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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26화
PAYLUA ORIGINAL · 제26화

26화. 무료체험이 끝나면 숲이 압류됩니다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4,004자

오프라인 책장
내가 가장 싫어하는 문자 중 하나는 이것이다. [무료 체험 기간이 종료되어 다음 결제가 진행됩니다.] 대개 무료라는 글자는 엄청 크게 쓰고, 자동 결제라는 글자는 현미경으로 봐야 찾을 만큼 작게 쓴다. 그런데 루메르 숲의 무료 체험은 더 악질적이었다. 요금이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대신, 나무 속에서 빠져나갔다. 우리는 세라의 집에서 그해 겨울에 배포됐다는 안내문을 찾았다. 종이는 질긴 회색 재질이었고, 북방 정산소의 파란 도장이 찍혀 있었다. [겨울 생장 보전 긴급 지원] [첫 30일 무료] [이후 기존 생장권 계약에 따라 자동갱신] “세라 씨, 이걸 받았을 때 뭘 설명 들었어요?” “나무가 병들기 전에 영양을 미리 보충해 준다고요. 땅이 척박해서 다들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신청만 하면 비용은 나중에 정산한다고 했어요.” “나무한테 물어보는 절차는 있었습니까?” “없었어요. 정산관이 숲의 대표는 이미 계약해 두었다고 했어요.” “계약서는 보여 줬어요?” “두꺼운 책을 보여 줬어요. 제가 읽을 수 있는 부분은 한 장뿐이었고요.” 아르웬이 안내문의 작은 글씨를 읽었다. “여기엔 해지 방법이 없습니다. 대신 서비스 기간 중 발생한 회수 권리는 영구적으로 유지된다고 돼 있어요.” “영구적?” “네.” “30일 무료 서비스를 쓰면 천 년 동안 빨대를 꽂아 놓는 거네요.” 루루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럼 아예 무료가 아니잖아요.” “정확하다. 오늘부터 넌 소비자 보호 담당이다.” “월급 올려 주나요?” “일단 직함부터 올려 줄게.” “싫어요.” 정령도 현실적이었다. 안내문을 비교하다가 나는 종이 오른쪽 아래의 작은 표식을 발견했다. 세라가 받은 것과 노인이 보관한 것이 같은 서류인데, 날짜가 달랐다. “이상한데요. 같은 무료 지원이라면서 시작일이 달라요.” 아르웬이 확대경을 꺼냈다. “각 가정에서 신청한 날을 따로 적은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죠. 그런데 무료 기간 종료 날짜는 전부 같네요.” 니아가 두 종이를 겹쳤다. 하나는 스무 날 전에 작성됐고 다른 하나는 열흘 전에 작성됐다. 그럼 종료일도 열흘 차이가 나야 정상인데, 둘 다 바로 오늘 자정으로 적혀 있었다. “이건 개별 신청일과 무관하게 일괄 청구한 겁니다.” 내가 말했다. “설정 실수일 수도 있잖아요?” 루루가 물었다. “그렇지. 그래서 실수인지 의도인지 아직은 몰라. 다만 실제로 고객이 설명 들은 조건과 다르게 작동한 건 확인했어.” 세라가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우리 마을도 일부는 지원을 늦게 받았어요. 그래도 기간이 끝나면 모두 똑같이 갚으라기에 이상했죠.” “그분들 기록도 남겨 주세요. 식량을 받은 시점, 생장점이 처음 빠져나간 시점도요.” 나는 안내문들의 종료일을 한 줄로 정리했다. 전부 같은 날짜였다. 그리고 그 날짜의 자정에는 숲 전체의 회수 강도가 다시 높아지도록 설정돼 있었다. 아주 편리한 행정이다. 편리한 건 운영자뿐이지만. 아르웬은 서류 끝에 빨간 밑줄을 그었다. “공식 계약 변경 없이 청구 방식이 바뀌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어요.” “좋아요. 이건 봉인해 두죠. 우리가 추측한 동기 말고, 실제 서로 다른 날짜부터요.” 그때 니아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이 안내문에 있는 계정 번호, 어디서 본 것 같아요.” 그녀는 보존등 벽에 번호를 적었다. [북방 생장계정 B-400] “제14 장치의 강제 회수 명령을 내릴 때 이 계정이 잠깐 나타났어요. 연동된 다른 시설로 출력이 전송됐죠.” “벨리안이랑 관련 있다는 뜻이야?” “확정할 수는 없어요. 벨리안이 연결 장치를 승인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북방 정산소가 실제로 무슨 계산을 했는지는 따로 봐야 해요.” “좋아. 계정 흐름을 추적하자.” 바스에게 통신을 걸었다. 그는 아직 제14 장치의 잠금 상태를 감시 중이었다. 화면 뒤로 포그가 거대한 렌치를 들고 서 있었다. “바스 씨, B-400이라는 계정 아세요?” 그의 얼굴이 굳었다. “오래된 공동 예치 계정이오. 흉년이 오면 북방에 수액을 보내기 위한 비상 저장고였소.” “그런데 지금은 북방에서 생명력을 회수해 가요.” “그럴 리가…….” 그는 서둘러 기록을 찾았다. 잠시 뒤 한숨을 내쉬었다. “계정의 이름은 그대로인데 입출금 방향이 바뀌었소. 정확한 변경 시각은 보름 전이오.” “정산소가 바꾼 겁니까?” “관리자 서명이 있어야 가능하오. 다만 이 기록만으로는 실제 서명자를 알아낼 수 없소.” 나는 세라에게 물었다. “리오트가 온 날이 언제죠?” “보름쯤 전이요.” 숫자가 너무 잘 맞았다. 그럴수록 조심해야 한다. 딱 맞는 이야기는 사람을 성급하게 만든다. “변경 전후 원장 사본과 접근 기록을 봉인해 주세요. 원본은 지우지 마시고요.” “알겠소.” 화면을 끄자 창문 밖에서 누군가 휘파람을 불었다. 리오트였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길고 검은 로브를 입은 정산소 직원 여섯 명이 마을 길목에 서 있었다. 각자 손에는 은빛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고객센터 여러분, 불법적인 계정 열람을 중단해 주십시오.” “안녕하세요, 리오트 씨. 출장 두 번째 날에 벌써 다시 뵙네요.” “이번에는 공식 집행을 위해 왔습니다.” 그가 지팡이 끝을 땅에 대자 붉은 선이 숲 바닥을 따라 뻗어 갔다. 선이 닿은 나무마다 수액이 떨렸다. 세라가 소리쳤다. “시간이 아직 남았잖아요!” “강제 회수 개시 전 준비 작업입니다. 안전을 위한 조치죠.” “저희가 안전 검사를 요청했잖습니까?” 나는 앞으로 나섰다. 리오트는 서류를 흔들었다. “긴급 중단 신청은 접수됐습니다. 다만 법적 대리권이 확정되지 않아 효력이 없습니다.” “대리권 신청도 접수됐습니다.” “아직 결재가 안 났겠지요.” 맞는 말이다. 그래서 더욱 기분이 나빴다. 그때 유안의 치료소에서 비명이 들렸다. 흰 가루가 갑자기 굴뚝처럼 솟아올랐다. 마른 바람이 창문 틈으로 밀려 들어가고 있었다. “창문 막아요!” 나는 소리쳤다. 아르웬은 즉시 방진 결계를 펼쳤고, 주민들은 아이들을 치료소 뒤편으로 대피시켰다. 치료사는 유안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얇은 젖은 천을 코와 입에 대 주었다. 로딘이 몸을 일으켰다. “저 놈들을 날려 버리겠다!” “그러면 증거도 다 날아갑니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냐!” “마을 풍향을 바꿀 수 있어요?” 그가 눈을 깜박였다. “바람은 내가 불로 데워 움직일 수 있지.” “불꽃이 마을에 닿지 않게, 숲 바깥 빈 들판 위의 공기만 데워 주세요. 반드시 조금씩요.” “이 몸에게 그런 섬세함을 요구하다니.” “세계 구한 드래곤이라면서요.” 로딘은 입을 다물더니 들판 쪽으로 날아갔다. 마을의 공기가 천천히 움직였다. 흰 가루는 치료소 창문에서 멀어졌다. 임시 조치라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당장 아이들이 더 마시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리오트가 그 광경을 보며 웃었다. “참 열심이시군요. 그런데 어떡합니까. 계약은 계약인 것을.” 나는 다가가 그의 지팡이 끝을 가리켰다. “지금 현장에서 피해를 일으키는 걸 확인했습니다. 준비 작업이라면서 생장점을 건드린 이유를 기록하게 해 주세요.” “당신은 법원도 아닌데 무슨 권한으로?” 나는 루루를 향해 손을 뻗었다. 루루는 기다렸다는 듯 접수함을 열었다. [긴급 위험 행위 기록: 수신 중] [현장 영상 및 시각 봉인] “재판에서 보려고요. 제가 판결할 생각은 없습니다.” 리오트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이 스쳤다. 그 순간 에델의 도장이 찍힌 공문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북방 생장권 대표 대리인 임시 지정] [대리인 후보: 세라] [조건: 수목 공동체 동의 확인 후 효력 발생] 세라가 공문을 받아 들었다. 손목의 잎 무늬가 희미하게 빛났다. “그럼…… 이제 우리 숲에게 물으면 되는 건가요?” “네.” 나는 말했다. “이번에는 나무들이 계약을 읽고 결정할 차례예요.” 리오트의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걸 허락할 것 같습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허락이 필요하죠? 계약 당사자한테 의견을 묻는데.” 숲 아래에서 긴 진동이 올라왔다. 나무들이 깨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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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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