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소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환불이다.
그리고 사기꾼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거래 내역이다.
나는 예전 회사에서 그 사실을 배웠다. 이번에는 나무를 상대로 돈을 빼돌린 자들의 장부를 들여다보며 다시 확인했다.
“백색 온실로 자산 이전 요청이 들어왔어요!”
니아가 보호등 안에서 외쳤다.
숲 아래의 붉은 관이 갑자기 빨라졌다. 회수 명령은 정지됐지만, 이미 빼돌려 둔 생장점을 다른 계정으로 옮기려는 시도였다.
“법정 명령이 나왔는데도 가능한 거야?”
“새 회수는 막혔어요. 하지만 이전에 빠져나간 자산은 별도 저장고에 있어서, 그쪽이 아직 완전히 잠기지 않았어요.”
나는 머릿속으로 두 가지를 구분했다.
당장 숲에서 더 빼앗아 가는 것과, 이미 빼앗아 간 것을 숨기는 것.
둘 다 나쁘지만 막는 방법은 다르다.
“에델 씨, 계정 이전을 직접 멈출 수 있습니까?”
통신판이 열렸다. 에델은 평소보다 더 피곤한 얼굴이었다.
“긴급 보전 명령에 따라 대상 자산의 이동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느 계정이 분쟁 자산인지 특정해야 합니다.”
“북방 생장계정 B-400, 수취처 백색 온실. 이전 요청 시각과 원장 표식을 보내겠습니다.”
“증거 원본을 그대로 보내십시오.”
니아가 원장 그림자를 송신했다. 아르웬은 계정 번호를 다시 검증했고, 세라는 숲의 한시적 보호 대리인 자격으로 보전 요청에 서명했다.
[분쟁 자산 이동 제한 신청 접수]
하지만 아직 처리는 끝나지 않았다.
그때 리오트가 비웃듯 말했다.
“그 계정은 이미 다른 신탁과 섞여 있습니다. 어느 나무의 것인지 특정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원본 장부가 필요했던 겁니다.”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세라가 찾은 금빛 장부를 펼쳤다. 각 수목의 예치금에는 고유한 나이테 결이 찍혀 있었다. 사람의 지문처럼 완전히 같지는 않은 흔적이었다.
“니아, 지금 옮기려는 자산에 같은 결이 있는지 비교할 수 있어?”
“일부는요. 완전히 섞인 건 더 조사해야 하지만 방금 이동 요청에 포함된 표식은 대조할 수 있어요.”
보존등의 빛이 회전했다.
[수취 계정 표식 일치]
[루메르 수목 공동 예치금 일부 포함 확인]
에델이 즉시 봉인 명령을 내렸다.
[백색 온실 계정 내 식별된 분쟁 자산: 이동 정지]
[관련 접근 기록: 보존]
[임의 변경 시 법정 불복종 조사 대상]
숲 아래의 붉은 관이 느려졌다.
리오트의 얼굴이 처음으로 창백해졌다.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겨울을 앞두고 공급망이 흔들리면…….”
“그 걱정은 저도 합니다.”
나는 말했다.
“그래서 필요한 시설은 계속 공급하게 하고, 분쟁 자산을 멋대로 옮기는 것만 막는 겁니다. 걱정되시면 공급량부터 공개해 주세요.”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리오트와 직원들은 일단 채취관을 회수했다. 에델의 요청을 받은 독립 검사관들이 북방으로 오는 중이라고 했다. 리오트의 책임도 아직 법적으로 확정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가 증거를 임의로 가져가게 둘 수는 없었다.
세라는 무릎에 손을 얹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정말 끝난 건가요?”
“강제 회수는 사흘 동안 멈췄어요. 계정 일부도 지켰고요.”
“그 뒤에는?”
“본안 심문이 있어요. 계약의 유효성과 예치금의 소유권, 누가 자산을 옮겼는지를 조사해야 합니다.”
세라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그럼 아직 길게 싸워야 하네요.”
“네. 하지만 이제 우리만 주장하는 게 아니에요. 법정이 자료를 보존하라고 명령했으니까요.”
말을 마치자마자 루루가 달려왔다.
“시온 님! 유안이 깨어났대요!”
세라가 벌떡 일어났다.
우리는 치료소로 달려갔다. 유안은 침대에 앉아 있었고, 치료사가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기침은 여전히 남았지만 숨을 쉬는 속도는 전보다 안정돼 있었다.
“누나.”
소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밖에 나무 소리가 다시 들려.”
세라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응. 오늘은 조금 나아졌어.”
“정말?”
“응. 아주 조금.”
그녀는 과장해서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좋았다.
치료사가 내게 말했다.
“상태는 안정됐지만 회복에는 시간이 걸릴 겁니다. 원인은 추가 검사가 필요해요. 가루 노출은 계속 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리는 치료소 앞에 보습 천막을 설치했다. 우물 물을 낭비하지 않도록 주민들이 모아 둔 빗물을 먼저 사용했다. 아르웬은 약한 나무를 중심으로 관찰 일정을 만들었다. 세라는 새 대리인 권한으로 정산소가 설치한 무단 채취관의 현황을 신고했다.
로딘은 마을 아이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아이들이 로딘의 발톱 하나를 붙들고 낑낑대는 중이었다.
“내가 힘을 조금만 써도 너희는 전부 날아간다!”
“그럼 힘 쓰지 마!”
“으음. 그것도 전략이군.”
아이가 용에게 협상 기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멀리 떨어져 그 광경을 바라봤다. 숲은 여전히 하얗고 마른 곳이 많았다. 잎이 한꺼번에 돌아오는 기적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더는 모두가 손을 놓고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니아가 곁으로 다가왔다.
“시온 님. 제가 원장 기록을 하나 더 확인했어요.”
“새로운 회수 내역?”
“아니요. 400년 전에 루메르 숲이 생장력을 예치한 이유요.”
그녀가 보여 준 것은 아주 오래된 공명 기록이었다. 그 안에는 서명 대신 네 종류의 나무가 서로 뿌리를 맞댄 흔적이 있었다.
[북방 흉년 대비 공동 예치]
[수혜 대상: 인간 및 인접 생명 공동체]
[최종 보호 원칙: 원천 제공자의 생존 우선]
“이걸 누가 만들었어?”
“당시에는 서로 다른 네 숲의 대표가 합의한 것 같아요.”
“그럼 루메르만의 일이 아니겠네.”
“네. 다른 세 숲에도 같은 계약의 자취가 남아 있을 수 있어요.”
나는 나이테 기록을 한 장씩 넘겼다. 남쪽의 거대한 세계수, 북방의 루메르, 동부의 물안개 숲, 서쪽의 붉은 협곡 숲.
서로 떨어져 있지만 같은 뿌리망을 통해 힘을 나눴던 곳들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장에서 작은 금빛 표식이 나타났다.
[공동 예치 원계약 서명자: 미확인]
[원천 제공자 서명: 기록 없음]
[대리 서명 확인 필요]
나는 손을 멈췄다.
“서명자가 없다고?”
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계약을 맺은 존재와, 그 뒤 계약을 대신 관리한 존재가 달라요. 아주 오랫동안 그 사실을 구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내 등골이 서늘해졌다.
우리가 지하에서 본 세계수 계약도 누가 대신 서명한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천계가 행사한 수많은 권한의 시작부터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
그때 세계수 본부에서 통신이 왔다. 바스였다.
“최시온 씨. 북방 조사 기록을 보고 제삼 고리의 원본 계약을 다시 대조했소.”
“무슨 일입니까?”
“계약 첫 장은 있는데, 서명 장이 없어졌소. 누군가 오래전에 떼어 냈거나 옮겨 놓은 것 같소.”
“누군지 아세요?”
“아직은 모르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소.”
“뭔데요?”
“누락된 서명 장의 보관 번호가…….”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당신이 받은 첫 번째 민원 번호와 같소.”
나는 말문이 막혔다.
첫 번째 민원.
세계수가 직접 보냈던, '살려 주세요'라는 요청.
그때 받았던 잎사귀 뒷면에는 이런 글씨도 있었다.
[부탁드립니다. 그들을 믿지 마세요.]
나는 주머니에서 그 잎을 꺼냈다. 희미하게 빛나던 글씨 아래,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또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보관 문서 000의 열람권자: 최시온]
“……왜 또 나야?”
루루가 옆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시온 님이 담당 상담원이니까요?”
“고객센터에서 일한 지 얼마나 됐다고 세계의 비밀 문서까지 내 이름으로 걸려 있어?”
“업무 능력이 좋다는 뜻 아닐까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분명 인사 사고야.”
그러나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잎사귀의 뒷면에서 마지막 문장이 조용히 떠올랐다.
[문서 000 개봉 시, 최초 계약의 진실이 공개됩니다.]
[주의: 현재 계약 관리자에게도 통지됩니다.]
나는 다시 잎을 접었다.
일단 루메르 숲을 살릴 시간을 벌었다. 이제 세계수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다음 민원은 지금까지 받은 것 중 가장 비쌀 것 같았다.
나는 루루에게 말했다.
“접수함 잠그자.”
“왜요?”
“이번에는 내가 고객한테 먼저 물어볼 게 있거든.”
“뭘요?”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도대체 누가 내 이름으로 계약을 했는지.”
제3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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