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두 시간을 앞두고 우리는 첫 번째 시험을 시작했다.
예비판을 이용해 부정 기호를 찍되, 실제 마을의 계약이나 공급 설정에는 연결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묵이 안쪽에서 수동 인쇄를 담당했고, 니아는 공급 계측을 지켜봤다. 나는 현장 기록을, 아르웬은 시험 중지 조건을 맡았다. 루루는 긴급 연락 장부를 들고 있었다.
"다들 준비됐나요?"
"준비됐어요!" 루루가 외쳤다. "시험이 성공하면 축하 케이크 주문해도 되죠?"
"성공하면."
"그럼 주문 취소 수수료는요?"
"너는 왜 그런 계산부터 배우는 거야."
실험은 처음에는 순조로웠다. 원본판에 찍힌 기호는 분명 부정이었다. 그 문양을 조판실 밖 관측석이 읽고 '거부'라고 표시했다.
그런데 제4 보정실 화면에는 다른 문구가 나타났다.
[예외 상태 확인]
[표준값으로 대체 권고]
"여전히 바꾸려고 하네." 내가 중얼거렸다.
[대체 예정값: 승낙]
아르웬이 즉시 중지 조건을 확인했다. 예비판은 본 공급 시스템과 분리돼 있었지만, 표준값으로 대체하는 기능이 같은 통제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현장 시험은 중지합니다."
묵이 바늘을 놓자 화면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공급 상황은 그대로였다. 북방 온수관, 동부 온실, 서쪽 저장고 모두 변동이 없었다.
"문제는 확인됐군요." 내가 말했다. "원본이 틀린 게 아니라 출력 제어기가 대답을 고치고 있어요."
니아가 기록을 정리했다.
'그리고 공급량을 계산하는 통로는 시험 내내 정상으로 유지됐어요. 다만 실제 출력판 정지는 지역별로 확인해야 해요.'
그때 수신석에서 북방 미레의 얼굴이 나타났다. 뒤에는 아이 둘이 작은 모포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상담원님, 온수관이 멈추는 건 아니죠?'
"멈추게 할 계획은 없습니다. 지금은 별도 시험이었고 마을 공급은 정상입니다. 앞으로 위험이 생기면 직접 알리겠습니다."
'그럼 하나만 물어볼게요. 우리는 계약서를 받아 봤지만 그 내용에 찬성한 적은 없어요. 이걸 어떻게 말해야 기록이 남나요?'
나는 앞에 놓인 큰 장부를 들었다.
"그대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받았다는 것과 동의했다는 것은 다른 항목으로 적겠습니다. 동의 여부를 지금 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미레는 잠시 아이들을 돌아봤다.
'받은 것은 맞아요. 새 조항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하지만 난방은 계속돼야 해요.'
나는 세 문장을 따로 적었다.
그동안 미레의 뒤에서는 아이가 작은 숟가락으로 수프를 떠먹고 있었다. 아이는 계약서가 뭔지도 모른 채 찬 숟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겨울에 난방이 멈추면 저 아이가 추워질 것이다. 난방을 유지해 달라는 요구는 천계의 권한을 인정한다는 정치적 선언이 아니었다. 그저 오늘 밤을 따뜻하게 보내고 싶다는 말이었다.
[문서 수령: 확인]
[신규 변경 동의: 거부]
[기존 난방 유지: 요청]
동부 탄지도 수신석에 접속했다.
'저희는 지금 결정을 미루고 싶어요. 온실 보조 냉각만 그대로 두고, 새 요금은 설명을 받아 본 뒤 결정하겠습니다.'
[문서 수령: 확인]
[신규 변경 동의: 보류]
[기존 냉각 유지: 요청]
서쪽 노부부도 끼어들었다.
'우리 쪽은 그 문서 자체가 안 왔는데 수령 완료로 돼 있다니까!'
[문서 수령: 부인]
[신규 변경 동의: 미확인]
[기존 저장 설비 유지: 요청]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자기 입장을 말할 줄 알았다. 문제는 기계가 그 여러 문장을 전부 한 칸에 욱여넣으려는 데 있었다.
"이런 걸 원래부터 했어야 했네요." 루루가 말했다.
"그러게. 고객센터라는 간판을 붙여 놓고 정작 고객에게 안 물어봤네."
그때 제14 수신석이 빛났다.
[일괄 의견 대표: 13개 지역의 의사 합산 완료]
[표준 응답: 승낙]
나는 눈을 비볐다. 세 지역은 분명 서로 다른 말을 했는데, 대표값은 대체 무슨 근거로 승낙이 된 걸까.
"이 판정은 시험 접수만으로 나온 거지?" 내가 물었다.
니아가 답했다.
'네. 실제 설비 변경은 확인되지 않아요. 하지만 일몰 자동 교정에 사용될 대표값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럼 우리 목소리가 또 다른 곳에 도착하겠네."
나는 미레와 탄지, 서쪽 노부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화면에는 세 가지 다른 의사가 남아 있었지만, 자동 합산은 그 차이를 지우고 있었다.
"이 기록을 원본 그대로 보전하고 긴급 심리 자료로 제출해도 되겠습니까? 마을 이름과 개인 정보는 공개 범위를 따로 확인하겠습니다."
세 사람이 각각 답했다. 어떤 사람은 실명 공개를 허락했고, 어떤 사람은 익명으로만 사용해 달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하루 뒤 결정을 내리겠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따로 기록했다.
그러자 검은 조판실에서 또 하나의 메시지가 왔다.
[노의 직접 발언: 대표값은 내 말이 아닙니다.]
잠시 뒤 검은 거울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멀리 있는 종탑의 종까지 혼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동 교정까지: 00:30:00]
[열세 지역 표준값 정렬 준비]
로딘이 꼬리를 치켜들었다.
"드디어 부술 시간이냐?"
"아뇨. 드디어 말할 시간입니다."
"네가 언제는 말을 안 했더냐!"
맞는 말이다. 아마 내 전생 상사도 똑같이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을 잘하는 것보다, 그 말이 바뀌지 않고 도착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했다.
제15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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