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백 년 전의 목소리를 듣는 데 필요한 것은 값비싼 마법이 아니었다.
안전 확인. 출처 확인. 말하는 사람의 허락. 끝까지 듣겠다는 약속.
생각해 보면 전생에서 고객의 말을 끊지 않는 법을 배우는 데 십이 년이 걸렸다. 지금은 세계수 한 그루가 내게 같은 교육을 다시 하고 있었다.
세미는 씨앗 아래에 얇은 나뭇잎을 깔았다. 니아는 수액 압력을 확인했고, 제로는 대체 해석 통로가 원본 재생에 섞이지 않는지 점검했다. 아르웬은 원본 열람 내용을 현장에서 외부로 전송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다시 읽었다.
루루가 두 팔을 쭉 뻗었다.
"준비됐습니다!"
"왜 네가 더 긴장하니?"
"사백 년 묵은 민원이잖아요! 저희 역사상 제일 오래된 건이에요!"
"고객센터 역사상 최고의 장기 미처리 건이군. 상장이라도 줘야 하나."
로딘이 나를 흘겨봤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과 오래된 피로가 섞여 있었다.
"듣고 나면 내가 알던 옛날이 달라질까 봐 두렵다."
"그럴 수도 있죠." 내가 말했다. "하지만 로딘 님이 그 겨울에 불을 나눠 줬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건 그렇지. 나는 아주 뛰어난 불꽃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 자신감은 사백 년이 지나도 안 변하네요."
세미가 제1 당사자석 앞에 섰다.
"이 열람은 당시 기록의 보존된 음성을 보여 주는 겁니다. 지금 들리는 말이 현시점의 계약을 자동으로 갱신하거나 종료시키지는 않아요."
"좋습니다. 듣는 게 서명이 되는 건 아니죠."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호박빛 씨앗이 열렸다. 바람이 밀려와 흙과 눈 냄새를 가져왔다. 다시 옛 마을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아이들이 얇은 모포 아래 웅크리고 있었고, 강은 얼어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막힌 물길 앞에 서서 세계수를 올려다봤다.
'큰 나무여, 다가올 긴 겨울 동안 우리에게 물과 온기를 빌려주겠습니까?'
기다림이 시작됐다. 나뭇가지가 느리게 움직였다. 그때 누군가 서둘러 말하려다 다른 사람에게 제지당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세계수의 목소리가 흘렀다.
'나는 아직 영원한 약속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숨을 멈췄다.
'그러나 이 겨울을 견딜 물과 온기는 내어 주겠다. 필요한 만큼 먼저 나누고, 봄이 오면 다시 물어라.'
그 목소리는 늙지도 젊지도 않았다. 숲에 걸린 바람이 한 번 말을 배워 내는 듯했다.
'그 사이 뿌리가 아프면 멈출 수 있게 하라. 사람들의 삶도, 나의 삶도 지켜야 한다.'
잠시 침묵.
'나 대신 누군가 오래도록 대답하게 하지 마라.'
그다음에 들린 것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계약서에 승낙을 기입하지 않으면 공급 설비를 만들 수 없습니다. 계속 공급에 동의하신 것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세계수의 대답이 다시 울렸다.
'그렇게 쓰지 마라. 한 겨울의 약속이다. 다음 계절에는 다시 묻거라.'
그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금속성 종소리가 끼어들었다. 우르르 무언가 굴러가는 소리. 급히 서류를 걷어가는 발걸음. 그리고 한 목소리가 낮게 말했다.
'두 번째 자리는 비워 두세요. 아직 증인이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기록이 조용해졌다.
나는 손을 내리지 못했다.
세계수는 무조건 거부한 것도 아니었고, 영원히 승낙한 것도 아니었다. 겨울 동안 돕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봄에 다시 묻자고 했다. 그 사이 다치면 멈출 권리도 요구했다.
이것을 '영구 공급 승낙'이라고 적었다고?
전생의 콜센터에서 아무리 악독한 성과관리자가 왔어도 '다음 주에 다시 통화하자'를 '평생 회원가입 완료'로 적진 않았다. 아니, 잠깐. 그런 회사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로딘 님." 내가 불렀다.
드래곤은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때 사람들이 얼어 죽지 않게 돕는 일이 옳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후에 봄이 여러 번 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군."
"봄이 올 때마다 다시 물어야 했던 거네요." 루루가 속삭였다.
"그럴 가능성이 아주 크지." 내가 말했다. "다만 누가 어떤 형식으로 물었고, 이후에 새로운 동의가 있었는지는 별도로 조사해야 해. 지금 확인한 건 그날 실제로 어떤 말을 했는지야."
제로가 말끝을 받았다.
'17년 전 라에의 정비 쪽지와 직접 기록이 맞물려요. '빈자리는 남겨 두라'는 이유가 분명해지네요. 독립 증인이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시 공급 약속을 영구 계약으로 바꾸지 못하게 하려던 거예요.'
"아직 증인이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아르웬이 덧붙였다.
"네. 그건 또 찾아야 하죠."
세미가 허락을 받기 위해 다시 뿌리 앞에 섰다. 원본의 음성 전체를 복제할 수는 없었지만, 세계수는 사건 심리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핵심 발언의 정확한 서면 기록을 제한적으로 내보내는 데 동의했다. 세미는 직접 확인한 구간과 미확인 구간을 분리했고, 우리는 증인석의 신원은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고 적었다.
아르웬이 초안을 읽었다.
[확인된 원본 발언 요지: 그 겨울 동안의 물·온기 지원. 다음 계절에 재확인 요청. 뿌리 손상 시 정지 요구. 영구적 대리 응답 금지.]
[미확인: 이후 계약 갱신 기록, 제2 증인의 신원, 현행 계약의 법적 효력.]
나는 서류에 내 서명이 아니라 '조사 사실 확인' 표시만 남겼다. 권한 밖의 확정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날 저녁, 세계수의 잎 하나가 창문으로 날아왔다.
[고맙습니다. 이제 내 대답을 기억합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하게도 힘든 하루였는데 오래간만에 퇴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니아가 말했다.
'잠깐만요. 현행 계약 장부에 원본 발언과 정반대인 문구를 누가 확정했는지 확인하려면 천계 측 최초 공증 기록이 필요해요.'
"그건 어디 있는데?"
'중앙 공증탑입니다.'
나는 창밖을 보았다. 구름 위로 검은 탑의 그림자가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아, 퇴근은 또 글렀다.
제16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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