 있소. 먼저 독립 공급을 연결해야 하오.” 정말 이 세계의 모든 위기는 끝에 전원 플러그가 달려 있었다. 나는 루루에게 지시했다. “서피 씨하고 입회 기록 남겨. 로딘 님, 문 지켜 주세요. 부수지 마시고.” “나는 왜 늘 부수지 말라는 말을 듣느냐?” “한 번만 아무것도 안 부수고 끝내 보세요.” “지독한 요구군.” 니아와 모아가 회선을 추적하는 동안 바스는 임시 축전석을 붙였다. 아르웬은 원본 상자의 공명 변화만 기록했다. 하르덴도 손을 내밀었다. “내 장비로 연결선 저항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기록 공개 조건으로요.” “좋습니다.” 그는 패찰의 측정 기능을 켰다. 이 사람은 수상하지만 위험을 막는 데는 진심인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했다. 나쁜 의도와 진짜 걱정은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을 수 있다. [원격 회수 요청 차단] [서고 환기 독립 공급 정상] 상자가 멈췄다. 바로 그때 에델의 답장이 내려왔다. [문서 000 원본 임시 보전 승인] [봉인 상태 유지 및 독립 입회하에 제한적 열람 허용] [관리기관의 무단 반출 금지] 하르덴의 얼굴이 굳었다. “빠르군요.” “급한 민원이라서요.” 나는 허락된 범위를 다시 읽었다. 허락된 건 원본 전체 공개가 아니라, 필요한 부분만 독립 입회 아래 확인하는 절차였다. “감독관님. 지금부터는 원본을 들을 수 있습니다. 같이 입회하시겠습니까?” 그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왜 내게 그 기회를 주지요?” “나중에 못 봤다고 하실까 봐요.” 서피가 장부를 펴고 씩 웃었다. “성함부터 적어 주세요. 방금 누락된 출입 기록도 함께요.” 그날 서고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아무래도 서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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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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