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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1화
PAYLUA ORIGINAL · 제1화

1화. 세계수 고객센터는 오늘도 불통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4,834자

오프라인 책장
내가 이세계에서 처음 배운 사실은 세 가지였다. 첫째, 엘프는 생각보다 키가 크다. 둘째, 정령은 생각보다 말을 많이 한다. 셋째, 드래곤도 민원을 넣는다. 세 번째가 문제였다. “내 온천을 돌려내라!” 눈앞에서 비늘 덮인 거대한 머리가 책상 위로 내려왔다. 콧구멍에서 흘러나온 연기가 서류 한 장을 태웠다. 새로 산 책상은 입사 기념품이 아니라 방패였던 모양이다. 나는 남은 서류를 슬쩍 옆으로 밀었다. “고객님, 우선 접수부터 도와드리겠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네. 성함은 로딘 님. 종족은 드래곤. 민원 내용은 세계수의 낙엽 때문에 용암 온천의 수온이 내려갔다는 것이죠.” “정확하다!” “그래서 처음부터 성함을 말씀해 주셨으면 서로 편했을 텐데요.” 로딘의 동공이 좁아졌다. 아, 마지막 말은 속으로만 해야 했는데. 고객센터에 출근한 첫날부터 불길한 조짐은 있었다. 첫 번째 민원은 ‘너무 일찍 꽃이 피어서 연애 고백을 망쳤다’는 요정의 항의였다. 두 번째는 ‘달빛이 밝아서 잠을 못 잔다’는 늑대인간의 청구였고, 세 번째는 바람 정령이 ‘하늘에서 비가 내려 젖었다’고 환불을 요구한 사건이었다. 나는 셋 다 상담했다. 공통점은 하나였다. 누구도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가장 황당한 건 직원 복지 안내였다. “연차는 며칠입니까?” 내 질문에 루루는 커다란 도장을 굴렸다. “매년 나뭇잎 세 장이 떨어질 때마다 하루예요!” “그 나뭇잎이 백 년에 한 번 떨어진다는 소문이 있던데?” “와, 규정을 벌써 이해하셨어요!” 나는 진심으로 이 정령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정령에게 멱살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대신 급여명세서를 요구했다. 월급은 금화 열두 닢, 숙식 제공, 위험 수당 없음. 위험 수당이 없는 이유를 묻자 아르웬 소장은 “안전한 기관이라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근무 이틀째에 폭풍 정령이 소파를 날려 보냈고, 셋째 날에 드래곤이 방문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안전’은 사람 이름인 모양이다. 그 때문에 나는 책상 아래에 작은 비상 가방을 숨겨 두었다. 물통, 말린 빵, 붕대, 그리고 퇴직 신청서 다섯 장. 아쉽게도 오늘은 드래곤의 꼬리가 그 가방을 깔고 앉아 있었다. 재난이 일어나도 내 물건 하나 못 챙긴다는 사실이 어째 제일 분했다. 나는 전생에 콜센터에서 십이 년을 일했다. 보험, 통신, 택배, 가전 수리를 두루 거쳤다. 고객이 욕을 해도 웃고, 시스템이 다운돼도 웃고, 팀장이 ‘고객님 마음을 헤아리라’고 하면 마음속에서 팀장을 세 번쯤 헤아린 뒤에 또 웃었다. 그러다 야근하고 퇴근하던 날, 횡단보도에서 사고를 당했다. 다음에 눈뜬 곳은 병원이 아니라 구름 위 면접장이었다. 면접관은 날개가 달린 작은 정령이었다. 자기소개 대신 내 이력서를 읽더니 울먹였다. “십이 년 동안 악성 민원에 버티셨다고요? 선생님, 저희를 구해주세요.” “연봉은요?” “숙식 제공입니다!” “퇴직금은?” “세계가 멸망하면 모두 함께 퇴직합니다!” 그때 도망쳤어야 했다. 그렇게 입사한 곳이 아르보라 세계수 제칠 민원관리소, 통칭 ‘세계수 고객센터’였다. 세계수는 이 대륙 한가운데 솟은 거대한 나무다. 구름을 뚫고 올라간 줄기와 대륙을 가로지르는 뿌리가 마법의 흐름을 조절한다. 가지에는 계절이 달려 있고 잎맥마다 작은 강과 숲의 운명이 얽혀 있다. 문제는 이 훌륭한 나무에 고객센터를 만든 놈이 있다는 거다. “고객님, 현장 사진은 있으십니까?” “나를 못 믿겠다는 거냐?” “아닙니다. 고객님의 피해를 정확하게 보상받으시려면 증거가 필요합니다.” 로딘이 입을 벌렸다. 불꽃이 보였다. 드디어 내 두 번째 인생도 끝나는가 싶었다. 툭. 드래곤의 혀 위에서 수정구슬 하나가 굴러나왔다. “여기 있다!” 수정구슬에는 김이 식은 화산 호수가 비쳤다. 주변 바위에는 거대한 황금빛 낙엽 자국이 남아 있었다. 확실히 뭔가 떨어지긴 했다. “온천이 식으면 어떤 피해가 생기나요?” “목욕을 못 하지!” “그 외에는요?” “내 하루의 품격이 훼손되지!” “피해액 산정이 조금 어렵겠습니다.” 내 어깨 위로 반딧불 같은 정령이 날아올랐다. 민원 접수 담당 루루였다. 몸통보다 큰 안경을 걸친 데다, 목소리는 종소리처럼 쨍쨍했다. “시온 님! 품격 훼손은 정신적 손해예요! 제육 서식에 있어요!” “제육 서식이 뭔데?” “잃어버린 수면, 상한 자존심, 상한 우유를 한 장에 적는 서식이요!” “우유는 왜 들어가는데?” “옛날에 젖소 수인 조합이 항의해서요.” 이곳의 행정은 이미 한 번 망한 뒤에도 누가 수리하지 않은 건물 같았다. 그때 문이 열렸다. 은빛 머리카락을 단정히 묶은 엘프가 들어왔다. 관리소장 아르웬이었다. 새하얀 제복, 딱 맞는 장갑, 무엇보다 모든 규정을 외울 것 같은 눈빛.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부류다. “최시온 상담원. 드래곤 고객에게 무례한 발언은 삼가세요.” “아직 불에 타지 않았습니다. 꽤 정중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중함은 생존 여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여긴 판단 기준이 까다롭네요.” 아르웬은 내 책상 위로 접수부를 펼쳤다. 그녀가 말하기 시작하면 대개 종이부터 늘어난다. “세계수의 낙엽은 원래 백 년에 한 번씩 떨어집니다. 따라서 이 건은 자연재해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잠깐.” 나는 수정구슬을 확대했다. 낙엽의 가장자리에는 잿빛 선이 있었다. 일반적인 가을 낙엽처럼 마른 것이 아니라, 안쪽에서 타들어 간 모양이었다. “백 년에 한 장인가요?” “평균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럼 이번 달에 떨어진 건 몇 장이죠?” 아르웬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루루의 안경이 흘러내렸다. “열세 장이요.” “뭐?” “이번 달에만 열세 장이 떨어졌어요. 접수된 피해 지역은 열세 곳이고요.” 침묵이 내려앉았다. 로딘은 내 책상을 내려다보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건 낙엽이 아니다.” 드래곤이 낮게 중얼거렸다. “사백 년 전에도 그랬지. 뿌리가 썩기 전에 잎부터 떨어졌다.” 아르웬의 얼굴빛이 변했다. “그 사건은 공식 기록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식 기록에 없으면 내 기억도 없어지나, 엘프?” 분위기가 급속히 무거워졌다. 나만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 직장인으로서 파악해야 할 것은 하나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쓸데없이 끼어들면 일이 내 몫이 된다는 것. “그럼 저는 일반 상담으로 종결하고……” 띠링. 책상 위 통신나무가 울렸다. 나무껍질에 금빛 글자가 떠올랐다. [긴급 내부 경보] [세계수 생명력 잔여 예상: 30일] [핵심 에너지 추출 기록 확인] [수취 기관: 천계 전력청] “……종결은 어렵겠네요.” 루루가 팔랑거리며 내게 달라붙었다. “시온 님! 이런 알림 처음 봐요! 어떻게 하죠?” “소장님께 보고.” “이미 보고됐어요!” “상부에 보고.” “상부가 천계예요!” “그럼 퇴사.” “퇴사는 사흘 전에 신청하셨잖아요! 반려됐어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좋은 직장은 찾기 어렵다더니, 이세계에서도 사실이었나 보다. 나는 바닥을 덮은 서류 중 하나를 펼쳤다. 거기에는 북쪽 산맥의 눈이 한여름에 녹아 마을이 잠겼다는 신고가 있었다. 다른 종이에는 항구에서 바람이 멈춰 배들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내용, 또 다른 종이에는 숲을 지키던 정령들이 갑자기 잠들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숫자로만 보면 피해 사례가 열세 건이었다. 그런데 한 사건의 뒤에 가려진 사람들은 수백, 수천이었다. 나는 메모장을 펼쳤다. ‘낙엽 위치, 피해 방향, 이상 마력.’ 열세 장의 잎은 서로 다른 위치에 떨어졌다. 하지만 잎맥에 나타난 검은 선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세계수의 뿌리였다. “이거 우연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르웬이 메모장을 가져가 훑어봤다. “정확히는 표본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표본이 충분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나무가 먼저 죽는데요.” “……그렇군요.” 그녀는 처음으로 나를 향해 공격적인 반론을 하지 않았다. 약간 불길했다. 상사가 동의하면 보통 일을 시킨다는 뜻이다. 루루는 종이 더미에서 작은 나뭇잎 모양 명찰을 찾았다. 그리고 내 제복에 꽂아 주었다. [최시온 | 민원 담당] “왜 갑자기?” “정식 직원이어야 위험 구역 출입이 가능하니까요.” “위험 구역에 가고 싶다고 한 적 없는데.” “그럼 좋네요! 모든 준비가 됐어요!” 전생에서 배운 귀한 교훈이 하나 떠올랐다. 준비가 끝났다는 말은 대부분 책임질 사람이 정해졌다는 뜻이다. 그때 로딘이 가까이 다가왔다. “인간. 사백 년 전에 나무를 병들게 한 자들이 돌아왔다.” “그 사람들 고객센터 회원 가입은 했습니까?” “뭐?” “불법으로 뭘 가져갔으면 일단 가입 정보라도 있어야 잡죠.” 로딘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뭔가 심오한 질문을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냥 내 말이 너무 하찮아서일 수도 있다. 통신나무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한 번이 아니었다. 열 번, 스무 번, 백 번. 접수함에서 민원서가 쏟아져 나와 바닥을 덮었다. 발신자는 모두 같았다. [발신자: 세계수 아르보라] [접수번호: 000] [민원 내용: 살려 주세요.] 나는 그 종이를 한 장 주워 들었다. 아까부터 세상이 조용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바깥에서는 새들이 일제히 울음을 멈추고 있었다. 창 너머 구름을 가로지르던 거대한 잎 하나가 천천히 떨어졌다. 열네 번째였다. “루루.” “네?” “우리 고객센터, 고객이 죽으면 어떻게 돼?” “……폐업이요.” 아. 드디어 마음에 드는 인사 제도가 나왔다. 그런데 기뻐할 새도 없이 마지막 민원서 뒷면에서 조그만 글씨가 떠올랐다. [본 민원은 담당 상담원 최시온에게만 전달됩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들을 믿지 마세요.] 나는 종이를 내려다봤다. 내 이름을 나무가 어떻게 알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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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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