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관측창 아래에 손바닥만 한 투입구가 있었다. 오래된 작업자 연락함이었다. 안쪽에서 돌돌 말린 종이 한 장이 미끄러져 나왔다.
[부탁합니다. 저를 꺼내려고 설비를 멈추지는 마세요.]
"왜요?" 내가 물었다.
잠시 뒤 다음 종이가 떨어졌다.
[제가 꺼내지면 기계가 마지막 출력으로 설정됩니다.]
이상한 세계다. 누군가를 구하려고 잡아당기면 오히려 그 사람의 마지막 대답이 마을 전체로 보내진다니. 하긴 전생에서도 전화를 끊으면 '상담에 만족하셨습니다'라고 처리하는 회사를 본 적이 있었다.
"이름이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옛날에는 있었습니다. 지금은 분류번호만 있습니다.]
"번호 말고 본인이 원하는 호칭이요."
투입구가 한참 조용했다. 우리는 재촉하지 않았다. 바깥에서는 바람이 줄기를 지나며 낮은 휘파람 소리를 냈다. 내 손등에 조금 전 받은 종이 가루가 내려앉았다.
노가 대답하지 않는 동안 루루는 분류번호를 적으려다 펜을 놓았다. 이름을 묻고 기다리는 사람 앞에서 번호부터 적는 게 이상하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노.]
"노?"
[부정 활자라서, 저를 돌보던 사람이 노라고 불렀습니다.]
루루가 투입구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노 씨! 안녕하세요! 저는 루루예요! 저기 있는 인간은 시온이고, 저 엘프는 규정이에요!"
"아르웬입니다." 관리소장이 즉각 정정했다.
"저는 규정이라고 한 적 없어요. 규정을 지키신다고 했죠!"
"방금 명백하게 규정이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다투는 동안 안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났다. 금속으로 된 글자가 웃는 소리는 사포를 접는 소리와 비슷했다.
니아가 보내 온 관측 기록에 따르면 노는 하나의 특수 활자였다. 활자 표면에는 고대 계약 언어의 부정 기호가 새겨져 있었다. 이를 읽으면 '아니오'가 되고, 인쇄하면 계약서에는 거부 표지가 찍혀야 한다.
하지만 검은 조판실의 최종 출력판에는 전혀 다른 것이 나타났다.
[승낙]
"원래 글자를 바꿔 깎아 버린 건가?" 내가 물었다.
'원본 활자는 온전해요.' 니아가 답했다. '중간에 반전용 유리판이 하나 있어요. 노가 지나갈 때마다 다른 문양을 출력해요.'
"그럼 유리판만 빼면 되는 거 아니에요?" 루루가 말했다.
"문제는 그걸 빼는 동안 이미 찍힌 계약서들의 상태야. 설비에 묶인 공급망도 있고. 갑자기 건드리면 어디서 어떤 명령이 끝날지 몰라."
그때 로딘의 목소리가 회랑 위쪽에서 들렸다.
"인간! 내가 아주 작은 도구를 준비했다!"
드래곤은 바늘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고 왔다. 크기가 내 키만 했다.
"그건 창이잖아요."
"드래곤 기준으로는 바늘이다!"
"말씀만 감사합니다. 현장 반입은 금지입니다."
그는 실망한 얼굴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냥 가지만은 않았다.
"노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기억난 게 있다." 로딘이 말했다. "열일곱 해 전 내게 찾아온 자의 손에는 활자 모양 흉터가 있었다. 그자가 외쳤지. '노를 죽이지 마라. 거절을 지우면 나무가 먼저 죽는다.'"
나는 숨을 고르고 물었다.
"그 목소리가 라에였습니까?"
"모른다. 얼굴도 이름도 밝히지 않았어. 다만 그자는 자기 말보다 다른 존재의 말을 돌려달라고 했다."
기억과 기록이 똑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로딘의 증언은 단서였고, 여전히 확인해야 했다.
안에서 편지가 한 장 더 나왔다.
[그 사람이 저를 두 손으로 감쌌어요. 손이 탔는데도 놓지 않았습니다.]
루루가 편지를 받아 들다가 눈을 깜빡였다.
"노 씨, 지금도 아프세요?"
[저는 금속이라서 아픔이 조금 다릅니다. 제 말이 다른 말로 나가는 게 더 아파요.]
나는 가방에서 빈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투입구로 밀어 넣었다.
"이건 외부에 제출하지 않을 종이입니다. 지금 어떤 대답을 하고 싶은지, 인쇄하지 않고 손으로 표시할 수 있나요?"
잠시 후 종이 가장자리에 세 번 작은 흠집이 났다. 가운데에는 삐뚤빼뚤한 부정 기호가 새겨져 있었다.
'아니오.'
거울도, 인장도 거치지 않은 직접 표시였다. 나는 종이를 봉투에 넣었다. 진위 여부를 따로 검사하기 전까지 법적 효력을 주장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노 씨, 이 표시를 증거로 보존해도 됩니까? 사용 목적은 당신의 실제 발언과 기계 출력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뿐입니다."
[네. 그건 제 대답입니다.]
"고맙습니다."
루루가 신기하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시온 님, 노 씨는 '아니오'인데 지금 '네'라고 하셨어요!"
"그래. 그래서 중요한 거야. 거부를 담당하는 사람도 자기 일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거든."
"아, 그러니까 남들이 마음대로 정하면 안 되는 거군요!"
"맞아."
아르웬이 기록을 정리했다.
"노의 이름과 동의 여부를 별도 항목으로 보관하겠습니다. 한 번의 답변을 모든 사안의 승낙으로 사용하지 않도록요."
접수석이 낮게 울렸다.
[검은 조판실: 원본 발언 확인 시도 감지]
[중앙 보정 규칙과 충돌]
[자동 보정 관리자에게 통보]
그 아래 한 줄이 뒤따랐다.
[현장 점검 신청인: 최시온]
"또 나야?"
누군가 허락을 받지도 않고 내 이름으로 신청서를 내고 있었다.
이쯤 되면 사칭범보다 내 전자서명 관리 능력이 더 문제였다.
제15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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