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는 오래 산다.
수백 년을 산다. 건강을 잘 관리하면 천 년 가까이 산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해고 통보를 받을 때는 인간과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
“저, 진짜 잘린 건가요?”
아르웬이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공문을 내밀었다.
[제칠 관리소장 아르웬. 긴급 재난 경보의 독단적 발령 및 전력청 업무 방해를 이유로 파면 의결 청문회 출석을 요구함.]
“아직 파면은 아니고요. 파면할지 의논하는 자리랍니다.”
“그런데 문서 맨 위에 '파면 예정자'라고 적혀 있잖아요.”
“직원 복지가 훌륭하네요. 결과를 미리 알려 주네.”
내 농담에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르웬은 광장 대피 때 찢어진 장갑을 다시 끼고 있었다. 기워 놓은 실밥이 손바닥을 따라 삐뚤게 지나갔다.
“저 때문에 제칠 관리소 직원들까지 징계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소장님이 사람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다면 직원들은 장례식 준비하느라 더 바빴을 겁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저도 알아요.”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잘못한 사람처럼 고개 숙이고 들어가진 맙시다.”
청문회는 천계의 행정 대성당에서 열렸다. 기둥 사이에는 푸른 유리가 끼워져 있었고, 천장에는 법전 구절이 빛났다. 입구에서 신분을 확인하는 천사는 우리의 서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시온, 임시 재난 대리인. 권한 재검토 중. 출입 허용 여부 검토 중.”
“검토가 세 번이나 들어가는데요?”
“관련 부처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입장은요?”
“검토 결과를 검토해야 합니다.”
여기가 진짜 천계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감탄했다.
에델 감사관이 뒤에서 다가왔다. 오늘은 안경 옆에 작은 금빛 배지가 달려 있었다.
“제 이름으로 참관 신청을 접수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감사관님은 직무 정지 안 당했어요?”
“정지 청구가 올라왔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제 저희 동료가 되겠네요.”
“전혀 기쁘지 않습니다.”
그가 건네준 두꺼운 서류에는 규정들이 빼곡했다. 가장 중요한 조항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긴급 재난 상황에서 현장 관리자가 위험을 즉시 고지할 수 있다. 단, 사후 72시간 이내 소명한다.]
“왜 이 규정이 지금까지 안 나왔죠?”
“공식 안내서에는 빠져 있습니다. 주석에 남아 있지요.”
“그 주석은 누가 읽습니까?”
“대부분의 관리자는 읽지 않습니다.”
“그럼 저 같은 진상 민원인이 필요하겠네요.”
“그런 직종을 장려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청문장 안에는 세 명의 심의관이 앉아 있었다. 가운데 심의관은 잿빛 날개를 정돈한 노인이었고, 왼쪽은 판결 기록 정령, 오른쪽은 전력청 파견 심사역이었다.
벨리안은 전력청 대표석에 앉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최시온 씨, 또 만나는군요.”
“그러게요. 고객님이 저를 너무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이 자리의 당사자가 아닙니다.”
“증인입니다.”
“누가 불렀지요?”
나는 뒤를 돌아봤다. 입구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축제 때 구조된 아이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그 뒤로 휠체어에 앉은 노인과 상인, 대피 안내를 도왔던 음유시인이 줄지어 들어왔다.
“저희가 불렀습니다.”
루루는 공동 민원서 한 뭉치를 번쩍 들었다.
“현장 증인 263명, 소명 서류 263건!”
심의관은 놀라 안경을 고쳐 썼다. 이런 청문회에는 보통 관리소장 혼자 나타나서 잘못을 시인하고 끝났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르웬이 떨리는 손으로 기록판을 들어 올렸다.
“저는 승인 없이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벨리안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면 위법을 인정하는 겁니까?”
“아니요. 현장 판단이었고, 당일 광장에 부식 낙엽이 떨어졌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했습니다.”
“결과가 좋았다고 절차 위반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사후 72시간 이내 소명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자료를 제출합니다.”
아르웬이 고개를 들었다.
“사후 소명도 허용하지 않고 미리 징계부터 내리면, 다음 재난 때 관리자는 허가가 날 때까지 사람들을 광장에 남겨 둘 겁니다. 그것이 천계가 원하는 질서입니까?”
멋있었다. 정말 멋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속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실제로 박수를 치면 쫓겨날 것 같아서 참았다.
벨리안은 서류를 한 장 들어 보였다.
“경보가 울린 뒤 광장에서 재산 피해가 발생했소. 이는 독단적인 대피 명령이 초래한 혼란일 수 있지 않습니까?”
나는 손을 들었다.
“질문에 순서가 하나 빠졌습니다.”
심의관이 나를 바라봤다.
“설명하십시오.”
“재산 피해가 대피 명령 때문에 났는지, 나뭇잎이 떨어져서 났는지 구분해야죠. 먼저 원인을 확인해 주세요.”
벨리안은 미간을 좁혔다.
“그런 세세한 논쟁을 하자는 게 아니오.”
“사람 목숨에 관한 결정이니까 세세하게 해야지요.”
나는 광장 사진 두 장을 띄웠다. 첫 번째에는 대피 이전 정상적이던 분수와 좌판들이 찍혀 있었다. 두 번째에는 부식된 낙엽이 떨어진 뒤 땅이 녹아 구덩이가 생긴 모습이 있었다. 시간 기록이 두 사진 아래 나란히 표시됐다.
“대피 명령은 이 첫 번째 사진 뒤에 나왔고, 재산 피해는 두 번째 순간에 발생했습니다. 책임이 있다면 재난 경보를 늦게 승인한 체계가 먼저 설명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심의관이 목을 가다듬었다.
“증인 진술을 계속 받겠습니다.”
아르웬이 내 쪽을 아주 살짝 바라봤다. 그 얼굴에는 조금 전까지 없던 결심이 서려 있었다.
첫 번째 증인은 휠체어에 앉은 노인이었다.
“그 엘프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여기 없소.”
두 번째는 상인이었다.
“가게는 망가졌지만 애들은 살아 있소. 내 물건을 챙기게 했다면 더 크게 다쳤을 거요.”
세 번째는 음유시인이었다. 그는 감동적인 노래를 하려다가 내가 눈짓하자 간단하게 말했다.
“제가 축제 진행자였습니다. 제 무대가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대피가 맞았습니다.”
벨리안은 입꼬리를 더 이상 올리지 않았다.
“증인들의 감정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공공 안전은 개인의 선의만으로 운영되지 않습니다.”
“그 말은 맞죠.”
나는 허락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우리가 낙엽의 독성 반응, 떨어진 위치, 부식된 바닥, 대피 시각을 전부 기록했습니다. 개인의 선의가 아니라 실제 위험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넘긴 기록판에 부식된 광장의 모습이 나타났다. 피해 위치를 표시한 지도는 대피 경로와 정확히 겹쳤다.
청문장 안이 조용해졌다.
그때 벨리안이 내게 말했다.
“세계수 자체가 위험물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나무를 보존하려다 대중을 위험에 노출하는 게 아니오?”
“그래서 조사하는 겁니다. 그런데 전력청은 조사를 막았습니다.”
“근거가 있습니까?”
“있죠.”
나는 한 장의 영수증을 들었다.
[특별 보전 계정 0-14]
[공동관리 신탁 대표자: 벨리안]
재판장의 공기가 바뀌었다. 에델은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벨리안은 내 손에 들린 종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기록은 기밀입니다.”
“기밀이면 주민들한테 돈을 걷을 때도 기밀이어야 했죠. 영수증에 찍으셨잖아요.”
심의관 가운데 한 명이 벨리안을 향해 물었다.
“이 계정과 세계수 안전 조사 방해는 관련이 있습니까?”
벨리안은 잠시 침묵했다.
“지금 답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원자료 보전을 명령합니다.”
나는 그제야 숨을 쉬었다.
심의관은 긴 토론 끝에 결정을 읽었다.
[아르웬의 파면 의결 보류.]
[사후 소명 수리.]
[관련 전력청 기록 보전 명령.]
아르웬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그녀는 내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저 말고 증인들한테 하세요. 저 사람들은 월급도 안 받고 왔으니까.”
밖으로 나왔을 때 에델이 내 옆에 섰다.
“최시온 씨. 오늘 결정으로 기록이 보전되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벨리안은 훨씬 위험한 수단을 쓰게 될 겁니다.”
“원래 악성 고객들은 자기 말이 안 먹히면 목소리부터 키웁니다.”
그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목소리만 키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통신판이 울렸다.
[긴급 복구 명령 집행 예정: 2시간 후]
[제삼 추출 고리 재가동 시 지역 우회 공급로 강제 단절]
아르웬도 메시지를 봤다. 그녀가 나를 향해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회식할 시간이 없군요. 다시 현장 갑시다.”
제1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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