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황당한 결제창을 본 순간은 지금이었다.
어린 자작나무가 생명력을 빼앗기고 있는데, 그걸 멈추려면 돈을 내란다.
[긴급 이의 신청 수수료: 생장점수 50]
[현재 신청자 잔액: 0]
“현금은 안 받나요?”
나는 되지도 않을 질문을 했다.
[결제 수단: 수목 생장점수 전용]
“나무가 죽어 가는데 나무의 생장점수를 내라고요?”
[그렇습니다.]
“참 친절하시네. 불이 났을 때 물을 사려면 집을 담보로 잡으라는 이야기군요.”
자작나무의 푸른 잎이 순식간에 회색으로 변해 갔다. 세라가 몸으로 밑동을 감싸며 숨을 몰아쉬었다. 원래 목재를 돌보던 손이었는지, 그녀의 손바닥에는 오래된 수액 얼룩이 남아 있었다.
“방법 없어요?”
니아가 보호등 안에서 청구판을 살폈다.
“이의 신청을 수락하는 장치는 정산관이 아니라 구형 관리 도구예요. 서류를 읽는 기능밖에 없어요. 다만 아주 오래된 예외 규정이 있어요.”
“어떤 거?”
“청구 대상이 존재하지 않으면 자동 정산을 멈춰야 해요.”
“42번은 이미 죽었잖아.”
“그걸 증명하면 돼요.”
아르웬이 곧장 사망 확인서를 꺼냈다. 검사를 마친 치료사가 찍은 도장과, 세라가 나무의 마지막 수액 흐름을 기록한 표가 있었다.
나는 서류를 정산판에 올렸다.
[서류 미비]
“뭐가 부족해요?”
[채무자 본인 확인]
“죽었다니까요!”
[본인 확인이 필요합니다.]
“본인이 죽은 걸 본인이 증명하라고요?”
[그렇습니다.]
아르웬이 나를 보았다. 루루도 나를 보았다. 세라도 멍한 얼굴로 쳐다봤다.
내가 화를 내면 다들 걱정할 테니까 참았다.
대신 나는 도장 아래에 작게 찍힌 규정 번호를 읽었다. 본인 확인 예외 조항. 관리인이 생체 기록을 대조하면 대체 확인이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좋습니다. 관리인 대체 확인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본인 확인 절차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예외 조항 제8항에 적혀 있습니다.”
[……]
“거부 사유를 문서로 주세요.”
[……]
세상에는 오래된 기계가 두려워하는 말이 있다. 설명서에 있는 기능을 정확히 요구하는 말이다.
정산판이 삐걱거리더니 파란 불을 켰다.
[관리인 대체 확인 경로 개방]
“세라 씨, 여기에 손을 대 주세요.”
세라가 손바닥을 댔다. 오래된 수액 얼룩이 빛을 발했다.
[루메르 제42수목 사망 확인]
[인접 수목 자동 승계: 일시 정지]
자작나무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아르웬은 곧장 가는 뿌리에 보습 덮개를 씌웠다. 세라는 통에서 가져온 물을 조금씩 부었다. 우리는 나무가 실제로 물을 흡수하는지 확인한 뒤에야 손을 뗐다.
“살았어요?”
루루가 물었다.
“아직 몰라. 회색 잎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어.”
나는 자작나무 밑의 흙을 손으로 눌렀다. 적어도 뿌리 주변의 온기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세라가 한참 동안 나를 바라봤다.
“고객센터 직원이 진짜 규정으로 사람을 구하는 건 처음 봐요.”
“주로 규정으로 괴롭히는 걸 보셨겠죠.”
“네.”
“저도 봤습니다. 그래서 반대 방향으로 써 보고 싶어요.”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무 위로 바람이 스쳤다. 죽은 느릅나무의 잔가지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때 로딘이 공터에서 큰 기침을 했다.
“인간! 감동하는 건 좋은데 나는 언제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하느냐!”
“숲에서는 불 사용 금지라고 했잖아요.”
“내 숨결은 미세 조절할 수 있다!”
“지난번 온천 수로를 녹이셨잖아요.”
“그건 산이 약해서다!”
나는 로딘이 타고 온 짐마차를 바라봤다. 안에는 온천 기념품과, 이유는 모르겠지만 커다란 구리 주전자 다섯 개가 실려 있었다.
문득 생각이 났다.
“로딘 님. 열을 미세 조절할 수 있다고 하셨죠?”
“당연하다.”
“그럼 마른 가루를 태우지 말고 작은 밀폐병 안에서만 가열할 수 있습니까?”
로딘의 눈이 번쩍였다.
“할 수 있다. 드디어 나의 위대함을 이해했느냐!”
“표본 검사에 쓰려고요.”
그의 표정이 바로 구겨졌다.
“나는 연구용 난로가 아니다!”
“출장 수당은 드립니다.”
“얼마냐?”
“공인 사용 후기 하나.”
“두 개.”
“하나에 사진 첨부.”
“좋다!”
나중에 사진을 어떻게 찍을지는 그때 고민하자.
자작나무 앞에서 한동안 지켜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살아 있는 나무가 마른 느릅나무 쪽으로 아주 약한 뿌리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왜 그래?”
내가 니아에게 물었다.
“아직 죽은 나무를 붙잡고 있어요. 뿌리로 영양을 주려고 한 것 같아요.”
“이미 죽은 나무인데?”
“정령과 나무에게는 오래된 습관이 있어요. 옆에 있는 존재를 바로 포기하지 못하죠.”
가끔 사람도 그렇다. 이미 끝난 관계를 붙잡거나, 돌아오지 못할 사람의 휴대전화 번호를 지우지 못한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작은 자작나무를 바라봤다.
“그럼 억지로 끊지는 말자. 연결 상태를 기록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분리하자.”
아르웬이 가까운 흙을 살폈다.
“좋아요. 다만 죽은 뿌리에서 부패가 번지지 않는지 검사할게요. 어린 나무가 더 아파지면 안 되니까.”
세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애가 42번을 따라온 건 알아요. 봄마다 그늘 아래에서 자랐거든요. 그래서 저는 저 나무를 '작은 꼬리'라고 불러요.”
“작은 꼬리?”
“큰 나무가 움직이면 늘 같이 흔들려서요.”
나는 웃었다.
“그럼 작은 꼬리에게도 이름을 적어 주죠. 번호만으로 부르면 억울하잖아요.”
루루가 종이에 적었다.
[루메르 제43수목. 별칭: 작은 꼬리.]
정산소가 숫자밖에 모르는 동안, 우리 쪽 기록에는 이름이 하나 더 늘었다.
나중에 법정에 가더라도 그 이름을 잊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마을 빈 창고에서 흰 가루를 검사했다. 아르웬이 표본을 네 종류로 나눴다. 살아 있는 나무의 잎, 죽은 나무의 껍질, 우물 가장자리의 흙, 그리고 유안의 창가에서 가져온 가루였다.
니아는 보존등의 작은 푸른 빛으로 반응을 읽었다.
“자연 곰팡이나 병원성 독소만 있는 건 아니에요. 저장된 생장점수가 수액에서 분리될 때 남는 결정 가루가 섞여 있어요.”
“사람에게 왜 해로운데?”
“가루가 몸에서 수분을 끌어당겨요. 많이 마시면 목과 기관지가 마르고, 이미 아픈 사람은 더 힘들 수 있어요.”
“그럼 유안의 증상이랑 연결될 수 있겠네.”
“가능성은 있어요. 치료사 검사를 먼저 받아야 확실해요.”
결과를 기록할 때였다. 창고 문이 열렸다.
푸른 제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머리는 단정했고, 신발에는 흙 한 점 묻어 있지 않았다. 이 산길을 걸어 들어왔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북방 생장 정산소의 리오트입니다.”
그가 웃었다.
“소중한 고객님들의 불편 사항을 들었습니다.”
나는 손에 든 민원서를 천천히 접었다.
저 미소, 저 억양, 저 타이밍.
같은 업계 사람이다.
그리고 대개 이런 사람이 고객을 제일 피곤하게 만든다.
“반갑습니다. 세계수 고객센터 최시온입니다.”
리오트가 고개를 숙였다.
“접수된 불만은 신속히 처리하겠습니다. 다만 지금 진행 중인 검사는 계약 비밀을 침해할 수 있어 즉시 중단해 주셔야 합니다.”
“자료를 보지도 않고 계약 비밀부터 걱정하시네요.”
“민원인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저희 정산소의 영업권도 보호돼야 하니까요.”
“그렇군요. 그럼 영업권보다 먼저 보호돼야 하는 건 뭡니까?”
“죄송합니다?”
나는 창밖의 어린 자작나무를 가리켰다.
“저 나무가 죽을 뻔했어요. 열두 살 아이는 가루를 마시고 누워 있습니다. 일단 위험한 회수를 멈추고 원인부터 확인하죠.”
그는 미소를 유지했다.
“안타깝지만 회수 중단은 유료 서비스입니다.”
나는 그에게 의자를 권했다.
“앉으세요. 오늘은 고객센터가 무료 상담을 좀 해 드리겠습니다.”
리오트가 의심스러운 얼굴로 앉았다.
나는 빈 종이 첫 줄에 적었다.
[상담 제목: 죽은 고객에게 청구서를 보내면 생기는 법적 문제.]
어디 한번 누가 더 오래 말할 수 있는지 보자.
제2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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