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센터에서 일할 때 민원인이 세 명만 동시에 떠들어도 정신이 없었다.
지금 내 앞에는 나무가 삼천 그루 있었다.
정확히는 루메르 숲 전체에서 확인된 살아 있는 수목이 삼천백이십일곱 그루였다. 그중 공명을 전할 수 있는 나무는 일부였고, 남은 나무들은 상태가 나빠 답을 하지 못했다.
루루가 지친 얼굴로 수첩을 흔들었다.
“시온 님, 접수번호를 나무마다 따로 매기면 저 밤새 써야 해요.”
“묶어서 하나로 내자.”
“하지만 나무마다 피해가 달라요.”
“그래서 개별 피해표를 붙이자. 서명 대신 원본 수액 공명 기록을 첨부하고, 응답이 없는 나무는 응답 없음이라고 적어.”
“세라 씨가 대표한다는 거죠?”
“긴급 보호 신청만. 재산을 넘긴다고 동의한 건 아니야.”
루루가 피식 웃었다.
“이제 시온 님도 규정만 보면 흥분하네요.”
“내가 원래 그랬어.”
“전에는 규정 때문에 퇴직하고 싶다면서요.”
“지금도 퇴직하고 싶어.”
나는 천천히 숲의 원장을 펼쳤다.
우리가 확보한 증거는 크게 네 가지였다. 400년 전 공동 예치 계약을 새긴 돌판, 현존 수목의 원본 공명, 최근 자동 정산 장치의 회수 기록, 그리고 예치금이 '백색 온실'이라는 계정으로 빠져나간 흔적.
모두 중요했다. 하지만 아직 빠진 것이 있었다.
“이 돈을 가져간 사람을 특정하는 기록은 없네요.”
아르웬이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여기서는 그걸 주장하지 말자. 우선 지금 당장 회수를 멈출 만한 근거부터.”
세라가 숲 지도를 펼쳤다. 붉은 점 삼백 개가 곳곳에서 깜박이고 있었다. 시간이 줄어들수록 점은 더 커졌다.
[강제 회수까지: 01:38:26]
“한 시간 반이면 결재가 날까요?”
“기다려만 볼 순 없어요.”
나는 루루에게 접수함 두 개를 연결하라고 했다. 하나는 법정용, 하나는 북방 주민용이었다. 우리가 법정에 보고하는 동안 마을 사람들도 상황을 볼 수 있게 했다.
로딘은 자기 광고 수정구슬을 들고 나타났다.
“내가 가진 방송구가 세 개 있다. 대륙 전역에 온천 광고를 할 생각으로 산 것이다.”
“그걸 왜 가져오셨어요?”
“네놈이 영상 기록을 남긴다기에 빌려주러 왔다.”
나는 그를 다시 보았다.
“무료예요?”
“빌려주는 건 무료다.”
“광고 조건은?”
“방송이 끝나면 '온천은 로딘'이라는 문구를 한 번만 띄워라.”
정말 일관성 있는 용이다.
“좋습니다. 단, 증거 영상에는 광고를 넣으면 안 됩니다. 별도 안내판에는 넣어 드릴게요.”
“까다롭군.”
“그래야 증거로 인정받습니다.”
막상 회의를 시작하려니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숲 안쪽에서 공명 신호를 모은 뒤 마을까지 가져오는 길에 일부 기록이 흐려진 것이다.
니아가 등불을 끌어안고 말했다.
“뿌리 신호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읽어야 또렷해요. 너무 오래 떼어 놓으면 맥락이 사라져요.”
“그럼 원본을 보관하지 못한다는 거야?”
“아뇨. 시간 표식과 주변 환경을 같이 기록하면 비교할 수 있어요. 다만 숲 전체를 한 번에 하나의 목소리로 만들면 위험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같은 동네 사람이라고 전부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니까.”
루루는 각 구역 기록에 위치와 시각을 붙였다. 아르웬은 흰 가루 수치와 나무 상태를 별도 표로 만들었다. 세라는 주민들의 동의 없이 집 안 사진을 방송하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왜요?”
“아픈 유안이나 식량이 부족한 집이 구경거리가 되는 건 싫어요.”
“동의합니다.”
나는 방송 수정구슬의 방향을 돌렸다. 필요한 증거는 나무와 장치의 상태지, 누군가의 어려움을 자극적으로 보여 주는 영상이 아니었다.
로딘은 카메라 앞에 서서 날개를 활짝 폈다.
“나는 찍어도 된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한쪽으로 비켜 주세요.”
“왜?”
“증거판을 가려서요.”
그는 서운한 얼굴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제야 하늘빛 기록판이 보였다. 이 조사에 드래곤이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화면 전체를 차지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숲 가장자리에서 공개 현장 보고를 시작했다. 세라는 처음에는 목소리가 떨렸지만, 곧 똑바로 서서 말했다.
“우리 숲은 지난 400년 동안 힘을 모아 겨울을 견뎠습니다. 부족한 사람을 살리려고 맡긴 힘이에요. 그런데 최근 정산소는 그 힘을 오히려 빼앗고 있습니다.”
니아는 생장력 예치 기록을 보여 주었다. 아르웬은 설비가 자동 회수를 시작한 시각과 피해 나무의 수액 변화를 차례로 설명했다. 나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은 별도의 칸에 적었다.
[확인된 사실]
[조사 중인 사실]
“이걸 굳이 구분해야 해요?”
루루가 물었다.
“응. 우리가 한 문장이라도 과장하면 상대는 그 한 문장만 붙잡고 전체를 거짓이라고 할 테니까.”
그때 주민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소리쳤다.
“우리 마을이 왜 저 정산소를 믿었는지 압니까! 작년 겨울에 식량을 보내 줬단 말입니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때 도움을 받으신 건 사실이군요.”
“그래! 그러니 모두 사기라고 하면 안 되잖아!”
“맞습니다. 실제로 받은 지원은 지원으로 기록하겠습니다. 다만 그 지원 때문에 영구적인 무단 회수가 정당해지는지는 별개죠.”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듣고 싶었던 건 박수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실제로 무슨 일을 겪었는지였다.
공개 보고가 중반을 넘었을 때 이상한 반응이 나타났다. 평소 소리를 내지 못하던 외곽의 나무들이 조금씩 공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 흰 가루를 걷어내 주고, 뿌리 주변의 물을 지켜 준 덕이었다.
루루는 작은 빛을 따라 돌아다니며 원본 신호를 받았다. 응답할 수 없는 나무의 수는 여전히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침묵을 동의로 처리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세라가 물었다.
“여러분이 맡긴 생장력을 정산소가 무단으로 가져가는 것을 멈추기 위한 조사를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숲이 저마다 다른 소리로 대답했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니아가 그것을 증거판에 남겼다.
[공동 민원: 긴급 회수 보전 및 예치금 원장 조사]
[현재 응답 가능한 수목 다수의 찬성 확인]
[반대 및 의사 불명 개별 기록 보존]
[대리인: 세라]
나는 접수함을 닫았다.
“이제 법정으로 보내자.”
그 순간 정산소 직원들이 숲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은빛 지팡이만 든 게 아니었다. 무거운 철제 수레와 채취관을 끌고 왔다.
리오트가 앞장서 있었다.
“말씀드렸듯 공적 업무를 방해하면 책임을 묻겠습니다.”
세라가 앞으로 나왔다.
“정식 중단 청구를 냈어요. 저희 숲의 의견도 제출했어요.”
“그렇군요. 하지만 아직 판결은 안 났죠?”
리오트가 손을 들었다. 수레의 채취관이 나무뿌리 쪽으로 향했다.
나는 무릎 아래가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강제 회수까지: 00:12:03]
법정 답장은 아직 없었다.
“시온 님!”
루루가 나를 불렀다.
나는 접수함을 한 번 더 확인했다. 그 뒤 리오트 쪽으로 걸어갔다.
“지금 회수하면 분쟁 중인 재산에 손을 대는 겁니다. 적어도 열두 분만 더 기다리시죠.”
“그럴 의무는 없습니다.”
“의무가 없다면 선택하실 수는 있겠네요.”
“물러나세요.”
나를 밀치려던 직원 하나가 멈췄다.
로딘이 우리 뒤에 섰기 때문이다.
“불을 뿜으려는 것이 아니다.”
용이 말했다.
“나는 여기 증인으로 서 있다. 내 앞에서 무엇을 할지 잘 생각해라.”
이상했다. 불꽃 하나 없이도 엄청나게 위협적이었다.
그때 하늘이 파랗게 번쩍였다.
천계 임시 법정의 종소리가 숲 전체에 울렸다.
[긴급 보전 심문 개시]
[당사자 전원 즉시 진술 대기]
리오트의 손이 멈췄다.
나는 숨을 내쉬었다.
아직 이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 줄 문이 열렸다.
그리고 이런 문은 한 번 열리면 쉽게 닫히지 않는다.
제2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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