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센터에서 가장 무서운 문장은 '긴급 회의'가 아니다.
'잠깐 내려오세요'다.
그 말을 듣고 내려가면 대개 올라올 때 손에 업무가 세 배쯤 들려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정말 아래에서 누군가 부르고 있었다.
“저건 배관 소리가 아닙니다.”
바스가 바닥에 귀를 대고 말했다.
“어떤 배관이 똑똑똑 세 번 두드려요?”
“귀뚜라미가 살기도 하오.”
“귀뚜라미가 공문서 보관 위치를 알려 주지는 않겠죠.”
루루는 이미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있었다. 좁은 틈에 빛이 흘렀다.
“시온 님! 여기에 계단이 있어요!”
아르웬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럴 리 없어요. 관리청 도면에는 이 아래에 기초석만 있어요.”
“그래서 사백 년 동안 아무도 안 찾았겠죠. 허가받지 않은 층이니까.”
로딘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나라면 입구를 부수겠다.”
“부수면 입구인지 하수구인지도 모르고 떨어집니다.”
“드래곤은 떨어져도 날면 된다!”
“우리는 못 날아요.”
“아, 인간들은 불편하군.”
여러 종족을 한팀으로 묶으면 언제나 이런 문제가 생긴다. 날개 있는 쪽은 계단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루루가 건져 올린 건 작고 낡은 동전이었다. 앞면에는 나뭇잎과 펜이 교차한 그림이, 뒷면에는 손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민원인이 남긴 말은 관리자의 소유가 아니다.]
아르웬이 그 글씨를 보고 굳었다.
“할머니의 필체예요.”
“에르윈 님요?”
그녀가 끄덕였다. 사백 년 전 정비사들의 생명을 지키는 손잡이를 남긴 엘프. 아르웬의 할머니이자 오래된 계약을 추적하다 기록에서 사라진 사람.
“할머니가 왜 고객센터 바닥에 동전을 숨겼을까요?”
“그것보다 왜 이곳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는지가 중요하겠죠.”
나는 동전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바닥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우리가 서 있는 곳 앞에 작은 홈이 생겼다. 동전 크기였다.
아르웬이 나를 보았다.
“제가 넣겠습니다.”
“소장님 가족 물건이니까 그러세요. 다만 위험하면 바로 물러나고요.”
그녀가 동전을 홈에 끼웠다. 나무 바닥이 천천히 갈라졌고, 건물 아래로 오래된 나선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습한 나무 냄새 대신 마른 종이 냄새가 올라왔다.
계단은 생각보다 길었다. 열두 번째 계단쯤 내려왔을 때부터 벽의 무늬가 달라졌다. 오래된 민원 장부의 글씨가 층층이 새겨져 있었는데, 대부분은 결코 거창한 내용이 아니었다.
[북쪽 나뭇가지에 새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둥지를 옮기지 말아 주세요.]
[가뭄이 길어 물이 필요합니다. 우선 작은 풀들에게 주세요.]
[지난 겨울 눈사태 때 마을이 살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루루가 벽에 얼굴을 붙였다.
“이것도 민원이에요?”
“그렇겠지.”
“왜 답변이 없어요?”
“아직 안 달렸나 봐.”
그녀가 손끝으로 글씨를 만지자 아주 작은 빛이 하나씩 켜졌다. 오래 기다린 편지들이 누군가 찾아온 것을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
계단 중간에는 작은 나무 의자가 있었다. 한쪽 다리가 다른 것보다 짧아 종이뭉치가 받쳐져 있었다. 나는 무심코 종이를 뽑았다가 큰일 날 뻔했다. 의자가 기울어지며 아르웬이 넘어질 뻔했기 때문이다.
“최시온 씨!”
“죄송합니다. 왜 중요한 자료를 의자 밑에 넣어요?”
“그건 저한테 물으시면 안 되죠!”
나는 종이를 다시 끼워 넣었다. 그런데 종이 모서리에는 오래된 도장이 찍혀 있었다.
[원본 보관소 보조 출입 경로. 폐쇄 권고]
“여기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는 건 확실하네요.”
바스가 벽에 새겨진 톱니를 만져 보았다.
“이 설비는 최근까지 한 번씩 움직였소. 움직인 흔적이 있어.”
나는 어쩐지 우리보다 먼저 이 계단을 내려간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오래된 서고가 있다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그 서고를 아는 누군가가 아직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계단 끝에 문이 있었다.
[지하 0층. 최초 민원 보관소]
[운영시간: 민원이 존재하는 동안]
“퇴근 시간은요?”
루루가 물었다.
“없나 본데.”
“여기 취직 안 해서 다행이에요.”
“너 지금 거기 취직한 거나 마찬가지야.”
“그 사실은 방금 잊기로 했어요.”
문 앞에는 잉크 병만 한 정령 하나가 앉아 있었다. 머리는 책갈피처럼 길었고, 코에는 작은 안경이 걸려 있었다.
“예약하셨습니까?”
그가 물었다.
“문서 000을 확인하러 왔습니다.”
“예약하셨습니까?”
“여기 있는지도 몰랐는데 어떻게 예약해요?”
“예약 없는 방문은 원칙상 불가합니다.”
역시 세계 어디에나 같은 유형의 창구가 있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럼 오늘은 예약 접수부터 하겠습니다. 가장 빠른 시간이 언제죠?”
작은 정령이 뚱한 얼굴로 달력을 폈다.
“사백 년 전 목요일이 비어 있습니다.”
“지나갔잖아요.”
“방문자가 아무도 없어서 그대로 남겨 두었습니다.”
“아주 철저하신 분이네요.”
그는 그제야 안경을 올렸다.
“보관 정령 서피라고 합니다. 빈 시간에 예약을 넣으면 소급 처리는 되지만, 손님을 지금 들여보낼 권한은 없습니다.”
나는 실소가 나왔다. 사백 년 동안 혼자 있는 정령을 상대로 화를 내는 것도 양심에 걸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문서의 현재 담당자를 확인해 주세요.”
서피의 눈이 잎사귀에 닿았다. 표정이 바뀌었다.
“000번이 돌아왔군요.”
“돌아왔다고요?”
“기록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회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피는 문을 열었다. 안에는 어둠 대신 끝없는 서가가 있었다. 책장이 나무뿌리와 얽혀 있었고, 서류철마다 작은 별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먼지는 없었다. 누군가 아주 오랫동안 빠짐없이 닦은 흔적이 있었다.
정중앙의 유리 상자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문서 000. 본문 보관 중]
[원본 음성 봉인: 유지]
[개봉 통지 수신자: 최초 지정 관리자 및 현 관리인]
“본문이 없는데요?”
서피가 답했다.
“본문은 상자 속이 아니라 상자를 열 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입니다. 종이는 그 목소리를 옮겨 적은 복사본에 불과하지요.”
“그럼 누가 원본을 고쳤는지는 어떻게 알아요?”
“복사본의 글씨와 목소리를 대조하면 됩니다.”
니아가 보호등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목소리라면 제가 읽을 수 있어요. 원본 공명만 남아 있다면요.”
“다만 무단 개봉은 통지됩니다. 현 관리인이 곧장 봉인을 회수할 수도 있습니다.”
아르웬이 재빨리 말했다.
“보전 명령이 필요해요. 에델 감사관에게 먼저 연락하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용을 열기 전에 상자 상태만 검사할 수 있습니까? 나중에 누가 건드렸다고 하지 못하게.”
서피가 뜻밖에도 웃었다.
“할머니 에르윈도 그 질문을 했습니다.”
그는 서가 아래에서 작은 붉은 종이를 꺼냈다.
[봉인 외관 검사 및 관리 흔적 열람 가능]
[원본 음성 청취 불가]
나는 즉시 외관 검사를 신청했다. 모두의 이름으로 입회 기록을 남겼다. 바스는 상자 연결부를 확인했고, 아르웬은 봉인 도장을 스케치했다. 니아는 떨리는 손으로 주변의 공명을 읽었다.
확인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상자는 사백 년 동안 두 번 열렸다. 첫 번째는 에르윈이 봉인한 날. 두 번째는 열일곱 해 전이었다.
“최근이잖아요.”
루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가 열었지?”
서피가 이름표를 띄웠다.
[두 번째 접근자: 현 관리기관 대행 계정]
[열람 결과: 원본 음성 미청취]
[복사본 수정: 1회]
나는 서늘해졌다.
원본은 건드리지 못했지만, 복사본은 손댈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수정 항목은 볼 수 있습니까?”
“수정 전후의 글자 수만요.”
화면에 숫자가 떴다.
[삭제: 27자]
[삽입: 6자]
단어 여섯 개도 아니고 문자 여섯 개.
짧은 표현 하나로 수천만 생명의 권한이 바뀌었을 수 있다.
그때 천장의 종이 울렸다.
[개봉 사전 통지 접수]
[발신: 현 관리기관]
[문서 000 즉시 폐기 권고]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폐기 권고요? 아직 열지도 않았는데?”
서피는 종이를 살펴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저쪽은 원본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알게 된 모양입니다.”
나는 다시 유리 상자를 보았다.
누가 훔쳤는지 모르는 물건을 처음 찾은 사람에게, 도둑은 보통 이런 말을 한다.
그거 원래 쓸모없는 물건입니다.
버리세요.
나는 종이를 접었다.
“정중히 거절하죠. 고객이 직접 남긴 말은 고객한테 돌려줘야 하니까.”
제3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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