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검은 조판실 앞은 작은 법정이 됐다.
정식 재판장이 열린 건 아니었다. 헤이든 재판장이 내린 임시 결정에 따라 관계인들이 증거를 확인하는 현장 심리였다. 오르셀이 절차를 관리했고, 레벤은 인쇄소의 정정 기록과 현재 배포 구조를 제시했다. 아르웬은 주민 응답의 원본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나는 증인석 앞에 앉았다.
증인석이라고 해 봐야 접이식 의자였다. 내가 앉자 의자가 길게 삐걱거렸다.
"그거 망가지면 제 탓은 아니죠?" 내가 물었다.
"사건과 관련 없는 진술은 삼가십시오." 오르셀이 대답했다.
"그러면 의자의 입장은 누가 듣죠?"
루루가 옆에서 손을 들었다.
"제가 의자 민원 접수할게요!"
오르셀이 이마를 누르며 숨을 쉬었다. 이 사람의 인내심은 세계수보다 오래갈지도 모른다.
첫 번째로 확인한 것은 노의 직접 표시였다. 심리가 시작되기 전에 묵에게 의자를 하나 놓아 주려고 했지만 그는 작업판 옆에 남겠다고 했다. 안전상 봉인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여서 통화관으로 참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노에게도 질문을 받는 시간을 따로 마련했다. 법정의 모두가 원한다는 이유로 활자 하나에게 끝없는 진술을 강요하는 건 우리가 반대해 온 일과 다를 바 없었다. 루루는 노의 휴식 요청을 받으면 즉시 통화관을 멈추겠다고 약속했다.
"증인 보호는 글자에게도 적용되나요?" 그녀가 물었다.
오르셀이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적어도 강제로 문양을 찍게 해서는 안 되겠지요."
나는 그 대답을 들으며 속으로 웃었다. 이 천계에도 말이 통하는 순간은 있었다. 작은 금속 활자는 어제처럼 종이 위에 부정 문양을 새겼다. 관측창 너머에서 원본과 거울 출력이 함께 제시됐다. 원본은 '아니오', 거울의 오래된 인쇄 예시는 '승낙'이었다.
"이 표시가 언제나 모든 계약에 대한 거부를 의미합니까?" 레벤이 물었다.
"아닙니다." 내가 대답했다. "노가 어떤 요청에 답했는지, 그 말이 누구의 권한에 해당하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원본과 출력이 다르다는 건 확인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과거 계약이 무효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레벤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내가 기계가 나쁘니 계약을 전부 불태우자고 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저를 그렇게 보지 마세요. 종이를 불태우면 제 업무량이 줄어든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래도 사람 사는 마을까지 불태우자는 건 아니니까요."
두 번째는 묵의 증언이었다. 그는 작업대 밖으로 연결된 통화관에서 말했다.
"열일곱 해 전 원본을 수정하지 않은 채 배포본 문양만 바꿨습니다. 누가 왜 승인했는지는 제 작업 권한 밖이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승인 도장은 왔지만 서명인은 비어 있었습니다."
"누가 실제 명령했는지 아십니까?" 오르셀이 물었다.
"모릅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할 생각도 없습니다."
나는 묵이 그 말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지 생각했다. 칠십 년 동안 자기 앞에서 오간 종이에 이의를 제기하고도 아무도 들어 주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때 레벤이 낡은 작업 일지를 펼쳤다. 우리는 모두 그를 바라봤다.
"제가 중앙 등록부에서 확보한 자료입니다. 제4 보정실의 정정판은 '효율성 개선' 명목으로 등록됐습니다. 그러나 그 등록은 법적 동의의 진정성을 보장하는 검증 절차와 구분돼야 합니다. 저는 당시 담당자가 아니었고, 현재 등록부만으로 실제 승인자를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의 말투는 여전히 딱딱했지만, 일주일 전과는 달랐다. 그때는 도장만 있으면 절차가 끝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그 도장이 무엇을 증명하지 못하는지까지 말하고 있었다.
나는 심리가 끝날 무렵 한 가지를 제안했다.
"출력 기록에 최소한 세 칸은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받았는지,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존 필수 공급은 어떻게 유지할지요. 그걸 한 칸으로 합치면 같은 문제가 반복됩니다."
"그러면 보류와 거부가 늘어날 겁니다." 레벤이 말했다.
"네. 원래 있던 게 보이겠죠."
"처리 속도가 느려질 수도 있고요."
"정확하지 않은 일을 빨리 하면 더 큰 비용이 듭니다. 저도 콜센터에서 열두 해 겪었습니다. 고객에게 '처리됐습니다'라고 말하고 아무것도 안 했을 때가 제일 무서웠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로딘이 낮게 웃었다.
"인간들이 드디어 드래곤이 세금을 내기 싫다고 말했을 때의 마음을 이해하는군."
"그건 별건입니다, 고객님. 미납 세금은 계속 별도로 처리하세요."
"배신자!"
누군가 현장에서 웃었다. 묵이었다. 노도 몸을 조금 흔들었다. 나는 그 웃음이 이번 심리에서 가장 중요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오르셀은 보전 조치의 범위를 정리했다. 신규 표준 승낙값 생성은 중단 상태 유지, 과거 기록은 삭제하지 않고 변경 전후와 근거를 병기, 개별 주민의 응답은 별도 저장. 신규 계약 변경 효력의 판단은 관할 심리에서 계속 다룬다. 실무상 필요한 확인서는 발급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계약 당사자의 동의로 바뀌지는 않는다.
"그럼 기계 이름도 바꾸죠." 내가 말했다.
"명칭 변경은 관할 밖입니다." 오르셀이 답했다.
"그래도 저는 '예스맨 생산 공장'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공식 문서에는 기재하지 마십시오."
"그럼 제 마음속 문서에만요."
심리 후 묵이 작은 함 하나를 투입구로 밀어냈다. 안에는 구겨진 초안과 빛바랜 검수표가 있었다.
[원본 소거 불가 사유: 최초 계약의 응답권 보호 조항]
[보호 조항 참조 위치: 세계수 하부, 최초 발언 보관실]
나는 서류를 들고 한참 서 있었다. 원래 있던 장치는 말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말 바꾸는 장치로 만들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끝까지 원본을 남겨 두었다.
"묵 씨, 이 기록은 제가 가져가도 됩니까? 원본은 여기에 봉인하고 사본만 확인받겠습니다."
"그러라고 모아 둔 거야. 근데 그 보관실, 함부로 열지는 마."
"왜요?"
"그곳에는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의 대답만 있는 게 아니거든."
나는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
그때 루루가 내 옆에서 조용히 물었다.
"시온 님, 죽은 사람한테도 동의서를 받아야 해요?"
나는 대답을 고르느라 오래 걸렸다.
"그 사람이 남긴 뜻을 확인할 방법부터 찾아야지. 없으면 없다고 적어야 하고."
"그럼 그 보관실은 정말 중요하겠네요."
"응. 그래서 더 천천히 가야 해."
내가 그 말을 끝내자 검은 조판실의 종이 한 번 울렸다. 이번엔 경보가 아니었다. 오래된 기계가 쉬어도 된다는 듯 울리는, 맑고 짧은 소리였다.
제15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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