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음 표시에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마음이 놓이고, 받은 사람은 대답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그런데 내가 읽지 않은 편지에 누가 읽음 표시를 붙인다면?
그건 친절이 아니라 사칭이다.
도렌의 전달소에서는 사백 년 전의 서명 세 개가 드러나자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루루는 서명 모양을 그려 보겠다고 종이를 잔뜩 가져왔고, 로딘은 그 서명을 보자마자 '내가 아는 사람이 분명하다'며 호언장담했다.
"누군데요?" 내가 묻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쨌든 내가 알 만한 사람이다."
"그럼 그건 아직 증언이 아니고 감상평입니다."
"말을 좀 곱게 할 수 없느냐!"
"고객님, 정확한 설명을 드리는 중입니다."
지워진 것은 글자였지 흔적 전체가 아니었다. 서명 자리에 사람의 손, 작은 물방울, 종 모양의 자국이 차례로 찍혀 있었다. 세 명의 개인이었는지, 세 공동체의 표식이었는지 단정할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사백 년 전의 봉인에 독립된 세 가지 확인 흔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르웬이 그 위의 문구를 읽었다.
[전달 확인 참가자: 강가 마을 대표, 수로를 지키는 자, 첫 봄 종지기]
[확인 대상: 질문의 전달 및 회신의 유치]
[계약 효력 승인 여부: 별도 기재 없음]
"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는 편지를 어디에 뒀는지 확인한 사람들을 계약 보증인으로 바꿔 놨군요."
"아직 공증탑의 제2 서명과 같은 기록인지는 대조가 필요합니다." 아르웬이 말했다.
"맞아요. 같은 목소리처럼 들렸고 시대도 맞지만, 이 표식 하나로 확정하면 또 누군가 대신 서명하는 셈이죠."
루루는 그 말에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손을 잡았다.
"시온 님. 그럼 제 도시락 영수증에도 제가 직접 사인할게요."
"지금 그게 중요하니?"
"중요해요! 제 이름을 다른 사람이 쓰면 안 되잖아요!"
딱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정령들은 가끔 어떤 학자보다 빨리 핵심을 이해한다.
그때 니아의 통신석이 붉게 변했다.
'중앙 기록국이 회수 부표 정지 상태를 확인하고, 자동 수취 완료 처리만 별도로 재요청했어요. 물리 회수는 멈췄지만 전산상 수취 처리를 진행하려는 거예요.'
"회수는 못 했으니까 받은 걸로 치겠다는 겁니까?" 해스가 기막혀 했다.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의 실적만 빼앗는 방식이랑 비슷하네요."
아르웬은 자동 요청의 조건을 확인했다.
[수취 완료 후보 사유: 원본 수신자 확인]
[완료 효과: 과거 전체 배송 이력의 소급 정리]
[계약 효력 부속 분류: 기존 값 유지]
문제가 선명해졌다. 세계수가 지금 편지를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수신 확인을 이용해 사백 년 전에 이미 배달됐다고 소급 처리하려는 셈이었다. 그렇게 되면 당시 재질문에 대한 미전달 사실이 지워지고, 이후 계약 갱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오늘 받은 건 오늘 받았다고 적어야죠." 내가 말했다.
"근데 기록국에서는 반송 이력을 정리하려는 목적이라고 주장할 겁니다." 아르웬이 지적했다.
"정리와 지우기는 다르니까요. 근거를 나눠 보죠."
우리는 네 개의 기록을 분리했다. 첫 봄에 질문이 발송된 기록. 그 질문이 종탑에 도착한 경로의 흔적. 회신이 제삼 수로에 유치된 이유와 기간. 그리고 오늘 세계수가 직접 수신해 내용을 확인한 사실. 과거 배송 완료 여부는 여전히 미확인이라고 적었다.
도렌은 오늘 날짜를 표시한 새 우편 확인증을 만들었다.
[현재 시점 수신자 직접 확인: 완료]
[과거 첫 봄 배송의 수신 확인: 기록 부족으로 조사 중]
[과거 계약 효력 판단: 본 확인증의 대상 아님]
"이렇게 쓰면 되겠군요." 달팽이가 말했다.
"정확합니다. 특히 마지막 줄이 마음에 드네요."
로딘은 아직도 서명 흔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수로를 지키는 자라…… 내가 그 봄에 강가에 불을 놓아 얼음을 녹였는데, 설마 저건 내 흔적이냐?"
"드래곤 님은 물방울 모양으로 사인하십니까?"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멋있지 않으냐?"
"멋있다고 증거가 되진 않습니다."
도렌이 작은 종을 쳤다. 이번에는 수신 확인증을 발행했다는 뜻이었다. 소리는 전달소 안을 한 바퀴 돌아 은은하게 사라졌다.
얼마 뒤 오르셀의 긴급 회신이 도착했다.
[현행 수신 사실의 소급 적용 금지: 임시 보전 결정]
[첫 봄 배송 이력과 현행 계약 효력의 자동 병합 금지]
[기술실 실행 확인 필요]
"또 기술실이군요." 나는 중얼거렸다. "법정이 결정을 내려도 결국 선을 뽑는 건 사람 손이라니까."
해스가 배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도렌은 기술 담당자에게 필요한 연결 장치의 구조를 보여 주었다. 우리는 회수 정지를 유지하면서, 데이터 병합을 막는 수동 잠금을 확인했다.
그때 은빛 명령창이 한 번 번쩍였다.
[소급 완료 처리: 보류]
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오늘 우리가 지켜 낸 것은 편지 한 통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대답이 늦게 도착했다는 사실 자체였다.
제18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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