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 금고의 경보는 참 정중했다.
[고객님의 소중한 증언서가 일몰에 자동 전달 완료 처리됩니다.]
"소중하면 건드리지 마!"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유엘이 움찔했다. 아르웬이 내 팔꿈치를 슬쩍 잡았다.
"공공기관에서 고성은 삼가 주세요."
"그럼 공공기관도 남의 증언서를 마음대로 종결하지 말라고 해 주세요."
헤스틴은 금고 안쪽의 푸른 금속문 앞에 섰다. 문 위에는 열쇠 구멍 대신 귀 모양의 홈이 있었다. 보관인의 말을 듣고 여는 문이라고 했다.
"제14 계정의 변경 요청은 기록 자체를 파괴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미발송 상태를 '발신자 의사에 따른 전달 완료'로 바꿉니다. 그러면 라에가 왜 봉인했는지를 더 이상 묻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남의 대답을 만들어 버리는군요."
"아직 요청자와 변경 효과를 확인해야 합니다. 서두르되 단정하지 마십시오." 아르웬이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화가 나도 증거는 정확해야 한다.
우리는 헤스틴이 제공한 외부 로그만 확인했다. 요청은 제14 계정에서 왔고, 수신자는 기록국 시스템이었다. 라에의 개인 인장으로 서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처리 조건에 '관리자 부재 시 자동 승인'이 들어 있었다.
나는 잠시 웃었다.
"우리 옛 회사에는 관리자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 했는데요. 여긴 관리자가 없으면 모든 일을 하네요."
"효율적이지 않느냐?" 로딘이 물었다.
"불 끄러 온 사람이 없으면 불이 알아서 더 커지는 걸 효율이라고 하진 않습니다."
로딘은 한참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비유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군."
헤스틴은 일몰 전까지 보전 신청을 낼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신청서 양식에 '증언서의 내용'을 적으라는 항목이 있다는 것이었다.
"내용을 몰라서 보존하려는데, 내용을 적으라는 겁니까?"
"관행상 그랬습니다."
"그럼 관행부터 멈춰 주세요. 봉인을 풀지 않은 상태에서도 외부 상태와 변경 위험은 확인했잖아요."
유엘이 기록 규정집을 뒤졌다. 한참 뒤 작은 조항을 찾아냈다.
[비공개 자료 긴급 보전: 본문을 열지 않고도 권리 침해 위험을 소명할 수 있음.]
"있네요." 내가 말했다.
"왜 아무도 안 알려 줬을까요?" 루루가 물었다.
"자주 안 쓰는 권한은 서랍 맨 뒤로 밀리거든."
우리는 긴급 보전 신청을 제출했다. 외부 로그와 라에의 열람 조건, 첫 봄 회신의 현재 수신 확인증을 첨부했다. 문을 열지 않고 문이 열릴 위험을 설명하는 데 꼭 필요한 자료만 사용했다.
그사이 세계수와 연결된 잎맥 통신판이 켜졌다. 니아가 수액의 압력을 확인해 주었다.
'현재 세계수의 반응은 안정적입니다. 직접 질문 의사를 확인할 수 있어요. 다만 지금은 민감한 기억을 열람하는 중이니 짧게 부탁드립니다.'
나는 잎 앞에 앉았다.
"세계수님. 라에가 남긴 증언서가 발견됐습니다. 세계수님이 과거에 왜 답장을 받지 못했는지와 관련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안에는 다른 존재의 비밀도 있을 수 있어요. 질문을 보내시겠습니까?"
바람이 한동안 멈췄다.
그 사이 루루는 무슨 말이라도 하려다가 내 표정을 보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훌륭한 발전이었다. 전생 회사에서는 이 정도 교육 효과를 내려면 월별 평가가 필요했다.
잎에 작은 문장이 떠올랐다.
[묻고 싶습니다.]
[왜 내게 봄마다 다시 묻겠다고 말해 놓고, 내 답을 받지 않았습니까?]
[다만 라에가 아프지 않도록 해 주세요.]
나는 세 번째 문장에서 잠시 말을 잃었다.
세계수는 자기 계약이 어긋났다는 사실보다, 자신을 도우려던 누군가가 다시 아플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 질문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증언서 공개 범위는 따로 확인받고요."
잎이 조용히 접혔다.
[나 대신 답하지 말아 주세요.]
"그건 자신 있습니다. 전 원래 정답을 잘 모르는 사람이거든요."
루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온 님이요?"
"야, 오늘 같은 날은 좀 넘어가 줘."
헤스틴이 우리 대화를 지켜보다가 말했다.
"현재 당사자의 질문은 확인됐습니다. 봉인 조건을 한 단계 충족했습니다. 그렇지만 라에의 안전 조건이 남았습니다. 증언을 열고 나서 공개 범위를 정하면 늦습니다."
"그럼 누가 판단합니까?"
"원래는 발신자가 지정한 독립 입회인이 필요합니다. 지정된 이름이 하나 있지요."
헤스틴이 외부 표지의 아래쪽을 문질렀다. 낡은 글씨가 빛났다.
[안전 입회인: 다모]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 토마토 온실의 다모?
"그분한테 연락하면 되겠네요."
"다만……" 헤스틴의 표정이 묘해졌다. "입회인은 열일곱 해 동안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저희가 먼저 묻죠."
일몰을 알리는 먼 종소리가 울렸다.
[자동 전달 완료 예정까지: 2시간]
우리에게 남은 건 두 시간, 비공개 증언서 한 통, 연락이 닿을지 모르는 노인 하나였다.
정말, 상담원 채용 공고에 이 조건들을 좀 적어 놓으라고.
제19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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