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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2화
PAYLUA ORIGINAL · 제2화

2화. 나무도 고객이면 환불이 됩니까?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5,129자

오프라인 책장
“일단 접수는 해야겠죠?” 나는 세계수가 보낸 종이를 들고 물었다. 아르웬은 대답 대신 내게 장갑 한 켤레를 내밀었다. “긴급 민원은 소장 승인 후 처리합니다. 맨손으로 만지지 마세요.” “왜요?” “존재하지 않는 민원이니까요.” “어제 들어온 민원인데 존재하지 않는다니, 회사 입장이 대단히 철학적이네요.” “최시온 상담원.” “네, 장갑 끼겠습니다.” 내가 하는 말마다 소장이 이름을 부르는 습관이 생겼다. 직장 생활 십이 년 동안 쌓인 감으로 보아 좋은 징조는 아니다. 창 밖의 세계수 가지 위로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엘프들의 흰 첨탑, 나무껍질 안에 파인 집들, 나뭇잎으로 만든 수로. 멀리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땅에서는 어제 떨어진 잎의 그림자가 마을 하나를 덮고 있었다. 잎이 바위산만 하니 낙엽 청소에도 국가 예산이 필요하겠다. “살려 달라는 민원을 접수하려면 먼저 생존 위험 분류를 해야 합니다.” 나는 펜을 들었다. “발신자 확인, 긴급성 확인, 정확한 위치 확인.” 루루가 손뼉을 쳤다. “멋있어요! 역시 다른 세계의 전문가!” “전문가라기보다, 같은 질문을 안 하면 나중에 욕을 두 배 먹습니다.” “그것도 멋있어요!” 아르웬은 한숨을 쉬었다. “세계수는 발신자 등록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 관리소는 세계수의 주변 민원을 담당합니다.” “고객센터 간판에 세계수라고 써 있던데요?” “소유격입니다.” “고객을 위한 고객센터가 아니라 고객 소유의 고객센터라는 거군요.” “법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와.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이런 말장난이 통한다니. 법은 위대하다. 로딘은 한쪽 날개를 접어 상담실 천장에 올려놓았다. 구조목이 비명을 질렀다. “법 따위는 집어치워라. 지하 뿌리로 내려가면 원인을 알 수 있다.” “지하 관리소 위치가 어딘가요?” 루루가 관리소 안내도를 펼쳤다. 거대한 세계수의 가지와 각 관리 구역이 촘촘히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아래쪽 뿌리 구역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없어요.” “표시가 없다는 거예요, 아니면 시설이 없다는 거예요?” “둘 다요!” 이 회사는 뿌리가 있는 나무를 관리하면서 뿌리 관리 부서가 없었다. 마치 식당에서 주방 출입구를 없애 놓고 음식이 늦게 나온다고 홀 직원만 닦달하는 꼴이다. 나는 책상 한구석에서 오래된 녹음 수정구슬을 발견했다. 전생에서 상담원이 녹취 기록을 지켜야 할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대화 내용보다 그 대화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나중에 중요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루루, 이 장치는 어디까지 저장돼?” “소리와 영상이요. 근데 천계 감사가 진행되면 자동으로 지워져요.” “그럼 독립된 저장 장치는?” “없는데요?” “과거 고객들이 항의한 적은?” “있었어요. 자료가 지워져서 접수 자체가 무효 처리됐어요.”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잘못된 시스템이 피해자에게 ‘증명해 보라’고 요구하는 방식이었다. 책상에 손끝을 올렸다. 원본을 남길 수 없다면 흔적이라도 남겨야 했다. 녹음기에 남는 음파도 결국 물리적인 흔들림이다. 그 흔들림을 따로 옮기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잉크병을 꺼내며 루루에게 얇은 잎을 여러 장 가져오라고 했다. “그 많은 잎은 어디 쓰실 거예요?” “보험.” “생명보험이요?” “아니. 서류보험.” 서류 한 장에 기대는 조직에서는 서류를 지키는 일이 곧 사람을 지키는 일이다. “좋습니다. 그러면 000번 민원에 회신부터 보내죠. 듣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세계수에게요?” 아르웬이 눈을 가늘게 떴다. “식물과 대화할 수 있는 마법사는 이 대륙에 일곱뿐입니다.” “저도 식물하고 대화 잘 못합니다. 선인장도 두 번 죽여 봤거든요.” “그런 자랑을 왜……” 나는 민원서 아래 작은 회신란을 찾아 적었다. [접수 확인했습니다. 상담원 최시온입니다. 가장 아픈 곳부터 알려 주십시오.] 잎맥처럼 가느다란 선이 종이 위에서 움직였다. [뿌리 아래. 열세 개의 고리가 매일 나를 끌어갑니다.] “오.”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답장 속도가 좋아요. 우리 통신사보다 낫네요.” [그들이 내 목소리를 지웠습니다. 오늘부터 회신도 감시합니다.] 등골이 싸해졌다. 종이 위 글씨가 잠깐 끊겼다. 검은 얼룩이 번지더니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본 민원은 잘못 접수되었습니다. 담당자에게 벌점 3점 부과.] 루루가 깜짝 놀라 종이를 가로챘다. “이건 천계 자동 감사 인장이에요! 이 글씨가 뜨면 전산 기록에서 삭제돼요!” “자동으로 삭제한다고요?” “네. 무효 민원은 보관할 가치가 없대요.” 나는 열받았다. 바로 그런 시스템 때문에 전생에서 내가 상담 녹취를 따로 저장하다 징계까지 먹었거든. 고객과 직원 모두의 말을 지우고 위에서는 ‘기록이 없다’고 우기면 그만이다. “잠깐.” 나는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가 다시 폈다. 감시 인장이 덮인 건 글씨뿐, 손끝에 느껴지는 잎맥의 온도는 그대로였다. 몸 안으로 아주 약한 맥박이 전해졌다. “루루, 원본을 복사할 방법은?” “금지된 마법이 아니면 안 될 거예요.” “마법 말고 종이요. 먹지와 압인판은 없어요?” “먹지……가 뭐예요?” 삼십 분 뒤, 우리는 잉크를 묻힌 나뭇잎 아래에 다른 잎을 깔고 문양을 눌러 찍었다. 천계 인장이 원본의 글을 지워도, 아래쪽 압인판에는 눌린 흔적이 남았다. “세상에.” 루루가 눈을 반짝였다. “최첨단 고대 기술!” “고대는 빼줘.” 아르웬은 결과물을 길게 들여다봤다. “물리 복제는 천계 기록법의 규제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합법이죠?” “규정이 미비합니다.” “좋은 말로 하면 합법이네요.” 우리는 연락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서류함을 뒤졌다. 나는 ‘뿌리’라는 낱말이 적힌 민원서를 찾아 바닥에 늘어놓았다. 대부분 처리가 끝난 건으로 표시돼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처리 내용은 모두 같았다. [관할 기관이 존재하지 않아 종료] “이게 무슨 뜻이죠?” 루루가 설명했다. “관할 담당자가 없으면 일단 완료로 처리하는 거예요. 미처리 건수가 많으면 관리소 평가가 낮아지거든요.” “완료가 아니라 방치잖아.” “평가 지표에서는 구분하지 않아요.” 나는 문득 이곳에서 내가 받은 입사 교육을 떠올렸다. ‘민원 처리란 고객의 고통을 끝내는 일이 아니라 미처리 숫자를 줄이는 업무입니다.’ 그때 농담인 줄 알았는데, 실제 지침이었나 보다. 아르웬은 서류를 한 장씩 다시 정렬했다. 손놀림이 점점 빨라졌다. 그녀도 이제 그 숫자의 뜻을 알게 된 것 같았다. “모두 제 직인을 사용해 처리됐습니다.” “소장님이 직접 하신 겁니까?” “시스템이 매월 자동 결재를 올리고, 제가 최종 확인했습니다.” “그럼 사유는 보셨나요?” 아르웬의 손이 멈췄다. “보관용 요약만 보았습니다.” 나는 그녀를 탓할 마음이 들었다가, 그만뒀다. 보고서를 백 장씩 받는 관리자는 결국 숫자만 보게 된다. 그 숫자 뒤에 얼굴이 있다는 걸 잊는 순간부터 사고가 커진다. “이제라도 현장을 봅시다.” 그녀가 서류를 접었다. “네.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그때 로딘이 허공에 앞발을 내밀었다. “그 지도를 보여 봐라.” 아르웬은 지도에 미세하게 남아 있는 푸른 실선을 손가락으로 따라갔다. “이상하네요. 이 선은 옛날에 사용하던 뿌리 순환 관로예요. 폐쇄됐다는 문서만 있고 철거됐다는 문서는 없었어요.” “그럼 누군가 문서만 지웠네요.” “그렇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서류가 유실됐을 수도 있으니까요.” “소장님.” “네.” “확률적으로 문서가 사백 년 동안 딱 필요한 부분만 유실될 수 있습니까?”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관리소 안내도의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제일 관리소부터 제칠 관리소까지 도장 표시가 있었다. 그런데 뿌리를 담당하는 기관은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해서 물었다. “원래 우리 외에도 관리소가 여섯 개 있었던 거죠?” “네. 대륙 각지에 있습니다.” “왜 모두 가지 위에만 있습니까?” “가지에 민원이 집중되니까요.” “원인이 뿌리에 있으면 다들 뿌리로 내려와야 할 텐데.” 아르웬이 입술을 다물었다. 나는 그때 그녀도 무엇인가 의심하기 시작했음을 알았다. 루루는 멀찍이 떨어져 있던 작은 서랍 하나를 열었다. 안에는 거의 새것처럼 깨끗한 접수 도장이 가득했다. 한 번도 쓰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건 왜 이렇게 많아?” “폐쇄된 기관용 도장이에요. 반송 도장만 맨날 쓰니까 신청인 접수 도장은 필요가 없대요.” “대단한 기관이네. 고장 나면 고치는 것보다 신고하는 방법부터 없애 버렸잖아.” 나는 도장 하나를 챙겼다. 손잡이에 ‘현장 확인’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원래라면 가장 많이 닳아 있어야 할 도장이었다. 그런데 보관함에서 가장 반짝였다. 나는 열세 개의 고리 위치를 표시한 세계수의 답장을 건넸다. 로딘은 오래된 화상 흉터가 있는 발톱으로 세 번째 고리를 짚었다. “사백 년 전에도 이 자리에 하나가 있었다. 저들은 뿌리에 사슬을 묶고 하늘로 피를 끌어올렸다.” “그때 왜 안 막으셨는데요?” “막았다. 그래서 내 등에 흉터가 남았다.” 로딘이 비늘을 살짝 젖혔다. 산맥처럼 솟은 등을 가로질러 반듯한 흉터가 있었다. 자연적으로 난 상처가 아니라 뭔가 거대한 금속 이빨에 물린 자국이었다. 그 순간 로딘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나와 함께 싸운 용이 셋 죽었다.” 내가 가벼운 대꾸를 찾는 사이 루루의 날개가 축 처졌다. 아르웬조차 눈을 돌렸다. 나는 답장에 한 줄을 더 적었다. [현장 확인을 진행하겠습니다. 다만 안내도가 없으니 출입 경로를 부탁드립니다.] [나의 그림자에 들어오세요.] “시적이네요.” [당신이 앉아 있는 책상 밑입니다.] 나는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봤다. 내가 사흘간 발을 올려 두었던 곳, 벌레 먹은 나무 바닥의 옹이 하나가 눈처럼 깜박였다. “……소장님.” “왜 그러죠?” “여기 혹시 사무실이 아니라 출입구 위에 지어진 건가요?” 바닥이 꺼졌다. “그런 설계는 승인한 적이……” 우리 셋의 비명이 동시에 울렸다. 로딘은 너무 커서 구멍에 못 들어가고 머리만 집어넣었다. “인간! 반드시 돌아와서 내 온천도 해결해라!” 죽을 수도 있는 순간에 저 인간…… 아니, 저 용은 정말 한결같았다. 구멍 아래, 깊은 어둠 속에 작은 팻말이 보였다. [뿌리 관리소: 401년째 폐쇄 중] [현재 근무자: 0명] 아주 익숙한 숫자였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부서에는 늘 담당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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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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