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154화
PAYLUA ORIGINAL · 제154화

154화. 책임자는 없는데 야근하는 직원은 있더군요

세계수 고객센터입니다 · 2,593자

오프라인 책장
검은 조판실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난 건 오후 세 시였다. 문이 열린 게 아니었다. 관측창 아래의 오래된 통풍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계속 서류 좀 그만 흔들어! 바람이 들어와서 조판 순서가 틀어져!" 목소리는 낡은 자루를 긁는 것처럼 거칠었다. "누구십니까?" 내가 물었다. "묵. 조판실 야간 담당." "지금 낮 세 시인데요." "야간 담당은 낮에도 담당이지. 여기선 근무표가 칠십 년 전에 멈췄거든." 나는 목이 메었다. 감동해서가 아니다. 칠십 년째 야간 담당이라니, 이세계 노동 환경은 지옥에도 수출할 수 있겠다. "근무 교대는요?" "없어." "휴가요?" "봉인 구역에 휴가가 어디 있어." "퇴직금은—" "그것부터 묻지 마! 있으면 나도 여기서 일하겠냐!" 아르웬이 옆에서 조용히 기록했다. 오래 근무한 정령의 신원과 안전 상태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계약 위반이라 단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조사 필요성은 분명했다. 묵은 조판실의 모든 기계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활자 순서를 맞추고 고장 난 조판 바늘을 갈아 끼우는 작업 정령이었다. 금속 활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최종 거울의 교정 규칙은 바꿀 권한이 없었다. "거울이 왜 두 개인지 알아요?" 묵이 물었다. "하나는 원본, 하나는 출력용이라고 들었습니다." "처음엔 원본을 보호하려고 만든 거였어. 원본을 손대지 않고 읽기 좋은 사본을 만들라고. 그런데 열일곱 해 전에 새로운 교정판이 들어왔지. 사본이 원본을 대표하기 시작했어." "그때 누가 지시했습니까?" 묵이 낮게 웃었다. "도장만 왔어. 얼굴은 안 왔지. 도장에는 담당자가 적혀 있었는데 그 이름 칸은 비어 있었어." 역시나. 얼굴 없는 도장, 근무하지 않는 관리자, 자기 말이 아닌 계약서. 다 합치면 회사를 하나 차려도 되겠다. 이름은 '책임 없음 주식회사' 정도가 좋겠군. 그때 묵이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근데 그 뒤로 멋대로 멈출 수가 없었어. 여기가 멈추면 북방 마을에 공급량 예측이 안 들어가. 동부 온실의 보조 냉각도 영향을 받을 수 있지." "그럼 기계가 하는 일이 동의 조작만은 아니군요." "맞아. 열세 지역의 공급 표본을 정리하는 통로가 한 판에 묶여 있어. 나도 그게 싫어. 하지만 바꾸라고? 바꿀 권한이 없잖아." 나는 투입구 앞으로 무릎을 굽혔다. "묵 씨, 기계 전체를 멈추자는 게 아닙니다. 원본이 어디에 저장되는지, 교정판을 지나기 전과 후에 어떤 차이가 생기는지만 확인하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가능해. 다만 내 손이 닿는 건 원본 바늘과 예비 인쇄판뿐이야. 승인판은 다른 회선이 쥐고 있어." "그럼 그 범위까지만 도와주세요. 위험하면 안 하셔도 됩니다." "위험은 늘 있지. 그런데 이번엔 밖에서 누가 책임을 같이 져 주는 거냐?" 대답이 쉬울 리 없었다. "제가 조사 기록을 남기고, 아르웬 소장님이 현장 안전 절차를 확인합니다. 필요한 보전 명령은 관할 담당자에게 요청할 겁니다. 지금 다 해결한다고 약속은 못 해요." "좋네. 그런 말은 오랜만이다." 묵의 손에서 종이 한 장이 밀려 나왔다. 거기에는 작은 표가 있었다. 종이 한구석에 오래된 커피 잔 자국 같은 둥근 얼룩이 있었다. 묵이 따로 낙서를 해 둔 작은 그림도 보였다. 조판실 바깥으로 나가 햇빛을 쐬고 있는 정령의 뒷모습이었다. "그 그림, 묵 씨예요?" "아니. 언젠가 나 대신 들어올 새 직원이지." "새 직원 얼굴이 안 보이는데요." "모르는 얼굴이니까." 묵이 말했다. "그냥 누군가는 들어오고 나는 나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어." 내가 괜히 종이를 펴 보인 게 미안해졌다. 하지만 그 그림이 마음에 남았다. 조판실을 멈추는 것뿐 아니라, 그곳에 갇힌 사람이 실제로 쉴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원본 저장: 조판실 하부 저장판] [사본 생성: 검은 거울] [표준값 기록: 제4 보정실 외부 회선] [공급량 계산: 원본 수치 회선 별도] 나는 마지막 줄을 가리켰다. "공급량 계산은 별도라고요?" "그래. 원래는 그랬어. 나중에 누군가 화면만 하나로 묶어 놓은 거야." 니아가 즉시 계측했다. '물리적 회선은 분리돼 있어요. 출력판을 멈춰도 공급 계산을 유지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실제 시험 없이 보장할 수는 없어요.' "그럼 시험은 안쪽이 아니라 안전한 예비판에서 하죠." 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그림자가 관측창에 비쳤다. 커다란 앞치마를 입고, 손에 잉크가 잔뜩 묻은 작은 정령이었다. 한쪽 팔에는 오래된 화상처럼 보이는 자국이 있었다. 로딘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인간. 그 손의 자국을 봐라." 나도 봤다. 하지만 열일곱 해 전 드래곤을 찾아왔던 사람의 흉터와 같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묵 씨, 손은 괜찮으세요?" "괜찮지는 않지. 노가 거울에 끌려갈 때 잡으려다 그랬어."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누가 누구를 구하려 했는지는 천천히 확인해도 되었다. 그날 묵에게 처음 약속한 일은 거창한 진실 규명이 아니었다. "교대 담당부터 찾아드리겠습니다. 칠십 년 야간 근무는 민원이 아니라 재난이에요." 묵이 웃다가 기침했다. "그거부터 해 줘. 원래 이 조판실에서 '아니오'를 가장 많이 말한 건 노가 아니라 나였거든."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54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54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