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이 깨어나는 소리는 생각보다 시끄러웠다.
땅속 깊은 곳에서 뿌리들이 서로 스치고, 마른 가지가 덜컹거리며 잎이 흔들렸다. 사람이라면 백 명이 동시에 의자를 끄는 소리 같았다.
“정말 이 숲 전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거예요?”
루루가 물었다.
“전부는 아니에요.”
니아가 말했다.
“힘이 남은 나무만 신호를 보낼 수 있어요. 죽은 나무는 지금 말할 수 없고, 어린 나무는 공명 신호가 너무 약할 수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럼 목소리가 큰 나무들 의견만 듣고 끝내면 안 되겠네.”
아르웬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갈래 할아버지처럼 오래된 나무는 증언할 수 있지만, 회수될 나무들이 전부 동의한다고 보긴 어렵죠.”
세라는 팔의 잎 무늬를 내려다봤다.
“제가 대리인이 되면 대신 결정하는 건가요?”
“아니요. 우리가 필요한 건 숲이 뭘 원하는지 확인하고 전달할 사람이지, 숲을 대신해서 마음대로 계약할 사람은 아니에요.”
세라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는 남을 대표한다는 명목으로 남의 것을 갖다 파는 사람이 많다. 나는 오늘 그런 종류의 고객을 이미 한 명 만났다.
그 전에 세라가 나를 따로 불렀다.
“시온 씨. 저는 이 숲에서 태어났지만 완벽한 사람이 아니에요.”
“누가 완벽하랬어요?”
“어릴 때 할머니 나무에 장난으로 칼집을 낸 적도 있어요. 작년에는 마을 사람들이 장작을 더 베자고 했을 때 반대하지도 못했고요.”
나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숲이 왜 저를 고르죠?”
“그건 숲에게 물어봐야겠죠.”
“저보다 지혜로운 사람도 많아요.”
“많을 수 있죠. 그래서 지금 세라 씨에게 모든 계약을 결정할 권한을 주지 않는 거예요.”
세라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그게 위로인가요?”
“네. 완벽해서 대표가 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대신 전달하고 대답을 제대로 기록할 준비가 돼 있어서 맡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그녀 손목의 잎 무늬를 가리켰다.
“숲이 당신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를 알아갈 시간도 필요하겠죠.”
세라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저는 제 동생부터 돌보고 싶어요. 숲도 지키고 싶지만.”
“그게 맞아요. 대표가 됐다고 가족까지 잊을 필요는 없죠. 우리가 업무를 나누면 됩니다.”
그녀는 그제야 어깨를 폈다.
“그럼 오늘은 해 볼게요.”
“오늘만 해도 됩니다. 내일은 다시 결정하면 되니까.”
세라가 웃었다.
어떤 계약은 아주 오래 지속된다. 그래서 더더욱 매번 사람이 동의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숲의 공명 신호를 세 구역으로 나눠 확인하기로 했다. 큰 나무가 모인 능선, 어린 나무가 자라는 계곡, 그리고 이미 심하게 마른 외곽이었다. 가능한 곳마다 원본 신호를 남기고, 반응하지 못하는 나무는 '동의'나 '거부'로 멋대로 분류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능선의 나무들은 대부분 강제 회수를 거부했다. 계곡의 어린 나무들은 서로 얽힌 뿌리로 작은 신호를 보냈다. 외곽에서는 응답이 거의 없었다. 어떤 나무는 자꾸만 같은 말을 반복했다.
[춥다.]
[춥다.]
[춥다.]
숲은 실제로 추웠다. 다만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생장력을 빼앗긴 나무는 햇볕을 받아도 몸을 데울 수 없었다.
세라가 그 나무 앞에 오래 앉아 있었다.
“이 나무는 작년 겨울에 새들이 둥지를 틀었던 곳이에요. 제가 눈을 털어 주러 왔을 때 가지를 살짝 내려서 둥지를 보여 줬어요.”
나는 말없이 기록했다. 누군가에게는 흔한 나무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해의 기억이 깃든 집이었다.
저녁 무렵 에델이 임시 공명 법정을 열어 주었다. 세라가 손목의 잎 무늬를 올리고 질문했다.
“저 세라가 회수 정지와 원장 확인을 위한 한시적 대리인이 되는 데 동의하십니까? 이후 계약 변경은 여러분께 다시 묻겠습니다.”
니아가 원본 신호를 모았다. 오래된 나무 일곱 그루와 생장력이 남은 어린 나무들이 서로 다른 리듬으로 응답했다. 반대 신호도 있었다. 그들은 외부 인간을 쉽게 믿지 못했다.
우리는 그 반대까지 빠짐없이 기록했다.
에델이 통신망 너머에서 말했다.
“이 법정의 임시 판단은 모두의 만장일치가 아닙니다. 지금 확보된 의사, 관리 이력, 긴급성을 종합해 범위를 제한한 대리권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럼 세라 씨가 정산소 회수를 중지시킬 수 있는 겁니까?”
“정식 판결 전에는 중단을 요구할 자격이 생기는 겁니다. 자동으로 계약이 무효가 되지는 않습니다.”
아쉽지만 현실적인 결과였다.
[세라: 루메르 숲 한시적 권리 보호 대리인]
[권한: 긴급 회수 정지 청구, 원장 열람 청구, 보전 신청]
[계약 갱신 및 생장권 양도: 불가]
세라가 공문을 두 손으로 받았다.
“이걸로 숲을 지킬 수 있을까요?”
“시작은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
“기록과 실제 조치가 같이 가야 하니까요.”
그때 숲 아래에서 거대한 진동이 울렸다.
땅이 갑자기 세 번 뛰었다. 세라의 손목에 새겨진 무늬도 같은 박자로 빛났다. 그녀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할머니 나무의 그루터기를 바라봤다.
“저기가…… 부르고 있어요.”
우리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루터기 아래의 돌판이 조금 열려 있었다. 여섯 톱니가 있는 잎 모양 홈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세라가 손목을 가까이 가져가자 홈 안에서 돌이 울렸다.
[관리인 계승권 검증]
[임시 대리인의 계약 변경 불가 확인]
[보관 기록 열람 허용]
“세라 씨, 괜찮겠어요?”
“네.”
그녀가 손을 갖다 댔다. 돌판 안쪽에서 작은 상자가 솟아올랐다. 나뭇결이 살아 있는 상자였다. 뚜껑에는 400년 전 언어로 된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니아가 소리 내어 읽었다.
“'겨울을 모아 두었으니, 겨울이 오면 먼저 살아 있는 것을 살릴 것.'”
상자 속에는 나무 잎으로 된 금빛 장부가 들어 있었다. 종이마다 숫자 대신 나이테가 그려져 있었고, 각 나이테에는 수액이 흐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르웬이 숨을 삼켰다.
“이게 진짜 원장인가 봐요.”
그런데 장부의 마지막 장이 거칠게 뜯겨 있었다.
세라는 얼굴을 찌푸렸다.
“누가 가져갔죠?”
나는 가장자리의 뜯긴 자국을 살폈다. 최근에 훼손된 흔적이었다. 금빛 수액이 아직 마르지 않았다.
“원장을 누군가 만진 건 확실합니다. 다만 누구인지는 더 봐야겠어요.”
니아가 장부 안쪽의 작은 홈을 가리켰다.
“마지막 장을 가져가도 변경 이전의 거래 그림자는 남아요. 이 장부는 수액이 지나간 흔적을 나이테 속에 보관하거든요.”
“복원할 수 있어?”
“일부는요. 저장된 신호가 약해서 보조 에너지가 필요해요.”
루루가 고개를 돌렸다. 로딘은 저 멀리서 마차 뒤에 커다란 광고판을 세우고 있었다.
“로딘 님이 또 필요하겠네요.”
“아니.”
나는 바스가 준 소형 축전석을 꺼냈다.
“이번에는 열을 쓰면 원장부터 탈 수 있어. 안전한 출력으로 해 보자.”
니아가 축전석을 연결했다. 얇은 초록빛이 장부를 훑었다.
빛 속에서 숫자들이 떠올랐다.
[보유 예치액: 400년간 증가]
[최근 긴급 인출: 대규모]
[인출 목적: 북방 겨울 보호]
[실제 수취처: 미표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정산소는 나무에게 빚을 갚으라고 했지만, 숲의 돈을 어디로 보냈는지는 숨겼다.
“이제 누가 가져갔는지 알아야겠네요.”
그때 나뭇잎 장부 가장자리에서 작은 검은 문자가 나타났다.
[출금 승인 장치: 천계 중앙 배분실]
[지정 수취 계정: 백색 온실]
나는 니아를 보았다.
“백색 온실은 뭐야?”
니아가 아주 오래 침묵했다.
“정상적인 구호 시설은 아니에요.”
“왜?”
“그곳은 사라진 숲의 생장력을 따로 모아 두던 실험 시설이에요. 오래전에 폐쇄된 줄 알았는데…….”
장부 위로 다음 줄이 떴다.
[수취 실적: 현재도 증가 중]
나는 눈을 감았다.
죽은 나무의 빚을 살아 있는 나무에게 떠넘긴 이유가 이제 조금 보였다.
누군가 돈을 가져갔고, 장부를 맞추기 위해 나무에게 죄를 씌운 것이다.
제2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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